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1 남자의 선물 =========================================================================
국내 대기업들은 특별 국채 매입은 사실상 포기했다. 총 매입액 3조 달러라는 분명한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본인은 그런 의사가 없었다 해도)
아쉬운 대로 그들은 북한 부동산에 눈을 돌렸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물며 대륙을 향한 육로가 열렸는데, 그 가치는 앞으로 뛰어오를 일만 남았다.
지금 북한 땅을 차지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경제적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벌려지고, 굳건해질 것이다.
―북한 토지의 민간인 불하는 당분간 계획에 없다.
도원패 정권이 그렇게 못을 박았음에도, 어떻게 우회적으로라도 토지 이권을 얻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었다. 한 뼘의 땅이라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멈출 날이 없었다.
한서진이 3조 달러라는 거액의 채권을 갖고 있지만, 그 돈으로 북한을 전부 사들이는 것은 무리다. 땅의 가치를 3.3제곱미터 당 약 82만원으로 감정했을 때, 10% 정도나 사들일 수 있을까.
기업들은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국채 매입으로 북한 이권에 개입할 수 없다면, 부동산이나 도시 인프라 구축 선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로를 찾아야 했다. 한서진이 다 해먹진 못할 테니.
―S증권, 대북 투자 펀드 결성! 다른 증권사도 앞을 다투어 일반 펀드 조성!
―불붙은 펀드 투자 열기!
―5조 원의 펀드 모금액, 개설한지 사흘 만에 전량 소진.
―북한, 아시아의 최고 핫 플레이스 되다!
대북 투자로 인한 정부와 민간 기업,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 와중에, 한서진이 연구소에서 두문불출한다는 소식이 국제 증권 시장마저 흔들어 놓았다.
한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했다.
“종합관광지역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북쪽은 절경의 산맥이 많습니다. 제주도 이상 가는 관광단지로 개발하면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당연히 제조업 공단을 유치해야지요. 이제 유라시아 모든 지역에 철로로 물품을 보낼 수 있습니다. 신의주와 개경을 싹 갈아엎어서 대대적인 공단을 설립하고, 기초수급자 신세인 북쪽 난민들을 근로자로 채용하면 대기업, 내수시장, 국민 경제가 모두 확 살아날 겁니다.”
“종합관광지역으로 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환경오염이 없는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건 어떨까요? 제조업 말고요.”
“금융 허브 단지로 구성하는 건…… 지금 우리 정부에 3조 달러라는 막대한 외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걸 가지고 돈 놀이를 하면 아시아 최대의 금융 허브 지역이 될 겁니다.”
“북한이 그렇게나 넓은데, 그 산업들을 몽땅 적용하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저는 대덕단지 이상의 첨단산업단지로 육성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50년, 10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말이지요. 마침 우리에게 3조 달러라는 거액이 있지 않습니까? 이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 보는데요.”
“건설을 해야 국가 경기가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북한의 모든 도시는 싹 밀고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할 판입니다. 김씨 독재정권 하에서 지어진 건축물들을 불안해서 어디 두고 보겠습니까.”
“제조업을 전면 유치해야 한다는 것에는 찬성입니다. 아무리 부강한 나라라 해도 결국 제조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합니다. 북쪽의 엄청난 지리적 장점을 내다 버릴 수는 없습니다.”
북한개발본부.
도원패 대통령 취임 후 임시로 편제된 대통령 직속 기구로, 북한 개발 책임과 지휘를 맡고 있는 행정기구이다. 조만간 행정각부 재편성을 거치며 장관급 행정기구로 정식 발족할 예정이었다.
북한개발본부에서는 앞으로 북한 지역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놓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조업, 금융, 광광, 첨단산업, 상업 등 다양한 의제가 쏟아져 나왔지만,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북쪽 개발에 관해서 H그룹에서 제안이 있었습니다.”
어느 인물이 꺼낸 말에 거짓말처럼 대화가 뚝 멈췄다.
참석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불편한 감정이 드러났다.
H그룹의 참견을 단순히 잔소리로만 듣고 넘길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H그룹은 한서진의 명을 출납하는 도승지나 다름없으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정식 공문을 제출했는데, 일단 구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일부 지역을? 그런 거라면 아무 문제없겠군요. 어차피 한서진 박사가 단독으로 추진할 사업일 테니.”
“오히려 그 지역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우리 정부로서는 재정의 여유폭이 커집니다.”
북한의 중심지인 평양을 당연히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지만,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한서진이 낸 돈을 생각하면 그 정도 이권을 배려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말을 꺼낸 이가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그런데 그 지역이 꽤 넓습니다.”
“평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평양이 아니라 평양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남포에서 평양을 거쳐 대동강을 타고 개천과 안주를 포함해 대령강 하구까지 포함한 지역을 말합니다.”
회의 참석자들은 머릿속으로 북한 지도를 그리다가 경악했다.
“그, 그 정도 면적이면 서울, 경기도, 인천 지역을 합친 것보다 더 넓지 않습니까!”
“평양을 중심으로 아예 서쪽 지역 전체를 다 개발하겠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여기 지도가 있습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 면적이 더욱 실감이 난다.
장차 개편될 부처의 장관으로 예정된 나영기 교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큰 사옥을 지으려고…….”
“성공이다!”
시뮬레이션이 완전히 끝나자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지만, 자신의 환호성이 국제 주식 시장을 출렁이게 만든다며 부디 자제해달라는 간절한 애원이 생각났다.
주먹을 작게 쥐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한 그는 추가로 떠오른 결과 수치에 잠시 멍해졌다.
“잠깐?”
기쁨도 잠시, 그는 다급히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모니터를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마법 1회 시전에 필요한 에테르 수치가 20E?”
E는 마력(horse power)이나 와트(watt)와 같이, 어떤 운동에 필요한 에테르의 양을 그가 임의로 지은 단위다.
1E는 타르타로스 1이 1시간 동안 풀 파워로 가동할 때 통제할 수 있는 에테르의 양을 일컫는다. 타르타로스 1이 가동하면서 소모하는 양이 아니다.
“타르타로스 1이 20시간 동안 뻘뻘거리며 일해야 나오는 에테르 양을 고작 1회에?”
한서진은 허탈해졌다. 뭐 이렇게 비효율의 극치인 마법이 다 있단 말인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신효진은 얼마나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먹는지 설명을 듣고, 마찬가지로 크게 놀랐다.
그녀는 우물쭈물해서 설명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듣기로는 레노지안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마법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왕족만 쓴다고……. 사실 저도 시술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뭐가 더 있습니까?”
“효율은 최악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습니다. 척 봐도 가성비가 꽝이네요.”
에테르를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그야말로 사치의 절정인 마법. 왕족만 쓴다고 해서 왜 그러나 했는데, 이해가 갔다.
“하지만 성능은 정말 확실해요! 제가 시술 받아서 잘 알아요! 피부도 엄청 좋아지고, 아무튼.”
“그런가요?”
“네, 그래서 저 그 뒤로 피부 화장은 안 하고 다녀요. 눈 화장 같은 화려하게 꾸밈 위주로만 해요. 화장이 좋은 피부 다 가리거든요.”
한서진은 귀가 솔깃해졌다. 가성비는 꽝이지만, 성능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리고 한 번 하면 오래 유지된대요. 심지어 골격이나 외형도 조금씩 변한대요. 피시술자가 원하는 방향으로요.”
“……무슨 성형수술입니까?”
“잘 모르지만 피시술자가 평소 외모에 가진 염원을 읽어서 변화를 적용시키는 것 같아요. 지능형 마법이죠. 그래서 엄청 비싼 시술이라고 들었어요.”
이 마법을 개발한 이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하나 더, 정말 할 짓이 없어서 재능을 낭비했던 게 분명했다.
‘하나 만드는데 20시간 동안 타르타로스 1을 돌려야 하다니.’
이래서야 상용화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곧 아쉬움을 접었다. 자기 애인만 더 예뻐지면 됐지, 돈을 더 벌어서 뭐할까. 지금도 돈이 썩어나서 갖다 버리는 수준인데.
신효진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저, 박사님. 이거 저도 해주실 거죠? 그래도 제가 관련 지식 갖다 드렸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너무 비싼 시술인 것 때문에 걱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한서진은 흔쾌히 끄덕였다.
“염려마세요. 효진 씨가 아니었으면 이 마법 개발 못했을 텐데,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대신 죄송하지만…….”
“네, 저는 두 번째도 족해요.”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송하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것만 마시면 되는 거예요?”
“응. 해로운 건 전혀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오빠를 믿어요. 근데 너무 간단하니까 조금 맥이 풀리는 것뿐이에요.”
“H-1, H-2 때도 다 그랬지, 뭐.”
“하긴, 그랬지요.”
송하나는 피식거리며 시험관을 들어 올린 채 내용물을 들여다보았다. 금색으로 반짝거리는 액체가 찰랑거린다. 반투명한 광채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듯이 아름다웠다.
“잘 마실게요.”
그녀는 곧장 마셔버렸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라 원샷이었다.
한서진은 긴장해서 자세히 살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혀끝에 남은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붉은 혀가 입술을 살짝 핥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껴안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어때?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딱히 없어요. 그냥 아주 맛있는 음료수 같은 느낌? 이런 맛은 처음 봐요.”
“또 마시고 싶으면 말해. 만들어줄게.”
“많이 먹으면 효과가 더 좋아지나요?”
“그렇진 않아. 몇 번을 먹든 효과는 동일해.”
이미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작용이나 해가 없으며, 효과가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그래? 이상하네.”
“근데 정확히 무슨 효능이 있는 거예요?”
“예뻐지고, 젊음이 오래 가고, 뭐 그 정도? 지능형 약물이라서 피시술자가 평소 바라던 외형으로 조금씩 바뀌는 거야.”
“에이, 그럼 별 변화는 없겠네요.”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전 지금 생긴 거에 만족하니까요.”
오만이 아닌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수긍했다. 자신의 애인은 저런 말을 해도 된다. 오히려 저 정도 발언이면 겸손한 편이다.
“이거 시판하면 인기가 엄청나겠어요.”
“시판은 못할 것 같아.”
“네? 왜요?”
“지금 네가 마신 거…… 생산원가로 환산해봤는데 20억 달러가 조금 넘더라고.”
“……제가 지금 20억 달러를 마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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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에 가성비를 따지다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