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2 침략 예고 =========================================================================
H팰리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국내 중대형 건설사들은 하나 남김없이 참여하여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해외에서도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이 속속들이 참여했다.
총 부지가 경기도의 절반에 육박하는 대공사이다 보니, 품질과 안전을 지키면서도 빠른 완공을 위해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물론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H그룹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감리팀은 미래건설의 공사비리를 잡아냈다. 정확히는 미래건설의 관리를 받는 하청업체가 저지른 ‘관행적인’ 비리였다.
“이 부위에 들어가야 할 철근의 수가 본래 설계보다 15% 가량이 빠졌군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건 시공상의 실수로…….”
“어떻게 시공을 하면 이렇게 많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죠? 이걸 실수라고 봐야 합니까?”
새파랗게 젊은 감리의 날선 추궁에 현장소장은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여기 투영도면을 보면, 본래 빈 공간이어야 할 이곳에 건축쓰레기들을 우겨 넣었군요?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봐요, 젊은 친구. 내가 통제를 한다고 하지만 건축계에서 뼈가 굵은 친구들이 내 말을 잘 안 들어요. 나도 몹시 골치가 아픕니다.”
“어쨌든 이미 상부에 보고했으니 조만간 조치가 내려올 겁니다.”
한서진이 만든 에테르 투시기는 공사 현장 비리를 잡아내는데 톡톡히 한몫하고 있었다.
이미 콘크리트를 두껍게 발라버린 뒤라도 투시기를 이용하면 내부 철근 구조 등을 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혼합 성분 및 이물질의 비율이나 품질까지도 확인이 가능했다.
그저 투시기를 건물에 대고 스캔하면, 내부 구조 및 성분이 순식간에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호환 프로그램이 설계와 시공의 차이점을 자동으로 체크해서 명단을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성능에 감리팀은 그저 혀를 내두르기만 했다.
그리고 에테르 투시기의 존재를 몰랐던 현장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다.
콘크리트에 들어가야 할 철근의 수량이 일부 부족하거나, 건축쓰레기를 내부에 넣고 시멘트로 닫아버린 경우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H그룹에서 각 건설사들에게 그렇게 철저히 경고하고, 건설사들도 실무현장에 거듭 교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된 관행이 하루아침에 뿌리뽑히지 못한 것이다.
“이미 보고했다고요? 아니, 그렇게 유도리없이 일을 처리하는 게 어딨습니까!”
“어쨌든 규정대로 하겠습니다.”
현장소장은 펄쩍 뛰었지만 젊은 감리는 눈 하나 꿈쩍하지도 않았다. 아직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이 장년인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었다.
공사비리를 최종 확인한 H그룹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통지서를 쥔 미래건설 대표이사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지급한 공사비용 회수에 철거 비용 지불…… 그리고 위약벌금 50억 원을 내라고?”
아직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 정도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다. 북한 개발은 못해도 10, 20년 이상은 지속될 테니까.
그러나 마지막 처벌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현장에서 즉시 퇴출에, 향후 2년 간 H그룹이 주관하는 어떤 공사에도 입찰할 수 없다?”
“네, 모두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대표이사의 음성이 거칠어졌다.
H그룹에서도 공사 비리에 관한 징벌 조항을 세세히 설명하면서, 절대로 어기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백철중 회장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비리 청정구역 속에서 시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질리도록 강조했다.
그가 화가 난 것은 현장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체 소장이란 새끼는 뭐한 거야! 뒷돈 못 챙기는 대신 우리도 그만큼 급여 더 챙겨주기로 했잖아! 그런데도 욕심을 못 참고 기어이 일을 벌여?”
“소장이 주도한 일은 아니고, 현장 인부들이 관행적으로 한 일이라…….”
“그걸 통제하고 감독하는 게 소장이 할 일 아니냐고! 이 일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미 받은 공사대금과 위약벌 50억 원, 그리고 철거 비용을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 H그룹은 공사비리가 첨가된 건물은 기둥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소한 착오라면 모를까, 고의성 비리가 확실하다는 게 입증되면 완공된 건물이라도 아예 헐어버린다는 게 H그룹의 방침. 그 철거 비용은 고스란히 시공사의 몫이었다.
미래건설 사장은 직접 H그룹으로 달려가서 사정도 하고 빌어도 보았다. 그러나 H그룹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직접 백철중을 설득하는데 나섰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30% 이상 완공된 시설은 완전히 철거되었고, 미래건설은 공사대금을 포함해 많은 돈을 토해내야 했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도 퇴출된 채, 향후 2년 간은 H그룹의 공사에 입찰하지 못하는 징벌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창 지어지던 기반시설에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설계와 다르게 시공한 거 있음 빨리 말해요! 지금 말하면 우리 선에서 봐줄 테니까!”
“괜찮으니까 그냥 다 불어요! 허물고 다시 지으면 된단 말입니다! 만약 H그룹 감리팀에 걸리면 철거 비용에다가 공사대금에 위약벌까지 내야 한다고요! 2년 간 참여도 못하고!”
“괜찮으니까 빨리 말하라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설사들은 현장에 돗자리를 깐 채 닦달에 나섰다. 공사비리가 확인되자 그들은 기껏 지은 시설을 아예 허물어 버렸다.
H그룹에 적발되기 전에 먼저 허물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게 천 배는 싸게 먹히는 길이었다.
“역시 본보기가 중요해.”
보고를 받은 백철중 회장은 느긋하게 깍지를 꼈다.
“처음 걸린 놈 하나 제대로 잡고 조지니까 다들 알아서 벌벌 기지 않나.”
“미래그룹 회장님께서 많이 서운해하셨습니다.”
“원래 아는 사이에 편의 봐줄 때 더 잘해야 하는 거야. 그 친구도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겠지.”
백철중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비서실장은 이어서 보고를 계속했다.
“일본 정부의 외교적 시비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정황상 그 뒤에 스토미 그룹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스토미 그룹이 일본 정재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상하군. 스토미 그룹이 그래서 얻을 이익이 없지 않나?”
“그래서 도원패 정권이 더욱 당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지율 확보를 위해 서로 짜고 연기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 하나 빠진 게 있는데 말이야.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결정적인 고리가…….”
백철중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본의 지나친 행동에 처음 그는 분개하며 그룹을 움직여 대응에 나서려고 했다. 비록 도원패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현 정부와 일시적으로 손을 잡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제동을 걸었다.
일본의 시비가 정부의 결정이 아니라, 스토미 그룹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본 재벌이 정계를 움직여 한일관계를 악화시켜야 할 이유가 과연 뭐가 있을까? 그것도 스토미 그룹처럼 희토류 가지고 윽박지르면 바로 고개를 숙여야 할 기업이?
“그리고 크리스 정부에서 입안한 화폐발행 특별법은 의회에서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 같습니다.”
“크리스가 로스차일드 쪽 사무를 처리해주려고 대통령이 됐다는 소문이 영 근거 없는 건 아니었구만.”
백철중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 법안이…… 연방은행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시켜주는 내용 아니었던가?”
“예, 맞습니다. 그래서 하원의원 일부에서 강한 비난이 나오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월가의 대대적인 로비로 무마될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 지위가 더 견고해지겠어. 크리스가 유로화 때문에 어지간히 신경 쓰이나 보군.”
최근 크리스 정권이 공격적으로 내놓는 정책들은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단기 경제 정책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을 한데 묶어놓으면 달러의 지위 강화에 귀결되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한 박사가 SJ인더스트리 정지원 대표도 호출했었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무슨 논의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진지한 사업 논의를 나눈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정지원 대표는 면담이 끝나고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백철중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다가 문득 비서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생각은 어때?”
“예?”
“한 박사가 뭔가 큰 거 하나 벌이려는 것 같지 않나?”
미묘한 기대감이 깃든 눈빛에 비서실장은 머뭇거렸다. 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백철중은 즐거운 듯이 말을 이었다.
“한 박사가 비폭력주의자이긴 한데, 한 번 화나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원래 평소 얌전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내 보기에는 크리스 정권 상대로 뭔가 하나 터트리려는 게 틀림없어. 정지원 대표 소환한 것도 그 밑준비고.”
“그럼 우리 H그룹은…….”
“정지원 대표 움직임 잘 관찰하고, 그 흐름 따라갈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 박사에게는 내가 따로 물어보지. 그래도 예비장인인데 뭐라도 말해주겠지.”
「달러를 최대한 끌어모으는 중이다.」
며칠 뒤에 정지원이 전한 보고는 한서진의 예상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었다.
“모으는 게 아니라 털어버려야 하지 않나요?”
머지않아 달러를 무력화시켜서 기축화폐에서 끌어내린다. 한서진은 가치가 떨어질 달러를 처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환율 장사를 할 거라면 털어버리는 게 맞겠지. 하지만 네가 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새 기축화폐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연방은행을 무력화시키려는 거잖아.」
“그런데요?”
「달러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으면 그 과도기 중에 무기로 활용하기 쉬워. 전쟁 초기에는 새 화폐나 금보다는 달러로 싸우는 게 편할 거야.」
“그럼 정 사장님 말씀은…….”
「전쟁이 개시되면 적들은 달러를 가지고 싸움을 벌일 거다. 초기에는 같은 달러를 가지고 맞받아치는 게 효율적이야. 어디까지나 전쟁 무기 소모품으로서 가치가 있어 달러를 비축하는 거지, 그 외의 이유는 없다.」
한서진은 정지원의 말뜻을 이해했다.
전쟁의 승리 요건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기축화폐 지위를 빼앗는 것이다. 기껏 보유한 달러를 처분하는 것은 활용 가능한 무기의 종류를 줄이는 결과가 된다.
「전술적 패배는 몇 번을 겪든 상관없어. 우리는 전략적 승리를 거두기만 하면 돼. 그것도 대승을.」
“우리가 쥐고 있는 달러 화폐가 전술 무기라는 거군요.”
「네가 가진 황금 소행성은 전략 무기가 되는 거지. 일단 그 전략 무기를 발사하기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야 해. 적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기 좋게 예쁘게 집결시켜야 되잖아? 달러만큼 제격인 전술 무기는 없지.」
“정말이지 언제나 제 상상을 뛰어넘어주시네요.”
「내가 할 말이다. 금 100억 톤…… 난 전혀 상상도 못했다. 정말.」
한서진은 즐거운 듯이 소파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럼 전략 무기 공개는 언제쯤으로 할까요?”
「크리스 대통령이 첫 포문을 열 거야. 너는 일단 기다리고 있으면 돼.」
“알겠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는 태도에서 승자의 느긋함이 묻어나왔다.
“카운트다운이나 세고 있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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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기 전에 이미 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