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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00화 (400/609)

00400  골드 화폐  =========================================================================

로스차일드를 위시한 유대 화폐 자본가들은 크리스 정권을 움직여 AU화를 강하게 압박하는데 성공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승리를 거머쥘 듯했다. 아주 조금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TF팀의 반격으로 중심이 휘청거리고 말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최고 어른인 카이어 유쉘 로스차일드는 주름진 눈을 감은 채 뜰 줄을 몰랐다.

“이쯤에서 서둘러 타협을 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분노가 엄청납니다. 자칫 집 전체로 불이 옮겨 붙을 수도 있습니다.”

멍청한 임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전쟁 중지를 권하고 있었다. 카이어는 눈을 감은 채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늙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몰랐다.

‘실착이다.’

TF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흘러가는 모든 돈의 흐름을 귀신처럼 정확히 잡아내는,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감시기관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한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한서진은 SJ인더스트리와 영원그룹 생산공장 외에 미국에 사업 기반이 없다. 금융회사도 아닌, 그저 반도체를 찍어내는 제조업체일 뿐이다.

헌데 어떻게 로스차일드 계열의 자금 흐름을 이렇게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가? 수십 년 동안 수백 명이 넘는 첩자를 곳곳에 침투시켰다 해도 불가능한 성과가 아닌가.

카이어는 이윽고 눈을 떴다.

“크리스 대통령은?”

“일단 공세를 멈췄습니다. 더 밀어붙였다가는 역공으로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건 잘했군.”

아쉬운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대통령까지 교체해가면서 연방은행을 지키려고 했고, 대통령은 성실히 임무를 수행해주었다.

그런데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이야.

“강화 협정을 맺고자 한다면, 저들이 받아주겠는가?”

“미국은 엄연히 세계 최강대국이고, 그 대통령과 측근들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한서진 박사가 아무리 명망이 높다 하나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도 어느 정도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허허, 미 정부와 맞붙었는데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 게 고작이라니…….”

“…….”

카이어는 침묵했고, 위원들은 송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카이어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로스차일드란 이름은 지켜야겠지. 계열 은행 몇 개 정도를 내주는 건 좋네. 크리스 대통령에게 알리고, 협상을 시작하게.”

“알겠습니다.”

“협정이 끝나면 크리스 대통령을 초대하게. 결과는 아쉽지만 그의 수고에 대한 약속은 지켜야겠지.”

FBI는 사정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아니, 그런 시늉을 했다.

물밑에서 오간 정치적 협상 끝에, 로스차일드 계열 대형은행 두 개를 국유화했다. 뿐만 아니라 의회와 대통령의 실질적인 권한 행사 없이, 형식적인 동의만 요하던 임명 제도도 대폭 변경했다.

7인의 이사 중 4인을 미 정부의 입맛대로 골라서 임명할 수 있도록 고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연방은행의 소유권을 미 정부가 가져온 것처럼 보였기에, 시민들의 분노는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수십 명이 넘는 월가의 고위 연봉자들이 대거 구속되고 처벌을 받게 된 점도 분노를 식히는데 한몫했다.

AU화는 화폐로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양도성 무기명 채권으로서 더 이상 방해 공작이 없을 것임을 약속받았다.

물론 문서로 남길 수는 없는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깨질 일은 없을 것이다.

AU화를 향한 정부기관의 빡빡한 감독과 참견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각 은행과 카드사들은 앞을 다투어 AU화의 일반인 결제를 위한 시스템 도입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서진은 비밀리에 크리스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서클의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는 짤막하게 축하해주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첫 걸음은 무사히 끝났다.」

수화기 너머 정지원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와 후련함이 가득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지 알고 있는 한서진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유럽에서만 인정 받고 있지만, 사실상 달러는 기축화폐 지위를 상실했다고 봐야겠지.」

EU의 전격적인 발표는 사실상 AU화를 국제 화폐로서 인정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고,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달러의 가치가 눈에 띄게 큰 하락을 일으켰고, 그로 인한 경제적 혼란도 가중되었다.

다행인 것은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된 미국에서 별다른 반발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러도 미국 것, 그리고 AU화도 미국 것. 미국 시민들의 머릿속에 그런 인식이 단단히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미합중국이 달러를 버리고 신 화폐로 개혁을 했다.’

그런 인식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기에, 미국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로스차일드를 위시한 연준위가 결코 원하지 않는 방향이기도 했다.

「다만 개개인이 널리 자유롭게 통화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 본다. 미국 외 지역에서든, 미국에서든.」

“상관없습니다.”

자국 통화가 있다면 그걸 쓰는 게 당연한 일, 한서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 일반 시민들이 AU화를 사용하는 비중이 3% 가까이 된다는 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말이 3%지, 전체 시장을 생각하면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경호에 조심해. 암살을 시도할지도 몰라.」

“설마 그렇겠냐만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미국 대통령도 버젓이 암살하는 놈들인데, 이 상황에 가만 있을 리가 없다. 판정패를 받고 순순히 물러날 놈들이 아니야. 당분간 미국 방문은 자제하고.」

“정 사장님도 조심하시죠.”

「난 이미 전부터 경호 수준을 10배 이상으로 늘렸지.」

한서진은 후련한 마음으로 전화를 내려놓았다.

AU화는 성공적인 출발을 거뒀다. 아직 공식적인 기축화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달러는 더 이상 기축화폐가 아니게 된 것이다.

옥좌에서 달러를 끌어내린 것만 해도 충분히 자축할 만한 성공이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화폐 자본가들은 생각 이상으로 잠잠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 이곳저곳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서슴지 않던 이들치고는 너무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아마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점 때문이리라. 만약 미국 국적이 없었다면, 아니, 명예시민이 아니었다면 이런 잠잠한 반응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 강화를 맺은 채 끝날까? 아니면 나중을 도모하기 위해 몸을 웅크릴까?’

한서진은 손가락을 키보드 위로 올렸다. 타닥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모니터에 명령어가 빠른 속도로 타이핑되었다.

‘그들의 탐욕을 믿어선 안 되겠지.’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느 순간 타이핑이 끝나고, 주모니터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프로그램이 완성된 것이다.

「스카이아이 : 방어 프로그램 가동」

그제야 한서진은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로딩되고, 실행되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가 만든 것은 간단한 감시 프로그램으로, 재무 흐름을 감독하는 프로그램과 유사한 원리를 갖고 있다.

다만 프로그램의 목적이 재무재정 감시가 아닌, 로스차일드 등 대형 금융 자본가들의 행동목적 탐색에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앉은 채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타르타로스 1에서 경보 메시지가 떠올랐다.

「14등급 에테르 스톰 감지, 서태평양.」

“에테르 스톰?”

한서진은 급히 의자를 당겨 모니터 앞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그래프 수치를 확인하고 그만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출력이다.’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에테르 스톰이 서태평양에서 응집되고 있었다.

북한을 초토화시킨 에테르 스톰이 13등급이니,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규모였다. 한서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타르타로스 1은 곧바로 재난 예보 사이트인 SJ사이트에 관련 사실을 공고했다.

14등급 에테르 스톰이 불러올 물리력과 재해의 크기를 가늠하여, 간략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경고 내용이 올라왔다. 자동화 프로그램에 따른 조치였다.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미칠 듯한 기세로 문자와 톡 메시지가 쏟아졌다.

가까운 사람들 혹은 재난관련 정부관계자들이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하나같이 SJ사이트에 올라온 공고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러시아, 유럽에서도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사실입니다. 해당 서역을 지나는 선박이나 항공기가 있다면 즉시 항로를 변경해야 합니다.”

한서진은 최선을 다해 사태의 위급함을 알렸다. H그룹, SJ인더스트리, HAMC, TF팀, H컨설턴트 등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했다.

그리고 타르타로스 2를 통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계산했다. EWR을 이용하여, 해당 해역을 지나는 선박이나 항공기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없구나.”

다행히 해당 해역에는 선박이나 항공기가 없었다. 어선 한 척, 잠수함 한 척도 잡히지 않았다.

해당 해역을 지나는 항로로 항행 중이던 선박, 항공기들도 SJ사이트에 올라온 재난 정보를 접하고, 이미 안전한 항로로 변경한 뒤였다.

제법 큰 규모의 쓰나미가 예상되지만, 직접적인 피해에 노출될 국가는 없을 듯했다. 일본 동부 해안에 약간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미 일본 정부는 발빠르게 조치를 취한 뒤였다.

타르타르스 1이 최종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5…… 4…… 3…… 2…… 1…….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그래프의 에테르 수치가 미친 듯이 요동을 쳤다. 한서진은 수치와 파동 굴곡으로 나타나는 에테르의 폭발을 덤덤히 지켜 보았다.

해외 언론은 실시간 위성 관찰까지 동원해서 에테르 스톰을 중계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작은 나라 하나가 사라졌을지도 모를 대폭발이었지만, 다행히 망망대해 한가운데였다. 심지어 폭발의 전파력도 그다지 크지 않아, 실질적인 피해는 전무했다.

흥분에 찬 미국 아나운서의 보도를 뒤로 흘리며, 한서진은 뉴스를 껐다.

유례 없는 14등급 에테르 스톰이긴 하지만, 인간이 피해를 입은 것은 없다. 그는 금방 머릿속에서 잊었다.

두 시간 후.

Table A의 부팀장, 구프게니 키신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서진은 의아해서 그의 연락을 받았다.

「박사님…… 죄송한데 급히 제주도 7함대 기지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두 시간 전 에테르 스톰이 멎은 뒤…… 해당 해역에서 기이한 물체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항공모함 갑판에 싣고 제주도 남해 지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최대한 피해야 하기에 항구에 기항하지는 못합니다.」

“……기이한 물체?”

「처음 보는 짐승의 두개골입니다. 그런데…….」

오싹 소름이 돋았다. 구프게니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항모 갑판에 겨우 실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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