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11화 (411/609)

00411  발명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

한서진이 BII 프로젝트 팀을 꾸린 것은, 뇌파 입출력 부문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온 이들이 쌓아온 노하우와 데이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여기에 통찰안이 더해지며 놀라운 진척을 이뤄냈다.

프로젝트 팀이 꾸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제품이 나온 것에 세상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시각과 청각 기능 구현만큼은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언론의 발표에 세상은 뒤집어졌다.

“뇌의 전기적 신호 작용으로 만든 가상현실이라고? 진짜야?”

“그렇대. 기존 VR기기처럼 고해상도 영상을 눈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래. 전자파로 뇌의 시청각 신경에 직접 작용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래.”

“대단하다. 인간의 기술력은 대체 어디까지인 거지?”

“진짜 가상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VR기술에 관련된 업체들의 주가는 국제적으로 널뛰기를 반복했고, 증권시장은 이번에도 대혼란을 맞이했다. 누군가는 한서진이 뭐만 했다 하면 두들겨 맞기부터 하는 증권시장이라며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무기 시장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겠네. 파일럿 양산 비용 부담이 적어질 거야. 전투기가 격추당해도 파일럿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글쎄? 안전한 캡슐에서 전투기를 조종해야 한다면 결국 무선 제어를 한다는 건데, 그럼 외부 해킹에 취약하지 않을까?”

“신성한 칼라로 연결하면 그만인데,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이것으로 군 병기 무인기화는 이제 가속화를 피할 수 없게 됐네.”

BII가 무기에 가장 먼저 적용될 거라고 단정 짓는 자들은 앞으로 재래식 무기 체제가 어떻게 변할지, 그 생태계를 놓고 끝없는 토론을 벌였다.

“의료 시장에 대혁명이 일어날 거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해 봐. 시청각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했어. 이건 BII 프로젝트 팀에서 인간의 두뇌가 시각과 청각 신호를 어떻게 해독하는지,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뜻이야.”

“그래서?”

“카메라로 촬영한 풍경, 마이크가 인식한 주변 소음, 이걸 시각, 청각 장애인들의 두뇌에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거지. 시각과 청각은 앞으로 더 이상 장애로 남지 않을 거야.”

“허억, 진짜?”

“그리고 하반신 불구나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같은 신경 이상성 장애나 질환도 고칠 수 있을지 몰라. 두뇌에 신경 자극을 전할 수 있다면, 근육이나 기타 장기에도 신경 명령을 전달할 수 있겠지. BII가 두뇌와 근육 사이를 이어주는 중계소 역할을 할 수도 있단 소리야.”

의료종사자들은 의료 시장이 맞이할 대개혁을 기대하는 한편 불안함도 함께 나타냈다.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이라 해도, 변화는 때론 누군가에게는 불안함을 주기도 하는 법이니.

앞으로 BII는 무기 시장, 의료 시장, 근로 환경, 간접 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될 것이다.

그런 확신이 사방팔방 뻗어나가며,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다 됐고, 일단 VR게임부터 다시 만들어 보자. 지금 시중에 나온 VR은 성에 차지도 않는다.”

“가상현실 MMORPG! 가상현실 MMORPG!”

“World or Warcraft를 가상현실 MMORPG로 만들어 달라!”

가장 드높았던 것은 게이머들의 목소리였다.

나이, 국적,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하나로 뭉친 게이머들은 BII를 적용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여러 나라 곳곳에서 ‘가상현실게임 발족위원회’ 같은 류의 이름을 딴 NGO 단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서진 박사님, 성인 컨텐츠도 만들어주실 거죠?”

“저희 같은 모쏠들을 구원해주세요…….”

성인 컨텐츠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지만, 가장 목소리가 작은 파벌이기도 했다.

“발명은 뜻하지 않게 오고, 뜻하지 않게 쓰인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신효진이 태블릿에 스크립해서 보여준 기사 및 여론, 통계 자료를 끝까지 보고 난 뒤 한서진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공손하게 선 신효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대부분 3S에 쏠려 있어요. 특히 빨리 성인용 VR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의견이 가상 많아요.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지만요.”

H컨설턴트에서 사용하는 통계 프로그램은 진정한 여론이 어떠한지 파악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그 어떤 여론 조사 프로그램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정확성, 그리고 규모를 자랑한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걸 겁니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끄러운 걸 알면 바라지를 말던가요.”

“…….”

“효진 씨?”

그녀가 별로 동조하지 않는 눈치이자 한서진은 의아해서 똑바로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부끄러운지 수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전 어느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네?”

“제가 겪고 있잖아요. 꿈속에서나마 다른 사람,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거. 그것도 진짜처럼 생생하게요.”

“…….”

“옛날,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꿈속에서나마 스칼린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저를 힘든 삶으로부터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거창하거나 이상한 거 말고요.”

한서진은 차분한 태도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한테는 꿈같은 이야기잖아요. 가짜이긴 해도 진짜 같은 가짜 인생이 돼보는 거, 지친 일상을 힐링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지친 일상의 힐링이라…….”

“제가 겪는 레노지안의 꿈을 놓고 생각하니, 그런 사람들의 소망이 남일 같지만은 않네요.”

“그럼 효진 씨는 성인 컨텐츠에 찬성하신다는……?”

“그, 그런 뜻은 아니구요!”

신효진은 질겁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주섬주섬 정리를 마치고는, 후다닥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한서진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아카식 블레이드가 곧 도착하는데…….’

아카식 블레이드를 실은 연구선박은 1, 2주 안으로 제주도에 당도할 예정이었다. 연구선이 도착하면 자신도 이제 제주도에 살다시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송하나와 주말 커플로 지내야 할 처지였다.

“뭐, 정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정지원은 BII 민간 문화산업 보급을 위해, SJ인더스트리의 산하에 SJ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 설립을 이미 마친 상태였다.

SJ인더스트리의 에테르 반도체, H통신의 칼라 칩, 제약업체인 영원그룹의 H-1 시리즈, HAMC의 우주 희토류, 금 소행성을 통한 AU화 발행, 한서진이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들이다.

여기에 문화산업을 위한 SJ엔터테인먼트가 새로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CEO는 정지원이 맡았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CEO를 동시에 겸직하게 된 것이다.

말이 자회사지, 지분만 소유할 뿐 SJ인더스트리는 경영에 일절 참견하지 않는다. 반도체 제조회사가 문화산업 회사에 참견질 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재무제표만 잘 보면 되지.

“3S 정책! 이것이 우리 SJ엔터테인먼트가 추구해야 할 경영 방침입니다. 임원 여러분들은 모두 가슴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첫 회의석에서 정지원이 모두발언을 하자, 다들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귀담아 들었다.

SJ인더스트리의 대표이사이자 한서진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정지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임원들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먼저 기술팀.”

“옛!”

기술이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BII의 원활한 개발 및 생산, 응용과 관리를 책임지는 이들이었다.

“BII는 아직 시청각 기능 외에는 완벽하지 않아요. 입력센서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력센서를 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 박사님께서 조만간 알아서 해주실 거니까요. 기술팀은 BII를 대규모 서버와 연결해 안정적인 구동 환경을 세팅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컨텐츠팀.”

“예!”

정지원이 고개를 돌리며 부르자, 컨텐츠 개발을 맡은 임원들이 긴장해서 대답했다.

“BII를 제대로 돌리려면 충분한 컨텐츠가 있어야겠죠. 자체 컨텐츠 개발, 그리고 타컨텐츠 확보, 그 어느 쪽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체 컨텐츠 개발은 당분간은 성인 컨텐츠 쪽에 치중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게 더 효율적입니다.”

정지원이 손뼉을 가볍게 치며 회의 종료의 임박을 알렸다. 임원들의 눈빛에 더욱 기세가 실렸다.

“여러분들은 컴퓨터, 네트워크, 영화, 드라마, 게임 등 각종 문화산업에서 이름을 날리던 몸입니다. 경기 불화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연봉을 약속하고 여러분들을 스카웃한 것은, 이제 태동하는 BII 산업을 확실한 패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

“BII 기기 이외에는 아직 제대로 갖춰진 게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다행히,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SJ엔터테인먼트는 SJ인더스트리가 100% 지분을 쥐고 있습니다. 포브스 영구 0순위이자, 기업가치 20조 AU에 빛나는 SJ인더스트리 말입니다.”

그리고 눈앞의 발언자는 SJ인더스트리와 SJ엔터테인먼트의 겸직사장이자, 미국 부호 순위 3위에 당당히 이름을 걸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절대 단기적인 이익에 눈을 팔지 마십시오. 장기적으로 내다보세요. 우리는 BII를 통해 VR산업을 독식할 겁니다. 모두 아시겠습니까?”

“예!”

드높은 사기 속에, SJ엔터테인먼트가 출범했다.

3S방침으로 전 세계 대중을 모두 휘어잡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품은 채로.

“자회사 설립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제 고생이 두 배로 늘어나시겠네요.”

“SJ인더스트리는 이제 내가 할 게 없어. 생산과 유통은 이미 오래 전에 안정됐으니까. 신제품이 새로 나온다면 모를까, 유일한 개발자가 일을 하지 않으니 신상을 내놓을 수도 없지.”

“…….”

‘유일한 개발자’는 입을 다물었다. 왠지 본전도 제대로 못 건진 기분이다.

그나저나 SJ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지원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게 불길했다.

정지원은 보통 전화나 화상으로 업무 이야기를 한다. 한국을 자주 오지 않지만, 한 번 올 때마다 매우 큼지막한 요구나 문젯거리를 가득 안고 온다.

그래서 걱정이었다. 이번에는 대체 뭘 들고 왔을까?

“문제가 생겼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걱정 마시죠. BII 입출력 센서와 신경신호 모듈화 작업은 거의 막바지입니다.”

“그게 아니야. 어차피 그건 네가 이미 거의 다 해놨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럼 뭡니까?”

당연히 BII 완전형 개발을 서둘러 달라는 요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SJ엔터테인먼트에서 BII를 통해 구성하게 될 VR 환경이 매우 복잡하고 방대해. 어지간한 서버나 네트워크 환경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거야. 일단 대량의 칼라 칩이 필요할 거라 예상돼.”

“그거야 정 사장님이 H통신에 업무 협조 요청을 하시면 될 문제 아닌가요?”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 SJ엔터테인먼트에서 다루게 될 대규모 컨텐츠 환경을 시뮬레이션해봤는데, 웬만한 서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Z7을 쓰면 되잖습니까. SJ엔터테인먼트 모회사가 SJ인더스트리인데, 뭐가 걱정이죠?”

“아니, Z7로도 모자란다.”

한서진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타르타로스 1이 필요하다.”

============================ 작품 후기 ============================

―형, 아빠가 그러는데 앞으로는 재해 예측도 나보고 하래.

―뭐? 그럼 난 뭐 하고 먹고 살라고!

―가서 게임이나 돌려.ㅎㅎ

한때 세계 최초의 케르베로스 탑재 컴퓨터로 존재감을 발산했던 타르타로스 1.

그러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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