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5 God weapon =========================================================================
한서진은 BII를 통한 타르타로스 2의 제어 연습에 몰두했다.
BII를 통해 사용자의 의식이 가상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을 그는 ‘BII 동기화’라고 불렀다.
그 작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떤 때는 너무 오래 몰두한 나머지, BII 좌석 제어 시스템의 강제 경고에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장시간 BII 동기화에 임할 경우, 동기화 그 자체는 아무런 해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누운 채로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중력의 압박을 받는 부위의 피부나 근육이 상하게 된다. 식물환자의 몸을 일정시간 뒤척여주는 것처럼, 어느 정도 사용자의 근육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좌석 회전이나 구속 장비를 통한 강제 움직임 적용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고안하고 있었다. BII 실용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현재 BII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서진이 BII의 성능을 개척하거나 개량하면, 프로젝트 팀의 연구원들이 그에 필요한 응용설비를 개발하는 식이다. 주로 상용화에 필요한 추가설비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BII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의 감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남은 것은 가상공간의 해상도 문제였다.
테스트 공간에서야 월등한 해상도로 인해 실제 현실과 구분하는 게 불가능했으나, 그만한 퀄리티의 해상도로 전체 공간을 짜는 것은 여간 대단한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세계 하나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사용자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면, 세세하게 가상공간을 구상해야 했다.
달리 말하면, 테스트 공간과 동일한 퀄리티의 조건 하에서는 가상공간과 현실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프로젝트 팀은 밤낮으로 응용설비 개발에 매진했고, 한서진은 BII를 이용한 타르타로스 시스템 직접 제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시간을 쏟았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아카식 블레이드를 실은 연구선박이 제주도에 입항했다.
BII 개발로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직접 제주도에 내려갈 필요가 적어졌다는 것이다.
세연동 저택에서 BII 모듈을 통한 가상공간 동기화로 언제든 아카식 블레이드를 편히 연구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오리할콘 뼈는 아예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카식 블레이드는 인간의 힘으로 연구 가능한 영역은 이미 정복된 상태였다.
즉 다른 문명의 두 유물은 이제 미지의 영역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서울에서 주로 연구하겠다고요?”
“네, 추출한 데이터를 연구하기에는 서울이 더 편합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제약이 있어서요.”
“그럼 한 박사 장비를 이곳으로 가져 오면 되지 않겠어요?”
니트론은 내심 서운한 눈치였다.
Table A가 자랑하는 연구선박의 보안유지 능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했다.
“제 전용 설비는 매우 예민하고, 또 중요합니다. 운반하는 과정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니 이해해 주세요.”
“알겠어요.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군요.”
“아닙니다. 그래도 데이터를 채집하는 작업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곳에 내려오긴 할 겁니다. 분석 작업만 서울에서 하는 거니까요.”
“그래요, 알겠어요.”
니트론을 비롯한 연구진들은 한서진이 어떤 식으로 데이터를 추출하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특히 오리할콘 뼈는 극미세 현미경으로 표면을 관찰하는 게 할 수 있는 작업의 전부 아닌가.
“그 부분은 제가 설명드리기 곤란합니다. 대신 분석한 데이터 결과물은 연구팀과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우리가 이해해야겠죠.”
연구팀은 한서진이 바주카포처럼 생긴 대형 휴대용 스캐닝 장비를 들고 오리할콘 뼈와 아카식 블레이드를 샅샅이 훑는 작업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들 눈에 비친, 한서진이 들고 있는 장비는 뭔가 특별해 보였던 것이다.
‘에테르 스캐너 같은 게 아닐까?’
그들의 추측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한서진이 임시로 만든 장비는 타르타로스 2가 좀 더 수월하고 편하게 스캐닝 좌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표지판’에 지나지 않았다.
에테르를 이용한 장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굳이 없다 해도 연구에 지장은 없는 장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위장용으로는 적당했다.
‘타르타로스가 가만히 앉아서 지구 전체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게 알려져서는 안 되지. 난리가 날 텐데.’
타르타로스 시리즈의 존재 및 무지막지한 성능에 관해서는 미국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Table A도 대강은 추론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수치로 파악하진 못하겠지만.
그러나 타르타로스가 에테르를 이용해 지구상의 모든 전자적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아무리 한서진이라 해도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됐어.”
타르타로스 2가 오리할콘 뼈와 아카식 블레이드의 구조적 스캐닝을 전부 마치자, 한서진은 곧바로 전용기를 띄워서 서울로 향했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헬기로 옮겨 타며 그는 가볍게 투덜거렸다.
“집에 활주로가 없으니까 이거 영 불편하네. 어디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일일이 갈아타야 하고.”
왜 선진국의 대부호들이 활주로가 딸린 대저택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불편해도 너무 불편했다.
지금으로서는 H팰리스가 서둘러 완공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BII를 통해 타르타로스 2와 의식 동기화를 이룬 한서진은 데이터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키보드 등의 입력 도구로 타르타로스 2를 다룰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편했고, 속도도 훨씬 빨랐다.
타르타로스의 전자신경망 속에서 그는 온 세상을 뒤덮을 듯이 나열된 스캐닝 데이터를 차분히 살폈다.
‘확실히 이 세상 물질이 아니다. 어디에도 이런 물질은 존재하지 않아.’
아카식 블레이드를 구성한 물질은 처음 보는 물질이었다. 미스릴도, 오리할콘도 아니었다.
미스릴은 극미량이긴 하나 해수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엄연히 지구의 신원소이다. 그리고 오리할콘은 극대화된 에테르의 압력을 받은 미스릴이 변형되어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레노지안에 이런 물질이 있나? 아마 있겠지?’
조금 답답했다.
자신이 직접 레노지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좀 더 수월히 조사할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레노지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신효진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초룡은 그렇다 치고, 아카식 블레이드는 왜 이렇게 큰 거지?”
가상공간에 머무른 한서진의 의식은 거대한 부러진 검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려 4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검. 부러지고 없는 칼끝 부분을 상상하면, 총 길이가 못해도 80미터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검은 왜 이렇게 거대할까?
200미터가 넘는 초룡의 두개골에 비춰볼 때, 아카식 블레이드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도저히 기사가 쓰려고 제작한 검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상징성? 어떤 건축 구조물이었을까?”
거대한 검의 동상을 만들어 거치하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검일까?
“거인족 따위는 아니고. 그럴 리가 없으니까.”
Table A는 아카식 블레이드를 만든 외계 문명인이 거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서진은 그 추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초룡의 두개골 크기를 생각하면, 레노지안인의 키는 아무리 커도 2미터가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구인과 비슷한 체격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카식 블레이드는 기사가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검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들이 쓰던 검…….”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서 왕이 말한, 카드리안 가문을 몰아내고 신좌를 차지했다는 새로운 신. 만약 고대 카드리안 가문 사람들이 신의 직위를 갖고 있었다면, 거대한 체격을 가졌다 해서 이상하지 않다.
“역시 신들이 쓰던 검일까? 그래서 이렇게 거대한 거겠지?”
한서진은 가상공간에 구체화된 아카식 블레이드 주변을 거닐며 중얼거렸다.
그의 의식은 아카식 블레이드에 걸맞게 커져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상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을 배회하듯이 돌며 바라보던 한서진은 문득 손가락을 휘저어 명령을 내렸다. 곧 아카식 블레이드의 부러진 끝 표면에 환한 빛이 일어나며, 부러진 칼끝이 재생되었다.
80미터에 달하는 온전한 검의 모습, 부러지기 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서 복원한 모습이었다.
한서진은 손을 뻗어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기묘한 자극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그는 검을 쥔 채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만약 이게 현실이라면, 지금 내 키는 한 70미터쯤 되려나?”
검이 그의 키보다 조금 길었으니, 만약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이라면 그의 키는 그 정도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 모습도 모두 남김없이 영상으로 남겼다.
다시 검을 놓고 그는 뒤로 물러났다. 복원된 검의 모습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물론 그 행동은 정신을 좀 더 쉽게 집중하기 위한 것일 뿐, 직접적인 명령은 사고를 통해서 적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이 그의 뜻에 따라 천천히 회전했다. 동시에 수없이 많은 푸른빛이 검 표면을 낱낱이 찌르며 분해했다.
푸른빛의 선 끝에 여러 가지 도형과 기호가 떠오르며, 검을 분석한 데이터를 표시했다. 무수한 분석 정보가 남김없이 한서진의 의식을 거쳐 흘러갔다.
인간의 몸으로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공간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게 가능했다.
타르타로스 전자신경망의 지원을 얻어 방대한 정보를 일시적으로 의식의 공간에 담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교하면서도 직관적인 논리적 분석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BII를 통해 이뤄낸 효율의 극대화였으며, 한서진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였다.
‘무기. 이건 무기다.’
한참 동안 아카식 블레이드를 분석하던 한서진은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타르타로스가 스캐닝한 결과를 파훼한 결과는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아카식 블레이드는 무기였다. 지식의 보존이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다만 아카식 블레이드를 만드는데 적용된 원리, 그리고 지식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인류가 이룬 현대과학을 아득히 넘어섰다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Table A는 아카식 블레이드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과학적 발견을 얻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 이 검에 담겨 있었을 힘은 어느 정도일까?’
그는 시뮬레이션을 작동시켰다.
지구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의 행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카식 블레이드를 손에 쥐고, 가상의 행성을 겨누었다.
시뮬레이션이지만 조건은 동일하다. 적용하지 못한 오차가 있다면 모를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똑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한서진은 행성을 겨누고, 그대로 아카식 블레이드에 담긴 힘을 방출했다.
눈부신 빛이 뻗어나가며 지구를 격중시켰다.
그 순간 지구 표면 전체가 한순간에 불타올랐다. 알의 껍질이 부서지듯 지구 표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가상의 파괴 장면, 시뮬레이션이지만 섬뜩한 결과였다.
한서진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아카식 블레이드를 두려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이건 정말…… 신의 무기일까?’
============================ 작품 후기 ============================
“I'm your weapon.”
“Nooooooooooo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