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8 기와집 태우기 =========================================================================
검은색 방탄 리무진이 미끄러지듯이 속도를 늦추며 국방부 정문을 통과했다. 방탄 경호 차량 열 대가 줄줄이 그 뒤를 이어 들어갔다.
본청 입구에는 서른 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나와서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 별 네 개를 단 장성들이 제복 차림을 한 채 리무진이 가까워지는 걸 보고 있었다.
리무진이 완전히 멈춰 서자, 4성장성 중 한 명이 얼른 나서서 뒷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박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서진은 고마움을 표하고는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군 인사들에게 눈을 돌렸다.
중심에 선 반백의 남자, 국방부 장관이 나서서 정중히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제 일이기도 한데요.”
“들어가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장관이 정중히 안내했고, 한서진은 끄덕이고는 따라 나섰다. 수행원과 군 장성들이 그 뒤를 우르르 따랐다.
한서진이 국방부를 찾은 것은 SJ인더스트리의 수퍼컴퓨터 군납 때문이었다.
국방부는 슈나우저가 탑재된 수퍼컴퓨터 Z7을 이번에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SJ인더스트리에 의사를 타전했다. SJ인더스트리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어 군납 계약을 맺었다.
Z7 시스템을 설치하는데 한서진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만큼은 그가 나서기로 했다.
다른 것도 아닌 국방부가 쓸 제품이니, Z7의 아버지로서 철저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국방부로서도 마무리만큼은 한서진이 직접 감독하겠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Z7을 통해 전산 시스템을 더욱 튼튼히 갖추면 우리나라의 안보는 훨씬 더 보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방부 장관이 자랑스럽게 말하자 한서진은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근데 지금 우리나라 적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가 없지 않나요? 북한은 없어졌고 중국은 별로 위협이 안 될 텐데.”
“…….”
장성들의 얼굴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동시에 굳었다. 한서진은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제가 민감한 이야기를 한 건가요.”
“……아닙니다.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군은 언제라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걸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원래 평화로울 때 위태로움을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거야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무튼 그럼 Z7 세팅 마무리 조율을 시작해볼까요?”
한서진은 직접 시스템 최후 세팅 조율 작업에 들어갔다.
국방부 고위 인사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흘끔 보다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설마 진짜 한 박사도 군 재편에 찬성하는 쪽일까요?”
“그러니까 TF팀에서 움직인 것 아니겠나? 최소한 암묵적인 동의는 받은 거겠지.”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중국과 북한의 붕괴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국방부는 필사적으로 살 길을 도모했다. 무리하게 DMZ 지뢰 수색 작업을 벌인 것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다.
육군 중심인 지금의 군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 필연적으로 간부 및 지휘관, 장성들의 숫자에도 영향을 끼친다. 적어도 TO가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육군 장병 숫자도 최소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할지도 모른다.
DMZ에 매설된 지뢰를 찾아내고, 북한 지역의 안정을 담당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아주 큰 골칫거리가 생겨버렸다.
지뢰 수색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9명을 놓고 H컨설턴트와 재정감시 TF팀에서 물고 늘어진 것이다.
수색 작업에 사용된 금속탐지장비 성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산비리까지 함께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방부로서는 화들짝 놀랄 일이었다.
어느 4성장성이 푸념하듯이 말했다.
“대체 군대도 안 갔다 온 친구가 무슨 자격으로 군 체계에 관해서 이런저런 참견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허, 이 사람아. 친구라니, 말 조심해!”
“하지만 사실이지 않습니까? 한서진 저 친구는 군대의 군 자도 알지 못합니다. 근데 돈 좀 있다고 군 체계의 전통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참견하려 하다니…….”
“맞습니다. 아마 군 체계를 전환하면서 그 과정에서 재미 좀 보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사실 Z7 도입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한 번 터져 나온 불만은 이미 거침이 없었다. 몇 몇 이들은 흥분해서 비난을 늘어놓았고, 몇 몇 이들은 소극적으로 말렸으며, 몇 몇 이들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태도가 어떻든 간에 그들의 마음만큼은 일치했다.
안 그래도 국민들 시선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H컨설턴트와 TF팀까지 나서서 지뢰 사상자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있으니,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조율 작업을 끝내고, 한서진은 Z7을 작동시켰다. 정상 가동이 확인되자 기술자들이 환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관리 기술자들과 진지하게 면담을 마친 이후 한서진은 장관 및 장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한참 전에 험담을 멈추고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장관이 웃는 낯으로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귀하신 몸이 이런 사소한 일까지 직접 챙겨주시니, 참 염치를 둘 데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먼저 나선 일인데요.”
“자, 가시죠.”
저녁에는 국방부 인사들과 함께 간단한 만찬이 준비돼 있었다. 장관은 한서진을 만찬 장소로 안내했고, 장성들도 함께 뒤를 따랐다.
장성들은 식사 내내 한서진을 힐끔거리며 조심스럽게 살폈다.
서른도 안 된 청년,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큰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 어쩌면 그의 말 한 마디에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간단히 바뀔 수도 있으리라.
이미 김두박 대통령이 몰락한 정황을 목격한 군 장성들은 한서진 앞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서운 사람이니.
“저어, 박사님. 외람되지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반백의 장관은 자기 막내아들뻘밖에 안 되는 한서진 앞에서 연신 굽실거렸다.
“말씀하시죠.”
“실은 현 정부에서 국군 체계 전환에 관한 여론을 놓고 여러 가지로 난감하고, 고민도 많은 모양입니다. 지금 대통령님은 박사님의 진지한 자문을 얻고 싶은 의사가 있습니다. 다만 그럴 기회가 흔치 않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하필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닿았지 뭡니까?”
“국군 체계 전환? 제 자문이요?”
“예, 아시다시피 요즘 여론이 뜨겁지 않습니까. 박사님은 혹시 특별한 혜안이 있으신가 해서요.”
“아아, 그래요. 자문이라…….”
한서진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조그만 태블릿 장치를 꺼냈다. 그리고 장관을 돌아봤다.
“프로젝터 좀 잠시 쓰겠습니다.”
“네? 아, 네.”
의외의 부탁에 장관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 수긍했고, 제일 서열이 낮은 4성장성이 벌떡 일어나서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갔다. 전원을 켜기 위해서였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놀랍게도 프로젝트가 저절로 켜졌고, 단상 뒤 스크린에 화면이 영사되기 시작했다. 전원을 켜기 위해 일어났던 4성장성은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자 한서진은 멋쩍게 웃으며 설명했다.
“원격으로 전원 장치에 신호를 줘서 켜지게 한 겁니다. 그냥 강제 해킹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
“자, 그럼 화면을 보실까요? 제가 방금 장관님의 말씀을 듣고 집에 있는 개인 수퍼컴으로 막 돌린 계산 결과입니다.”
“계산 결과라고 하셨습니까?”
“네, 자문을 구하신다고 하셔서요. 현재 우리나라 예산이나 재정, 전력, 주변국의 상황 등 모든 환경변수를 총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 개편안을 계산한 겁니다. 한 번 보시죠.”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아니, 그게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놀랄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스크린에는 경악스러운 개편안이 떠올라 있었다.
“해군과 공군 전력을 증강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육군을 10만 이하로 줄인다고요?”
“장병들의 기본 월급을 300만 원 이상으로 올린단 말입니까?”
“……전체 예산은 오히려 늘어났군요.”
한서진이 도출한 개편안은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것들뿐이었다. 현재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개편 방안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국경선이 늘어나긴 했지만 사실 지금처럼 숫자만 많은 육군 체제는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군단 위주로 첨단화, 정예화를 시켜야지요. 우리나라 재정 상황, 그리고 주변국과의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 겁니다. 당연히 주한미군,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고려한 것이고요.”
“…….”
“어디보자, 전체적인 예산은 오히려 40% 이상 늘어났군요. 군 간부 수가 줄어들겠지만 전체적인 장병 숫자가 줄어드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장성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개편 과정에는 단기적인 초기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그건 3조 AU가 국고에 잠자고 있으니 충당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북한 개발을 위한 기금으로…….”
“군 개편에는 북쪽 영토 방위 작계도 포함되니 당연히 지출할 명목이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
“이 정도가 제가 드릴 수 있는 자문입니다만……. 어떻게, 지금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장관은 할 말을 잃었다.
그야말로 슬쩍 떠보려고 했다가 제대로 코가 꿰인 상황 아닌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말도 안 꺼냈을 것이다.
H컨설턴트와 TF팀이 벌인 일에 한서진이 어느 정도 의중을 품고 있는지 슬쩍 알아보려고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제대로 결정타를 맞을 줄이야.
“아, 지금 막 장관님 메일과 청와대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한 번 참고해주세요. 어디까지나 자문이니만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진 마시고요.”
장성들은 확신했다.
H컨설턴트와 TF팀이 벌인 것은 한서진의 묵인 정도가 아니라 진지한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말도 안 되는 개편안을 즉석에서 보여줄 리가 없지 않은가?
장관은 호소하듯이 말했다.
“박사님, 현재 체계는 수십 년 넘게 이뤄온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큰 개편을 단기간 안에 이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충분한 시간과 준비가 있어야 후유증과 진통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혼란도 고려해야 합니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만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빨리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차일피일 미루는 게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방산업체 관련해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물론 예전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그런 악습은 끊긴 지 오래입니다. 박사님께서는 지뢰 수색 작업을 무리하게 추진해서 사상자가 나온 거라고 오해하시지만, 사실 그런 큰 작업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9명 밖에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게 대단한 기록입니다.”
“네? 지뢰 사상자요?”
무슨 말이냐는 듯한 반문에 장관은 아차 싶었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본전은 물론이고 차비까지 다 털리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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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를 잡기 위해서라면 기와집, 아니 펜트하우스라도 기꺼이 태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