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85화 (385/609)

00385  움직임  =========================================================================

한국이 H팰리스 착공으로 북한 지역에 첫 삽을 뜨고, 북한 난민들과 국민들이 기쁨에 젖어 있을 무렵, 미국에서 알래스카 유전 개발을 발표했다.

매장량 900억 배럴의 유전을 전격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국제 유가 시장은 미친 듯이 널뛰기를 쳤다.

“미국 시민과 기업들은 높은 원유가로 경제적인 곤란을 오래 겪어왔습니다. 이에 연방정부는 더 이상 지금 상태를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전 개발 작업은 이번 달 안으로 즉시 개시할 예정입니다.”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에 미국 시민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간 세계적인 경제 침체의 여파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클레튼 대통령이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아직 요원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알래스카 유전 개발이 터져 나오자 크리스 대통령을 향한 지지율이 급속히 상승했다.

미국의 진정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지지율 몰이를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잇따랐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연이어 다른 폭탄 발표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달러발행, 양적완화 증대.

―연방준비은행, 금리조정 개시.

―국제 무역 장벽 허들 낮추다.

크리스 정권은 지금까지 숨고르기였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무서운 속도로 여러 경제 정책들을 쏟아냈다. 단지 발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곧장 실물경제정책에 반영, 미국 전체가 용광로처럼 달궈지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유전 개발은 거대한 전투를 앞둔 서막이었다.

하나하나가 큰 파급력을 갖고 있는 경제 정책을 연달아 수십 개 이상을 동시에 쏟아냈다.

만만치 않은 반발이 뒤따랐으나, 한두 가지도 아니고 수십 개가 넘는 대정책이 서로 혼합된 와중에, 체계적인 반론이 형성되기 어려웠다.

“크리스 대통령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큰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반론을 원천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비겁한 술수다!”

“미국의 미래 잠재력을 억지로 끌어당겨 써서 현재를 풍요롭게끔 보이게 하려는 술책일 뿐이다!”

정책 하나하나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 뭉침으로써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통장 잔고를 흥청망청 탕진하는 것과 유사했던 것이다.

당장은 경제지수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그래서 미국 시민들의 경제 상황도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그것은 마이너스 통장에서 마구 돈을 빼다 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이 인기를 위해 미국의 미래 잠재력을 끌어다가 선심성 정책만을 남발하고 있다. 깨어 있는 전문가들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크리스 대통령은 기축화폐로서 달러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하고 있소. 이는 화폐 자본가들의 영향력을 굳건히 다지기 위한 작업이오.”

어느 오후, 월가에서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크렘 회장은 SJ인더스트리의 CEO 정지원과 독대 중이었다.

크렘 회장은 심각한 논조로 지금 크리스 정권의 정책들이 귀결되는 방향을 짚어가고 있었다.

“크리스 정권의 경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시장 경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으나, 그것은 스테로이드를 투여해서 일시적으로 운동 능력을 끌어올린 것에 지나지 않소. 약효가 떨어지면 지독한 금단 현상과 피로가 몰려올 거요.”

“인기몰이를 위한 경제 부흥책으로 보이는 것 자체가 위장이군요.”

“그렇소. 크고 음험한 목적을 작고 덜 음험한 목적 아래로 교묘하게 감춘 거요.”

크렘 회장은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며 깍지를 꼈다.

“연준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고, 대통령 본인도 결국은 그들의 리그에 편입되는 것. 그게 바로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진짜 목적이오.”

정지원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히 물었다.

“크렘 회장님도 그들의 리그에 소속되신 게 아닙니까?”

“내가? 천만에요.”

크렘 회장은 피식거리며 어림없다는 듯이 말했다.

“돈은 절대로 나누는 게 아니오. 서클의 권리와 지위는 철저히 핏줄에 따라 세습되고, 외부 인사의 유입을 허용하지 않소.”

“크렘 회장님 같은 분도 말입니까?”

“물론이지. 나는 다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업 파트너일 뿐, 화폐발행권에는 감히 단 1주도 욕심낼 수 없소. 그걸 나눌 수 있는 이들은 그들의 자손뿐이오.”

화폐 자본가, 연준의 권리를 나눠 가진 서클의 멤버들은 혼맥도 철저히 그들 안에서 형성한다. 절대로 외부의 피를 수혈하지 않는다.

외부의 피가 섞이면 섞일수록 소유권이 잘게 찢어져서 단합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과 적대하는 것은 결국 회장님께 손해가 되는 일 아닙니까?”

그들은 달러화를 손에 쥔 채 전 세계 경제를 발아래에 두고 있다. 크렘 회장이 700억 불의 재력가라 해도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버겁다.

오히려 그들과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 리그에 편입되지는 못해도 일정 이익을 보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크렘 회장은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더 이상 날 시험할 건 없소, 로건.”

“시험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와 친구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계산기를 두드렸소. 우리는 이미 한서진 호로 갈아타기로 결심했어요.”

“괜찮겠습니까? 그들이 서운해 할 텐데요.”

“사업에서 서운한 게 어디 있소? 어차피 일시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인데.”

모든 부호들이 크리스 정권, 그리고 화폐 자본가들에 붙은 것은 아니었다. 크렘 회장과 친한 상당수의 대부호들은 크리스 정권과 철저히 선을 긋고, SJ인더스트리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정지원은 쌀이 익어 밥이 된 상황임에도 마지막까지 신중히 호흡을 골랐다.

“소수의 민간인들이 화폐 발행을 가지고 장난치는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소. 그동안은 참아줬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지.”

정의심에서 발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이쪽으로 갈아타는 게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기인한 결정이었다.

“지인 중에 한 박사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소.”

“어떤 분인가요?”

“지인이라고는 했지만…… 후원자라고 해둡시다.”

정지원은 의아해서 눈을 크게 떴다.

700억 불을 가진 크렘 회장의 후원자라고?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렘 회장이 피식 웃었다.

“내가 사업을 할 때 여러 방면으로 적절한 도움을 준 사람이오. 그 덕분에 나는 지금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었지. SJ인더스트리 사업 초기, 내가 전격적인 투자를 결정했던 것도 실은 그의 조언 덕도 있었소.”

“누굽니까?”

“구프게니 키신, 현 카이고르 컴퍼니의 고문이오. 전 나사 수석연구원 출신이기도 하지.”

크렘 회장은 조용히 덧붙였다.

“미국에서 한 박사의 존재가치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오.”

세계 각국은 수십 개가 넘는 경제 정책을 쏟아낸 크리스 대통령과 미국의 변화를 경계심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진 지위를 생각하면, 앞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이 전 세계를 덮칠 게 뻔했다.

왜 크리스는 이런 무리한 정책을 시행하는 걸까? 단지 정권 지지율 향상만을 위해서일까?

그렇게 의문에 의문이 거듭하고 있을 때, 크리스 대통령은 전격적인 방한 일정을 잡았다.

―상호보호무역 체결을 위한 방한.

―크리스, 한국에 자비의 손을 베푸나?

―도 대통령, 두 손 들어 환영의 의사를 나타내.

한국은 크리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방한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번 방한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놓고 애널리스트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온갖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에어포스 원이 공항에 들어섰다.

의장대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크리스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환영 인파가 함성을 질렀다.

크리스는 곧장 귀빈관으로 향해 도원패 대통령과 국가 원수로서 첫 인사를 나눴다.

오후에는 양국의 기업인들도 함께 만찬도 가졌다.

크리스 대통령은 이번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다국적기업들의 경영진과 함께 방한했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기에 그런 전문 경영인이나 부호들과 인맥도 상당했던 것이다.

“본래 미한 관계는 오랜 혈맹을 유지해왔지만, 한서진 박사를 통해 더욱 끈끈한 사이로 거듭났습니다. 저는 미 대통령으로서 지금의 깊은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상호 보호무역조약은 그 첫 걸음이 되어줄 것입니다.”

상호보호무역.

경제 전문가들은 기존에 체결한 FTA를 이름만 그럴 듯하게 다시 바꾼 것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에서는 한국에 이익이 되는 내용도 많았다.

간단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의 보호무역의 우산을 한국에도 선심처럼 씌워주겠다는 게 조약의 핵심 골자였다.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조약이었다.

“상호보호무역? 이게 무슨 말인지 난 이해가 안 되는데?”

“나도 그래. 보호무역에서 상호란 단어가 갑자기 왜 튀어나와?”

“이거 그냥 우리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 뭐 그런 내용 아니야?”

“에이, 설마.”

반신반의하며 꺼려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역시 한서진 박사! 어떻게든 미국이 우리 국민들한테까지 선물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어.”

“한서진 박사한테 호감을 사겠다는 거지. 크리스 대통령 공약이 뭐였어? 한서진 박사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는 거잖아?”

“조약은 우리에게 득이 되니까 받아들이는 게 좋은데, 그렇다고 한서진 박사를 미국으로 보내면 안 돼.”

이처럼 전격적으로 마음을 열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호보호무역을 미국이 한국에 보인 최고의 호의라 여긴 것이다.

크리스 대통령 방한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와중, 한 인물이 조용히 한국을 찾았다.

“구프게니 키신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한서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악수를 나누면서도 한서진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살폈다.

50대 정도 되었을까. 크렘 회장과 친한 후원자라고 했는데, 나이를 보면 너무 젊다.

그가 고문으로 있다는 카이고르 컴퍼니도 조사했지만, 특별한 사실은 발견할 수 없었다.

화학소재 산업으로 유명한 카이고르 컴퍼니는 회사 규모와 가치에 비해 경영권이 폐쇄적이었고, 악착같이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크렘 회장님과 친하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오랜 인연이 있지요.”

“그리고 나사에서도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오래 전 일입니다. 최근에는 회사에 고문 직함만 올려놓고 용돈을 타먹으며 반백수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반백수라기에는 너무 활동이 왕성하시던데요. 비공식적인 직함이 그렇게 많으신 분은 처음 봤습니다. 고문이라고 이름을 올려놓은 회사만 20개가 넘으시더군요. 하나같이 미국에서 신기술을 개척하는 연구소나 사업체였고요.”

“제 소개를 하기 전, 먼저 제가 박사님을 뵙자고 한 용건부터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지요.”

구프게니 키신은 조금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의 뜻이 뭘까 생각하던 중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크리스 대통령의 이번 방한 목적을 훼방 놓으러 왔습니다.”

“방한 목적을 훼방……. 상호보호무역 조약인가 하는 거 말인가요?”

“예, 그 조약은 진짜 목적을 보이지 않게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매우 위험한 목적이죠.”

“어떤 목적이죠?”

미소가 머금은 짓궂음이 짙어졌다.

“한국을 최종적으로 달러통화국으로 만드는 겁니다.”

============================ 작품 후기 ============================

수십 개 회사에 고문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용돈을 타먹는 삶이라... 좋네요. 정말.

ps : 며칠째 숙취가 안 깨서 컨디션 난조라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죄송ㅠㅠ

탄핵에 신나서 금토일 사흘 동안 축하주를 정말 엄청 먹었더니 숙취가 며칠 넘게 가드라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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