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1 기와집 태우기 =========================================================================
한서진은 BII 프로젝트팀을 전원 불러놓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의료기기 개발을 우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발표 자리에는 라이카에서 파견한 기술팀도 함께였다.
연구원들은 처음에는 무척 놀라워했으나, 곧 어렵지 않게 수긍하며 납득했다.
“뇌신경 입출력 방식의 VR 기술은 충분히 그런 식으로 응용될 수 있어요. 우리가 여태 생각을 못했을 뿐이죠.”
“세계 최초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상공간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만 너무 불탔으니까. 가만, 이거 청각 장애자들한테는 더 쉽게 적용할 수 있겠는데요? 시각 처리보다는 훨씬 쉬울 테니까요.”
“그런데 라이카가 카메라 명문인 건 알지만, 굳이 박사님이 그 회사를 고르신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그에 대한 한서진의 대답은 간결했다.
“제 약혼녀가 그쪽 카메라를 좋아해서요. 몇 십 개 이상씩 갖고 있던 게 생각났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고 보니 오래 된 명가라고 해서요. 그래서 기술 파트너로 그 회사를 골랐습니다. 나사의 도움도 빌려볼까 했는데, 거기는 먼 우주 관측에 더 특화돼 있어서 기각했어요. 사람 눈에 허블 망원경을 달아줄 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소형화로군요. 사람 안구 크기로 만들어서 장착해야 하니.”
“실제 풍경을 BII 환경 데이터로 처리할 수 있다면, 시각 정보를 무에서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지금의 난감한 작업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각 장애를 극복할 눈을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것. 그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간 복원 치료제보다 그들에게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기존 BII 프로젝트 팀과 라이카측 인력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에 들어갔다.
“두 개의 카메라를 안구형으로 만들어 기존 안구 대신 이식하는 방식으로 가야 할 듯합니다. 개별 카메라가 보낸 영상 정보를 토대로 원근감을 느끼게 하는 거죠.”
“결국 사람의 눈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느냐에 많은 게 달려 있군요.”
“아무래도 심미안적인 요소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기계 눈이라는 걸 겉으로 봐서는 알아차리기 힘들게 설계해야지요.”
“글쎄요, 제 생각에 맹인들은 그저 앞을 볼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듯한데요.”
“처음에야 그렇겠죠. 하지만 익숙해지면 결국 겉모습 또한 중요하게 됩니다.”
첫 발을 내딛는 자리이니만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은 며칠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기술 지식을 교류하면서 대략적인 기획이 나왔다.
“일단 당장 안구형 카메라를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배터리, 휴대용 BII 장치, 그리고 렌즈와 영상 처리 장치 등을 우겨넣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소형화 기술의 관건이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나타나 발목을 잡았다.
결국 한서진이 연구개발을 이원화하기로 교통정리를 했다.
“소형화 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크기가 크고 불편하더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급히 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사용이 불편하고 겉보기에 어색해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일차적으로 눈에 쓰는 고글이나 선글라스 형태로 우선 개발하기로 했다.
“원근감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어차피 첫 제품입니다. 사양이 조악해도 좋으니 시야가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일단 희망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말 그대로 앞이 보이기만 하는 수준.
BII와 카메라를 결합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시제품은 금방 나왔다.
인공눈 시제품은 BII-E001라는 명칭이 붙었다.
시제품은 커다란 고글 형태로, 안면 상단을 대부분 가리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두께는 3cm 정도로 적당한 편이었고, 겉표면은 플라스틱 재질을 갖추고 있었다. 고글 중앙에 한 개의 렌즈와 이미지 센서가 있으며, 뇌신경과 연동을 조절하는 BII가 내부에 탑재돼서 컴퓨터가 처리한 영상을 뇌에 직접 보내는 방식이었다.
시제품 테스트를 위해 50명의 시각 장애인을 선정하기로 했는데, 무려 1:5000의 경쟁률을 보여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원래 비공개로 테스트를 진행하려 했으나, 언론 및 여론의 끈질긴 부탁과 애원 때문에 결국 공개 테스트로 전환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졸랐다지만 바로 공개테스트라니, 자신감 넘치나 본데.”
“연구소 자체 실험에서 이미 성공했다잖아. 시각장애인 말고 일반 연구원이 눈 가리고 실험한 거라지만, 어쨌든.”
“지원자 중에서 절반은 선천적 맹인이라던데…… 과연 선천적 맹인에게도 통할까?”
테스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기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다.
미리 귀띔을 받은 사실도 있고, 어느 정도 실험의 성공도 믿는 편이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한서진 박사는?”
“안 나온대. BII 팀에서 진행한다더라.”
“그래도 한서진 박사가 직접 참가해서 얼굴이라도 비쳐주면 좋은데. 그래야 그림이 되잖아.”
“세상에서 가장 바쁜 천재인데 이런 임상 실험에까지 나설 여유가 어디 있겠어?”
“하긴.”
긴장감 속에서 드디어 실험이 시작되었다.
실험지원자들이 보조요원의 안내를 받아 차례차례 들어와서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혹시 모를 사고방지를 위해 보조요원들이 안전벨트를 착용시켰다.
50명의 지원자 중 절반은 선천적, 나머지 절반은 후천적 장애인들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통증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겁니다. 간혹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만, 심하진 않으니 놀라지 마세요.”
여성 보조요원의 상냥한 목소리가 실험 지원자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잃어버린 희망을 잡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그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참관객,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조요원들이 BII-E001을 가져와서 지원자 전원에게 씌워주었다. 완전히 착용된 걸 확인한 진행 연구원이 원격으로 링크 된 컴퓨터를 이용해 BII-E001을 일제히 가동시켰다.
몇 초가 지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원자들은 미동이나 어떤 말도 없이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뭐지?’
‘회선이 어디 끊어졌나? 왜 아무 반응이…….’
연구원들이 당황해서 설비 세팅이 잘못 됐나 확인하려던 순간, 절규와도 같은 비명이 터졌다.
“꺄악!”
“흐, 흐윽…….”
“어, 엄마! 엄마!”
지원자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어떤 이는 미친 듯이 웃었으며, 어떤 이는 벌벌 떨면서 부모를 찾았다.
어떤 이는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며, 어떤 이는 그저 멍하니 미동도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50가지 다양한, 똑같지 않은 반응이 파도처럼 중앙 대강당에 흘러넘쳤다. 기자들은 쉴 새 없이 그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두 말할 것도 없는 성공,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김서현. 남, 13세.
그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빛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빛이란 ‘뜨거운 것’일 뿐이었다.
빛을 모르기에 암흑이 뭔지도 몰랐다. 그에게 세상이란 소리와 후각, 그리고 촉각이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피아노 원목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를 만지며 건반을 누르고, 울려 퍼지는 멜로디를 듣는다.
그것이 그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앞이 안 보이면 답답하지 않아?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종종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주로 나이가 어린 이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앞이 보인다는 게 대체 뭔데?
―이거이거, 세상이 지금 이렇게 보이는 거.
―보인다는 건 뭔데?
―눈으로 세상을 느끼는 거. 지금 나 노란색 패딩 입었다.
―노란색은 뭔데?
항상 궁금했다.
보이는 건 뭐고, 안 보인다는 건 뭘까. 색이란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음악소리와 비슷한 건가?’
언젠가 그렇게 물었을 때, 엄마는 맞다고 했다. 소리에도 여러 가지 흐름이 있는 것처럼, 사물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 애를 써 봐도, 색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앞을 본다는 감촉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본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다만 유독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있었다.
피아노 공연장에서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옆에 앉았던 또래의 여자애가 해준 말이었다.
―내가 지금 손가락을 접었어. 무슨 손이고, 몇 개를 접었게? 한 번 맞춰 봐.
어린 김서현은 늘 그렇듯 손을 이용해 상대방이 요구하는 대답을 찾아냈다.
―왼손이고, 두 개를 접었어. 엄지, 검지.
―그럼 이제 네가 접어볼래?
―응.
김서현은 오른손의 손가락 세 개를 접고 기다렸다. 이제 여자애가 자신의 손을 더듬어볼 것이다.
―오른손, 세 개 접었네. 맞지?
―……어, 어떻게 알았어?
만져보지도 않고. 그 말이 튀어나오기 전, 여자애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만져보고 알 수 있는 거, 그게 앞을 본다는 거야.
―……아.
당시 느꼈던, 알 수 없는 전율.
어린 시절, 언제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의문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째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나는 알 수 없는 걸까. 어머니는 어째서 뛰어다니면서도 가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여자애의 대답은 그런 흐릿한 의문을 뚜렷한 형체로 가공해준 열쇠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오늘.
“……아.”
눈이 부셨다. 아니, 사실은 그게 뭔지도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쏟아지는 감각의 홍수 속에서 그는 우두커니 굳은 채로 어쩔 줄을 몰랐다. 환산 불가능한 감각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와 마음을 헤집었다.
그 어지러움이 미칠 듯이 기분 좋았다. 어느새 볼이 뜨거워진 것도 모른 채,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눈앞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뒤에, 자신과 같은 이들이 울고 웃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만지지 않아도, 소리를 듣지 않아도, 냄새를 맡지 않아도,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이게 보인다는 거구나.”
송원희. 여, 37세.
꽃다운 17살 어린 나이에 사고로 두 눈을 잃은 그녀는 20년을 암흑 속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인생은 빛보다 어둠이 길었으며, 그리고 앞으로 영원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절망했고, 울어도 보았으며, 죽으려고도 해봤다. 주변의 설득과 체념으로 겨우 일어섰지만, 한 번씩 미칠 듯한 괴로움 속에서 좌절을 맛봤다.
따스한 어머니의 위로는 암흑 너머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울리는 공허함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세상은 암흑이었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현실을 인정하는데 2년이 걸렸고, 받아들이는데 다시 3년이 걸렸다. 익숙해지기까지 비슷한 시간이 걸렸고, 적응하기까지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남들에게는 적응이지만, 그녀에게는 체념이었다. 아마 둘은 같은 말이리라.
그리고 끝나지 않을 암흑이 걷혔다.
꿈속의 흐릿한 풍경이 아닌, 그녀가 언제나 그리워했던 선명하고 밝은 빛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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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갖게 해주세요!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