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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17화 (417/609)

00417  God weapon  =========================================================================

「우리 국군은 지금까지 총 1,729개의 지뢰를 찾아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앞으로도 군 전 장병은 지뢰 수색 작업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향후 우리 국군은…….」

TV에서 나오는 가만히 흘려듣는 이가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운 그는 한쪽 다리가 무릎에서부터 잘려 나간 상태였다. 표정은 무심하다기보다는 넋이 나간 것에 가까웠다.

나이는 갓 스물이 조금 넘었을까. 앳된 얼굴은 햇볕을 오래 받았는지 까맣게 그을렸고, 머리는 짧았다.

“개 같은 놈들!”

갑자기 환자가 분통을 터트렸다. 정신이 나가 있던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환자는 거친 몸부림을 쳤으나, 사지가 침상에 단단히 결박돼 있었다.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 이후 문이 벌컥 열렸다. 급히 들이닥친 의료진은 환자를 보고 혀를 차며 놀라움을 표했다.

“선생님! 최현식 환자가 또 발작 중이에요!”

“진정제 투여해요! 최현식 환자님, 제 말 들려요? 제 얼굴 보입니까?”

의사는 최현식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간호사가 급히 진정제를 투여했고, 약효가 나타나자 최현식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의사는 TV를 확인하고는 화를 냈다.

“저런 걸 틀어주면 어떡해요? 지뢰 제거 작업 하다가 다리랑 두 눈 날린 사람이 저런 방송 들으면 당연히 발작하지! 안 그래도 심신이 불안정한 사람인데!”

“아무래도 다인실이다 보니…….”

“……됐어요. 갑시다.”

최현식은 완전히 잠이 들었다.

의사는 어두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혀를 끌끌 찼다.

“저 친구도 참 안 됐어. 재수 없게 걸려가지고.”

국방부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이 무너진 직후, 여기저기서 존재 필요성에 관한 지적과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정확히는 군대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지금 나라 사정에 적합한 군 체계인지를 놓고 끊임없는 논란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논란에 관해서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별로 없었다.

애초에 북한을 의식해서 육군만 비정상적으로 키워놓은 체제인데, 정작 그 북한이 사라진 상황 아닌가.

뿐만 아니라 대체적인 위협국이 될 수 있는 중국 역시 수많은 약소국으로 쪼개졌고, 지금도 자기들끼리 끊임없는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전통적인 혈맹인 ‘미합중국 천조국’에서 7함대를 제주도로 이전하고 주한미군 전력을 강화하는 대대적인 지원까지 해주고 있다. 주둔비 분담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지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관계로 변했다.

물론 미군의 변화는 한서진의 거처를 끝까지 지킨다는 국가 전략에서 출발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러시아가 언제든 우리의 주적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러시아를 조심해야 한다!”

안보를 중히 여기는 이들이 그런 주장을 펼치긴 했지만, 크게 설득력을 얻지는 못했다. HAMC 설립을 기점으로 한서진을 통해 한러 관계는 급격히 끈끈해지고 있었으니까.

“국방이 중요한 건 사실인데, 우리나라 환경에서 지금 이 체제가 어울리기는 한 건가? 대대적으로 체질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런 개혁이야말로 서둘러야 한다.”

북한을 의식해서 육군 전력만 비정상적으로 증가해놓은 상태. 그러나 그 북한은 이제 없다. 그 북한을 대체할 만한 잠재적인 적국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여론이 우세해지면서 국방부는 전에 없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주 잘 됐다. 이참에 놀고먹는 똥별들 숫자 좀 줄이자. 60만 육군이 말이나 되는 상황이냐?”

“하는 김에 국방비리 척결도 좀 하자.”

“아니, 북한도 없는데 예비군 훈련은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 우리가 뭐 예비역 영관들 일자리 유지해주려고 훈련 나와야 돼?”

군이 요구받는 변화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군 규모의 축소 및 개편이었다. 두 번째는 첨단화였다. 세 번째는 투명화였다.

그 어느 것 하나도 국방부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요구였다.

“요새 너무 잠잠하긴 하네요.”

“다들 눈치를 보고 있는 거죠. 진성그룹부터 시작해서 5대 재벌들까지 전부 개혁에 나섰잖습니까. 보여주기 식이긴 하지만 어쨌든요. 이미 대통령도 갈려 나갔고, 김시형 검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들쑤시고 다니는 판국입니다. 몸조심 할 만 하죠.”

“할 일이 없어서 좋긴 하네요.”

TF팀은 온갖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활약을 할 일이 크게 많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대형 사건을 검찰에 제보하면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긴 했지만, 너무 두려움을 둔 나머지 주변에서 알아서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중견,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재단들의 자질구레한 비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들도 알음알음 눈치를 봐가며 비리를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TF팀은 기본적으로 ‘국가 공금’에 연관된 비리가 아니면 손을 대지 않는다는 방침을 취하고 있다.

한서진이 국채 형식으로 국가에 빌려준 자금의 무사회수를 위해, 예산 등 국가 공금에 탐욕을 부리는 이가 없도록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소액(예를 들어 몇 억) 예산 비리 같은 게 적발되면 TF팀에서 직접 고발하는 게 아니라, 검찰에 자료만 슬쩍 제공하는 식이다. 그럼 검찰에서 자체적으로 수사를 시작해서 조치를 취한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TF팀의 이름을 내거는 것은 뭔가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전체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진로를 튼 것 같으니 기분은 좋네요.”

TF팀에서 직접 크게 벌일 만한 일은 별로 없지만, 그게 오히려 좋은 거라고 다들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김범석이 지나갔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보고 다들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

“김범석 부사장님 얼굴이 너무 안 좋으시네요.”

“H컨설턴트에 TF팀까지 챙기시는 실무장이시니, 일이 힘들 법도 하시죠.”

“그보다는 요즘 뭔가 크게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다던데…….”

“그래요?”

“군방부 쪽이라고 얼핏 들은 것 같아요.”

“그쪽 동네도 요즘 잠잠하지 않나요? 같이 손뼉 쳐줄 재벌들이 몸을 사리는 판국이라 어지간해서는 비리 저지르기 힘들 텐데. 김두박 대통령 꼴을 보고도 일 저지르기란 쉽지 않을 걸.”

먼저 말을 꺼낸 직원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저도 얼핏 들은 거예요.”

보고를 듣는 김범석의 얼굴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풍성한 검은 모발을 만지작거리며 브리핑을 경청했다.

“그게 전부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뢰 제거 작업으로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수색장비만 갖추고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전문가 9명의 의견이 모두 일치했습니다.”

“GK그룹에서 납품한 지뢰탐지기 성능이 별로라는 거군요.”

“탐지기 성능도 그렇고, 사후 유지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방산비리혐의를 적용한다 해도 유죄를 가려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미 시효가 지난 일입니다.”

“…….”

“피해를 당한 부사관 및 장병 9명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우리 TF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그게 최선입니까?”

“네, 최선입니다.”

김범석은 턱을 쓰다듬었다.

직장인이라면 일을 잘하고 싶어한다. 누구나 선망하는 좋은 직장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최근 TF팀이 활약할 만한 건수가 별로 없었다. 자질구레한 건 검찰에 몽땅 양보하고, 큰 것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알아서 몸을 사렸다.

그렇다고 범죄가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아니고, 그냥 직장인으로서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형 방산비리를 몇 개 밝혀낸 적이 있지만, 검찰에서 수사가 들어가자마자 상대가 움직였다. 비리에 얽힌 방산업체에서 재빨리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사죄를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시정조치까지 후속으로 이어졌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검찰에서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언론에 크게 드러나지 않은 일이었다.

왜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냐고 당시 화도 많이 났지만, 과로로 핼쑥해진 젊은 검사들의 얼굴을 본 뒤에는 항의할 마음도 사라졌다.

모든 일은 우선순위가 있는 법.

검찰은 알아서 죄를 인정하고 사과 및 배상을 취한 범인보다는, 오리발을 내밀고 이리저리 빠져 나가는 범인을 쫓는 게 더 급했다. 후자가 피해 규모가 더 크기도 했고.

“국방부는 제대로 조져야 하는데.”

뭔가 사심이 들어간 중얼거림에, 브리핑을 하던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군대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 진행이 더 심해졌단 말이지. 심지어 아무 보상도 못 받았어.”

“…….”

“…….”

“크흠! 미안합니다! 내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서 혼잣말을 좀 했어요.”

김범석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얼른 사과했다. 직원들의 표정이 비로소 원래대로 돌아왔다.

“GK그룹과 수색 장비 문제, 한 번 건드려 봅시다.”

“하지만 부사장님, 이미 시효가 지난 일입니다. 그리고 GK그룹 같은 대기업이 얽힌 대형 비리는 시스템적인 문제라서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드러난 것의 수십, 아니 수백 배가 넘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문제다. 시스템적 문제라는 것.

단순히 소수의 이익 영달을 위한 비리라면 적발하기도 쉽고 처벌하기도 쉽다.

하지만 흰 칼라를 목에 두르고 다니는 놈들 다수가 작당해서, 그것도 십 수 년 이상 관행적으로 저질러온 ‘시스템적 비리’는 적발도, 처벌도 어렵다.

타르타로스 2가 제공하는 탐색 프로그램은 전자적 정보(특히 실시간으로 이뤄지는)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데는 엄청난 성능을 보이지만, 아날로그로 존재하는 정보나 기록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다. 이미 지나간 배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TF팀은 유권기관도 아닌 그냥 순수한 민간감시조직일 뿐입니다. 법적으로 시민단체와 다를 바 없어요.”

“…….”

“그건 달리 말하면, 걸리는 게 있다면 뭐든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시효가 지났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범죄 혐의가 있었다는 건 얼마든지 주장하고 비난할 수 있죠. 시효는 법적 책임을 없애줄 뿐 도덕적 책임까지 사면해주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열 받지 않습니까? DMZ에 매설된 지뢰가 몇 백만 개는 넘을 텐데 고작 이천 개도 안 되는 거 제거하고는 자기들 성과 올렸다고 자랑질이라니. 그 얼마 안 되는 거 찾아낸답시고 서두르는 바람에 9명이나 사상자가 나왔잖습니까. 칭찬은 똥별들이 다 받고요. 난 그런 거 못 참아요.”

“저도 예비역 6년차입니다! 그런 거 못 참습니다!”

“엇, 저는 8년 차인데.”

“다들 아직 민방위는 안 가보셨군요. 4시간 동안 회관 의자에서 조는 것도 아주 고역입니다.”

잠깐의 농담이 멎은 후, 김범석은 눈빛을 단단하게 다잡고 말했다.

“일단 공론화부터 시작해 봅시다.”

============================ 작품 후기 ============================

저도 요즘 두렵습니다.

군대에서 손가락이라도 다쳐서 나오면 완결을 지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많습니다.ㅠㅠ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입대 전까지는 반드시 완결을 지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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