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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29화 (429/609)

00429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면  =========================================================================

“살고 싶으면, 절대적으로 협조해야 하네.”

대통령은 채찍을 들었다. 그리고 측근들은 그 채찍질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우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이야말로 자신들보다 훨씬 아픈 채찍에 얻어맞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가 대체 어찌 되려는가.’

몇 몇 측근들은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제왕적 대통령조차 어찌할 수 없는 개인이라니,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인정한단 말인가.

한 개인이 대통령을 쫓아내고, 새로이 취임한 대통령의 명줄을 움켜쥐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더 무서운 것은 한국을 벗어난다 해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힘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한서진은 그 미국을 움직일 힘마저 쥐고 있으니.

“한서진 박사가 원하는 이 나라의 권리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입니까?”

누군가가 물었고, 대통령은 짧게 반문했다.

“인간의 욕심을 어디까지 책정할 수 있겠나?”

“…….”

질문을 한 측근은 속으로 우문현답이라고 감탄하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실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다들 낯빛이 굳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들의 운명에 체념을 한 듯했다. 항거할 수 없는 파도라면 차라리 일찍 포기하는 게 속이 편할 수도 있을 테니.

목적을 완수한 대통령은 이쯤에서 채찍을 거두고 당근을 제시하기로 했다.

“우리가 고약한 처지에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세.”

그 말에 일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일부는 드디어 본론이구나 하고 눈동자를 빛냈다.

“그의 요구는 분명 부당한 절차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목적 자체까지 그렇지는 않네. 다들 보았겠지만 내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성명 발표를 한 후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어. 적어도 국민들의 지지 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다는 뜻이야.”

“…….”

“정부가 아무리 사납게 칼을 휘둘러도 웬만한 이들은 반항조차 못할 걸세. 왜냐하면 한서진이가 그 뒤에 있으니까! 최소한 역사적 치적 하나만큼은 남길 수 있는 거지.”

측근들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났다.

대통령은 표정을 한결 엄숙히 다잡고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요구대로 된다면, 설마 이 도원패가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대로 삶아지겠나?”

대가, 혹은 보수.

대통령은 그에 대한 암시를 또렷하게 던졌고, 측근들의 표정은 처음에 비하면 한결 밝아졌다.

맞다. 재벌 그룹이 건설사업에서 천박하고 시시껄렁한 어깨들을 이용한다 해도, 적어도 용역비는 챙겨주는 법이다.

대통령은 그에 대한 가이드를 분명히 제시했다. 자기가 책임지고 보수를 얻어올 것이라고.

“이제부터 정신없이 바쁠 걸세. 임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편히 쉴 생각은 버리게.”

행정부에서 칼을 빼들었다.

겁을 주기 위한 칼이 아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무참히 썰어버리기 위한 발도술이었다.

설마 하고 지켜봤던 정재계는 행정부가 무참히 휘두르는 사정의 칼날에 기겁하고 놀랐다.

국회의장이 불법정치자금으로 체포된 것은 시작점에 지나지 않았다.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직 의원들이 우수수 검찰에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회는 정치 탄압이라며 분개했지만, ‘살인면허’를 허가받은 검찰의 이빨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부정비리 탄압이라는 명분마저도 확실했다.

「정치 탄압이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습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없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 역시 떳떳하게 법의 심판 앞에 설 겁니다. 성역 따위는 절대 없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에 국민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다. 답답하고 무능한 줄 알았던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심기를 속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으니.

국회는 탄핵을 준비했으나, 남은 정족수는 탄핵을 준비하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각 당의 중진들은 거의 다 체포되었다고 봐도 문제가 없었다.

―대통령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

―국회와 화해할 의사가 전혀 없다! 자기 남은 임기를 걸고 모든 것을 사회 개혁에 쏟아 붓고 있다!

―정계 정화는 시작일 뿐!

국회는 남은 정족수를 긁어모아 필사적인 반격을 준비했으나, 국민들의 지지는 이미 대통령에게 폭발적으로 몰려 있었다.

평소 국회, 그리고 의원에 가지는 불신과 반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하면서, 국회가 대통령에게 가하는 일체의 반격이나 항변이 철저히 짓밟혔다.

“잘못한 게 있으니까 잡아간 거지. 솔직히 국회의원 중에 선거법 위반 안 한 놈들이 어딨냐?”

“들켰냐 안 들켰냐 그 차이만 있지, 사실 냉정히 따지면 다들 선거법 위반 하나씩은 있잖아.”

“잘 됐다. 이참에 싹 갈아엎어버려야 한다.”

“도원패 대통령도 비리가 없진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묵인해줄 수 있겠다. 일단 정의 구현이 시급하다.”

한국 대통령의 권위는 막강하다. 자기 안위나 뒤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니, 그 단기적인 파괴력을 견뎌낼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여기에 증권가의 흉흉한 소문마저 가세했다.

「도원패 대통령은 어부지리로 운 좋게 대통령에 당선된 케이스다. 한서진 박사와 원래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의 무관심이 아니었다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거다. 본인도 그걸 알고 당선 직후부터 줄곧 여러 방면에서 자중해왔다. 큰 국책 사업을 벌이지도 않고 의전을 즐기는 선에서 끝냈다.」

「그랬던 인물이 갑작스럽게 비리 타파를 결심했다는 건 그 배경과 의도가 의심된다. 필경 한서진 박사나 혹은 H그룹의 압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아무런 증거는 없지만, 도원패의 뒤에 한서진이 있다는 소문은 이미 여의도 증권가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한서진은 북한을 위해 3조 달러를 기꺼이 내놓는 등 평소 영웅적 풍모를 내보였다. 그래서 대중은 어렵지 않게 그 소문을 덥석 믿었다.

“한서진 박사와 도원패 대통령이 손을 잡았다.”

“둘이 힘을 합쳐 우리나라를 깨끗하게 만들려고 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 그리고 마지막 기회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정말 개돼지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 밖에 안 된다!”

“대통령을 밀어주자!”

그런 여론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국회의 반격은 흐지부지 힘을 잃었다. 혹자는 마녀 사냥이자 선동이라며 분개했지만, 이미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그리고 김시형이 이끄는 젊은 검사들은 다소 어안이 벙벙한 일을 맞이했다.

“저희와 힘을 합치자고요?”

“그렇다네. 굳이 따로따로 수사해서 힘을 소모할 필요가 있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이 일은 대통령께서 절치부심하여 밀어붙이시는 건일세.”

“…….”

평소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원로 검사측의 제안에 김시형 및 젊은 검사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검찰 내부의 부패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때문에 혁신을 추구하는 검사들은 김시형을 중심으로 뭉쳐서, 상부의 권위에 항거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기소 정보도 공유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단독으로 일을 처리한다. 저들에게 정보를 넘겼다가는 기소 대상자들에게 유리하게 일이 진행될 수 있으니. 현재 그들이 취급하는 기소 대상자들이 대부분 재벌 경제사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변했다.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시형은 고민에 잠겼다.

이미 한서진에게 확인은 했다. 그는 대통령이 현재 벌이는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결국 이용당할 뿐이지. 물론 본인도 알고 있겠지만…….’

김시형의 냉정한 평가였다.

대통령은 그저 이용당하는 것이다. 아마도 눈이 뒤집힐 만한 먹이를 약속했겠지. 한서진이 먹이를 줄지 안 줄지, 주더라도 솥에 넣고 삶을지 안 삶을지는 모른다.

대통령이 모든 게 끝나고 감옥에 들어가든, 북유럽으로 망명해서 여생을 편안히 즐기던, 그런 건 김시형의 관심사항도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지금의 대통령을 어떻게,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에만 닿아 있었다.

오랜 고뇌 끝에 그는 결심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협조하겠습니다.”

“허허, 잘 생각했네. 그분도 많이 기뻐하실 게야.”

그분, 여러 가지로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호칭이다. 김시형은 그간 벌레 보듯 했던 부장 검사를 씁쓸하게 주시했다.

“어디까지나 저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업무적 협조일 뿐입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아무렴. 알겠네.”

이제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하는지, 평소 김시형을 껄끄럽게 여겼던 부장 검사는 껄껄 웃었다. 자신의 웃음을 바라보는 김시형의 눈빛이 차갑다는 것도 모른 채.

행정부와 김시형 검사의 동맹은 비리 타도 움직임을 더욱 거세게 가속화시켰다.

국회의 많은 의원들이 선거법 위반 등 온갖 혐의로 구속 조사 중이지만, 국회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방산비리에 얽힌 기업들은 먼지 하나까지 전부 샅샅이 탈탈 털렸고, 많은 장성들이 옷을 벗고 구치고 신세를 져야 했다.

행정각부는 한 몸으로 똘똘 뭉쳐, 대통령의 마지막 치적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다행히 아직 임기는 넉넉하게 남아 있었고,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방산비리와 국회에 이은, 그 다음 타겟은 바로 재계였다.

재계는 이미 진성그룹의 100조 비자금 사건 때 단단히 홍역을 앓은 바가 있지만, 그것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김시형을 주축으로 진행 중이던 불법 승계 및 경제사범 비리도 작은 오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와 검찰이 힘을 합쳐 모든 것을 까뒤집고 탈탈 털기 시작하자 버틸 바가 없었다. 재벌 회장들이 아무리 전화를 돌려봐야 소용없었다.

그나마 100조 비자금 사건 당시 회사를 철저하게 재정비한 H그룹, 진성그룹 등 소수의 대기업들만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폭우를 지나갈 수 있었다.

종두법을 시행하지 않고 버티던 기업들은 사정의 폭풍 앞에 우수수 썰려 나갔다.

지방 선거에서 ‘더 많은 교도소를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겠습니다.’라는 공약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현재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사회가 시끄러운 만큼 경제 흐름이 마냥 정상적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회사들이 제대로 영업을 못하건, 부도를 맞이하거나, 공채를 제때 준비하지 못했다.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도 제법 있었고, 대통령이 쓸데없이 일을 크게 키운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많은 정치인, 경제인들이 기소된 채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검찰의 칼끝은 뜻밖에도 청와대를 향했다.

여러 장관 및 수석보좌관 등 대통령의 측근들을 향해 그 날을 세운 것이다. 대통령을 믿고 열심히 일한 측근들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검찰이 한날한시에 일시에 들이닥친 덕분에 그들은 대통령에게 전화 한 번 넣지 못한 채 무력하게 끌려가야 했다.

김시형과 타협했던 부장 검사는 희희낙락했다.

“이것으로 굵직한 건 전부 끝났군.”

“아니죠. 아직 남았습니다, 선배님.”

“이, 이봐! 김시형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철컹철컹.

============================ 작품 후기 ============================

난 3조나 챙겼다고, 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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