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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35화 (435/609)

00435  시공의 폭풍  =========================================================================

니트론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한서진’의 자신만만한 음성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법이라고?’

정확히는 마법이라고 오인할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결국 니트론은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북북 긁었다. 잠을 완전히 잊은 뇌세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지만…….’

이미 한서진은 에테르를 활용해서, 마법과도 같은 기적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다.

미스릴 반도체와 그것으로 만든 수퍼컴퓨터, 간 재생 치료제는 과학의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 예측 모델이라든가, 인공 운석 사업 등은 가히 마법의 영역으로 보이는 대사건이다.

금 100억 톤의 소행성을 지구 근처로 가져왔을 때, 얼마나 크게 전율했던가.

당시 물리학자들이 품은 충격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우주의 질서를 수정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오래 전부터 제5의 힘, 에테르를 연구해온 자신조차도 순간적으로 한서진이 정말 인간이기는 한 건가 하는 의심을 품었었다.

현재 금 소행성은 지구 공전 궤도 바깥에서, 지구와 같은 공전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다. 때문에 지구에서 관측 망원경으로 언제든 금 소행성을 볼 수 있다.

100억 톤의 금을 단지 ‘보관이 용이한’ 공전 궤도에 두었을 뿐, 그것이 한서진의 소유라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AU의 가치는 절대적인 질서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기존 기축화폐국인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 또한 AU의 위상 증진에 단단한 보탬이 되고 있었다.

이처럼 한서진이 이룩한 과학적 성과는 마법의 영역에 버금갈 만큼 대단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무엇을 보여주겠단 말인가?’

의미심장한 조소를 머금은 한서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평소 무척 겸손했다. 자신이 한 일에 관해서 크게 떠벌이지 않고, 언제나 낮춰서 평가했다.

그랬던 이가 자신만만하게 ‘마법이라 오인할 정도’라고 말했으니, 어디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직 겨우 5시…….’

니트론은 오늘처럼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빨리 날이 밝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되기 두 시간 전, 니트론은 경기도에 있는 연구소 신사옥을 찾았다. ‘한서진’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니트론이 들어서자 그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오셨군요.”

“……그래요. 한 박사가 어제 한 말 때문에 이 늙은이가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교수님은 행운아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직시했다.

여유로운 미소에서 니트론은 낯선 기백을 느꼈다. 전에도 비슷하게 느꼈던, 마치 한서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었다.

“에테르, 그 근원의 힘을 목도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실 테니까요.”

“……근원의 힘.”

니트론은 저도 모르게 따라서 중얼거렸다.

짧은 단어에서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어느새 손 안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그가 통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명령을 입력했고, 곧 반도체 제조 시스템이 나지막한 구동음을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기존 반도체는 실리콘에 전하의 흐름을 통제하는 길을 만들어 이식함으로써, 극미세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방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에테르 반도체는 전하 대신 에테르의 흐름을 통제하는 규칙을 새겨 넣는다는 것에서 다르지요.”

고저가 없는 음성, 그러나 니트론의 귀에는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짓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투명한 폐쇄 공간 안에서 로봇 팔과 기계 장치가 바쁘게 움직이며, 반도체 원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니트론은 저도 모르게 그의 옆모습을 확인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낯선 이질감이 그의 눈으로 흡수되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녕 전에 알던 그 사람이 맞는가?

“반도체로 에테르의 미시적 흐름을 통제하는 것은 기초적인 영역에 불과합니다. 에테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반도체 원판이 완성되었다.

작게 나뉜 칩들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칩, 그러나 니트론은 그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몸의 세포가 직감으로 외치고 있었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려 한다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이것은 컴퓨터 부품처럼 생겼지만, 컴퓨터 부품이 아닙니다. 사실 마력 칩셋이라는 명칭은 이것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럼?”

“번역하기에 적당한 언어가 없으나, 저는 ‘주문의 서’라고 부르고 싶군요.”

“……주문의 서.”

첨단과학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생산장치로 만들어진 미스릴 반도체 칩. 그러나 그 이름은 마치 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먼 미신의 파편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가 손에 든 반도체 칩을 허공에 튕겼다. 칩은 중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듯, 마치 깃털처럼 나풀거리며 천천히 바닥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니트론은 똑똑히 보았다.

반도체 칩이 희미한 빛에 휩싸여져 있고,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그 빛이 점점 진해지는 것을.

툭 하고 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뿜어지며 시각을 자극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던 니트론은 이윽고 차가운 바람을 느끼고 흠칫 놀라서 팔을 내렸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이, 이건 대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직경 2미터에 달하는, 마치 웜홀 같은 구멍이 허공에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시공간이 찢어져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틈, 그 너머로 새하얀 눈에 뒤덮인 산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니트론은 홀린 듯이, 저도 모르게 시공간의 균열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균열을 통과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변했다.

푸르고 흰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산맥 위로 차가운 구름이 떠다닌다.

니트론도 잘 알고 있는, 알프스 산맥의 한 풍경이었다. 젊어서 여러 번 여행을 왔던 곳이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균열을 넘어온 그가 뒤에 서 있었다.

니트론은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물었다.

“설마 지금 내가 BII에 접속 중인 거요?”

“그렇게 믿고 싶은 겁니까?”

“……대체, 이건 대체 뭐란 말이오?”

“교수님이 여태껏 알고 있던 과학, 그것은 아닙니다.”

그가 조소를 머금었다.

“마법입니다.”

니트론은 그 자리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흘이 지났다.

니트론은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며칠 전 그가 보여준 것은 자신이 아는 물리 지식을 월등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니, 파괴하는 것이었다.

자연계에 에테르라는 힘이 존재하고 있고, 한서진이 특정한 명령 코드를 반도체 칩에 새겨 넣음으로써 전기적으로 그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EWR(Ether Wave Repeater : 에테르 파동 중계장치)을 이용하여 우주에 떠 있는 소행성의 궤적을 비트는 원리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공간 게이트는 그가 상상했던 것을 무참하게 깨부수는 차원이었다.

그저 손톱만한 칩이 지구 반대편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는 시공의 균열을 만들어 내다니.

그게 정녕 과학이기는 한 것인가?

‘한 박사는 과학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과학이 아닌, 마법이라고.

마법처럼 보일 만큼 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아닌,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힘이라는 의미일까.

닷새째에 접어들어서야 니트론은 겨우 한서진을 다시 만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며칠 만에 본 그는 저번과 변한 게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와 태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니트론은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

“한 박사, 왜 나한테 그런 걸 보여준 거요?”

“교수님은 자격이 있으니까요.”

“……자격.”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자신에게, 겨우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자격이 있다고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니트론은 전혀 불쾌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치하를 받은 듯이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이 들뜨고 있었다. 참 신기한 감정의 변화였다.

“난 한 박사가 어딘가 이상해진 줄 알았소. 그래서 내심 경계하고 있었소.”

“그간 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니트론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거렸다.

그간 했던 모든 것들? 그럼 갑자기 만들어낸 어색한 보안 절차 따위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인가?

“왜……?”

“제가 발견하고 저만 알고 있는 진리, 교수님이 그것을 공유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불쾌했다면 유감입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아니오! 전혀 불쾌하지 않소!”

니트론은 당황해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전혀 그런 마음은 없어요! 그저 놀랍고, 얼떨떨하고, 당황했을 뿐입니다! 하, 하지만 한 박사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으니 신중하고 싶은 마음, 같은 과학자로서 충분히 이해하오!”

“이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냉정히 따지면 그가 아카식 블레이드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해명은 아니다.

그러나 시공간 게이트가 준 충격은 그런 논리적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간 품었던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의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도, 기억에 결함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게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니.

‘이 나를……!’

니트론은 터질 듯이 가슴이 뛰었다. 늙은 심장 어디에 이런 열정이 남아 있었을까, 본인도 신기할 정도였다.

“그것도 아카식 블레이드에서 얻은 지식이오?”

“그렇습니다.”

아카식 블레이드란 말에 그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나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즉각 대답했고, 니트론은 그의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잔뜩 들떠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렇군! 그랬어! 아하, 이제야 납득이 가오! 왜 한 박사가 그간 이상하게 굴었는지, 그리고 요 근래 다른 사람 같았는지!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뤘으니, 제아무리 한 박사라 해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요!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모든 의심은 말끔히 지워졌다.

그럼 그렇지, 인류의 보물인 그에게 정신적 이상이 생길 리가 있겠는가.

니트론은 그가 일군 발견이 세상에 얼마나 큰 충격을 가져다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에테르 반도체, 재해 예측 장치, 인공 운석과 금 소행성 따위는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공 여행의 가능, 이는 인류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미지의 차원으로 도약함을 의미한다.

이제 인류는 태양계를 벗어나 먼 우주로 진출할 수도 있으리라. 한서진은 역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선구자로 그 위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카식 블레이드에는 더욱 놀라운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우리 미국이 아카식 블레이드를 수십 년 동안 연구했어도 기껏해야 기존 물리공학을 응용하고 개량하는 것에 그쳤는데, 겨우 몇 달 만에 이런 놀라운 발견이라니!”

“그럼 아카식 블레이드로 갈까요?”

“그럽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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