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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02화 (402/609)

00402  다른 문명의 흔적  =========================================================================

오리할콘과 달리 미스릴은 자연계에 존재한다.

바로 해수에 극미량이 녹은 형태로 존재하는데, 초기에는 매우 특별한 정제 과정을 거쳐야만이 추출이 가능했다. 미스릴의 존재, 그리고 정제 원리를 밝혀낸 것은 바로 니트론 박사로, 그는 덕분에 노벨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미스릴과 달리 오리할콘은 자연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에테르의 강한 압력에 오랫동안 노출된 미스릴이 변형되어 생성되기 때문이다.

미스릴이 변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지만, 미스릴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아예 별개의 물질이다.

둘은 에테르에 작용하는 성질도 각각 다르다.

전자는 에테르의 흐름을 제어하는 성질을 가졌고, 후자는 저장하는 성질을 가졌다. 전자기기의 연산장치와 배터리로 각각 빗댈 수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은 아니죠. 이미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물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구프게니가 덤덤하게 한 말에 한서진도 생각을 정리하고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는 무감정한 눈으로 구프게니를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는군요.”

“Table A는 그 정도 정보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평양지대는 에테르 스톰으로 인해 일부 지역이 오리할콘으로 변했다. 원재료가 미스릴이 아닌 일반 물질이기에,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엄연한 오리할콘이다.

“오리할콘의 존재를 알고 계시는 게 놀랍습니다. 그 이름을 아는 건 저를 포함해서 세상에 몇 명 밖에 되지 않을 텐데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박사님을 속일 작정이었다면 끝내 밝히지 않았을 겁니다.”

“불쾌한 건 아닙니다. 다만 설명은 듣고 싶습니다.”

구프게니는 잠시 시선을 돌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표정에 한서진은 살짝 의아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리할콘이란 이름을 아는 것은 저까지입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애초에 Table A의 독자적인 권한은 신성불가침에 비할 정도이니까요.”

“…….”

“아시겠지만, 우리 Table A는 제5의 힘을 위시해서 여러 기초과학 분야에서 많은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가 지원한다는 걸 모르죠.”

“아아, 알겠습니다.”

한서진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니트론 교수님 쪽에서 정보를 얻었군요.”

“……그 분 역시 우리의 지원이 닿아 있는 과학자입니다. 그 분 외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이름 있는 석학들은 모두 우리와 연결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리할콘의 제조를 처음으로 성공시킨 건 니트론 교수님입니다. 저는 이름을 지었을 뿐이지요.”

니트론 교수도 우연히 오리할콘 제조에 성공했을 뿐, 더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리할콘의 제조원리는 간단하지만, 그 실행이 어렵다. 바로 에테르 스톰으로 미스릴에 과부하를 주는 것이니.

구프게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뼈가 오리할콘으로 된 생명체, 이게 과연 지구상의 생명체일까요?”

“…….”

“저는 우주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외계 문명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지구상의 생명체가 아닙니다. 저런 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저 두개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철저한 보안을 유지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 특별한 선박 한 척이 미국을 출발해 이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두개골은 그 선박에 실리게 될 겁니다.”

“……본토로 운송하지 않고요?”

한서진은 의아해서 물었다. 구프게니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는지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보안을 위해서는 이게 더 낫지요. 그리고 두개골 연구를 위해서는 본토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서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배에 싣는 게 본토에서 연구하는 것보다 낫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얼마 후 ‘특별한 선박’이 당도했을 때, 한서진은 구프게니가 보인 미소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장 길이 600m에 달하는 거대한 선박이 호위함을 거느리고 함대를 향해 다가왔다. 중순양함이 마치 조그마한 나룻배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찔한 크기였다.

전장 300m가 넘는 항공모함도 그 앞에 서니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Table A의 특별 연구선입니다. 바다 위를 움직이는 연구단지나 마찬가지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저렇게 큰 배는 난생 처음 봅니다.”

“존재 자체가 기밀인 배입니다. 현재 단 두 대밖에 없는 연구선이죠. 내부에는 제5의 힘 연구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전장은 600m지만, 높이를 고려했을 때 여러 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그 정도 면적이면 웬만한 연구단지쯤은 들어가고도 남지 않을까 싶었다.

“오리할콘 뼈는 저 연구선에서 조사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안이 뛰어난 곳이죠. 미국 본토보다 더 안전합니다.”

구프게니는 몸을 돌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디 박사님이 연구 지휘를 맡아 주십시오.”

“……그 말씀은, 저더러 Table A의 구성원이 되어달라는 뜻인가요?”

“천만에요. Table A와 동맹을 맺어달라는 겁니다.”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

‘크기로 봤을 때 저건 초룡의 뼈가 틀림없어. 반드시 조사해야 해.’

유감스럽게도 통찰안으로 훑어봤을 때, 특별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뼈의 진실을 투시하기에는 아직 자신의 기량이 모자랐던 것이다.

뼈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사를 위해서는 Table A와 손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연구선은 이곳 해역에 두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렇게 커서는 위성에서도 다 눈에 띄겠습니다. 존재 자체가 기밀이라 하셨는데, 별로 소용없을 듯합니다.”

“괜찮습니다. 보급선이나 유조선으로 위장하고 있으니까요.”

Table A의 전용 연구선박은 말 그대로 바다 위에 떠다니는 과학 도시였다.

전장 600m, 홀수선 포함 높이 1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는 최대 10만 명의 연구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했다.

항행시설의 대부분이 첨단 설비로 자동화되어 있어, 단 5명의 승무원으로도 항행 운용이 가능했다.

수용 규모에 비해 투입된 연구 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불과 3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많은 인원은 보안에 방해만 됩니다.”

그나마 두개골의 전체적인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외의 연구원들은 샘플 혹은 수집 데이터를 놓고 씨름해야 했다.

한서진은 그날부터 즉시 연구선박에 상주하며, 본격적인 오리할콘 뼈 연구에 들어갔다.

그들은 첫날부터 난감한 지경에 처했다.

“이렇게 단단한 물질은 처음 봅니다.”

초고성능 절삭기가 아무리 톱니로 갈아대도 잘리지 않았다. 오히려 절삭기 톱날이 망가졌을 뿐이었다.

오리할콘 뼈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른 걸 써봅시다.”

그들은 모든 절삭기를 동원했다. 물 분사 절삭기, 레이저 절삭기, 화학약품을 이용한 절삭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오리할콘 뼈는 그 어떤 절삭 수단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리할콘이 원래 이렇게 단단하진 않았을 텐데.’

한서진도 가벼운 충격을 받고 생각에 잠겼다.

‘단순한 오리할콘은 아니라는 걸까? 초룡의 뼈이니만큼 일반 오리할콘에 비해 강도가 올라간 걸까? 아니면…….’

절삭이 안 되니 샘플 채취가 불가능하고, 연구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고폭탄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러다가 박살나서 귀중한 샘플이 흩어지기라도 하면! 파편 1mg도 소중한 거라고!”

“하도 답답해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초대형 최첨단 연구선박이 있어도, 일단 자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서진은 철제 구조물로 허공에 거치된 거대한 두개골을 올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을 거듭했다.

‘저걸 어떻게 분해하지?’

모든 종류의 절삭기를 한두 개씩 망가뜨려먹고 난 뒤에야 절단 작업은 일단 중지에 들어갔다.

구프게니는 선진국에서 근래 개발된 새로운 타입의 절단기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직접 전자현미경을 들고 관찰하거나, 단층 촬영 등을 통한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근데 정말 놀랍긴 놀랍네요. 보안 서약을 왜 그렇게 철저히 요구하나 했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거 대체 어느 시대에 존재하던 공룡이죠?”

“두개골의 생김새를 보면 익룡 계열 같긴 한데, 육상룡처럼 보이기도 하고…… 애매하네.”

“이렇게 몸집이 큰데 비행이나 육지보행이 가능하긴 할까요? 전 바다에 살던 공룡이라고 봅니다.”

“아니지, 이렇게 큰데 무게가 288kg밖에 안 돼. 이거야말로 익룡이라는 증거지.”

연구원들은 두개골의 표면을 관찰하면서도 그런 감탄과 의문을 쉬지 않았다. 그들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걸 보세요. 내부 촬영이 아예 불가능해요. 이건 마치 표면이 납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납보다 더한 것 같은데. 외부 파장을 아예 안으로 들여보내지를 않아. 철저하게 격리돼 있어.”

“진짜 지독하다…….”

연구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답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성분 조사를 하고 싶어도, 이렇게 철벽 같아서야 어디 찔러볼 구석이라도 있겠나.”

연구가 난항에 부딪쳐 다들 난감해하고 있을 때, 한서진은 따로 배정된 개인 연구실에 있었다.

그는 타르타로스 2와 원격 연결된 노트북을 이용해서 해결책을 찾았다.

‘에테르 파동 수치를 보면, 일반적인 오리할콘하고 같으면서도 전혀 달라.’

그가 지금까지 직접 접한 오리할콘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평양지대에 에테르 스톰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오리할콘, 다른 하나는 에테르 산불에 의해 니트론 교수가 얻은 완전한 오리할콘.

오리할콘 뼈는 그 둘과 같으면서도 또한 달랐다.

‘초룡의 뼈가 오리할콘화 된 거라서 그렇다고 가정하면…….’

한서진은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타르타로스 2가 내놓은 연산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통찰안이라도 먹히면 좋은데.’

믿을 만한 통찰안조차 전혀 통하지 않으니 문제였다.

막막함을 느낀 한서진은 기지개를 켜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들어가 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지?

벌써 일주일은 족히 넘은 듯한데?

‘하나가 서운해 하겠네.’

내일은 무리를 해서라도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구프게니 키신이 연구실을 찾아왔다.

“박사님, 저와 잠깐 미국 본토에 다녀오시지요.”

“미국을요?”

보통 중요한 이야기가 아닌지, 구프게니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한서진도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을 느끼고 표정이 경직되었다.

한참 후 그가 망설임을 접고 말했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거죠?”

“Table A가 보유한…… 에테르의 단서입니다.”

============================ 작품 후기 ============================

리미트리스 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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