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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93화 (393/609)

00393  침략 예고  =========================================================================

“법안이 하원을 통과해서 다행입니다.”

모건은행의 부사장, 카를로스 A 모건은 케인 부통령과 독대 중이었다.

케인 부통령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상원 결의가 남았어요.”

“상원은 우리 뜻을 충분히 이해해줄 겁니다.”

카를로스는 상하원을 꽉 잡고 있는 자가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공화당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발의한 이번 화폐발행 개정법안은, 연방은행의 화폐발행권에 한결 두터운 보호 장치를 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기세가 상승하는 유로화에 대항하기 위한 대들보라 선전하고 있으나, 그 실체는 사기업인 연방은행 주주들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카를로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크리스 대통령은 법안이 최종 통과된 후 그에 따른 대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문제 없이 준비해놓겠습니다.”

말이 부통령이지, 지난 인연을 따지면 실제로 케인은 크리스의 보좌관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래서 카를로스와 이런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정회원 자리, 그것이 서클이 들려줘야 할 대답이었다.

독대를 끝낸 카를로스는 부통령 별장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세단에 오르자, 경호 차량이 먼저 출발했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비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로건 정의 움직임은?”

“달러를 있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SJ인더스트리의 현금 동원 능력이 엄청납니다. 이미 5조 달러의 사내유보금을 확보해서 일반 예금으로 전환했습니다.”

“미리 실탄을 준비해두겠다는 건가.”

카를로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한때 세계 1위에 빛나던 맥플의 사내유보금이 2,000억 달러다. 그런데 SJ인더스트리는 그 25배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5조 달러의 현금이 지닌 유동성을 생각하면, 그 어떤 경제공동체도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그 진실된 위력을 알고 있는 미국이야말로 가장 두려워하고, 또 안심할 것이다. 달러라는 무기가 힘을 발휘할수록, 그 종주권자인 미국의 위상 역시 비례적으로 증가할 테니.

“한 박사는 얼마나 갖고 있지?”

“6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에서 사들인 3조 달러어치 채권은 제외한 액수겠지?”

“물론입니다. 한 박사가 지금 보유 중인 현금만 6조 달러입니다.”

“그럼 SJ인더스트리가 5조, 한국이 3조, 한 박사가 6조, 이렇게 14조 달러를 갖고 있는 셈이군. 현금으로.”

14조 달러, 상상만으로도 모든 게 아득해지는 숫자였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14조 달러의 현금은 어마어마한 카드지만, 그 카드는 결국 연방은행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적이라는 불안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든든한 느낌마저 든다.

“한 박사도 결심을 굳힌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작정하고 실탄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와 보조를 맞춰 움직일 계획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필요하게 긁어모을 필요가 있겠나.”

한서진 측은 지금 월가가 세계를 상대로 준비 중인 전쟁을 앞두고 총알을 긁어모으고 있다. 카를로스는 그것을 자신들에게 가담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직접 동맹을 선포한 건 아니지만, 이쪽의 작전에 맞춰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모든 것은 돈이지. 한서진 박사라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카를로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축화폐, 돈 그 자체를 쥐고 있으니 어떤가. 한서진처럼 무에서 부를 창출해내는 자도 결국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서진 박사에게 작게나마 보답을 해야겠군. 기껏 준비한 실탄이 무용지물이 되면 언짢을 테니.”

“디데이까지 4일 남았습니다.”

“차질없이 준비해.”

정지원은 한 통의 짧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놀랍게도 크리스 대통령 본인이었다.

「곧 흔들기가 시작될 거요.」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태국.」

대화는 짧고 간결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정지원은 작게 웃었다.

“초대형 은행들이 또다시 돈을 쓸어담겠군요. 그것도 전 세계에서.”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일이오.」

“기축화폐를 쥐고 있다는 건 확실히 편리하군요. 게임의 룰 자체를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으니.”

「길어지면 곤란하오. 끊겠소.」

크리스 대통령은 전화를 끊었다.

정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폐 자본가들은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제3국을 무대로 꾸며 한바탕 연극을 할 셈이었다.

달러를 통해 세계 금융 경제를 뒤흔들고, 그로 인한 인위적인 위기감을 조성할 것이다.

법안은 미국 내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명분을 얻을 것이고, 연극이 끝난 뒤 그들은 덤으로 쏠쏠한 이익을 남길 것이다.

그저 돈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국과 타인의 부를 갈취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것이 금융의 어둠.

‘우리도 같이 움직일 거라 생각하겠지.’

달러를 긁어모으는 것은 저들에게도 포착된다. 그들은 한서진이 자신들의 ‘작전’에 묵시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그로 인해 돈 놀이 잔치를 벌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돈만이’ 최고다. 한서진 역시 자신들처럼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거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야근이겠군.”

개전을 알리는 포성이 드디어 울렸다.

태국의 환율이 폭락하며 촉발된 금융 경직 현상이 주변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문제였으나, 필리핀에서 때마침 일어난 군부 폭동이 절묘하게 덧씌워지며, 도미노 현상에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아차 하며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이미 제3국의 금융 위기는 일본까지 옮겨 붙은 상황이었다.

앗뜨거라 놀란 일본은 탄탄한 기초 경제 체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에게 붙은 불을 재빨리 털어냈고, 그 파편은 엉뚱하게 유럽에 튀었다.

독일이 허둥지둥거리며 튀어오른 불똥을 막는 사이, 러시아를 드나들며 희토류 금속을 실어나르던 미국 화물선 3대가 잇따른 엔진 폭발로 바다속에 가라앉았다.

다행히 선원 전원이 무사히 탈출 및 구조되었으나, 미 정부는 즉각 이를 테러로 선포했다.

동남아시아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유럽이 그에 놀라 허둥지둥거리며,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미국 제조업체들은 갑자기 뚝 끊긴 희토류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초대형 화물선 3대의 잇따른 침몰은 생산라인에 단기적인 타격을 주었다. 평소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었으나 하필 전 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타이밍이었다.

그 와중에 해외 미 국채 약 6,000억 달러의 만기가 도래했고, 연방은행은 6,000억 달러를 새로 찍어내 만기 국채를 상환했으며, 동시에 금리를 변경했다.

미국의 그 두 가지 조치는 가뜩이나 혼란과 비명으로 가득한 세계 경제에 치명상을 입혔다.

한국 증시는 패닉에 빠졌다.

상장주는 줄줄이 하한가를 쳤으며, 매입자가 없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달러의 가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고, 환율은 최대 20%까지 차이가 났다.

한국 정부는 3조 4,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외화 보유량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달러 가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상황이었다.

달러로 운용되는 북한 국책 개발 사업은 잠시 주춤거렸고, 그에 따라 관련 기업들도 일손을 놓아야 했다.

경기가 극도로 얼어붙었으며, 위기감이 팽배하자 국민들의 저축률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는 소비의 위축을 낳았다.

자영업자들은 고통에 신음했고, 영세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세기업의 일만으로 끝나지 않고, 중소중견 기업으로까지 번졌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경제 한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달러를 처분해야 해요!”

“아닙니다! 달러를 더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미국이 방조했다는 분석이 있어요!”

“그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 모든 건 그저 재수없게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 상황일 뿐이에요!”

임원회의실에서는 고성이 오고갔다.

이서나는 임원들의 논쟁을 들으며 두통으로 머리를 짚었다. 이마가 지끈거렸다.

‘IMF 때와는 비교도 안 돼.’

전 세계 대공황, 그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악재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인 경제 혼란이 찾아왔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이익을 보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그저 손해를 볼 뿐이다.

‘아냐, 손해를 보는 이가 있다면 이익을 보는 이도 있는 법인데.’

이서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과연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 대혼란일까? 그녀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만큼 정교하게 짜여진 연출이 결코 우연의 흐름에서 탄생했을 리가 없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독일, 일본 등 기초 체력이 튼튼한 나라들만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한때 그녀는 미국을 의심했으나, 미국 시민들도 작금의 상황에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덕분에 크리스의 지지율도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월가?’

소수의 월가 금융 재벌들만이 이익을 보고 있지만, 그들이 판을 주도했다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컸다.

임원들은 월가가 뛰어난 정보력으로 적절하게 대응해서 다행히 이익을 냈을 뿐이라고 평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익률이 별로 높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뼈저리게 느꼈다. 바로 기축화폐로서 달러가 가지는 힘과 위상이었다.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도 미국 대형 은행들은 손해는커녕, 적긴 해도 수익을 내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환율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달러의 위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틈타 돈을 찍어내서 만기 국채를 상환하고, 금리를 기습 변경한 것 때문에 악명과 아우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젊은 비서가 이서나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왔다.

“회장님, 뉴스를 켜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속보가 나오는 중입니다.”

낮은 귓속말에 이서나는 흠칫해서 바라봤다.

“속보?”

“H컨설턴트에서 특별 발표가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도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곧 발표가 시작됩니다.”

“어서 켜요.”

이미 임원들은 논쟁을 멈추고 이서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서는 즉시 회의용 프로젝터에 연결된 TV를 켰다.

화면에는 H컨설턴트의 발표장을 비추고 있었다.

현장의 어수선함이 긴장한 수군거림에 섞여, 이곳까지 똑똑히 전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는 김범석 부사장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H컨설턴트 부사장 김범석입니다. 아시다시피 H컨설턴트는 에테르학으로 유명하신 한서진 박사님의 개인종합운용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 역시 한서진 박사님의 뜻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고, 김범석은 침착히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재 세계는 온갖 악재가 터지고 얽혀, 경제가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한서진 박사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폭주하는 화폐 및 자산 가치 때문에 선량한 미국 시민과 한국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서나는 화면에 빨려들어갈 듯이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무언가 초대형 폭탄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해서, 박사님은 선량한 미국 시민과 한국 국민들의 손해를 방어하고자, 가치 보존성이 불안정한 일체의 자산을 매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입 가능한 자산의 형태는 크게 부동산, 국채, 달러 등 화폐에 한정됩니다.」

이서나와 임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자산 매입이야 그렇다 치지만, 매입 가능한 형태 중에 분명히 ‘달러 등 화폐’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자가 재빠르게 질문했다.

「달러로 달러를 매입하겠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뭔가 모순이 아닌가요?」

「달러로 매입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김범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폭탄을 떨어뜨렸다.

「개인 사채를 발행해서 매입할 계획입니다.」

============================ 작품 후기 ============================

어서 와.

이렇게 무서운 사채는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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