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9 기와집 태우기 =========================================================================
“지뢰 사상자라니요, 그게 뭡니까?”
한서진은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국방부 인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사상자 이야기를 먼저 꺼낸 장관은 쏟아지는 후배들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왜 괜한 말을 꺼내서.’라는 원망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당연히 한서진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무심코 언급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을 줄이야.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장관은 결국 해명을 위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박사님. 실은 별 건 아니고…….”
“잠시만요.”
한서진은 손을 들어 대답을 중지시키고, 곧바로 타르타로스에 검색 명령을 내렸다. 그의 안색을 보고 장관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돌려 장관을 직시했다.
“무리한 수색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군요? 수색에 사용된 장비는 성능 문제로 방산비리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태고요. 3명 사망에 6명이 불구가 됐군요.”
“박사님, DMZ에 매설된 지뢰는 최소 몇 십 만에서 몇 백 만 개에 달합니다. 그 많은 지뢰를 제거한다는 작업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우리 군은 철저한 관리 속에서 제거 작업을 실시 중입니다. 작업의 난해함과 위험성을 생각하면 9명밖에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대단한 겁니다.”
“그럼 2천 개도 안 되는 지뢰를 제거했다고 떠벌리며 자랑한 건 대체 뭡니까?”
“…….”
“최대 몇 백만 개라면서요? 그 중 겨우 천 몇 백 개 제거한 게 그렇게 부풀려서 자랑할 만한 실적입니까?”
장관의 안색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마치 회초리로 얻어맞은 것처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팠다.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을 쏘아보는 시선도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이도 아닌, 미국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청년이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겨우 9명이라니요? 사람 목숨에 겨우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제가 박애주의자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장병을 부품처럼 취급하는 건 보기 그렇군요.”
“그,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군은 절대로 장병 개개인을 부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보상 내역을 보니 별로 신뢰는 가지 않는군요. 부상자들에게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못해서 악화가 된 경우도 있고요. 지금 치료 과정을 보면 별로 정성을 다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만. 다리 하나와 두 눈을 잃은 장병 한 명은 날짜 되니 전역 시켜서 내보내는 바람에 지금 민간병원에서 사비로 치료 중이고요.”
국방부 인사들은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방금 전까지는 지뢰 사상자에 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이 그 짧은 사이에 뭘 했기에 저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단 말인가? 혹시 대화 흐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체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애초에 준비가 철저했었다면 이런 인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박사님, 이건 인재가 아니라 엄연히…….”
“그럼 제가 한 번 알아보죠.”
한서진은 조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저도 부품이던 시절 생각나서, 이게 남일 같진 않군요.”
엉망이 된 분위기 속에서 만찬을 대강 마무리하고, 한서진은 곧바로 국방부를 나섰다. 그리고 중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차례대로 방문하며,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물론 병원측에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최현식 환자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았다.
그는 가장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중상자들과 달리 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안구 손상이 심해 시력 회복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
한서진은 안정제를 투여 받고 잠이 든 최현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카락, 앳된 얼굴. 이제 겨우 스물 초반인데 영원한 어둠 속에 잠겨 살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암울한 인생인지는 상상조차 어려웠다.
차라리 태어났을 때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왔다면 모를까, 빛의 축복을 영원히 박탈당했으니.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최현식 환자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저 말씀이십니까?”
질문을 받은 수행비서는 조금 당황했으나 곧 대답했다.
“눈을 잃느니 차라리 다리 두 개와 청각, 혀를 잃는 게 낫겠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옛 말에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구십냥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앞을 보지 못하면 불편한 게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재미있는 만화 같은 것도 즐길 수 없고, 멋진 경치도 볼 수 없잖습니까.”
남자 수행비서는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 가라앉은 얼굴로 최현식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요. 그것도 자기 책임이 아닌 나라에서 강요한 업무 중, 게다가 장비 품질만 멀쩡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저 하늘이 원망스럽겠죠.”
“원래 부품의 인생이라는 게 그래요.”
“…….”
과거를 회상하듯이 읊조리는 말에 수행비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서진은 유리벽에 가만히 손을 기댔다.
좌절감에 잠겨 허우적댈 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그저 다가오는 절망을 맞이할 뿐.
그런 최현식의 모습에 과거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겹쳐 보였다.
수행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TF팀에서 김범석 부사장 주도로 지뢰 사상자 문제를 한창 공론화 중입니다. 과거 GK그룹에서 납품한 금속탐지기의 성능에 의문점이 있다고요. 당시 군에서 책정한 기준치에 충족하지 못하는 성능이었지만 원가절감을 위해 장성 로비로 유야무야 넘어가서 승인을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일 겁니다.”
더 따져볼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타르타로스 2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0% 확실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법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미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몇 년의 다툼을 무의미하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TF팀이 사용하는 탐색 프로그램은 많은 제한이 걸려 있다. 앉은 자리에서 이 나라의 흐름을 훤히 내다보는 한서진과는 시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찍어 누르는 게 나을 텐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예상이 된다. 그래서인지 더 한심한 마음만 들었다.
길이 있어도 길을 걷지 않는 세상, 그것이 너무 답답해서.
H컨설턴트에서 지뢰 수색 작업 사상자 문제를 공론화하는 바람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헤드라인에는 온종일 그 이야기만 거론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압력을 통해 여론을 환기해보려 했지만, 언론사들은 정부보다 H컨설턴트의 눈치를 봤다.
“대체 일이 왜 이 지경이 된 건가?”
대통령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자 국무위원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예전 GK그룹에서 납품한 탐지장비의 성능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습니다. H컨설턴트에서는 9명의 해외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탐지장비 때문에 그런 사고가 벌어졌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문제는 지뢰 사상 장병들이 아닙니다. 한서진 박사가 이 일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얼마 전 만찬에서 대놓고 면박을 당했습니다.”
“장병을 부품으로 보지 말라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화를 내진 않았지만 심기가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인 듯합니다. 한서진 박사가 더 화를 내기 전에 서둘러 봉합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겨우 민심이 수습되어 가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졌습니다.”
도원패 대통령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올라온 대통령 자리인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최고통수권자이면서도 한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통치를 해야 했고, 마음대로 일을 벌이지도 못한다.
“문제는 금속 탐지장비의 납품에 얽힌 비리를 캐고 들어가면 여기저기 걸치는 게 많다는 겁니다.”
관행이란 이름하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밭이다. 초목 하나를 들어내면 그 뿌리가 밭 전체에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
절대로 뿌리까지 파고들어가는 일은 없도록 막아야 한다. 밑둥치에서 자르고 없던 일로 해야 했다.
“사상 장병들 후하게 보상해줘서 여론 틀어막고, GK는 철저하게 파헤쳐. 단, 그 이상을 넘어가면 곤란해.”
책임은 GK그룹에서 끝내라. 그런 명백한 의지가 담긴 지시였다.
뿌리를 잘못 건드리면 밭을 통째로 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밭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군 방산비리에 한정된다면 차라리 안심이다. 그러나 군의 전면적인 체계, 그리고 나아가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모든 게 송두리째 뒤집어진다면?
대통령은 그런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적어도 자신의 임기 내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했다.
“GK를 끝장내는 한이 있어도 좋아. 불이 더 번지지 않는 게 중요해. 다들 알겠나?”
“예, 대통령님.”
우렁찬 측근들의 대답에 도원패 대통령은 며칠 만에 겨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지뢰 피해 장병들의 사연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은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들을 향한 동정심, 그리고 군을 향한 의심과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단순한 작업 중 사고가 아닌 비리가 얽힌 인재, 투명한 시스템이 갖춰졌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크게 호응했다.
납품비리를 수사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군 전면에 걸친 비리와 문제를 척결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아예 군대를 없애버리라는 과격한 목소리까지도 나왔다.
한쪽 다리와 두 눈을 잃은 전역 병사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군대에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군부를 비난했다.
그때 정부가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검증되지 않은 장비를 이용한 수색은 지금 전면 중단된 상태이며, 군납품 관련해서 비리는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를 할 계획입니다. 또한 피해 장병과 간부들에게는 합리적인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보상 내역이 공개되자 여론은 다른 의미로 끓어올랐다. 지나치게 파격적인 보상을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유공자로 보훈처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죽을 때까지 평생 150만 원 이상의 생활 지원금을 약속했다. 생활 지원금은 물가에 따라 변동되며, 치료 및 후유증에 관한 비용은 당연히 별도로 책정된다.
여기에 공공기관 장애인 특채를 약속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혜택이 즐비했다. 결정적으로 장애 정도에 따라 최소 5억에서 최대 10억까지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3명의 사망자의 경우 유족들에게 상기 혜택은 물론, 40억의 보상금을 약속했다.
―정부가 미쳤나? 약이라도 먹었어?
―나라 지키다가 전투 중에 죽어도 1, 2억이 고작이었는데…… 최대 40억까지 준다고?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화끈한 보상을 책정한다. 그러면 적당히 불만이 가라앉을 테고, GK그룹의 사지 혹은 몸통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밭을 들어내지 않고 봉합할 수 있다.
그런 계산에서 나온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보상이 너무 과한 거 아님? 저거 다 국민 혈세인데. 와, 말도 안 나온다.
―아, 씨발. 나도 지뢰나 한 번 밟을 걸 그랬네.
너무 후한 보상이라며 여기저기 불만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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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 꼬리를 자르고 튀자!
꼬리 : 뭉치면 살 것이요, 흩어지면 죽을 것이다.
몸통 : 야! 다 같이 죽는다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