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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22화 (422/609)

00422  기와집 태우기  =========================================================================

BII-E001의 테스트는 전 지구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50명의 실험 참가자의 반응은 실시간으로 중개되었고, 경이로운 결과에 많은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에게는 마치 사기 같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BII-E001 실험 본 사람? 아니, 안 본 사람?

―……소름 돋았다. 공개 실험이었는데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어. 순간 다들 짜고 치는 사기 아냐, 그런 생각 들더라.

―한서진 박사니까 가능한 일이다. 에테르의 가능성은 그 끝이 없지.

―다르게 말하면, 한서진 박사 말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못 믿었을 거다.

―사실 BII 구현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흐름 아닌가? 시각 정보를 뇌신경에 직접 입력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인데 카메라와 연결하면 당연히 맹인도 앞을 보게 할 수 있지.

―우리 쓸데없는 잘난 척은 자제 합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 빛을 상실하고 긴 고통 속에서 신음해온 사람, 그들이 새로운 빛을 접하며 보여준 반응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거대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특히 13살 소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친의 얼굴을 보고 신기해하고, 모친이 흐느껴 우는 장면은 3억이 넘는 뷰를 달성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BII-E001은 고글형 인터페이스입니다. 1개의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원근감을 느낄 순 없지만 대신 사용자는 정상인의 80%에 달하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회 완충으로 약 10시간 정도를 사용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개량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빛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빛을 얻은 날.

“최종적으로는 의안의 형태로 소형화하고 초점의 움직임까지 구현해서, 정상 안구와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 BII 연구팀은 이 발명이 빛을 잃은 전 세계 모든 분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BII-E001의 공개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런 위대한 발명이 자국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의 마음을 한없이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뉴스를 보면 매일같이 어두운 일뿐인데, 모처럼 긍지를 품을 만한 일이 생긴 것이다.

지뢰 사건 때문에 방산비리에 옮겨 붙었던 국민들의 관심은 시각장애인과 BII-E001의 관계로 다시 이동했다.

덕분에 행정부는 목표했던 바를 한결 수월하게 이룰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메뚜기도 한철인 법,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는 수사팀은 GK그룹에 한정한 수술을 재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움직였다.

검찰 내에서 정의파로 일컬어지는 김시형측 세력의 힘이 크다지만, 검찰 전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구태와 타협한 검사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들은 검찰 내부에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마무리 지으면 김시형이가 반발할 텐데요.”

“지가 어쩔 거야? 지금 지가 맡은 사건 다 내팽개치고 이 일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지금 김시형 세력은 경제사범과 재벌 불법 승계 등의 굵직한 문제를 몇 달째 물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업무량이 포화 상태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런 판국이니, 다른 검사들이 GK에 한정해서 방산비리를 덮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 역시 방산비리 못지않게 거대하고 중요하니까.

“이쪽에 쏠리던 주목이 다른 쪽으로 옮겨 갔어. 이틈에 빨리 사건 마무리 지어야 해. 그게 청와대 뜻이다.”

“알겠습니다.”

“잘해 보자고. 이거 끝나면 나도 법무부 장관 되는 거 꿈만은 아니야. 자네 역시 총장 자리 맡아놓은 당상이고.”

“부디 잘 이끌어 주십시오, 선배님.”

BII-E001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지금, 검찰은 GK를 화합의 희생양으로 바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전용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한 정지원은 곧바로 세연동 저택부터 방문했다.

엄중한 신분 확인을 마치고 저택에 들어선 그는 야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한서진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온 것도 모른 채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아.”

“아, 오셨어요?”

가볍게 부르자 한서진은 얼른 뒤를 돌아보며 맞이했다.

정지원은 맞은편에 앉으며 그의 안색을 흘끔 살폈다.

“표정이 안 좋네.”

“어제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딱 신경 거슬리게 하는 일이 있다는 표정이야.”

“그렇게 티가 납니까?”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고, 정지원은 피식거렸다.

“내가 너 한두 해 보는 게 아니잖아.”

“세상 전혀 모르는 꼬꼬마 시절부터 봐오셨죠.”

“방산 비리 때문이냐?”

정지원도 국내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한서진이 한국에 거주하는 만큼, 한국 사정은 그에게 상시 체크해야 하는 중요 요인이었다.

“맞기도, 아니기도 합니다.”

“그거 말고도 더 있나 보네.”

“그냥 여러 가지로 답답해서요.”

집사 최수한이 카트를 끌고 술 테이블을 세팅했다. 술을 잔에 따르고, 가볍게 한 잔 부딪치며 건배했다.

“BII 의료기기 개발을 축하한다. 여러 가지로 정말 잘 됐구나. 넌 인류의 역사를 바꿨어.”

“이미 바꿨잖습니까. 그래봐야 역사에 남길 말이 조금 더 길어지는 정도지요.”

“참 잘 된 일인데, 왜 그렇게 근심이 많은 거냐?”

“근심이 아니라 짜증입니다.”

“……짜증.”

정지원은 그 말을 음미하듯이 읊조리다가 단숨에 술을 들어 마셔버렸다. 독한 술이 뱃속으로 짜르르 흘러들어가니 취기가 확 밀려오는 듯했다.

“병원 둘러본 것 때문에 그래? 지뢰 피해 환자들 보니까 답답했어?”

“저를 참 잘 아시네요.”

“말했잖아. 참 한두 해 널 봐온 게 아니라고.”

정지원은 피식거리며 빈 잔에 술을 다시 따랐다.

한서진은 가만히 보다가 자신도 모두 입에 털어놓고는, 빈 잔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한서진의 잔에도 따라 주었다.

“너도 세상의 부품이던 시절이 있었지. 그것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아주 작은 부품.”

“저도 하마터면 폐기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뻔했지요.”

“하지만 너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했지. 그리고 이제는 부품이 아니라 부품, 아니 각 기관 전체를 아우르는 입장이 되었고.”

“…….”

“피해자들 보고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구나. 그것도 참 대단해. 난 올챙이 시절은 이제 거의 희미해진 지 오래거든. 잘 기억도 안 난다.”

정지원은 피식거리며 또 한 번 술을 몽땅 털어 넣었다.

한서진은 술잔에 맺힌 자신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동병상련을 느낀 건 사실입니다. 사실 BII-E001을 개발한 것도 측은지심에서 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 작은 측은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빛을 찾아주게 될 거야. SJ인더스트리의 통장 잔고 역시 더욱 두둑하게 만들어줄 테고.”

“제가 짜증이 난 건 너무 총체적인 난국이라서 그래요. 자기들끼리만 난국이면 차라리 괜찮은데, 자꾸 제 눈앞에 여기저기 보이는 것 아닙니까.”

“…….”

“너무 거슬려요. 그냥 안 보였으면 좋은데.”

한서진은 술잔을 입에 댔다가 뗐다. 혀끝에 고이는 술맛이 삼킬 수 없을 만큼 썼다.

“지뢰 사고는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어요. 정상 제품을, 정상적인 경로로 납품받았다면요. 피해자들은 수색 작업 중에 안전 수칙을 모두 지켰습니다. 문제는 불량 장비, 그리고 불량 장비를 용인한 불량 시스템에 있었어요.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 연결고리는 엄청나게 복잡하더군요.”

“원래 그쪽 물이 특히 더럽긴 하지.”

“타르타로스로 정보를 수집해서 취합하다 보면 눈에 띄는 구조적인 문제가 한둘이 아니더군요. 몇 십 년 이상 유지된 거라 한두 명의 힘 가지고는 어떻게 손을 댈 방법도 없어요. 그런데 다들 개선할 생각은커녕 외면하고 있습니다.”

“큰 도둑이 좀 많기는 해.”

“전 개혁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꼴은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더러운 꼴은 그만 보여주고 순탄한 모습을 봤으면 해요. 속 좀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정지원은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연락 끊고 지내는 부모라도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단 그래도 잘 사는 게 자식 입장에서도 속이 편하지. 적어도 돈 때문에 손 벌리거나 귀찮게 할 일은 없으니.”

“맞아요. 제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한서진은 타르타로스를 통해 내려다봤던, 이 나라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떠올렸다.

경제비리, 방산비리, 행정비리, 사학비리, 사법비리 등 총체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기겁했던가.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세대갈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기득권층은 없는 자들끼리 서로 싸움을 붙이며 민란의 발생을 예방한다.

장병 지뢰 사고는 그 시스템 구조 문제 중 하나가 표면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GK혼자만의 책임이 아닌, 국방부는 물론이고 정재계에까지 그 책임 소재가 불투명하게 닿아 있는, 시스템 문제의 총체성이 꾸역꾸역 쌓이다 터져 나온 것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우리 오너님 암 걸리기 전에 내가 나서야겠구나.”

“정 사장님이요?”

“난 원래 한국은 관심 없었어. 옛날부터 기회가 되면 미국으로 뜨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너와의 만남이 내게 그 기회를 준 거였지.”

“…….”

“난 네가 지금처럼 한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머리 아플 일 없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지내는 삶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중에도 변하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네가 사는 집 주변이 시끄럽다면 조용하게 만들어줘야겠지. 이사를 갈 생각은 없다고 하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 결심했습니다.”

한서진의 단호한 말에 정지원은 의아해서 바라봤다. 단순한 사양이 아닌, 무언가 뼈가 담긴 어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제가 직접 손 쓰렵니다. 그동안은 모른 체 하고 참았는데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네가 직접?”

“보고 있으니 답답해서 그냥 직접 뛰려고요. 그래야 제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 같습니다.”

“그냥 차라리 미국으로 오지 그래?”

“이사를 가더라도 그전에 내 집 주변 시끄럽게 한 이웃들하고 드잡이는 하고 가야죠. 아, 꼭 이사를 간다는 말은 아니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네가 직접 나서면 만만치 않은 파장이 불 텐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뭔 상관입니까.”

한서진은 술을 쭉 들이키고는 거칠게 탁 내려놓았다.

“행정부는 GK 하나로 어영부영 묻으려 하고, 출세를 노리는 검사들은 거기에 편승했어요. 방산비리 얽힌 재벌들은 자기들에게 불똥만 안 튀게끔 뛰어다니고, 국민들은 언제 손가락질 했냐는 듯이 BII만 또 쳐다보면서 소리 지르고 있어요. 이 꼴을 보고 있으니 제가 화병 들게 생겼습니다.”

“…….”

“눈에 거슬리는 빈대 그냥 다 잡으렵니다. 펜트하우스 태워버리는 한이 있어도요.”

정지원은 조용히, 이 나라에 애도를 표했다.

============================ 작품 후기 ============================

흑화서진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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