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30화 (430/609)

00430  깨어난 군주  =========================================================================

검찰에 후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한서진은 제주도에 내려가 있었다.

제주도 미 해군 기지에 자리를 잡은 Table A 전용 연구 선박에서는 니트론을 비롯하여, Table A의 영향력이 닿은 과학자들이 밤낮을 잊고 연구에 몰두 중이었다.

“마이너 오리할콘을 연구에 접목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마이너 오리할콘, 평양이 에테르 스톰으로 붕괴한 후 지표 물질이 변이돼서 생성된 ‘짝퉁’ 오리할콘을 말한다. 오리지널 오리할콘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불안정한 입자 구조 때문에 가만히 놔둬도 소멸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언젠가는 사라질 시한부 물질, 때문에 연구팀은 아낌없이 연구 보조 작업에 쏟아 붓고 있었다.

“마이너가 오리지널과 병합 반응을 보이면서 오리할콘 뼈의 절삭과 융해가 가능해졌습니다. 덕분에 연구에도 쾌속풍이 불었습니다. 박사님의 발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연구원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서진을 칭찬했다.

‘내 발상은 아니고, 통찰안 덕분에 안 건데.’

이제는 그런 칭찬을 들어도 머쓱해하지 않고 그저 끄덕이는 것만으로 넘길 만큼 관록이 쌓였다.

“역시 순수한 오리할콘이 아니군요. 이건 마치 생명체와 오리할콘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듯한 형태입니다. 자연계에 이런 생물이 존재한다는 게 그저 놀랍습니다.”

“역시 외우주의 흔적이겠지요? 지구상에 이런 생명체가 존재했을 리가 없습니다.”

“흠, 그건 너무 단정하는 게 아닐까요? 스코브리아늄, 아니 미스릴은 해수에 녹아 있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오리할콘 역시 본래 지구상에 존재하던 물질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토론이 오가는 걸 묵묵히 들으며, 한서진은 거대한 두개골을 올려다보았다.

니트론이 조용히 옆에 다가와서 나란히 섰다.

“다른 우주 문명의 흔적이든 아니든, 하나만큼은 분명하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비한 문명의 손이 이 지구에 닿은 적이 있다는 거지. 안 그렇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놀라워. 어떻게 이런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으며, 뼈 전체가 오리할콘과 융합된 상태일 수 있는지……. 한 박사는 이 생명체가 정녕 자연계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시오?”

의미심장한 질문에 한서진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 보시오. 우리 인간만 해도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뼈에 보철을 삽입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가지 ‘육체 개조술’을 갖고 있소.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뇌에 칩을 박아 넣고, 아예 기계 몸으로 개조하기도 하지.”

“교수님은 이 생물이 과학문명의 힘이 닿은 결정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리할콘과 뼈가 융합한 상태로 생존 가능한 생명체가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했다는 것보다는 그럴듯하지 않소?”

한서진은 가만히 레노지안을 떠올렸다.

니트론이 짐작하는 놀라운 문명의 흔적은 바로 레노지안의 마법이다. 막연한 동경 같은 감정이지만, 레노지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

굳이 인간이 마법의 힘으로 초룡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킬 필요 없이, 레노지안 세계에 충만한 에테르가 그런 생명체를 얼마든지 자연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서진은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있는 아카식 블레이드를 바라보았다. 칼날의 중간쯤이 부러진 거대한 검.

‘행성병기.’

BII를 통해 아카식 블레이드와 동기화했을 때,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파괴력을 확인했다.

타르타로스는 스캐닝한 아카식 블레이드의 권능과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실체화했고, 그 덕분에 그는 레노지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

Table A는 아카식 블레이드가 놀라운 과학의 산물이라고만 알고 있다. 그 안에 담긴, 행성을 죽이는 힘까지는 알지 못한다.

‘만약 그걸 안다면…….’

과학적 호기심으로 계속 파헤치려 할까, 아니면 두려움에 떨며 모든 것을 봉인하고자 할까?

“박사님.”

“구프게니 부팀장님.”

구프게니가 환하게 웃으며 목례했다. 뼛속까지 깍듯한 존중이 담겨 있는 태도였다.

한서진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이후 그를 대하는 구프게니의 태도는 한층 더 공손해졌다. 처음에는 그런 과례가 부담스러웠지만, 아무리 말려도 바뀌지 않으니 이제는 그냥 놔두고 있었다.

“서울 일은 이제 마무리되신 겁니까?”

“그게 하루아침에 끝나겠습니까. 틈틈이 체크하고 있는 거지요.”

“저희에게 말씀하시면 박사님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해결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연구 외적인 일에 심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박사님 같은 분은 연구에만 몰두하셔야지, 복잡한 사회 문제에 심력을 소모하시면 인류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조금 쓴웃음이 나왔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 말 한 마디만 하면 알아서 큰 그림을 그려줄 사람이나 세력은 얼마든지 있다. 백철중, 정지원, 미국, Table A 등등.

“저도 사람입니다. 잘 안 풀리는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게 스트레스가 쌓이죠.”

“아, 이해했습니다. 박사님도 스트레스를 해소하실 테마는 필요하시다는 거군요.”

구프게니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떻습니까? 박사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는 걸 보신 소감 말입니다.”

“글쎄요, 소감이라…….”

한서진이 입을 다물자 구프게니는 알겠다는 듯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아니셨나 보군요.”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이 좀 보기 그랬습니다.”

“대중의 답답한 속마음을 풀어주기에는 효과적인 정책이었습니다. 살을 내주더라도 부정부패의 뼈를 부수겠다는 것, 현재 한국은 그런 대통령이 나오기 힘든 구조지요.”

구프게니는 희미한 조소를 지으며 응시했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고 있고, 대중에 그런 움직임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만족해야 하는 상황인데, 의아하군요.”

“대통령의 행동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닌데, 그것도 모른 채 마냥 따르기만 하니까요.”

“박사님, 본래 대중이란 훌륭한 지도자가 강력히 이끌어줘야 할 존재입니다.”

“…….”

“요구하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그게 바로 대중입니다. 항거는 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올바르게 개척하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리더쉽이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따르지요. 박사님도 이제는 그걸 이용하셔야 합니다.”

구프게니가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거북한 마음이 생겨난다.

대중은 도원패의 행동에 다른 목적이나 배경이 있음에도, 그 진원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드러나는 결과에만 열광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얼마 전 거짓에 선동당해 자신의 저택 울타리를 넘었던 100만 군중이 겹쳤고, 그래서 입맛이 썼다.

“박사님, 나서지 않으신다면 모를까 이미 개입하셨으니,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드는 법을 아셔야 합니다.”

“썩은 물을 싹 들어내면 뭔가 달라질까요?”

“웅덩이에 고인 물을 한꺼번에 퍼냈어도 당장 바뀌진 않습니다. 더러운 물은 계속해서 솟아나니까요. 웅덩이 자체를 바꾸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구프게니의 그 말이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가슴에 남았다.

일과를 마치고 개인 휴식 공간으로 돌아온 한서진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팔베개를 하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TV와 컴퓨터를 켰다.

뉴스, 그리고 인터넷에는 온갖 속보가 넘치고 있었다.

방산비리에 얽힌 기업들의 책임자들은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 않고 패가망신을 앞두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사소한 티끌까지도 모조리 탈탈 털리고 있으며, 재계 인사들은 경제사범의 굴레를 쓴 채 신음하고 있었다.

법조계 역시 사정의 칼날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많은 판사와 검사가 옷을 벗고 구치소로 향했다.

청와대가 작정하고 칼을 빼들어 연일 휘두르는 통에, 나라꼴이 말도 아니었다. 주가지수는 뚝뚝 떨어지고 해와 자본은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 혼란이 언제쯤 가라앉을까. 아니, 그 날이 오기는 할까.

적어도 이번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내내 이런 처지일 듯한 생각이 든다. 경제가 어려워지든 말든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3조 AU,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썩어서 묵은 살점을 모조리 도려내기만 하면, 그는 위대한 치적을 남긴 전 대통령이자 3조 AU대의 거부로 거듭난다.

그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어떻게 변해있을까.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2에 접속했다.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교육인 등 가리지 않고, 오물을 묻힌 이들의 명단과 불법 사실, 그리고 국내와 해외에 예치된 그들의 금융 자산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 자료를 검찰에 넘겨도 소용없다. 그 양이 지나치게 방대하기에, 현재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5년 동안 밤낮으로 매달려도 1%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테니.

“전부 다 보인다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니까. 이렇게 답답하니.”

한서진은 데이터 화면을 우두커니 주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자판을 조작해, ‘회수’ 명령을 실행했다.

타르타로스가 은은한 파동을 내뿜으며, 에테르를 이용해 전 세계 금융 전산망의 통제권을 가져왔다.

곧 세계은행들 간에 무차별적인 가상거래를 일으켜, 리스트에 있는 금융 자산을 전부 회수할 것이다. 기존의 지식, 기술로는 추적이나 상황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

계좌 하나에 든 돈을 수만 개의 단위로 쪼개어 각각 인출하고, 각각의 그룹이 수백 개가 넘는 은행 사이를 백만 번 이상 드나든다. 그 모든 거래는 정상적인 거래로 간주되며, 불법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다.

이것을 무슨 재주로 추적하며, 알아내겠는가.

“더러운 물이 또 새로 고이든 말든…… 일단 퍼내는 순간은 답답한 게 가시니까.”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마법진이 터져 나갔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피를 토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저마다 비틀거렸지만, 다행히 치명상을 입은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왕은 눈을 떴다. 그의 입가에서도 한 줄기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오늘은 이만 쉬셔야 합니다.”

노신하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왕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서진이 짐이 의식을 닫아버리고 벌써 열흘이 넘었소. 꿈에서는 이미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소. 자칫 한서진이 영원히 꿈에 갇히는 길을 선택했다면, 현실에서도 막기 힘들어질 수 있소. 서둘러야 하오.”

“하오나 폐하.”

“짐을 말리지 마시오.”

레노지안의 하루는 꿈에서 약 700일. 열흘이 지났으니 원래라면 저쪽에서는 9년 이상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 차이가 변하고 있다. 점점 비슷한 시간축으로 흐르고 있어.’

처음에는 700배의 시간 차이가 있었지만, 그 간극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마 현실에 직접 강림했을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이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은, 꿈과 현실이 서로 동기화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저주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일까, 완성돼가고 있다는 뜻일까.

그때였다.

‘느껴진다.’

익숙한 파동이 강하게 왕의 의식을 뒤흔들었다.

그의 눈이 번쩍 떠지는 순간, 거대한 마법진에 머무르고 있던 힘이 튕겨지듯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눈부신 섬광이 모든 것을 휘감아 버렸다.

============================ 작품 후기 ============================

왕 : 참 오랜만에 출연하는군.

PD : (비굴) 저희 프로덕션이 열악하여 제작비가 부족한 까닭에... 송구합니다, 폐하!

왕 : 용서한다. 여기서는 열흘 밖에 안 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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