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41화 (441/609)

00441  전환점에 서다  =========================================================================

오랜 진통 끝에, 북한 난민 수용 작업이 모두 완료되었다.

해당 난민들에게도, 그리고 관련 기관 및 NGO 단체에게도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다.

2,200만여 명의 난민들 중 한국이 수용하고 있던 인구는 약 800만 여 명. 그 외의 1,400만 여 명의 난민의 대부분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이 분산해서 돌보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은 놀고 있는 빈 땅에 임시 수용소를 대거로 지어 난민들을 머무르게 했다. 미국과 유럽은 초대형 유조선과 화물선을 개조하여 난민들이 머무를 수 있는 거처를 만들어 제공했다.

일본의 ‘호의’에 당시 한국 여론은 여러 가지로 어리둥절했지만, 미국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그런 혼란은 곧 사그라졌다.

안 그래도 첨단 과학을 선도하는 한서진의 눈치를 봐야 하는 판국에, 미국의 압력까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이 난민 수용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은 것이다.

당연히 일본 여론은 최악이었다.

극우층은 왜 일본의 혈세로 북한 난민들을 돌봐야 하느냐며 매일 같이 시위를 했고, 이베이 정권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포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본이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최하 수준이었다.

일단 식사는 하루에 두 끼, 그것도 몇 년씩 유통기한이 된 전투식량 위주였다.

처음에는 자위대 재고분을 동원했고, 그것이 바닥난 후에는 타국 전투식량 재고분을 매입해서 제공했다. 암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라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의류, 담요, 휴지, 치약 및 칫솔 등의 생필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북한 난민들은 반쯤 거지 떼나 다름없는 채로 살아야 했다.

그에 관해 한국 인권단체에서 항의가 빗발쳤으나, 일본 정부는 모른 체 했다. 오히려 일본 언론이 거세게 받아쳤다.

―수백만 명이나 되는 난민들을 무상을 보호해주는 것만 해도 일본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난민 수용에 쏟아 붓는 돈이 하루 얼마인지나 아는가? 일본은 선진국으로서 난민들의 생활 및 인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보호 중인 난민들의 생활수준도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다.

그나마 미국이 맡고 있는 난민들은 식료품과 생필품에서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었으나, 오래 이어진 비좁은 선상 생활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다.

반면 한국에 체류 중인 800만 여 명의 난민들은 그들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특별 국채로 조달한 3조 달러의 기금 덕분에 난민들을 돌보는데 재정적으로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여론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난민들을 동정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재건 산업에 쓰여야 할 기금이 의미 없는 생활비로 날아간다며 불만의 목소리도 제법 나왔으나,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해외 난민들은 국내 난민들을 부러워했고, 수용 장소가 국내로 옮겨지기를 염원했다.

그런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국은 조금씩이지만 해외 난민들을 국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난민 집단이 국내에 입항하는 순간, 한국은 모처럼 큰 축제 분위기를 누렸다.

“북한 난민들도 똑같이 우리나라 국민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순간, 대통령도 항구에 몸소 나와서 연설을 발표했다.

“우와아아! 도원패! 도원패!”

“도원패 대통령! 만세!”

최근 자신과 측근들을 비롯한 모든 정치 생명을 걸고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내건 도원패 대통령은 비정상적일 만큼 강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는 정치 보복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사방에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폭격을 흩뿌리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수십 년 전에 은퇴하고 조용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전직 대통령 및 그 가족과 친지들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전수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전직 대통령이 도원패 대통령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 아버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성역 없는 개혁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수십 년 간 걸어온 정치적 행보와 전혀 정반대인 정책을 펼치고 있기에, 유권자들도 처음에는 당황했다. 심지어 정권 초기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아무것도 안 하고 청와대에서 신선놀음만 누리던 대통령 아니었던가.

그러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숨어 있는 거대 국가적 비리가 세상에 속속들이 드러남에 따라, 도원패 대통령은 국민들의 열성적인 성원을 얻을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최후의 해외 북한 난민들이 배에서 내리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도원패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앞으로 북한 난민들의 미래에 관해서…….」

“그놈도 어떻게 보면 참 물건이란 말이야.”

TV를 보고 있던 백철중 회장은 혀를 끌끌 찼다.

화면 속 대통령을 직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보다는 의외의 감탄이 서려 있었다.

“태세전환만큼은 확실히 인정해줄 만하군.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이 맞장구를 쳤고, 백철중 회장은 가죽 소파 등받이에 느긋하게 몸을 묻었다.

다른 감탄이 터져 나왔다.

“돈이 아무리 좋다지만…….”

도원패 대통령은 한서진의 그늘에 합류했다. 그러나 최근 도원패가 하는 행동을 보면, 과연 저게 ‘원래’ 도원패가 맞긴 한 거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도원패는 직업 정치인의 표본 모델이라고 할 만한, 딱 그런 대통령이었다.

다선 출신의 여당 중진으로서 집안도 부유한 편이었고,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쌓아온 정치적 경력만큼 그에 해당하는 떼를 묻히고 있었고, 개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혀를 차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우리 그룹과 공조가 잘 되니 다행이로군.”

“맞습니다, 회장님. 대북 사업에서 이제야 정부와 손발이 좀 맞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큰 사업을 기업 단독으로 하기에는 좀 불편하긴 하지.”

백철중은 조그맣게 웃음이 났다.

현재 H그룹은 정부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수월하게 북한 개발 산업을 벌이고 있었다. 현 정부를 마치 협력업체인 것처럼 자유롭게 부릴 수 있었다.

덕분에 진성을 위시한 다른 재벌 기업들도 H그룹에 더욱 깍듯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H팰리스라…….’

신 평양첨단산업단지.

현재 H그룹의 책임 하에, 평양을 중심으로 남포에서 개천과 안주, 대령강 하구까지 포함한 광대한 지역에 조성되고 있는 산업단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 지역 안에는 한서진의 신사택, 이름 하여 H팰리스가 지어질 예정이었다.

어떤 이는 한서진이 개인 주택의 정원에 산업단지를 넣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백철중 회장은 그 우스갯소리야말로 본질을 꿰뚫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야심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 전체를 H팰리스처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을 통째로 한서진의 영토처럼 만드는 것.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이미 한서진은 정부에 3조 AU의 채권을 갖고 있고, 북한 토지 전체가 그 담보로 잡혀 있으며, 특별법 역시 그러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진짜 왕이 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왕처럼 살아갈 순 있으리라. 그렇게 한씨 가문은 누구나 인정하는 국내 최대의 가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가문을 상속받을 주인들은 자신의 핏줄, 그것이 늙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힘이 솟는 이유였다.

“아빠, 저희 왔어요.”

“오, 하나야. 한 박사도 왔군.”

딸과 예비 사위의 방문에 백철중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이거 자네가 왔으니, 내 사무실에 전 세계의 모든 돈이 방문했다고 생각해도 되겠나?”

“금 소행성은 여기 들어오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리고 달 궤도 밖에 있는데요.”

“거, 자네 유머 센스 없는 건 여전하구만.”

백철중은 이내 깨달음을 얻은 듯이 끄덕거렸다.

“역시 신이 다 주지는 않는 법이야. 안 그런가?”

“아빠.”

송하나가 흘겨보며 옆구리를 찔렀다. 백철중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둘에게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손수 차까지 가져왔다.

“어쩐 일로 둘이 함께 찾아왔나?”

“근처에 볼 일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면 회장님께서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요.”

“오, 그럼 하나가 아니라 자네가 들리자고 한 건가? 이거 정말 고마운 말이군.”

그리고 백철중은 장난스럽게 살짝 한탄했다.

“이래서 딸자식은 아무리 뼈 빠지게 키워봤자 소용없어. 지 남자만 챙기기 바쁘다니까.”

“아빠는 엄마한테 챙겨 달라 그럼 되잖아요.”

“자네, 들었지? 얘가 이런 아이일세.”

“아빠가 언제 뼈 빠지게 키웠어요? 엄마가 뼈 빠지게 키우셨지.”

한서진은 두 부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소리 없는 웃음만 흘렸다.

얼마 전 알게 된 레노지안의 미래, 그리고 아서 왕 때문에 쌓였던 근심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안부 등 가벼운 일상 잡담으로 담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로 화제가 흘러갔다.

“3조 달러, 아니 3조 AU가 정말 대단하긴 하군. 2,200만 명 난민에 끝없이 퍼붓는데도 바닥을 보일 기미가 없으니.”

“그래도 효율적으로 써야지요. 남의 돈이라고 낭비는 금물입니다.”

“암, 그렇고말고. 우리 H그룹 감사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네. 혹시라도 정부에서 헛되게 쓰진 않을까 1원 하나까지도 감시 중이야.”

백철중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2,200만 명이라니. 그 인구가 잘만 정착하면 우리나라 내수시장도 어느 정도 일본에 견줄 수 있겠어.”

“그래도 1억 찍으려면 한참 멀었어요.”

“그거야 어찌 될 진 모르지. 도 대통령 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며, 백철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서진을 향했다.

“자네가 도 대통령에게 삼 조 원을 쓰자고 할 땐 반대했었네만, 지금 보니 자네 판단이 옳았던 것 같네.”

“회장님은 삼천 억이면 충분하다고 하셨었던가요?”

“그랬지. 근데 지금 도 대통령은 삼 조, 아니 삼백 조 원 이상의 일을 해주고 있으니,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겠어.”

“새로운 목적과, 그에 알맞은 의욕을 불어넣어주려면 그 정도는 필요합니다.”

“자네도 이제 경영가가 다 됐군. 나도 좀 안심이 되네.”

“뭘요. 사실 원래 전 훨씬 적게 쓰려고 했습니다. 회장님께서 삼천 억을 쓰자고 하셔서 거기에 0 하나 더 붙인 것뿐입니다.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무조건 회장님과 돈 이야기할 때에는 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이라고요.”

“……하하, 그랬군.”

백철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딸을 슬쩍 주시했다. 앞으로 딸 부부와 마음 편하게 돈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진짜 딸 자식은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

============================ 작품 후기 ============================

회장님 0 하나 빠뜨렸습니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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