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8 새 집권세력 =========================================================================
‘오리할콘?’
한서진은 뒤에 있는 화면을 자세히 살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은색 광택, 오리할콘이 틀림없었다.
원거리에서 전송 영상을 통해 본 것이라 육안으로 직접 본 것만큼 확실하진 않지만, 오리할콘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어째서 오리할콘으로 변한 거지?’
북한 지역에 응집된 에테르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오리할콘이 만들어졌다면, 일단 설명은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게 빠졌다. 바로 오리할콘은 미스릴이 에테르의 과부하를 견디는 과정에서 변질된 물질이라는 것이다.
즉 오리할콘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그 땅이 미스릴로 이뤄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스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해수에 녹아 있는 물질이다. 그것도 매우 복잡한 공정을 통해 추출한다.
육지에서 미스릴 광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오염된 평양 지대가 알고 보니 미스릴 덩어리다? 이건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저게 대체 뭐야?”
“에테르가 대지에 무슨 변화를 끼얹은 건가? 저거, 위험한 건 아니지?”
“혹시 계속 번지는 건 아니겠지. 보기만 해도 불길한데.”
“왜, 그래도 뭔가 예쁜데. 마치 백금 같잖아.”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한서진은 다급해져서 자리를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발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한서진은 급히 항공기를 타고 평양 지역으로 이동했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비행기로, 헬기보다 이동이 빨라서 유익한 모델이었다.
「변화 작용이 멈췄습니다.」
평양 상공에서 감시 중인 조기경보기에서 들어온 보고였다. 한서진도 기체 내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확인 중이었다.
끝없이 뻗어 나갈 듯하던 변화 작용이 완전히 멈췄다.
폐허가 된 평양은 중심에 지름이 약 4km에 달하는 은색 원이 생긴 뒤였다.
한서진은 북한 전역을 뒤덮고 있던 과밀화된 에테르의 흐름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몇 번이고 샅샅이 훑었지만, 이제 북한은 완벽하게 안정된 지역이었다.
‘다른 곳에는 오리할콘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평양 외 다른 지역에는 오리할콘으로 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소량의 변화만 일어난 건 아닌가 싶어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지만, 한서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오리할콘화 현상은 평양에만 일어났다는 것을.
‘과밀화된 에테르를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모든 에너지가 평양으로 결집했고, 그 결과로 대지의 일부가 오리할콘으로 변한 게 틀림없어.’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의 뇌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의문이 있었다.
‘미스릴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혹시 과거 북한을 덮친 에테르 폭발 때 평양 지대 일부가 미스릴로 변했나? 말도 안 되는 발상이지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육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해.’
먼 거리에서, 그것도 영상을 통해 본 거라 통찰안으로 꿰뚫어보는 것도 제약이 있었다. 어서 빨리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봐야 했다.
그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수송기가 드디어 평양에 도착했다.
땅에 발을 딛자 사방이 탁 트인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북한 독재의 상징이었던 도시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얗게 변한 폐허, 그리고 푸른빛을 띤 은색으로 변한 대지뿐이다.
한서진은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에 힘을 주고, 은색 대지를 바라보았다.
은색으로 변한 땅에 담긴 진실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리할콘이다. 틀림없어.’
여기까지는 원거리에서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했을 때와 동일한 결과. 그러나 육안으로만 확인 가능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불안정해.’
분명 오리할콘은 맞았다. 입자의 구조, 형태 등 모든 것이 동일했다.
그러나 그가 알던 오리할콘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똑같은 재료로 지은 집이라도 튼튼하게 지은 것과 부실하게 지은 것의 차이라고 할까.
현대 과학으로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통찰안은 오리할콘의 구조 형태가 지닌 불안정함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동시에 그 이유까지도.
‘과부화된 에테르가 미스릴이 아니라 일반 광물에 억지로 스며들었구나.’
미스릴이 아니라 일반 광물이 변화해서 만들어진 오리할콘. 그래서 통찰안을 통해 그 불안정한 성질이 보였던 것이다.
‘짧으면 6개월, 길어야 3년.’
‘가품’ 오리할콘이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리할콘의 형태는 붕괴하고 일반 광물로 돌아가게 된다.
에테르는 광물을 오리할콘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소실되었기에, 그 안에 남아 있지는 않았다.
‘위험하지는 않겠어.’
남들 눈에는 황금의 산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이 보이는 그에게는, 길어야 몇 년 안에 사그라질 허망한 거품에 지나지 않았다.
“오리할콘이다! 오리할콘이야! 으하하하!”
니트론 박사는 신이 나서 평양으로 달려왔다. 함박웃음이 가득한 채 수송기에서 내리는 그를 보고 한서진은 괜히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뭐? 그게 정말이오, 한 박사?”
“그렇습니다, 교수님.”
“말도 안 돼. 이 많은 금싸라기들이…….”
진실을 들은 니트론은 넋이 나간 채 오리할콘 대지를 둘러보았다.
이 어마어마한 귀금속이 길어봤자 몇 년 안에 다 붕괴되고 말 거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활용 가치로는 충분할 겁니다. 연구에 실컷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어차피 없어질 거, 마음 편하게 쓰면 되잖아요.”
“그래도 너무 아까운데…….”
니트론은 아쉬움을 억누르지 못한 채 주먹을 쥐었다. 절절한 마음이 표정에 가득 흘렀다.
그는 퍼뜩 생각난 듯이 말했다.
“참, 그럼 북한 지역은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 맨몸으로 막 들어와도 되는 건가요?”
원래 북한 지역은 높은 농도의 에테르로 가득 뒤덮여 있어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하지만 한서진은 지금 맨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설마?
“네, 이제 안전합니다.”
“정말?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영구적인 건가요?”
“나중에 또 에테르 과밀 현상이 나타날지 모르니 영원하다고는 확답을 못 드리지만, 일단 북한 전역을 뒤덮고 있던 과밀 에테르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농도의 에테르만 남아 있습니다.”
“오오, 그거 잘 됐군요! 주가 오르는 소리가 들려! 역시 팔지 않고 꾹 참길 잘했어!”
“……주식하고 계셨습니까.”
“하하, 아주 조금만 했어요. 대북 투자로 이익을 취할 기업 관련주 조금 샀는데, 오를 기미가 안 보여서 전전긍긍했지요. 그래도 내 한서진 박사를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이렇게 날아오르게 해줄 줄 알았어요!”
날아오르게 해주다니, 뭘? 니트론의 주식을?
아무튼 숨길 일도 아닌지라, 한서진은 곧장 북한이 안전해졌음을 발표했다. 물론 송하나와 H그룹에 사전 귀띔을 해주어 정리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안전합니다.
대특종이 매스컴을 장식했다.
지상파 언론, 인터넷 신문사 등 가리지 않고 한서진의 인터뷰를 무한으로 반복 재생했다.
북한 개발 관련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한가를 쳤고, 뜻밖의 대선 결과에 시무룩해 있던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늘어난 영토에 기뻐했으며, 북한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송하나가 조금 아쉬움을 보이긴 했다.
“북한 땅을 전부 다 사들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좀. 지금도 충분히 많이 사들이지 않았어?”
“사실 아직 산 건 아니죠. 이제부터 노력해야죠.”
북한이 엉망이던 시절에도 송하나는 야금야금 독점적 투자개발권을 지닌 토지를 확보해나갔다. 매입이 아니라, 차후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부지 사용권’을 미리 확보한 것이다.
이는 당장 토지 매입이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토지 확보책이었다. 세월이 흐른 훗날, 부지 사용권이 토지소유권으로 전환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
그 면적만 해도 이미 서울을 초과한 상태였다.
“어차피 무주공산, 어중이떠중이가 차지하는 것보다 오빠가 갖는 게 훨씬 나아요. 오빠를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잠깐, 내 이름으로 확보한 거야?”
“그래야 하이패스거든요. 명분도 서고요.”
H그룹의 이름으로 확보한 부지도 제법 되지만, 아무래도 한서진의 이름보다는 못하다. 훗날 생길지 모를 국민들의 반감을 줄이기에도 한서진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만큼 적절한 게 없다.
“나중에 오빠만의 근사한 왕성을 세우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아직도 땅이 모자라요.”
“……지금 있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뭐 특별국채가 있으니까. 그걸로 담보가 설정되어 있으니 다행이네요.”
“안 듣고 있구나…….”
“앗, 죄송. 듣고 있었어요. 그냥 딴 생각에 너무 빠져서.”
북한 특별국채법은 채권 상환을 보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담보권을 세부조항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담보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 지역의 토지다.
국채를 보유한 채권자들은 총 발행금액에서 개개인이 가지는 매입금액의 비율에 따라 토지에 대한 담보권리가 있었다.
즉 상환을 못하면 땅이라도 넘겨서 빚을 청산하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물론 담보의 종류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천문학적인 재정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땅을 넘기는 게 정부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저렴하고 편리했다.
“오빠, 국채 더 살게요. 이참에 2조 달러를 꽉 채워야겠어요. 아니, 아예 10조 달러까지 털어 넣을까요?”
“……내 통장 잔고를 다 합쳐도 그 정도는 안 될 걸.”
“오빠가 장래 벌어들일 돈을 지급한다고 예정하고 미리 국채를 받으면 되죠. 정부 입장에서도 10조 달러가 안정적으로 꾸준히 들어오는데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그거 몇 년이면 충분히 벌고도 남잖아요.”
“10조 달러를 대체 어느 세월에.”
“일 년에 1, 2조 달러씩 버시면서 그러시면 어떡해요. 아, 지금은 더 벌지도 모르겠네요. H 시리즈와 희토류 운석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던데.”
그전까지는 반도체 판매와 특허 로열티가 주수입이었다. 그것만 해도 몇 달에 몇 천억 불씩 벌어들일 정도로 엄청났다.
헌데 여기에 간 재생 치료제, 발모 및 제모제, 그리고 우주 희토류 금속 매각 대금까지 가세했다. 과연 지금 그의 통장에 든 돈은 얼마나 될까?
“통장 정리 한 번 해야겠어요.”
선거 이후, 도원패의 대통령 자격에 관한 논란이 꾸준히 일었지만 그것은 이제 완전히 파묻혔다. 북한이 안정화되었다는 소식이 한반도를 강타한 것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언제 대선을 향해 있었냐는 듯이 북한 지역을 향했다. 그 넓은 땅이 안정화되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국민들의 들뜬 마음은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북한 땅 사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북한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세요.”
오랜만에 전국적인 청탁붐이 일었다.
사인, 기업을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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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몇 번 없을, 큰 거 해먹을 수 있는 건수가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