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2 대통령 사임 =========================================================================
의문의 군중 해산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듯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떠들어대던 미국 주요 언론에서는 이제 자취조차 완전히 감췄다.
국내 지상파 채널에서도 더 이상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헌정사상 청와대에서 최초로 체포당한 대통령 및 그 측근들의 유죄 유무와 향후 처벌 방향, 그리고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놓고 매일같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것은 눈치 빠른 이가 보기에 대중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게 명백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런 지적조차도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표면상으로 한국, 그리고 미국 내에서 의문의 군중 해산 사건은 완전히 묻힌 듯이 보였다.
국내 여론의 관심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만 온통 쏠려 있었다.
“이제 정말 괜찮은 거죠?”
송하나는 여전히 걱정을 거두지 못한 음성으로 물었다. 퇴원하고 나서 벌써 몇 번째더라. 한서진은 전혀 지겹지 않은 태도로 자상하게 대답해주었다.
“응, 정말로 괜찮아. 그냥 좀 과로했을 뿐이야.”
“아닌데요. 영상 보면 오빠가 시위대 때문에 너무 놀라고 스트레스 받아서 정신 잃은 것처럼 보이던데.”
“하하…… 진짜 아무렇지 않대도 그러네.”
당시 영상을 보면 그렇게 오해할 법도 했다. 물론 다른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송하나는 몇 번이고 캐묻고, 이리저리 살피고서야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다. 물론 근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상한 음모론 때문에 요즘 죽겠어요. 하여튼 사람들은 쓸데없는 루머 생성에 열중한다니까요.”
그녀는 일이 늘어났다며 투덜거렸다.
“지혜 언니도 요즘 그래서 골치 아픈가 봐요. 골라내야 할 게 너무 많아졌대요.”
“음모론…….”
한서진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과연 단순한 음모론으로만 치부하고 있을까.
“하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뭐가요?”
“정말 음모론 같아?”
“그럼 아니에요?”
아무렇지 않은 평온한 눈빛으로 반문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체해주는 건지. 한서진은 문득 그게 알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아무거나 물어도 되고.”
“…….”
“그 정도야 뭐 어때. 어차피 우리 결혼할 사이인데.”
“정말 솔직히 물어봐도 돼요?”
“당연하지.”
송하나의 표정이 조금 변하며,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서진은 오히려 그런 반응이 반가웠다.
“오빠는 저한테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어요?”
그건 한서진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 사건에 관해 어떻게 된 건지 해명이나 설명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질문이었던 것이다.
“말해줄 수 있을 만큼만 말해줘요. 거짓말은 하지 말구요.”
한서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덤덤한 말투에 가슴이 희미하게 저렸다. 저 말은, 애초에 자신이 전부 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는 뜻이 아닌가.
입술을 깨물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군중은 내가 해산시킨 게 맞아.”
“…….”
“최면이나 세뇌 같은 건 아냐. 나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절대 네가 상상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힘 같은 게 아니야. 당장 너한테 라면 끓여오라는 지시조차 강제할 수 없어. 그건, 그냥…….”
“그것도 에테르를 활용한 건가요?”
“그건…….”
말을 쏟아내던 중 멈칫한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아서의 권능, 왕명은 과연 에테르를 이용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마 맞을 거야. 나도 확실하게는 몰라.”
“아무튼,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음모론이 가짜가 아니라는 거네요? 오빠가 한 게 맞다고 하신 거 보니까.”
“……그렇지.”
“그럼 됐어요.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송하나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다정히 쥐었다.
“전 사실대로 말씀해주신 것만 해도 고마워요. 그만큼 절 믿으신다는 거잖아요.”
군중 해산. 그것은 자신이 한 것.
그 사실을 말해준 것만으로도 송하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서진은 왠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레노지안…….’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며 그 충동을 참아냈다.
꿈에 관한 비밀은 모르는 게 안전하다. 오히려 그걸 알게 됨으로써 위험에 빠지는 게 아닐지 두려웠다.
결국 입을 다문 그는 퍼뜩 든 생각에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잠깐 따라와 볼래?”
“네? 어디를요?”
“일단 와 봐.”
한서진은 그녀를 데리고 보안룸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보안룸의 어느 격실 한곳이었다.
그곳은 돔형으로 된 조그마한 방으로, 실내 사방이 온통 둥근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타르타로스 시리즈가 설치된 보안룸은 몇 차례에 걸쳐 확장을 했다. 한서진 외에는 누구도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확장 작업 역시 하나부터 끝까지 그가 직접 완수했다.
송하나도 조금 당황했다.
“여긴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은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너는 괜찮아. 보여줄 게 있어. 잠시만.”
한서진은 작동 버튼을 누르고, 간단한 명령을 입력했다.
사방을 둘러싼 스크린에 일제히 불이 켜지며, 수도 없이 많은 문자와 그림, 문서 등의 자료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건 마치 방대한 정보의 해일에 깊이 잠긴 듯한 경험이었다. 음성이 사라진 공간에서, 잠시도 끊어지지 않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송하나는 중앙에 선 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깨달은 게 있는지, 놀란 얼굴로 한서진을 돌아봤다.
“오빠, 이건?”
“이게 바로 TF팀에 준 검색 엔진의 원형이야.”
“원형이라고요?”
송하나는 질린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한서진은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물론 여기 보이는 건 필터링 된 아주 일부에 불과해. 전부를 한 번에 띄울 수는 없으니까.”
“필터링이요?”
“필터링 조건은 얼마 전 있었던 군중 해산 사건. 여기에 나타난 전부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그 사건을 언급한 모든 객관적 자료라고 할 수 있어.”
영상, 문서, 텍스트, 댓글, 잡담.
자료의 형태는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인간이 보존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관련 정보가 빼곡하게 나열되고 있었다.
“여기 표를 보면 1분 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내에서만 총 12억 8670만 4239회 언급됐어. 그중 민간인이 아닌 주요 공무상에서 논의된 것은 98,713회. 그뿐만 아니라 다른 각 나라, 그리고 지구 전체 통계도 낼 수 있어. 어때?”
입을 다물지 못하던 송하나는 다소 창백한 얼굴로 한서진을 바라보았다.
“……놀라워요. 어떻게 이런…….”
“타르타로스 2의 정보 수집 기능 덕분이야. 디지털 형태로 보존 가능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수집하고, 추려낼 수 있거든.”
물론 한계는 있다. 실시간으로 누군가의 대화를 도청하거나, 펜으로 종이에 쓴 것 따위는 수집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디지털적으로 처리된 정보에만 한정된다.
그러나 그 대화를 도청한 어떤 기기가 있다면, 그 기기에 저장된 정보를 빼내는 것은 가능하다.
“TF팀에 준 검색 엔진이 이렇게 대단한 원리였어요?”
“맞아. 내가 준 단말기를 통해 부분적인 권한을 행사해서 필요한 정보를 열람하는 방식이야.”
물론 TF팀에 허락된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정보량의 비율로만 따지자면, 타르타로스가 수집 가능한 전체 정보량의 1억 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한서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시스템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겠니?”
비록 어린 나이지만, 송하나라면 타르타로스 2로 구축한 이 정보수집분석 시스템의 놀라운 파급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손톱을 깨물었다.
“앉은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다다볼 수 있겠어요. 단지 수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빅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분석 결과까지 정확히 추론해낼 수 있다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지도 알 수 있어.”
“네?”
송하나는 화들짝 놀랐다. 한서진은 이상하게 그녀가 놀라는 모습에 즐거워졌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입력장치 앞에 섰다. 그리고 한 손으로 타닥타닥 키를 누르며 몇 가지 명령을 입력했다.
“아주 간단한 확률과 변수 계산이야. 물론 지금까지는 그 작업량이 방대해서 불가능했을 뿐이지.”
타닥타닥거리는 키 누르는 소리가 그의 차분한 음성에 맞춰 반주처럼 울렸다.
디지털에는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정보가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예측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고, 그 안에서 정보가 품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며, 변수를 적용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날씨까지 100% 정확히 예측하는데, 하물며 인간 사회의 선택을 예측하는 것쯤이야. 소수의 행위를 예측하는 것보다 수천 만 명의 선택을 예측하는 게 훨씬 쉽다.
그 방대한 작업과 계산을 할 수만 있다면.
“도원패, 그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될 거야. 타르타로스 2의 예측이지.”
“……!”
귀에 익은 이름에 송하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여당 중진 의원으로, 한지혜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재벌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하며, 여의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제법 있어 유력한 대권 인사이기도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서진은 아예 못을 박듯이 확정적으로 선언했다.
“당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돼요?”
“확률은 의미 없어. 예측 결과만 있을 뿐이지. 다음 대통령은 도원패, 그 사람이야.”
“아직 선거전은 시작도 안 됐는데요. 선거 활동에 따라서 유권자들의 마음도 변할 수 있잖아요.”
“각 당이 숨기고 있는 폭로 자료, 범위, 공개할 수 있는 범위와 폭로 의사, 순서, 그 모든 과정을 취합했을 때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 변화까지 반영한 거야. 후보자들의 건강, 재정, 가족 문제 등도 당연히 계산에 포함돼 있지.”
한서진은 한 마디 덧붙였다.
“물론 이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야. 내 행동은 대선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테고, 그것을 반영한다면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거야.”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송하나는 더 이상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럼 오빠는 그냥 가만히 보고 계실 거예요?”
“관심 없으니까.”
도원패는 한서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대권을 쥔다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이 나라의 누구라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자멸할 각오가 없다면 시도조차 못할 것이다.
“만약 제가 나서서 막는다면요?”
“그것까지 반영한 결과야. 결국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결과는 바뀌지 않아.”
“혹시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미국 같은 타국에서 작정하고 개입한다면…….”
“선거 기간 동안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천재지변은 일어나지 않아. 외국은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개입 안 해. 그런 것도 당연히 반영했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변수를 적용해서 낸 예측이거든.”
“…….”
“어때? 꽤 재미있지?”
한서진은 잔잔하게 웃었다.
========== 작품 후기 ==========
앞으로 타르타로스 2를 큰형님이라고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