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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79화 (379/609)

00379  남자의 선물  =========================================================================

에테르 스톰의 폭발로 평양이 소멸할 때, 그곳에는 고위 장성을 비롯한 북한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열병식을 위해 모인 상태였다.

머리를 잃은 북한은 한순간에 국가 체제가 붕괴했고, 잔존부대는 생존을 위해 투항하거나 혹은 중국으로 달아났다. 주민의 소개가 완벽히 이뤄진 북한은 지금 완벽한 무인지대였다.

이후 북한 전역의 토지의 소유권은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는 법령이 발효했다. 헌법 조항과는 별개로 실질적인 행정관리를 위한 조치였다.

북한에 땅을 두고 왔다는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으나, 그것은 차후 사실관계를 따져 보상한다는 조항으로 일단 무마시켰다.

그리고 이제 안전한 땅이 된 만큼, 북한 땅을 향한 부동산 투자자들의 탐욕은 지옥의 불꽃처럼 꺼질 줄을 모르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9대가 편히 놀고먹고 싶은가? 그럼 지금 바로 북한 땅을 사라!

어느 투자 애널리스트의 한 마디가 경제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 많은 이들이 북한 땅의 소유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과열되자 도원패 정부에서도 공식적인 정책 방침을 내놓았다.

“일차적으로 구 북한 전역의 모든 토지는 국유지입니다. 차후 북한 개발 과정 중 민간에 불하할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토지 소유권을 양도할 정책 방침이 잡혀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 대변인은 덤덤하게 거시적인 정책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은 북한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1조 달러가 넘는 기금이 잠자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돈을 북한 개발에 쏟아 붓는다면, 폭발적인 국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도원패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이런 호재가 생겼다며 뛸 듯이 좋아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미적지근한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또 충격적인 선거 결과라며 온갖 조롱을 받아야 했다. 샤이 지지자들은 그런 소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다.

여러 모로 맥 빠진 새 출발이었지만, 이런 대형 호재가 터져주다니. 도원패 정부는 한서진에게 감사하고픈 마음까지 생겼다.

“혹시 한 박사가 나를 도와주려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발표를 지연해도 됐을 텐데 굳이 그러지 않고 이 시기에 터트린 걸 보면 말입니다.”

화색이 만연한 대통령 앞에서 측근들은 저마다 아부성 멘트를 늘어놓기 바빴다.

도원패 대통령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내가 한 말들 잊지 말게. 다들 명심하고 있지?”

“예, 대통령님!”

한서진은 건드리지 말자. 어차피 김시형은 전 대통령 족치느라 시간 다 보낸다. 그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다.

그런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앞으로 대대적으로 북한 개발에 나설 생각일세. 천문학적인 재정이 동원될 게야. 물론 그 안에서 한 치의 비리도 있어서는 안 되네. 특히 특별 국채 조달 자금 운용에 있어서는 더더욱. 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두 눈을 철저히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아무 문제없도록 관리하겠습니다.”

“특별 국채 기금에서 단 돈 1원의 횡령이나 누락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국채 기금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명분이 뚜렷한 이상 중앙정부 자체의 예산도 동원할 수 있고, 민간 기업들도 앞을 다투어 진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빼돌릴 수 있는 방법은 넘쳐난다.

국채 기금은 완벽하게 운용하고, 다른 국가 예산이나 기업 투자금에서는 적당히 해먹으면 된다.

한서진은 썬베드에 비스듬히 누운 채, 양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정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넓은 실내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송하나가 힘차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매끈한 팔 다리가 유연하게 물을 밀어내고 앞으로 지주하는 모습은, 생생하게 헤엄치는 활어를 연상케 했다.

수차례 왕복을 찍고 돌아온 송하나는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쏴악, 하며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서 활기가 넘친다.

길고 매끈한 다리가 대리석 바닥을 딛고 섰다. 쭉 뻗은 라인은 언제나처럼 숨 막힐 듯한 자태를 자랑했다. 수영 모자를 벗자 길고 풍성한 흑발이 찰랑거리면서 몸을 감쌌다.

그녀가 옆에 다가와서 옆으로 앉자 조금 아쉬워졌다. 늘씬한 각선미를 더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었는데.

긴 다리를 꼬고 앉은 옆모습을 보니 그런 아쉬움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지만.

그녀가 옆구리를 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응?”

“저 보면서 멍하니 딴 생각하시던데.”

“아니, 그냥…… 그렇게 격렬하게 물에 뛰어들고 수영하는데 용케 수영복 안 벗겨진다 싶어서. 신기하잖아.”

“다 비법이 있어요.”

“무슨 비법?”

“남자 앞에서 우아하게 보이는 비법.”

눈이 마주치며 쿡 실소가 터졌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썬베드에 올라와 가슴팍을 껴안으며 옆으로 마주보고 누웠다.

“오랜만에 이렇게 느긋하게 있으니 좋아요.”

“그래?”

“오빠 그동안 참 바빴잖아요. 아, 안 바쁘신 적이 없었구나.”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시선을 피하며 그녀의 흰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꼬박꼬박 얼굴도 보고, 연인으로서 애정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오후를 통째로 보낸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문득 왠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바쁘긴 했지만 너도 엄청 바빴잖아.”

“맞아요. 우리 둘 다 엄청 바빴어요.”

순순히 인정하자 할 말이 없어진다. 입을 꾹 다물자 그녀가 피식거리며 손끝으로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이제 또 엄청 바빠지겠죠?”

“아마도…….”

북한 개척 시대가 열린 지금, 온 나라가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부서진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기도 했다.

“오빠는 바쁜 게 좋아요? 아니면 저랑 같이 있는 게 좋아요?”

“나야 당연히 같이 있는 게 좋지.”

“그럼 저 안 데려가세요?”

“지금이라도 데려올까?”

목소리톤이 달라졌다. 송하나는 피식거리며 그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나중에요. 지금은 실컷 연애 감정 느끼고 싶어요.”

“에이, 그러면서 왜 말은 꺼내고 그래. 사람 설레게.”

“재밌잖아요.”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 되면 지금 누리는 연애 시절의 풋풋함은 다시는 겪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기에 한서진도 송하나도 굳이 결혼을 서두르거나 하진 않았다. 현재의 행복을 충분히 만끽한 후 미래의 행복도 누리면 되니까.

한서진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너무 노골적인 시선에 부끄러워졌는지 그녀가 품에 얼굴을 묻었다.

‘예쁘다.’

이십대에 접어들며 송하나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녀는 십대 때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다른 이를 능히 압도할 만큼 예뻤다.

성년을 맞이하며 그녀의 성숙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 소녀 시절에는 없던 발랄한 청초함까지 근래 느껴지고 있었다. 참 신비한 매력이다.

3년 전에도,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지금의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그 생각이 매번 틀렸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야.”

“네, 오빠.”

“만약 가장 예쁜 시절을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패널티는 없다고 하고.”

“영원히는 안 되나요?”

“……그건 악마의 거래지.”

“쳇. 역시 안 되는구나.”

송하나는 진심으로 아쉬운 듯이 작게 투덜거렸다. 그리고 곧 말했다.

“지금 당장 해달라고 할래요.”

“……특별한 이유라도?”

“전 거울 볼 때마다 지금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요. 피부도 가장 탱글탱글하고. 여기서 더 나이 먹으면 이제 조금씩 변해가겠죠.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하지만 착실하게.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해달라고 할래요.”

“…….”

뜻밖의 대답에 한서진은 입을 다물었다. 좀 더 낭만적인 반응을 기대했는데, 맥이 빠질 정도로 계산적인 대답이다. 아니, 이제 만 20세이면서 무슨 생각하는 게 저래?

“지금보다 두세 살 더 먹으면 더 성숙하고 예뻐지지 않을까?”

“피부는 스무 살부터 이미 노화가 시작돼요. 화장으로 그걸 감출 뿐이죠. 저 고등학생 시절에 비해서 지금 피부 많이 상한 거라고요.”

“그, 그렇구나. 내가 몰랐네.”

“그래서, 언제 해주실 거예요?”

“응?”

어느새 상체를 가슴팍에 기댄 송하나는 짓궂은 웃음을 띤 채 코앞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느다란 숨소리가 유혹하듯이 귓가를 어루만졌다.

“H시리즈 3번째 개발하신 거 맞죠? 그래서 지금 물어보신 거 아니에요?”

눈치 빠르기로는 정말 귀신같다. 한서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직은. 그냥 구상만 하고 있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피부 노화 방지면 소비자들한테 백퍼센트 먹혀요. H-2 못지않은 반응이 있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연구 중이야. 언제 완성될지는 나도 몰라.”

거짓말 한 게 있다면,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신효진이 알려준 것 중, 레노지안에는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소수 귀족들만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레노지안 미용법에 부쩍 관심이 생긴 그는 H시리즈처럼 지구에도 재현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 나름 고민 중이었다.

“오빠, 전 지금이 가장 예쁜데…… 그럼 좀 서둘러주시면 안 돼요?”

왠지 수척한 간절함이 담긴 눈빛이 남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오빠도 제가 가장 예쁜 때가 오래오래 유지되면 좋지 않아요?”

“서둘러야겠다.”

한서진은 벌떡 일어났다.

북한 재건을 위한 특별 국채 조달 법이 제정되었을 때, 대기업들은 이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국채를 사는 것은 밑이 없는 독에 물을 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한서진을 위해서 제정된 법이었다. 북한 사정을 긍휼히 여긴 그가 편리하게 기부금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른바 한서진 기부법. 그래서 한서진 외에 아무도 국채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북한에 대한 권리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국채를 매입해야 했다. 많은 기업들이 어떻게든 국채를 사들이기 위해 애썼지만, 기발행된 국채 전량은 이미 한서진이 사들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국가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미 1조 달러가 넘는 기금이 국고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추가 발행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북한이 황무지에서 금덩이 개발지로 탈바꿈한 지금, 감히 한서진이 숟가락 얹어 둔 것을 탐내겠다고 덤비는 것도 몹시 부담스러웠다.

모두가 입맛만 다시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서나 등 야심 넘치는 기업인들은 어떻게든 한서진의 양해를 구해 북한 이권 개발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방법을 뚫고 있었다.

그러나 한서진은 두문불출이었다.

“연구실에서 도통 나오시질 않는다고 합니다. 뭔가 대단한 아이템을 구상 중인 듯한데, 주변 사람들도 그게 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고 합니다.”

“종류가 뭔지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요.”

한서진은 심심할 만하면 세상을 뒤흔들어놓을 연구 결과를 떡하니 내놓는다. 그것도 하나같이 실생활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뿐이다.

그가 또 새로운 연구에 빠져들었다는 소문에 국제시장 주가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널뛰기를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시판 안 할 건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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