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77화 (377/609)

00377  새 집권세력  =========================================================================

도원패가 여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었을 당시, H그룹은 발 빠르게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H그룹은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치인 비리 자료가 상당했고, 그중에는 도원패 것도 있었다.

검찰에 넘기거나 혹은 언론에 터트리기만 해도 도원패를 거꾸러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칼집에서 칼을 뽑기 직전, H그룹은 그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이대로 놔두자고?”

백철중은 딸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네, 아빠.”

“아니, 어째서? 도 의원 그 놈이 한 서방한테 어떤 개소리를 했는지 너도 알잖아? 나랏돈으로 출세해놓고 왜 국내에는 투자를 안 하느냐 개소리 지껄인 거 기억 안 나? 한 서방이 자기 힘으로 컸지 어디 나라가 해준 게 뭐가 있어? 지금까지 한 서방이 이 나라에 해준 게 얼만데, 그런 은혜도 모르는 머저리 같은 놈은 지금 이럴 때 딱 떨어뜨려서 지옥을 맛보게 해야……!”

“떨어뜨리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 전 대중의 선택이 어떤지 보고 싶어요.”

“……대중의 선택?”

말에서 뼈가 느껴진다. 백철중은 멈칫해서 딸의 표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도 후보는 드러난 결격 사유가 많잖아요. 사실 당선되리라 보기 힘들어요.”

“그야 그렇지. 실체를 따져 보면 상대 후보하고 거기서 거기지만, 그거야 대중이 알 리가 없고.”

여당 출신인 전 대통령이 워낙 큰 흙탕물을 뿌려놓은 것 때문에 도원패는 여러모로 악재 투성이였다. 백철중이 봐도 현재 여론에서는 여당 간판을 얹고는 당선을 기약하기 힘들었다.

최선이 안 된다면 차라리 차악을. 국민은 결국 그런 선택을 내릴 것이다.

상대 후보가 진실로 차악인지는 후에 드러나야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배경은 그렇다.

백철중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늘함을 느끼고 물었다.

“도가놈이 당선될 것 같단 거냐? 네 생각이냐, 아니면 한 서방 생각이냐?”

“오빠는 그렇게 예측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한 번 지켜보려고요.”

“…….”

“아빠도 아무것도 말고 일단 지켜보시면 안 돼요?”

그저 대중의 선택이 보고 싶다고 했다. 끌어내리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으니.

그 말인즉슨, 도원패를 가엾이 여기거나 이용하기 위해 놔두자는 게 아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TF팀의 전략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대중을 계몽이라도 하려고? 지금 싹 고르기를 하겠다는 거냐?”

송하나는 웃음기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건 아니라는 뜻이다.

“상태 진단은 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어떤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 TF팀의 전략을 수정하려고요. 아마 수정해야 될 것 같지만요.”

딸의 욕심은 이미 알고 있다. 이 나라에 약혼자가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게 만드는 것.

한서진이 이 땅에 욕심을 내지 않기에 오히려 딸이 더욱 욕심을 드러내고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자신을 닮았다고 흐뭇해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여물어버린 모습이 아쉽기도 했다.

대중의 선택과 결과를 보고,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거기에 전략을 맞춰 나간다.

그 간단한 대답에서 백철중은 딸이 그리는 밑그림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딸이 품안의 아이가 아님이 애석했다.

“알겠다. 나는 손을 떼고 지켜보마.”

취임식을 마친 도원패 대통령은 열정적으로 직무를 시작했다. 그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지 않으며 국정에 몰두했다.

내각 구성을 완료한 대통령은 20개 대기업 수뇌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진성그룹 등 다른 20대 대기업들은 회장이 직접 참석했으나, 유일하게 H그룹만 회장 대신 부회장이 참석했다.

“백철중 회장님이 많이 바쁘신가 보군요.”

불편한 심기를 감춘 대통령의 뼈아픈 말이었다. 그러나 부회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연세가 워낙 고령이신지라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중요한 사업부 한두 개만 간간이 챙기시는 정도입니다.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은 거의 제가 하고 있습니다.”

H그룹을 대표하는 건 나니, 할 말이 있으면 나에게 하라. 그걸 정중하게 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틀린 말도 아닌 게, 그는 오너 일족이 아닌 능력 하나만 보고 선임된 전문경영인 출신이었다.

대통령은 백철중이 직접 오지 않은 게 불편했지만 더 이상 물고 늘어지기도 그랬다.

청와대 오찬은 딱딱하면서도 긴장감이 서린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요즘 서민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청년 실업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보니 어깨가 무겁군요.”

오찬을 즐기며 대통령은 간간이 자신의 정책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경제를 주름잡는 여러분들 기업이 특히 많이 도와주셔야 정부가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원호그룹은 최선을 다해 정부를 돕겠습니다.”

H그룹과 진성그룹을 제외한 대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대통령에게 호의 담긴 멘트를 건넸다. 그들의 지지 의사에 대통령의 안색이 밝아지며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서나도 덤덤히 말했다.

“국가와 국민을 돕는 일이라면 당연히 나서야지요. 저희 진성그룹도 힘을 아끼지 않고 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회장.”

테이블의 시선이 일제히 H그룹 부회장에게 향했다. 은연중에 분위기가 떨리는 듯했지만, 부회장은 여유 있게 정리했다.

“저희 H그룹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에 열과 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고마워요.”

미묘한 뉘앙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통령의 목소리가 조금 탐탁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순탄하게 넘어갔다.

청와대 일정이 끝나고, 대기업 총수들은 각자 전용차에 올랐다. 검은 마이바흐 뒷좌석에 앉은 이서나는 그제야 얼굴에서 힘을 풀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벌써부터 군기 잡기인가요? 이번 정권도 맞춰주려면 어지간히 피곤하겠어요.”

“H그룹은 벌써 길들이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대놓고 부회장직을 내보낸 걸 보면. 심지어 전문경영인 출신을.”

비서실장의 말에 이서나의 얼굴이 살짝 심각해졌다.

전문경영인이 나쁜 게 아니다. H그룹은 이미 웬만한 그룹 경영 실무는 전문경영인들이 맡고 있었다. 오너 일가가 그룹에서 거의 축출되기도 했고, 백철중이 전면적으로 경영 방침을 수정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이 원한 것은 그룹 오너나 혹은 그 직계의 참석이었다. 대통령이 오찬 내내 어딘가 표정이 불편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말 도원패 후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여론이야 언제나 반전이 있는 법입니다.”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데 수천만 길 사람 속을 알기란 참…….”

이서나는 허무한 듯이 중얼거렸다.

당연히 야당 후보가 당선될 거라 생각하고 그룹의 향후 경영 방침을 세워놨는데, 도원패가 당선되면서 모든 구상이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나라 전체가 얼떨떨해하고 있어.’

야당 후보가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차악이라는 점만큼은 대대적으로 강조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재계도, 정계도, 여당도, 심지어 국민들도 의외의 결과라며 황당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얼떨떨한 것은 도원패 대통령 바로 자신일 것이다.

모든 게 혼란 투성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터널에 진입한 것만 같다.

출구가 어디로 닿아 있는지, 언제쯤 터널이 끝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니 더 답답하다.

차라리 한서진이 나서서 시원하게 이끌어주면 좋으련만, 그는 한국을 지휘하는데 관심이 없다.

‘모두가 한 박사 눈치만 보고 있는 셈이잖아.’

피식 쓴웃음이 터진다.

지금의 불안정함도, 혼란도, 어려움도, 모두 한서진이 나서기만 하면 다 끝난다. 그러나 큰 힘을 지닌 거인은 정작 세속을 잊은 듯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중이다.

그때 태블릿으로 뭔가를 확인하던 비서실장이 다급히 말했다.

“회장님, 급히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요? 검찰이 도 대통령 주변을 수사라도 한대요?”

“그건 아닙니다! 한서진 박사님이 북한 관련해서 중대 발표를 한답니다!”

“뭐라고요?”

경기도에는 한서진이 매입한 연구소 사옥이 있다.

원래 부지만 다져놓고 건설 중에 부도가 난 것을 저렴하게 매입해서 새로이 지어올린 것이다. 덕분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연구소 시설은 주로 니트론 교수와 제자들로 구성된 팀, 그리고 설계사무소 직원들로 구성된 팀이 이용한다. 한서진도 사설 연구소와 대학 연구소를 번갈아 이동하며 연구 활동에 전념하곤 했다.

평소 늘 한가하던 경기도 연구소에 수많은 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들이닥쳤다.

“한 박사님, 북한 에테르 스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북한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복구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됩니까?”

“이 장비는 안전한 것인가요? 한 말씀 해주시죠!”

“한 박사님!”

한서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정신없이 질문이 터져 나왔다. 눈이 멀 듯한 플래쉬 세례가 이어지자 경호원들이 나서서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흥분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사전에 한서진이 발표한 연구 테마는 놀라운 것이었다.

「에테르 스톰 광역 해제」

한서진의 뒤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 상단에 당당히 떠오른 표제였다. 그 아래 화면에는 황량한 벌판과 산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북한의 현재 모습이었다.

그는 소란이 적당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마이크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제 연구 발표에 참여해주신 기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발표할 건 다름이 아니라 인체에 위험할 정도로 응집된 에테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흩어버리는 연구입니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쥐 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타각타각거리는 타자 소리만 들렸다.

“국지 지역의 응집 에테르를 흩어버리는 것은 마력 칩셋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으나, 북한처럼 광활한 지역에 걸쳐 뭉친 에테르는 일시적으로 흩어버린다 해도 다시 재결집을 하는 반응 때문에 지금까지 문제 해결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형 디스플레이에 둥근 원반 안테나를 달고 있는 커다란 항공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특수하게 생긴 직사각형 금속 사면체가 떠올랐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상공에서 오염된 지역을 향해 에테르 제어 파장을 사출해, 뭉친 에테르 에너지를 동시에 안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미군에서 제공해준 15기의 조기경보기가 아니라면 이 같은 방법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한미군 장교 및 장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서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발표회에 참석해 있던 미 장성들의 안색이 환해지며 박수를 쳤다.

원리는 간단했지만, 신효진이 레노지안에서 가져온 고급 지식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한서진은 신효진이 가져온 지식을 통해 새로운 에테르 제어 파장 조사장치를 만들었고, 그것을 15기의 조기경보기에 장착해 북한 전 지역을 뒤덮도록 배치했다.

파장 조사장치는 타르타로스 2의 제어를 받아 응집된 에테르가 흩어지게 하는 파장을 발사한다.

이 모든 과정은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프라모델이 증식하듯이 응집이 해소되지 않은 에테르가 다시 북한 지역을 뒤덮기 때문이다.

“프로토 타입 제작에는 성공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고 바로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서진의 지시로, 북한 지역에 높이 떠 있는 15기의 조기경보기에 파장 조사명령이 전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을 발사하는 것인지라, 대형 화면이 비추는 오염된 지역이나 기체에 탑재된 파장 사출장치에는 아무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 저게 뭐야?”

누군가의 놀란 외침이 청중을 뒤덮었다. 한서진도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모니터는 폐허가 된 평양 지역을 비추고 있었다. 바로 에테르 폭발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검은 모래로 가득한 폐허의 벌판, 그곳이 눈에 띄게 변색하고 있었다. 대지 전체가 시리도록 차가워 보이는 은색의 광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서진은 주먹을 꾹 쥔 채 부르르 떨었다. 저것은 틀림없이…….

‘오리할콘?’

============================ 작품 후기 ============================

효진아…….

너 대체 뭘 베껴온 거니?

(사족)

후기에 사족이라니... 뭔가 웃기긴 합니다만-_-;;

리밋드림에서 도원패가 집권을 하게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제가 일부러 자빠뜨린 것도 있고, 다른 하나는 작중 사회에서는 그런 인물이 충분히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합니다. 작중 사회의 현재 수준에 걸맞는 정부라고 할까요.

김시형 같은 인물이 당선되면 좋겠지만 작품 내 사회는 아직 그런 환경이 조성될 만큼 사회 의식 수준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극단적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한서진과 송하나 가족들이 전부 짐싸서 한국을 나가버리면 김시형은 천하의 역적으로 몰려서 매장당하게 될 겁니다. 정치, 언론, 국민 모두에게 연속타를 맞고요.

그러니까 작중 사회는 아직 준비가 덜 됐습니다.

더 많이 아프고 괴로워해야 해욧!

물론 그 와중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밥그릇과 멘탈도 챙겨주고 있습니다. 차차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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