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95화 (395/609)

00395  골드 화폐  =========================================================================

AU.

골드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단위를 말한다.

무기명 채권인 골드화의 증서는 크게 1AU, 5AU, 10AU, 20AU, 50AU, 100AU로 나뉜다.

50AU는 정확히 금 1g의 가치를 가진다. 이는 채권을 모두 청산하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 표준 교환 가치이며, 교환의 편의를 위해 금 100g 이상부터 교환이 가능하다. 단 모든 채권을 청산할 시에는 1AU까지 전부 교환을 해준다.

H컨설턴트는 황금 소행성의 경로와 위치, 도착 예정일을 실시간으로 공개했고, AU화를 구매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로 AU화를 일정량 구매해서 비축하기 시작했다.

골드화의 등장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낳았다.

맥플과 SJ인더스트리 간에 이뤄진, 첫 골드화 거래는 그 흐름을 세상에 흩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국제 무역에 기반하는, 달러를 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수출입 위주 기업들은 달러를 골드화로 바꿔서 거래에 사용했다.

“맥플과 SJ인더스트리도 골드화로 거래하는 데 뭐 문제라도 있나?”

“달러가 불안정하니 일단 골드화를 쓰고, 나중에 다시 달러로 바꾸면 되지.”

그렇게 기업들이 먼저 골드화 거래를 시작했고, 그런 움직임은 금방 대세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연방은행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달러를 더 이상 신용하지 않았다. 골드화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약 5개월 후면 100억 톤의 황금 소행성이 지구 궤도에 도착한다.

황금 소행성은 골드화라 불리는 무기명 채권의 가치를 보증하는 담보였다. 소유주를 불문하고, 채권에 적힌 숫자만큼의 황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한서진이 따로 보유한 막대한 자산, 그리고 드높은 명망은 그 담보교환성에 더욱 단단한 신뢰를 부여했다. 그가 미국과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운명공동체라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서진 박사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그런 신뢰 속에서, 골드화는 무역 거래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연구소 신사옥의 중심에 새로운 별관이 지어졌다.

2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건물 내에는 거대한 금고가 존재한다. 지지 기둥을 제외하면, 사방의 벽과 천장까지 투명한 방탄 유리로 된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화재를 대비한 자동 소방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모든 소재는 불연소 재질로 이뤄졌다.

단 한 종류만 제외하면 말이다.

“……와. 엄청나다.”

한지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현금 달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녀 생애에 이렇게 많은 현금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볼 일이 있었을까.

농담이 아니라, 작은 산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달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건 전율을 넘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절경이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달러를 회수해야 합니다.”

“회수해서 그저 쌓아두기만 하는 거예요?”

“네, 그래야 연방은행이 더 이상 달러를 찍어내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현금 외에 채권 형태로 된 달러도 있습니다. 그건 따로 분류를 해놨죠.”

“근데 AU화로 달러를 회수하면 회수할수록 오빠가 손해를 보는 거 아닌가요?”

“나무로 따지면 손해를 보는 게 맞습니다. 시세보다 조금 더 많은 금을 주고 달러화를 사들이고 있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전체적인 숲의 크기는 무지막지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어마어마한 이득이죠.”

통화 영향력과 지배력의 증대, 그것은 다른 자잘한 물질적인 손해와는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이익이었다. 한서진과 H컨설턴트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고.

한지혜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하나 진짜 부럽네.”

“또 그 소리한다.”

뒤에서 가벼운 핀잔이 들렸다. 돌아보니 한서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지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 진짜 다음 생에는 오빠 딸로 태어날 수 있을까? 손녀도 괜찮은데.”

“이번 생에 남매인 것도 모자라서 다음 생에까지 따라붙겠다고?”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대를 이어 오빠 직계에 기생하고 싶어. 에테르 수저로 밥 먹으면 아주 밥맛이 좋을 것 같거든.”

“에테르 수저는 무슨.”

한서진은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을 흘리며, 한지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근데 오빤 하나와 언제 결혼해?”

“나중에 할 거야. 연애 좀 더 즐기고 나면.”

“그러다가 누가 하나 채가면 어쩌려고?”

“그럼 그놈 다리를 분질러 놔야지.”

한지혜는 실실 웃으며 몸을 꼬다가 넌지시 물었다.

“오빠, 나 저기 쌓인 거 조금만…….”

“안 돼.”

“윽, 매정해라.”

한서진은 동생의 투덜거림을 흘려 넘기며,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지폐를 바라봤다.

전리품을 바라보듯이.

스위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그룹 본사.

정갈한 인테리어를 갖춘 넓은 회의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17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로스차일드에서도 가장 강력한 발언권과 지분을 가진 혈족이었다.

“AU화의 판매량이 7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교환 속도가 엄청납니다. 이대로는 달러의 기준지위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한국이 3조 5,000억 불이니, 그것만 해도 절반은 달성했겠군. 한서진 박사와 SJ인더스트리가 보유한 달러를 합치면 그 이상일 테니, 7조 달러가 그리 놀라운 숫자는 아니야.”

누군가가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다른 16인은 별로 동조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발언자 또한 특별히 동조를 기대한 건 아닌 듯,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눈썹을 잠시 일그러뜨렸다.

노인의 이름은 카이어 유쉘 로스차일드,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난 그룹의 명예회장이자 가문의 최고 어른으로, 로스차일드 그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카이어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자네, 정보가 너무 늦군.”

“예?”

“한국은 국가 보유분을 AU화로 교환했지만, SJ인더스트리는 아니야. 한서진 개인 계좌도 마찬가지고.”

카이어의 옆에 앉은 장년의 남자, 장남인 콘스틴 펄 로스차일드가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디데이 시작 이후, SJ인더스트리 측 자금이 빠르게 움직여서 흔들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타겟은 먹이로 정한 제3국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였죠.”

“…….”

몇 몇 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몰랐는지 충격으로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한서진 박사의 개인 현금 6조, 그리고 SJ인더스트리의 현금 5조, 총 11조 달러가 한꺼번에 움직이며, 미국 금융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쉬쉬하고 있지만, 이대로 놔두면 조만간 우리쪽 은행 몇 개가 파산을 선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카이어의 동생인 저스틴 엠 로스차일드가 콘스틴을 똑바로 주시하며 물었다.

“11조 달러가 제대로 판을 흔들었습니다. 모든 걸 아예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죠. 미국채 만기와 상환 시기가 겹치면서 일어난 일이라 미처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손해를 봤지?”

다른 이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콘스틴은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중형 은행 두 개가 넘어갔습니다.”

“11조 달러가 환율과 주가를 제대로 흔든 것 치고는 성공적으로 방어한 셈이군. 그럼 SJ인더스트리는 얼마나 이익을 봤지?”

“이익을 본 건 없습니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났지요. 액수로 치면 1,200억 달러 정도는 손해를 봤을 겁니다.”

그 말에 다들 멈칫 했다.

“손해를 봤다고?”

“11조 달러를 쏟아붓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물며 11조 달러처럼 천문학적인 거금은 대충 굴리기만 해도 주변의 돈이 달라붙어서 몸집이 더 커진다.

그런데 공격적으로 운용을 했음에도 1,200억 불이나 손해를 봤다?

콘스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그 열 배 이상의 손해를 봤습니다.”

“……!”

“SJ인더스트리의 자금 운용 목적은 M&A나 단기 투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우리 로스차일드 그룹에 큰 손해를 강요하는 것, 그것이었겠지요.”

“이해할 수가 없군요. SJ인더스트리는 우리와 같은 길을 걷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황금 소행성을 찾아서 하는 일을 보십시오. 그 자는 탐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를 제치고 모든 것을 홀로 독식하려고 할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콘스틴의 말대로, 이제 한서진과 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아니, 처음부터 그는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으리라. 이렇게 거대한 판을 내려놓은 것을 보면.

“10조 8,800억 불 정도로 줄어든 자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우리 그룹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AU화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AU화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러를 집어삼키고 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건, SJ인더스트리가 보유 현금으로 월가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 대통령이 기대했던 만큼 시원스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대통령 명령 한 번이면 될 텐데, 왜 머뭇거리는지 알 수 없군요.”

“그랬다가는 여론의 반발이 엄청날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금 소행성이 정말로 실존하는지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한서진 박사 혼자 그렇게 주장할 뿐입니다.”

“개인이 사실상 화폐발행을 시행한다는 것은 건전한 경제 흐름에 위배됩니다. 그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로스차일드 일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카이어의 찌푸린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 정도 의견 제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약한 것들.’

가문의 힘에 기대어 성장을 한 탓일까.

시련이 닥치자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기는커녕 상황을 이해하기에도 바쁘다. 그는 옆에 앉은 장남, 콘스틴을 흘끔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콘스틴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벅찬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딱 한 번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습니다.”

“값비싼 패를 너무 허무하게 잃는구나.”

“어쩔 수 없습니다, 회장님. 우리가 한서진 박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것만큼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과학기술을 통해 무서운 기세로 돈을 벌어들이는 남자. 그래서 친구로 삼고자 했었다.

그런데 상대는 친구가 되어줄 듯 말 듯 하다가 이렇게 치명적인 기습 공격을 가해왔다.

기축화폐, 로스차일드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저지선. 그것을 보란 듯이 넘어버린 것이다.

카이어는 주름진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세상이 더 크게 어지러워지겠구나.”

한서진에게는 없고, 로스차일드에는 있는 것.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파워를 발할 수 있지만, 단 한 번의 사용으로 효용이 다하고 마는 것.

“대통령에게 연락해라.”

“예, 회장님.”

“잊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현대식 성전이다.”

돈, 세상을 움직이는 힘, 그 절대적인 가치.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성전이었다.

============================ 작품 후기 ============================

크리스 대통령은 프렌즈인 척 하는 프렌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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