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13화 (413/609)

00413  발명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

―레노지안에 들어가지 못한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꿈이든 타르타로스를 통해서든, 그곳에 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레노지안은 영원히 잊혀지는 것일까…….

―효진 씨의 레노지안은 지금도 계속 시간이 흐른다. 내가 겪는 세상과 몇 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효진 씨가 내 시간대를 따라잡는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초룡의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뼈를 구성한 오리할콘은 내가 본래 알던 원형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Table A는 과연 알고 있는 걸 내게 전부 말해주었을까? 아카식 블레이드의 존재는 레노지안이 지구와 어떤 연관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오늘 마지막으로 타르타로스 1로 레노지안에 접속을 시도했다. 결과는 역시나 마찬가지다. 타르타로스 2를 통해 시도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레노지안…… 부정하고 싶지만 적어도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미스릴, 에테르, 오리할콘, 그리고 아카식 블레이드가 모든 걸 증명한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그것들은 이곳 지구 역시 꿈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레노지안 일지.

어느덧 작성을 시작한지 해를 넘겼던가. 묵묵히 모니터를 주시하던 한서진은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았다.

―타르타로스 1을 잠시 SJ엔터테인먼트에 보낸다. 아주 잠깐일 뿐이다.

신효진은 친구가 별로 없다. 중학교 동창들과 간간이 연락을 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모임 같은 것을 따로 참석한 적은 거의 없었다.

평범하게 인문계를 거쳐 대학을 진출해서 마음껏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친구들. 그에 비해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17세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자신.

피폐한 삶을 사는 자신과 그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머, 효진아.”

“세상에, 표정이 많이 좋아졌네. 완전 밝다.”

“보너스라도 받았어? 아참, 이직했다며?”

“좋은 회사로 이직했나 보다. 얼굴이 아주 좋네.”

거의 2년 만에 참석한 친구들 모임.

한창 대학에 다니고 있을 친구들은 산뜻해진 신효진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했다.

“화장까지 하고, 진짜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그 어둡던 신효진은 대체 어디 간 거야?”

“많이 변했네.”

옛날 친구들의 이어지는 칭찬에 신효진은 알 듯 말 듯한 웃음만 지었다. 예전이라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찬이라며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예쁘다는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바로 그녀의 마음가짐이 완전히 변했다는 증거였다.

“이거 옷 브랜드 어디 거니? 엄청 좋아 보여.”

“아이, 그런 거 아냐.”

오랜만에 참석한 중학 동창 모임은 즐거웠다.

친구들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캠퍼스 라이프 이야기를 들어도 비참한 기분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도 어서 빨리 대학에 가고 싶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OT, MT, 강의, 과 행사, 축제, F학점, 시험, 그런 이야기들이 금방이라도 움켜쥘 수 있을 듯이 느껴진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 거야?”

“응, H그룹 계열사에서 일해. 비서 일 하고 있는데 편하고 좋아.”

“H그룹 계열사에서?”

놀랐는지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맞은편에 앉은 여자애가 눈웃음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쩐지, 그래서 신효진 얼굴이 엄청 폈구나? H그룹 계열사면 급여나 복지 엄청 좋을 테구 말이야.”

“공장 다닐 때보단 훨씬 나아. 찝적거리는 아저씨들도 없고.”

“그거 네가 허술하고 다녀서 그런 거야. 원래 내세울 거 없는 아저씨들이 어수룩하게 이쁜 애들만 보면 물고 늘어지는 거 몰라? 나처럼 아예 화장을 쎄게 하고 다녀 봐. 그런 아저씨들 겁나서 다가오지도 않아.”

“박시연, 너는 화장을 쎄게 해서가 아니잖아.”

“뭐래. 너보단 내가 더 낫거든?”

오랜만에 참석한 동창 모임은 즐거웠다.

딱 그 나이대 애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하고 아기자기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건 자신이 그들보다 훨씬 낫다는 우월감이 아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힐링이었다.

수다도 떨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효진아, 번호 좀 줄래?”

모임이 끝나갈 때쯤, 남자애들이 몰래 몰래 다가와서 전화번호를 부탁했다.

항상 구석에서 남들이 편히 대화하는 것만 지켜보며,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자괴감에 시달렸던 옛날과는 너무 달랐다.

‘신효진, 진짜 용 됐네.’

신효진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중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데 좋은 차를 끌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삶.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진짜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신효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양을 세자 곧 잠이 쏟아져 내렸다.

현실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

그 꿈속으로 들어간다.

BII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시청각 자극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한서진은 사용자의 사고를 읽어 입출력 명령을 실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뇌가 촉각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연이어 성공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BII 기능을 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타르타로스 통제에 접목시키는 작업만 남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정지원은 기뻐했다.

「이제 팔아먹기만 하면 되겠어. 참, 타르타로스 1은?」

“……통제권한 설정 작업 끝냈습니다. 부마스터 계정 알려드릴 테니 앞으로 그걸로 접속하시면 됩니다. 서브 계정은 부마스터 계정 권한범위 내에서 제한 없이 만들 수 있고요.”

한서진은 부마스터 계정을 별도로 만들어서 SJ엔터테인먼트에 제공했다.

SJ엔터테인먼트는 계정이 허용되는 범위 하에서 타르타로스 1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마스터 계정은 최소한의 감시 통제 기능을 제외하고는 운용하지 않을 테니, 사실상 타르타로스 1의 시스템 리소스를 100% 가까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이 깜짝 놀랄 거야.」

“당연하죠. 타르타로스가 얼마나 빠른데요.”

「그리고 너를 원망하겠지. 이런 좋은 시스템을 지금껏 혼자만 독점하고 있었다고 말이야.」

“…….”

뭔가 사심이 섞인 발언 같은데?

“아무튼 전 SJ엔터테인먼트에 필요한 기능 제작은 전부 다 했습니다. 이제는 알아서 하세요.”

「걱정하지 마. SJ엔터테인먼트를 SJ인더스트리 이상 가는 초대기업으로 키워낼 테니. 지금은 SJ인더스트리 자회사지만 2년 안에 계열분리를 해야 할 거다.」

현재 SJ엔터테인먼트는 SJ인더스트리가 지분을 100% 쥐고 있다. 그리고 한서진은 SJ인더스트리의 지분을 86.5%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해 한서진은 SJ엔터테인먼트를 100%가 아닌 86.5%만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다른 주주들과 사전에 협의를 마친 뒤라 문제가 없다. 타주주들은 SJ엔터테인먼트에 자신들의 노력이 전혀 기여된 바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명의만 자회사로 둘 뿐, 계열분리를 하게 되면 100% 한서진의 몫이 될 것이다. 그때 정지원에게도 보수 명목으로 1%를 떼어주기로 되어 있었다.

“근데 1%로 정말 괜찮으세요?”

「늘 말하지만, 난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해. 그 이상 바라면 탈이 난다.」

그 부스러기만으로도, 한서진을 제외하고 미국 부호 중 3위에 이름을 걸치고 있다.

오늘은 2차 시제품 테스트를 하는 날이었다. 실험의 중요성 때문인지 BII 프로젝트 팀 전원이 모였다.

이미 1차 시제품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상황,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기대감이 가득했다.

자신이 테스트하겠다는 지원자들도 있었지만, 한서진은 다 거절하고 직접 테스트에 나섰다.

침대에 누워 안전장치를 부착하고, 헬멧을 쓴 한서진은 곧 기계를 작동시켰다.

새카만 어둠이 나타났다가 환한 빛으로 눈앞의 모든 것이 바뀌며, 저번에 보았던 핫한 아나운서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이 나타났다.

그녀는 한서진을 보자마자 작게 눈웃음을 치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한서진 박사님. Virtual reality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너, 억양이 조금 변한 것 같다?”

―VVIP 등급 클레임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향후 고객 응대에 문제가 없도록 프로그래밍이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혹 전에 제가 저질렀던 무례가 있다면 잊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흠…… 그건 조금 마음에 드네.”

―자, Only one 등급 고객님. 저와 함께 Virtual reality의 세상을 탐사해 보시겠습니까?

생각만으로 입력 명령을 통제하는 것은 조금 생소하고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그래도 몇 번 시도하니 제법 익숙해졌다. 정신을 집중하자 눈앞에 커다란 창이 떠올랐다. 창에는 여러 가지 입력 명령 버튼이 표시돼 있었다.

―Virtual reality의 세상을 제어하기 위한 1단계입니다. 원하시는 버튼을 선택해 주십시오.

팔을 들어 올리는 간단한 동작이 이처럼 힘들 줄이야.

행동명령을 생각으로 직접 입력한다는 것의 난이도는,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붉게 표시 된 버튼을 성공적으로 클릭하자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음은 2단계입니다. 원하시는 명령을 머릿속으로 직접 떠올려 주십시오. 생각의 형태가 구체적일수록 BII 시스템이 더 정확히 스캐닝할 수 있습니다.

한서진은 생각을 바짝 조이며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타르타로스 2, 제어 모듈 접속.’

가벼운 후끈거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작열통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었다.

화악 하고 빛이 일어나며 주변 풍경이 변했다.

수없이 많은 줄로 구성된 거대한 도형이 나타났다. 도형은 무한이 접히고, 반복되고, 융합된 형태였다.

그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긴 채,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응시했다.

―뇌파 스캐닝, 신분 확인 중.

―접속 권한, 확인되었습니다.

―타르타로스 2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서진 박사님.

한서진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른 걸 느꼈다. 타르타로스 2의 전자신경망 중심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하고, 포근했다.

차가운 강철 냄새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제2의 고향처럼 푸근한 느낌만을 안겨준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수십 개의 푸른 입구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짐승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은 털에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들은 미친 듯이 폴짝거리며 그의 주변을 뛰어다녔다.

정신없이 핥으려는 수많은 개들을 보고 한서진은 그만 피식 웃었다.

‘타르타로스, 너 나름대로 환영 인사라 이거냐?’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일만 마리의 삼두견들이 헥헥거리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픽 나왔다.

유희는 잠시 뒤로 밀어두자. 이제 BII를 통한 타르타로스 제어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차분히 검토해봐야 할 때였다.

‘타르타로스, 보여 다오.’

그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네가 보는 세상이 어떤지를.’

빛이 암전하며, 풍경의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 작품 후기 ============================

1위 : 크렘 10.5%

2위 : 칼 루이스 2%

3위 : 정지원 1%

한서진은 영원한 0위입니다.

전 부스러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부스러기의 부스러기라도...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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