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8 골드 화폐 =========================================================================
“AU화를 저희 W마트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현금처럼?”
“물론입니다. 카운터에서 현찰로 사용하는 건 물론, 카드 결제도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합니다.”
“AU화가 카드 결제가 가능하게끔 하려면 카드사와 은행과 제휴를 펼쳐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AU화는 화폐가 아닌 채권이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내에서는 자국 통화를 쓰고 있습니다.”
“상품권이나 포인트도 현금처럼 자유롭게 쓰이는데, AU화를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지극히 타당한 말에 슈론 회장은 작게 끄덕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했다. 어떡하면 AU화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까.
현금 사용이야 어려울 것 없다. AU화 환율 변동을 고려하여 그날그날 모든 물품의 가격을 별도로 책정하면 되니까.
예를 들어 15달러짜리 상품이 있고, 그날 환율이 1AU당 1달러라면, 그 상품의 별도 가격은 15AU로 책정하면 된다.
대량의 물품을 취급하는 W마트의 전산유통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 정도 기능 구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찰 사용이야 별 문제가 없다지만, 이거 카드 결제가 문제로군요.”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한 슈론 회장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지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회장님이시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드를 발급하고, AU화로 물품을 결제하게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카드사가 대금 납부를 어떻게 받느냐는 건데…… 예를 들어 카드 고객이 1,000AU를 납부해야 한다면, 카드사는 대금 납부에 연동된 계좌에서 그만큼에 달하는 내국 통화를 빼가면 되겠군요. 여기에는 AU화를 내국 통화와 교환해야 하니 은행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각 은행은 충분한 양의 AU화를 확보하고, 매일 환율을 공시해야 하는 등의 절차를 갖춰야겠습니다.”
“고객은 AU화로 결제했는데, 카드사가 대금으로 받는 건 AU화가 아니라 내국 통화라면 그게 오히려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환율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혼란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사장님 말씀은…….”
“내국 통화와 AU화를 교환하는 건 은행 고유의 역할로만 맡깁시다. W마트와 고객도 AU화로 거래하는데, 카드사와 고객이 AU화로 거래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지만 통화유통법에 걸릴 텐데요. 워낙 대규모라 각국 정부가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W마트에 한정한다면 회피는 충분히 가능하지요.”
슈론 회장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리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고객은 AU화로 카드 결제를 하고, 카드사는 AU화로 결제 대금을 받는다. 은행은 고객의 예치금 중 결제 대금에 해당하는 AU화로 대신 지불을 해야 한다.
이 간단한 지불 구조가 가져올 변화를 생각하니, 이마에서 식은땀이 솟아났다.
‘기축화폐를 넘어서서…… 통화 잠식이다.’
기축화폐는 국제 거래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화폐일 뿐, 자국 통화는 아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나라든 자국의 고유 통화를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 정지원이 슬쩍 보여준 의지는 단순히 기축화폐의 지위만을 노리는 게 아닌 듯하다.
‘유일 화폐.’
기축화폐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한 화폐. 어쩌면 정지원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단순한 신용을 넘어서, 금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니는 AU화라면 얼마든지 큰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어디까지 도달하든, W마트가 함께 할 수 있다!’
슈론 회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AU화가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달러는 미국의 자국 통화로만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슈론 회장이 예견한 미래는 그랬다.
“혹시 이런 제안을 하신 게 우리 W마트가 처음입니까?”
“네, 처음입니다. 첫 삽을 뜨기에 W마트만큼 제격인 곳은 없어서요.”
“영광이군요. 그럼 우리 W마트가 SJ인더스트리의 퍼스트 밴더가 되는 겁니까?”
“AU화 운용에 관해서는 그렇지요. 그리고 SJ인더스트리가 아니라 SJ뱅크입니다. 아직은 설립되지 않았습니다만, AU화 운용을 전문으로 행사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SJ뱅크라…….”
슈론은 입에 착 감긴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AU화는 현재 미국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일반인들 간의 거래에서 AU화가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스타트를 W마트가 끊게 된다.
W마트에서 제한 없이 AU화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머지않아 일반 개인 거래에도 퍼져 나간다. 세계 1위의 W마트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현금이나 마찬가지니까.
일반 수퍼마켓에서도, 잡화점이나 백화점에서도, 심지어 사원에 지급하는 급여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저희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장고 끝에 슈론 회장이 입을 열었다. 딜을 수락한다는 표시였다.
정지원은 진한 미소를 머금고 악수를 청했다.
“SJ뱅크의 베스트 프렌드 자격을 보장하겠습니다.”
슈론 회장은 놀랄 만한 추진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의 모든 W마트에서 정지원이 요구한 기능을 구현한 것이다.
카드사 및 은행과의 제휴까지 완벽하게 끌어내서 결제 구조를 성립시켰다. 이제 미국 전역의 어느 지점에서든 AU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AU 전용 결제 카드 발급받으시고 상품권과 포인트 받아가세요. 지금 발급 받으시면 10AU에 달하는 포인트를 적립해 드립니다. 발급 후 즉시 포인트 사용 가능합니다.”
“행사 프로모션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AU 전용 결제 카드 발급 받으시면, 한 달 동안 결제액의 3%를 할인받으실 수 있습니다!”
“카드 발급 받고, 혜택 받으세요!”
W마트는 AU 결제 체제를 도입한 미국 전 지점에 전용 결제 카드를 즉석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코너를 두었다.
카드사와 은행도 이왕 함께 하기로 한 것, 작정하고 덤벼들었다.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AU 전용 결제 카드!
―모든 W마트에서 풍성한 혜택!
―AU뿐만이 아니라 기존 달러 결제도 얼마든지 오케이! 단 AU 결제는 W마트에서만 가능!
일반 결제카드에 AU 전용 결제 기능을 추가한 것이라, 고객들은 W마트 외 일상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W마트를 중심으로 AU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자, 제휴를 하지 않은 타 금융사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재무부에서는 화폐도 아닌 것을 화폐처럼 쓴다며 유감을 표시했지만, 상품권 대용이라는 반박에는 당장 할 말이 없었다.
W마트의 AU 결제가 합법적인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유권 해석 정쟁이 벌어졌고, AU 전용 결제 카드의 발급수가 순식간에 100만을 돌파했다.
사람들은 조금씩이긴 하지만, 개인 간 거래에도 일반 화폐처럼 AU화를 쓰기 시작했다. W마트를 제외하고 보면, 전체적인 비중은 5%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5%도 안 되는 거래양은,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었다.
기축화폐로서뿐만이 아닌, 내국 통화로서의 위치까지.
모처럼 모든 업무를 손에서 내려놓은 하루, 한서진은 간만에 송하나와 느긋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데이트 장소는 얼마 전 구매한 여의도 복층 펜트하우스로, 거실에 마련된 작은 대리석 수영장에 발을 담근 채 한강의 절경을 내려다보는 맛이 있었다.
한서진은 얇은 슬립을 입은 그녀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음을 짓는다. 다리가 워낙 길어서인지 슬립의 밑단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캠퍼스는 요즘 어때?”
“그냥저냥 재밌어요. 그래도 오빠가 없으니까 심심할 때도 많아요.”
“아직 절친들만 네가 정확히 누군지 안다고 그랬던가? 그 친구들, 재벌 2세라고 어려워하지는 않고?”
“그것보다는 오빠 여자친구라고 어려워하는 게 더 많아요. H그룹 딸이라는 건 이미 묻혔어요.”
“저런.”
뭔가 우습다. 재계 1위 그룹 총수의 딸이자 후계자라는 점도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 수저인데, 자신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에 아예 묻혀서 빛을 발하지 못하다니.
“아, 그리고 지혜 언니 학교에도 가끔 놀러가요.”
“가면 지혜 친구들이 너 알아보는 거 아니야?”
“안 그래요. 저 매스컴에 별로 노출 안 됐거든요. 학과에서도 잘 모르는데요, 뭐.”
“지혜는 감쪽같이 잘 숨기고 다니지?”
“네, 맞아요. 잘나가는 사업가 오빠 두고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수퍼카 끌고 다녀도 주변에서 의심은 않더라고요.”
“걔는 좀 과시욕이 있어. 어린 시절 너무 없이 살아서 그런가 봐.”
“뭐 어때요. 전 귀엽던데요.”
대리석 바닥에 흐르는 얕은 온탕에 발을 담그고, 높은 곳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는 재미가 있다.
평범한 연인들처럼 길거리 데이트 같은 건 이제 거리가 먼 운명이 됐지만, 이런 식으로 추억을 쌓는 것도 나쁘진 않다.
“지혜 언니 남자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다 순수하게 그냥 친구들이지만요.”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 걔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내가 검증해야 돼.”
“언니가 일러바치지 말랬는데.”
“그럴 거면 내 돈 쓰고 다닐 생각을 말아야지. 오빠 돈은 돈대로 쓰고 다니면서 가장으로서 간섭하는 건 싫다? 이건 무슨 이기심이야.”
송하나는 고개를 돌리고 살며시 웃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 친구들뿐인 거 같아요. 언니도 애인 만들 생각은 없어 보여요.”
“그나마 다행이네.”
한지혜 본인도 자각은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결혼은 사랑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한서진의 유일한 혈육이자 여동생이라는 것은 남들이 꿈도 꿀 수 없는 특별함을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책임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H컨설턴트하고 TF팀 일은 어때? 할 만해?”
“언니나 저나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근데 신기한 게, 이 일을 하다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오빠를 싫어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돼요.”
“기분 많이 나쁘겠구나. 블랙리스트는 지금 몇 명이나 돼?”
“30만 명이 넘었어요.”
“…….”
한서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30만 명한테 원한을 살 만한 일이 대체 뭐가 있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그냥 가볍게 비아냥거린 것까지 다 포함한 건 아니지?”
“아닌데요. 작정하고 헐뜯거나 도를 넘어선 욕설을 한 사람들만 추린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 그 사람들.”
“우리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죠. 얼마 전에 우리 H그룹에 블릭리스트 사람이 지원한 적 있었는데, 일부러 최종 면접까지 통과시켰어요.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요.”
“어땠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탈락시켰으니까 자기가 면접에서 못한 줄 알 거예요.”
“날 그렇게 헐뜯어놓고 H그룹에 지원은 왜 한 거야?”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도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한서진은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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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1, 2+1 연참행사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체력과 환경이 받쳐주질 않네요...(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