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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03화 (403/609)

00403  다른 문명의 흔적  =========================================================================

“에테르의 단서?”

생각지 못한 말에 한서진은 의아함을 품고 구프게니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먼저 말을 꺼냈음에도,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망설임을 떨치지 못했다. 대관절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저러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구프게니는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에테르의 유물입니다.”

“유물……이라고요?”

뜻밖의 말에 한서진은 순간 멍해졌다. 에테르의 유물? 그런 게 있다고? 게다가 Table A가 보유하고 있어?

“오래 전 Table A가 제5의 힘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이자, 팀이 창설된 원인이자 목적이기도 하지요. 당연히 Table A의 최대 기밀이기도 합니다.”

“…….”

“확인해보시겠습니까?”

구프게니는 손을 내밀었고, 한서진은 그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손을 맞잡았다.

네바다주, 그룸 호수 공군기지.

구프게니가 한서진을 안내한 곳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1급 군사기지였다. 면적이 서울의 두 배에 달하며, 대부분의 시설은 지하에 감춰져 있어 위성으로도 파악이 어려운 특별 군사기지였다.

그러나 출입 과정은 싱거울 만큼 간단했다. 그들이 탄 헬기는 아무런 제지 없이 착륙했고, 밖으로 내렸을 때도 누구 하나 다가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구프게니는 익숙한 몸짓으로 한서진을 안내했다. 한서진은 그를 따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많이 익숙하신가 보군요.”

“이곳은 Table A가 최초로 시작된 곳입니다. 지금도 주요 거점 중 하나이지요.”

“아아, 그랬군요.”

엘리베이터가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올라 층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느린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깔리고, 한서진이 먼저 깨뜨렸다.

“Table A 알면 알수록 신기한 집단이군요. 아무리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대통령도 모르는 특무기관이 존재할 수 있다니. 그것도 이런 특별 군사구역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다니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Table A의 존재가 존중받는 겁니다.”

“이유?”

“지금 그 이유를 보러 가는 중입니다. 자세한 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구프게니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무언가 다른 할 말이 있는 것일까. 한서진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꺼냈다.

“외부인이 유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위원 과반수의 찬성과 동석, 그리고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팀장을 포함한 7인 위원 전원의 찬성과 동석이 필요합니다.”

“7인 위원?”

“Table A의 의사결정을 하는 중추기관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 역시 부팀장으로서 7인 위원의 한 명이지요. 그 중 5인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과학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럼 남은 2명은요?”

“실무 및 교섭이나 팀의 운영을 담당하는 경영진으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팀이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죠. 지금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안 좋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망설이시는 것 같은데요.”

구프게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과학자 5인은 어디선가 한 번쯤 보신 얼굴일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리고 아주 익숙한 얼굴이 한 명 끼어 있습니다. 너무 놀라지 마시길.”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는데,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백열등 빛이 쏟아지며 넓은 연구실이 나타났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다. 수많은 컴퓨터가 놓여 있고, 온갖 케이블이 무질서하게 얽힌 채 바닥에 늘어져 있다.

한서진은 살짝 경직된 채 자신을 기다리던 6명을 확인했다. 남자 다섯, 여자 하나.

대부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친분을 나눈 적은 없지만 학술회에서 한 번쯤 마주쳤던 것 같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과학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전혀 뜻밖의 사람을 발견했다.

“니트론 교수님?”

“……허허, 이렇게 보는 날이 결국 오고 말았군요. 한 박사.”

놀랍게도 스탠포드의 전임교수이자, SJ연구소 신사옥에서 한창 갈리고 있어야 할 니트론이 있었던 것이다. 한서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교수님까지 Table A의 일원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7인 위원 중 한 분이시라니요.”

“구프게니 저 친구가 뭐라고 저를 소개합디까?”

“Table A는 많은 유명 과학자를 지원하지만 그들은 Table A를 알지 못한다고, 교수님도 그 중 한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추 인사 중 한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크흠, 저 친구. 무거운 짐은 나에게 떠넘겼군.”

“……?”

“미안하오, 한 박사.”

니트론 교수는 뭔가 깊이 망설였다. 한서진은 그 머뭇거림에서 무거운 예감을 받았다. 문득 어떤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교수님, 설마?”

“난 Table A의 팀장이오.”

설마 했던 상상을 현실로 각인시켜주는 한 마디였다. 한서진은 몸이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니트론도 민망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이윽고 경직에서 깨어난 한서진이 조금 냉담히 물었다.

“진지한 해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저를 속이신 겁니까?”

“아니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니트론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구프게니가 얼른 끼어들었다.

“박사님, 언짢으실 테지만 제 말씀을 잠깐 들어 주십시오.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말씀해보세요.”

한서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한 번 들어봐 주겠다는 듯이.

“니트론 교수님은 Table A의 팀장입니다. 하지만 팀의 실무는 오래 전부터 관여하시지 않습니다. 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시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으시고요. 팀장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있다 뿐이지 그저 연구에만 몰두하는 과학자일 뿐입니다. 다른 네 분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름만 올려놨다고요?”

“7인 위원은 종신제로 운영됩니다. 한 번 위원이 되면 사망할 때까지 직위를 맡게 됩니다. 니트론 교수님은 20년 전에 전임 팀장의 지목을 받고 팀장이 되셨지만, 15년 전부터 이미 실무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그저 제5의 힘에 관련된 연구만 하고 계시죠.”

“…….”

“지금까지 팀의 운영은 저와 코펜, 이 두 친구가 맡아서 해왔습니다. 교수님은 결코 나쁜 뜻을 가지고 박사님과 손을 잡은 게 아닙니다. 교수님은 그저 제5의 힘을 밝혀내고 싶어하는 순수한 과학자일 뿐입니다.”

한서진이 쳐다보자 니트론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지 조금 간절해 보이는 모습에 한서진은 조그맣게 웃음이 났다.

“제가 오해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기억도 안 나는 감투 때문에 내가 이 곤란을 겪어야 하다니……. 진작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해요. 알다시피 Table A는 그 존재자체가 기밀이기에…….”

“괜찮습니다. 더 이상 말씀 않으셔도 됩니다.”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한서진은 다른 5인도 차분히 둘러보며, 구프게니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다.

“이동하겠습니다.”

구프게니가 앞장을 섰다. 그 바로 뒤를 한서진과 니트론 교수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니트론 교수는 아직도 어색한 듯이 입을 열었다.

“Table A의 창설과 존재 목적에 관해서는 들으셨소?”

“네, 궁극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우리는 진리를, 미국은 그 진리를 이용한 패권을.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지요. 그래서 Table A가 여태껏 독자적인 기관으로 남아 있을 수 있던 겁니다.”

“대통령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놀랐습니다. 미국 최고의 권력자도 무시할 수 있다니요.”

“대통령은 길어야 8년짜리요. 얼마 못 가지. 하지만 Table A는 수십 년이 넘도록 그늘에서 미국을 지탱해왔지. 지금 미국이 누리는 모든 과학문명은 결국 Table A가 발견한 진리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 발견은 모두 제5의 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고요?”

“그래요.”

한서진은 이해했다. 8년짜리 권력과 계속해서 미국을 지탱할 연구기관, 그 미묘한 주도권의 관계를.

“필요한 경우 우리는 현직 대통령에게 존재를 알립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줬소. 그게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미국의 과학발전을 보이지 않게 주도한다는 점도 있지만, 무력과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은 순수한 연구기관이라는 점 덕분이었어요.”

“그렇군요.”

문득 한서진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명의 경비도 발견하지 못한 걸 깨달았다. 7인 위원과 자신, 이 8명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삼엄하구나.’

에테르의 유물, 대관절 어떤 것인지 호기심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혹시 초룡의 뼈와 관련된 것일까? 화석? 가죽? 뼈의 파편?

마침내 일행은 복도 끝에 도달했다. 육중한 합금 재질의 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7명은 각각 위치에 서서 지문과 홍채를 동시에 인식시켰다. 인식이 끝나자 무거운 합금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싸늘한 공기가 어둠 너머에서 흘러 나왔다.

좁은 복도를 통과하는 동안 가벼운 한기가 몸을 휘감았다.

복도를 비추는 어스름한 조명, 저 끝에 커다란 홀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지만, 어둠에 잠겨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이곳에 와보는 건 나도 거의 15년 만이오.”

“……이곳에 뭐가 있습니까?”

“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아니 떠오른 다른 문명의 유물. 우리는 까마득한 오래 전 지구 밖에서 떨어진 외계의 부산물이라 추측하고 있어요.”

“…….”

“2차대전 당시, 미 함대는 태평양의 한복판에서 동맹국의 함대와 싸우고 있었소. 함대 전멸을 앞두고 있었지. 그래도 장성들과 장병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소. 그때 바로 기적이 일어난 거요.”

“……기적?”

“영상을 보여줄 겁니다.”

복도가 끝났다. 넓은 홀은 여전히 어두웠다.

갑자기 어느 한쪽에서 불이 켜졌다. 영사기가 돌아가며 뿌연 화질의 사진을 한 장씩 스크린에 나타내기 시작했다.

포화를 갈기는 동맹국 함대,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맹렬히 항전하는 미 함대.

사진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한 편의 영상을 보는 듯한 몰입감에,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미 함대는 항모 한 척과 서너 척의 호위함을 제외하고 모두 잃었다. 그에 비해 동맹국 함대의 기세는 등등했다.

최후를 눈앞에 둔 장병들이 이를 악물었고,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백색 섬광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구치며, 동맹국 함대를 일시에 소각해버린 것이다.

동맹국 함대가 소각되고,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떠오른 거대한 금속.

전장 280미터 항모 갑판의 1/4에 달하는 거대한 금속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것은…….”

“Table A가 창설된 원인이자 결과, 그리고 목적이오.”

영사기가 꺼지며 동시에 홀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갑작스레 사라진 어둠에 한서진은 눈이 부셔 팔로 가리려다가, 눈앞에 세워진 거대한 금속 구조물을 보고 흠칫했다.

조금 전 사진 영상에서 봤던 거대한 금속 물체가 눈앞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우아하게 뻗은 손잡이 아래로 매끈하게 뻗은 푸른 날, 완전히 실체가 드러난 그 자태는 중간쯤이 부러진 채 쓸쓸히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대한 칼…….”

“아카식 블레이드, 우주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오.”

============================ 작품 후기 ============================

“외계인 고문 장면을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 쪼가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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