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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82화 (382/609)

00382  남자의 선물  =========================================================================

송하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빈 시험관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얼마 되지 않는 양이 20억 달러나 한다고?

“원화로는 2조 원? 와, 이거 완전히 고급형 에테르 워치 값이네요.”

“그렇지? 시판은 안 될 것 같아.”

시계나 귀금속 같은 사치품도 아니고, 미용을 위한 의약품으로서 상업성이 없다. 1회 복용량에 20억 불이 넘는 약을 어느 병원이 들여놓겠는가?

송하나는 이내 표정이 가라앉았다. 놀라운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신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유통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특별한 부자들을 상대로는 수요가 있을 거예요. 에테르 워치만 해도 없어서 못 팔잖아요.”

“그래봤자 얼마나 되겠어. 어차피 많이 만들지도 못해. 일 년에 몇 십 개나 만들까?”

“그래도 수백 억 달러는 되잖아요.”

“그깟 수백 억 달러 더 벌자고 신경을 쓰고 싶진 않아. 어차피 돈 벌려고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 네가 더 예뻐지고 오래오래 어리도록 하는 마음에서 만든 거니까.”

“……그럼 저만을 위한 선물인 거예요?”

송하나가 고마움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자 한서진은 이내 찔려서 말을 더듬었다.

“으, 응. 그렇지.”

“전 그런 것도 모르고. 고마워요, 오빠.”

그녀는 몹시 감동받았는지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럼 저 혼자만의 보물로 남겨둘게요. 고마워요, 오빠.”

신효진한테도 하나 주려고 지금 열심히 2번째 약을 제조 중인데, 이걸 어쩌지?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과 갈등도 잠시, 부드러운 체온이 깊숙이 안겨오자 그는 이내 충실한 본능에 모든 것을 맡겼다.

따뜻하게 서로를 느끼던 중 문득 그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오빠는 어때요? 제가 더 예뻐지면 좋겠어요?”

“네가 여기서 더 예뻐질 구석이 어디 있어? 키라면 모를까.”

“키요? 혹시 오빠 제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우세요?”

그녀의 키는 170이 아주 살짝 넘는, 여자로서 상당히 큰 키다. 평소 그 부분이 신경 쓰였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불안함으로 가늘어졌다.

아차 싶었던 한서진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사실대로 말해요. 제 키, 부담스러우세요?”

“…….”

“어서요.”

엄한 추궁이 담긴 목소리, 쩔쩔매던 한서진은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네 키가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는데…….”

“없었는데?”

“조금만 더 커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금 더 커도 괜찮다는 거예요, 조금 더 큰 게 괜찮다는 거예요?”

“…….”

“확실히 말해요.”

한서진은 차마 대답을 못했고, 송하나는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오빤 욕심쟁이. 지금도 우리 7센티밖에 차이 안 나는데.”

정확히는 6.x센티미터라고 해야 하지만, 넘어가자.

“알겠어요. 그럼 제가 다리만 조금 더 길어지면 좋겠다고 매일 같이 소원할게요.”

“다, 다리?”

“왜 이러세요. 정확히는 키가 아니라 다리가 길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맞는 말인지나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진짜 희망을 이렇게 정곡으로 찌르는지.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저 지금도 다리가 꽤 긴 편인데. 오빠 욕심은 진짜 끝이 없네요.”

“솔직히 더 길면 좋지. 안 그래?”

“누가 좋은데요? 제가요, 오빠가요?”

송하나는 키도 크지만 신체에서 다리가 차지하는 비율도 월등한 편이다. 체형을 보면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고루 섞어 놓은, 사기적인 몸매다.

그런데도 한서진은 거기서 다리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속마음이 있었다. 그걸 들켜버린 그는 민망해서 눈을 피했다.

H그룹 전략기획실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 외에 별도의 업무가 있다. 바로 한서진의 국내 활동을 보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송하나가 이끄는 국가재정 감시민간법인, TF팀(앞에 붙는 명칭이 따로 있지만 보통 줄여서 TF팀이라고 부른다)과 공조하는 역할도 포함된다.

그룹 전략기획실장 박지훈은 TF팀에서 온 평양 개발 계획의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수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퇴근도 잊은 채 일에 몰두했다. 그가 이끄는 기획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TF팀에서 출장을 나온 김범석 부사장과 같이 도시건설 기초계획을 잡고 있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이 땅 전체를 한서진 박사님을 위한 왕성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이야. 대단하지 않아?”

“이 넓은 땅을 어느 세월에 다 채우죠. 얼핏 봐도 수도권 전체보다 큰 거 같은데.”

“일단 중심가를 먼저 형성하고, 나머지는 차차 채워나가면 돼. 중요한 건 도시의 30년 뒤 모습을 생각해서 아주 계획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거지.”

땅이 너무 넓어서 어느 세월에 다 채울까 싶지만, 막상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니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먼저 구 평양시의 중심에 한서진 박사님의 사택을 세운다. 지금 세연동 사택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의 면적으로 해야 해.”

“제가 세연동 사택을 멀리서 본 적 있는데, 원래 도심 공원으로 만들려다가 개인 주택으로 개조한 거라서 무지하게 넓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시골이면 몰라도 도시에서 앞으로 그보다 넓은 개인 주택은 절대로, 절대로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열 배 이상이라고요?”

“한서진 박사님 위명을 생각하면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지.”

사택의 위치는 구 고려호텔이 있는, 휘어진 대동강의 흐름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정해졌다. 사택 주변을 감싸듯이 흐르는 대동강이 좋은 경계선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박사님의 개인 연구소 사옥은 여기에 새로 짓는 걸로.”

“박사님 연구소 얼마 전에 경기도에 새로 올리지 않았나요? 지은지 1, 2년도 안 된 걸로 아는데.”

“그건 너무 작습니다. 박사님의 스케일에 걸맞지 않습니다.”

TF팀에서 나온 김범석 부사장은 풍성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지금 있는 것보다 최소 열 배는 더 큰 연구소 신사옥을 지을 겁니다. 박사님도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기획실 직원들은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건 뭐만 하면 일단 열 배래.

“그리고 앞으로 환경오염이 적은 H그룹의 첨단 연구소나 첨단 공장 시설은 평양 지역에 건립할 겁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시설도 점진적으로 이전하여, 최종적으로는 5년 안에 이전을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5, 5년이요?”

다행히 본사가 이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의 중심을 평양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적지 않은 직원들이 놀랄 것이다.

“박사님 연구소의 신사옥, 그리고 H그룹의 첨단계열 이전이면 다른 대기업들의 이전 의욕을 강하게 부추길 수 있을 겁니다. 이른바 에테르 러시! 이름 하여 한서진 팰리스!”

김범석은 주먹까지 불끈 쥐며 자신의 뜻을 강조했다.

한서진 팰리스라니, 뭔가 촌스러운 작명인데, 그 안에 담긴 충심만큼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한서진 팰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누구나 동경하는 그런 꿈의 도시여야 합니다. 도시 전체를 첨단연구공단과 관광지역으로 꾸미겠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유흥이나 불결한 문화가 허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아참, 그리고 도시 전체는 금연 구역으로 지정될 겁니다.”

“금연이요?”

“박사님께서 비흡연자이십니다. 예비 사모님도 마찬가지고요.”

“…….”

“아니, 그럼 도시를 키우는 게 꽤 어려울 텐데. 흡연자들은 안 가려고 할 거 아닌가요?”

“어차피 돈 많이 준다면 올 사람은 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인 이때부터 엄격히 적용을 해야지요. 그래야 나중에 뒷말이 안 나옵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한서진의 사유지나 다름없는 형태가 될 테니, 전체를 금연 구역으로 설정하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이주 이후에 갑자기 강제한다면 거부감이 크겠지만, 처음부터 크게 공시한다면 이주민들의 선택 문제가 될 테니.

한 달 가까운 회의를 거친 끝에 대략적인 도시 기획이 나왔다. 그 기획은 곧바로 H건설로 내려갔고, 수많은 도시건설전문가들이 달려들어 구체적인 설계안을 잡았다.

첨단연구소 및 첨단제조공장이 들어갈 부지가 정해지고,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이 그려졌다. 관광이나 놀이를 위한 여가 시설이 들어설 곳도 정해졌다.

“디즈니랜드는 필히 들어가야 해요. 그게 없으면 안 됩니다. 로망의 상징인데요.”

“초고층 아파트나 초고층 빌딩은 조경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지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후 유입인구가 폭발적으로 팽창될지 모르니,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테니 그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고층 건물을 너무 제한하면 인구 유입에 한계가 있어요.”

“서울처럼 사람으로 바글대는 도시가 되는 건 박사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H그룹과 TF팀이 합동으로 구상한 도시 기획에 따라, 도시건설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도시의 전체적인 3D 조감도가 완성되었고, 박지훈 실장과 김범석 부사장도 그것을 확인했다.

“정말 아름답군요. 멋진 도시입니다.”

“이대로만 지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도시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박사님의 사택이 멋집니다.”

조감도에 나타난 한서진의 사택은 곡선으로 휘어진 대동강을 옆에 끼고 있었다.

사택은 평지를 10미터 이상 쌓아올린 뒤 지어지게 되며, 강의 반대편으로 무성한 인공 숲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또한 사택은 궁전을 연상케 하는 유려하고 장대한 규모의 15층 안채, 150층의 초고층 빌딩, 이렇게 크게 두 개의 본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궁전식의 안채는 높이는 낮지만 대신 건물 면적이 무척 넓다. 초고층 빌딩은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한 대신, 건물이 차지하는 대지 면적은 훨씬 적다.

그런 큰 본채 건물이 두 채에, 헬기 착륙 시설과 대형 항공기 착륙장, 그리고 관제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 밖에 편의를 위한 다른 다양한 시설도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택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면적은 70%를 훌쩍 넘었다. 사택 총 면적이 여의도의 1.4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사택은 평지에서 10미터 이상 쌓아올린 뒤 지은 터라, 정원에서도 발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인공 숲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인공 숲이 끝나는 경계선부터 고급주택가가 시작되며, 이곳에는 5층 이하의 단독주택만 들어올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고급주택가 밖에는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로 구성된 밀집주택가가 형성되고, 그 밖에는 다시 상권 지역이 형성된다. 디즈니랜드 등 다양한 여가시설이 곳곳에 포진하고, 더 밖으로 나아가면 첨단연구소 지역이 펼쳐진다.

조감도만 놓고 보면 도시 전체가 한서진만의 작은 왕성이나 다름없었다. 어린아이가 봐도 도시의 모든 것이 한서진의 사택에서 뻗어 나오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구조였다.

“진짜 멋지네요.”

“와…… 말이 안 나옵니다.”

“고작 며칠 만에 이런 조감도를 완성했다는 게 저는 더 대단하게 생각되네요. 건설토목 공돌이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갈려나갔을지…….”

전략기획실 직원들도 말을 잊은 듯이 감탄했다.

어느 여직원이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조감도의 사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160층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 작품 후기 ============================

일단 저는 기절할 겁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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