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48화 (448/609)

00448  잠겨버린 꿈  =========================================================================

각국 첩보기관, 그리고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도 마냥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한서진이 큰 발표를 준비할 때부터 그들은 물밑에서 치열한 정보 수집을 펼쳤다. 아니, 꼭 이번만이 아니다. 한서진은 그들에게 있어 언제나 경계 대상이었다. 그를 의식하지 않으면 기업 경제든 국가 경제든 온전히 살아남지를 못한다.

수확은 분명 있었다.

H그룹의 갑작스러운 사업 철수 및 지분 정리 작업을 포착한 것이다. H그룹은 해운을 비롯한 물류 운송 사업에서 급히 빠르게 손을 떼기 시작했고, 당연히 그 움직임은 쉽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H그룹의 움직임을 통해, 다국적 기업 및 각국 정부는 이번 연구 테마가 물류 혁신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연히 그들은 다양한 시나리오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충격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운송 수단에 있어 획기적인 개선이 가능해진 게 틀림없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확히 짚을 수야 없지만, 아마 운송비를 대폭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기존 해운업에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수십만 톤짜리 위그선 같은 것을 실용화했거나, 에테르 항공 엔진 같은 것을 개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항공 운송의 효율이 해운 운송에 맞먹거나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비할 건가?”

“기존 물류 운송 사업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면서, H그룹에서 운영할 사업에 파트너로서 참가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서 여러 가지 대비책을 세워 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만만하게 기다렸다.

어떤 발표를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사업의 가장 큰 적은 불확실성, 하지만 거대 변수의 방향성과 규모를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랬는데…….

“웜홀 게이트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제 지구 반대편까지 한순간에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이 괜히 일어서다 말고 넘어진 게 아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졌다. 마치 끔찍한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청중은 경악성을 지르기 바빴다.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원형 균열,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환각이 아니라면, 저 커다란 균열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과 뚫려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서진이 강단에서 내려와서 그들을 둘러봤다.

“자, 가 보실까요?”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균열 너머를 향해 발을 성큼 뻗었다.

쥐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누가 먼저 나서야 할지를 놓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발을 내딛은 것은 러시아 대통령 포티였다. 그는 경직된 표정을 애써 감춘 채 한서진을 따라 웜홀 균열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균열을 통과하는 순간, 포티 대통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공간을 넘어가는 순간, 뺨에 와 닿는 공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틀림없이 아까 있었던 H연구소와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평양 종합 첨단연구공단을 직접 방문한 적은 없지만, 영상자료로 접했던 그곳이 틀림없어 보였다.

다른 걸 떠나서, 분명히 이곳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포티 대통령은 뒤를 돌아봤다.

‘맙소사.’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균열 너머로,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H연구소 발표회장이 보였다.

“위성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게.”

「확인했습니다. 지금 대통령 각하께서는 틀림없이 평양 종합 첨단연구공단에 계십니다. 위치 추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가 신음을 흘리는 사이, 미국 대통령도 정신을 차리고 웜홀 균열을 넘어왔다. 그 뒤를 이어 다른 국가 원수들도 차례차례 워홀을 넘어왔고,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H연구소 사옥에서 이곳 평양은 수백km가 족히 넘는다.

그런데 겨우 몇 걸음을 뗀 것만으로 이렇게 손쉽게 이동이 가능하다니?

“공간 이동을 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먼저 균열을 넘어갔던 한서진이 태연히 물었다.

크리스 대통령은 가슴이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엄청난 연구를 이뤘으면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니.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이지 않은가.

‘이건……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바꿀 과학 기술이다!’

한서진이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어떤 저명한 과학자는 말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지 않으며, 앞으로 매년 한서진을 노벨상 수상식에서 보게 될 거라고.

본래 노벨상이라는 것은 법칙의 발견과 정리를 더 중요시 여긴다. 획기적인 발명품을 내놓았다고 해서 기념 트로피 늘리듯이 덥석 지급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 대통령은 그 과학자의 예견이 사실이 될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포티 대통령은 아무 말도 없이, 똑바로 선 채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진 박수는 다른 국가 원수들 사이에 전염되듯이 퍼졌고, 균열 너머 발표 회장에서도 우렁찬 박수 소리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수백km 떨어진 곳의 박수소리를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니. 이 순간만큼은 청중들도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전 지구가 발칵 뒤집혔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웜홀 이동 기술이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하고 만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업적에 사람들은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했다.

‘아무리 한서진 박사가 천재라 해도, 웜홀 기술을 혼자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이렇게나 단시간 내에?’

전 지구적 사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세력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것은 거친 반발에 부딪쳐 여지없이 박살났다.

―그럼 저 많은 국가 원수들은 다 바보라서 그 자리에서 박수 치고 앉아 있었겠냐?

―그날 웜홀 이동 경험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 줄 알아? 현장을 가봤어야 알지. 맨날 방에서 키보드만 두드리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

―대단하다. 한서진 진짜 대단하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한가놈이 왜 한국인? 그 새끼 코쟁이 양키잖슴.

―아직도 한서진 박사 인터넷에서 까는 놈이 있었네?

―까면 좀 어떰? 뭐 내가 누군지 알아내기라도 한대?

―앗, 여기 베스트 댓글에 저놈 신상 떴다. 경남 김해 어방동 XXX번지 305동 1203호라네?

―신나게 설치다가 저놈 입 꾹 다무네.

―H컨설턴트에서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저 놈도 참 병X 같은 놈이다.

―놔둬. 이제 실전 고소 겪을 텐데.

금 소행성 때도 전 지구적 사기극이라는 주장이 크게 힘을 얻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웜홀 이동의 실용화라니. 믿기 힘든 대단한 업적 아닌가.

각 선진국 국가원수들을 포함한 10만 명이 넘는 청중을 모아놓고 직접 시범을 보이지 않았으면, 사기극이라는 주장은 더욱 더 큰 힘을 얻었을 것이다.

모든 정황이 한 올의 의심 없이 뚜렷하기 때문에 사기극이라는 주장이 사이비 종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웜홀 유지에는 일정한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그 효율은 크게 나쁜 편이 아니며, 방사선 등의 오염 요소는 전혀 발산하지 않습니다. 일단 지구 반대편을 잇는 웜홀을 열었다 가정했을 때 1년 이상 유지하는 것은 당장에라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운송 관련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특히 해운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주가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다.

시중에는 매물만 있을 뿐, 사겠다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긁어모으는 세력이 있을 뻔한데, 전혀 없었다.

“해운송은 비용이 저렴하고 많은 물량을 옮길 수 있다는 장점뿐이었는데, 웜홀 포탈 시스템이 갖춰지면 아무 쓸모없지. 지구 반대편까지 단숨에 옮길 수 있는데 뭐 하러 배를 이용하냐?”

“이제 화물선이란 단어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네.”

“물류 산업에는 엄청난 타격이다. 전 세계에서 배로 실어 나르는 물품의 양이 어마어마한데, 그걸 몽땅 웜홀이 흡수해버리는 거 아니야?”

“이번에도 미국이냐? 진짜 미국은 앞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절대제국으로 남겠네.”

웜홀이 물류 시장에서 차지할 어마어마한 지위를 상상해본 사람들은 그저 혀를 내둘렀다. 한서진이 웜홀 물류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난 지금 물류 산업 재편보다 웜홀이 무기로 이용될 가능성이 더 염려되는데. 막말로 지구 반대편에 핵탄두를 터트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것도 미사일 없이.”

“미국 번화가에 열린 웜홀로 핵탄두 실은 IS 트럭이 돌진이라도 하면? 크리스 정권은 대책이 있긴 한 거야?”

웜홀이 무기로 활용되거나, 혹은 테러리스트의 노림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했고, 군사에 관심이 넘쳐나는 사람들도 그 점을 우려했다.

“그런데 왜 다들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지 모르겠다. 웜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 시대가 열렸다는 거야. 화성 유인탐사도 제대로 못하는 인류 문명이 마침내 먼 외우주로 나갈 길이 생긴 거지.”

“내가 살아생전 스타트렉 현실판을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발표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나도 웜홀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언제든지 실용화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한서진의 추가 발표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더욱 불태웠다. 투자자들은 돈을 싸들고 한국을 찾았으나, 한서진은 외부 투자가 전혀 필요 없었다.

웜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물류에 혁신을 불러올 수 있고, 주거 시장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테러 등 군사 분야에서도 민감한 지위를 차지하며, 결정적으로 인류를 진정한 우주 세기로 이끌어줄 권능을 지녔다.

한편 직접적인 경제 분야에서 재미있는 효과가 벌어졌다. 일례로 한국 부동산 시장을 들 수 있었다.

수도권, 특히 서울 주택 시세 상승율이 하루아침에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이다. -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차이였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웜홀을 통해 서울 시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면 굳이 공기 나쁘고 집값 비싼 서울에서 거주할 이유가 없다.」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서울 집값 단속, 이렇게 쉽게 잡히나?」

「지금 부동산 투기 시장은 패닉 중.」

웜홀 게이트로 전국이 촘촘하게 연결된다면 굳이 도시 생활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웜홀을 타고 도시 시내로 이동하는 시간이 20분 이내로 단축된다면, 누가 공기 나쁘고 집값이 비싼 도시에서 살겠는가.

충격은 부동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래자동차! 주가 대폭락!」

「미래자동차 경영진, 비상 구조 조정 대책 발표!」

「자동차 시장, 변혁인가 파멸인가.」

「모든 건 웜홀 이동 시스템 구축의 규모에 달렸다.」

항공기, 선박, 차량 등 이동에 관련된 수단은 직접적인 1차 타격을 받았다. 2차 타격은 기름이었다.

============================ 작품 후기 ============================

흉기차가 이렇게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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