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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69화 (369/609)

00369  대통령 선거  =========================================================================

뚜뚜, 거리는 기계의 낮은 고주파 소리가 들린다.

약한 수면 조명이 눈꺼풀을 두드린다.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고, 주변을 둘러싼 고요함이 느껴졌다.

부스스 눈을 뜬 한서진은 눈동자만 굴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낯선 병실이었다.

‘병원?’

그렇다면 꿈에서 튕겨 나왔나?

그 순간 옅은 통증이 온몸에서 깨어나 비명을 질렀다.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통증의 세기가 약했기 망정이지, 조금만 통각이 높았어도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아픔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한서진은 꿈을 생각했다.

‘그 남자는 누구지?’

언뜻 보기에는 아서 왕 못지않은 고귀한 신분으로 보였다. 하지만 레노지안에 아서 왕 외에 그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수백 마리가 넘는 초룡과, 수만 마리가 넘는 용의 군단이 아직도 뇌리에 강렬히 남아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많은 초룡이라니.’

지금까지 한서진이 본 초룡은 아서 왕이 데리고 있는 개체 하나뿐이었다. 일반 용은 몰라도, 그 외의 초룡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방금 꿈에서 본 아서 왕을 닮은 그 남자는 수백 마리가 넘는 초룡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게 대관절 어떻게 된 것일까?

―신좌의 탈환.

일찍이 아서 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래 전 카드리안 가문은 신으로부터 패배했고, 언젠가는 신좌를 다시 탈환할 것이라는 사명.

혹 조금 전 보았던 꿈은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오빠. 정신이 드셨어요?”

“하나야.”

“놀랐잖아요. 정말.”

“미안해. 걱정 끼쳐서.”

커다란 눈망울이 다시금 붉어진다. 한서진은 말을 안 듣는 팔을 억지로 들어 그녀의 뺨을 쥐었다.

“나 이제 괜찮아.”

의문의 군중 해산은 갖가지 음모론과 괴담을 양성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었다.

1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어떠한 일사불란한 통제 체계 없이, 동시에 해산해서 귀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수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30세 청년이 80세까지 산다 치고, 죽을 때까지 매주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적으로 0에 수렴한다는 말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포장했을 뿐이다.

“심지어 뒤쪽에 있는 군중들은 전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곳이 한서진 박사의 사택이라는 것을 몰랐거나, 들었어도 믿지 않은 이들이 많았어요.”

혼란 그 자체였던 군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멈추고, 곧바로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궁리하고 뜯어보아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어떤 이들의 증언이 뉴스를 탔다.

「사임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반대하기 위해 광장에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행진하고, 시위 장소가 한서진 박사님 사택이 되더군요. 저는 사실 그곳이 한서진 박사님 사택인 줄도 몰랐습니다. 아니, 지금 시위대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서 갈팡질팡했어요.」

「그냥 휩쓸렸을 뿐이에요. 그러다가 거기가 한서진 박사님 사택이라는 걸 알고 나서 당황했습니다. 아, 큰일 났다, 우리가 지금 감히 성역을 침범했구나, 어서 빨리 나가야겠다, 그냥 머릿속이 패닉 상태가 돼버렸어요.」

「근데 정말 이상했어요. 전 뒤쪽에 있어서 상황 파악도 안 됐고,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어요. 그저 다른 사람들에 휩쓸려서 우르르 앞으로 전진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집에 돌아가야겠다, 여기서 이래서는 안 된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고요? 아니요, 그런 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어요.」

대통령 사임을 반대한다며 나온 극렬시위대도 대체로 그 때의 상황만큼은 비슷했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음모론과 괴담은 더욱 힘을 키워갔고, 의심의 눈길이 세연동 저택을 향했다.

―한서진 박사가 사람들한테 최면이나 세뇌 같은 걸 건 거 아냐?

표출하기 조심스럽지만 가장 많은 지지와 공감을 받고 있는 음모론이었다.

집단 최면이나 세뇌를 걸었다는 가설. 아무 근거도 없으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의외로 상당히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사람의 간도 무에서 새로 만들어내고, 소행성 파편을 정확한 위치에 떨어뜨리는 사람인데, 집단 최면 같은 거 못하겠냐?

―한서진 박사가 달 뒤편에서 몰래 슈터스타 디스트로이어 전함과 데스 스타를 건조 중이라 해도 난 놀라지 않을 듯.

―그 사람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100만 명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집단 최면을 거는 게 과연 가능할까? 다양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집단 최면설은 꾸준한 인기를 받으며 덩치를 키워 나갔다.

한서진 측에서는 아무런 입장 표명도 없었다. 기자들도 감히 취재하러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 한서진 박사 잘못 건드리면 우리나라 망한다.

―안 그래도 심기가 매우 불편하실 분이다. 보복 조치로 채권 회수 시작하고, 경제 제재 들어가면 우리나라 끝장이다.

―미국에 말해서 한미 동맹을 끊어버릴 수도 있을 걸? 한서진 박사가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100만 명의 군중이 엉뚱하게 자기 집으로 향했고, 월담까지 시도해서 성공했다. 누구라도 심기가 불쾌해할 것이다. 심지어 한서진은 이 나라에 상당한 은혜도 베풀지 않았나.

당장 그가 분노를 터트리며 이 나라를 떠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언론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최대한 조심해서 기사를 냈고, 인터뷰 문의 같은 것은 일절 시도하지 않았다.

보고 내용을 모두 확인한 크리스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영웅의 귀가’ 작전을 담당한 첸 차장은 딱딱한 얼굴로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 후 비로소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걸 말이라고 가져온 건가?”

“죄송합니다만, 모두 사실입니다. 각하.”

“이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건가? 멈추라는 말에 100만 군중이 모두 멈추고, 미개하게 살지 말라는 말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갔다고?”

“…….”

“한 박사가 발언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한 조짐은 전혀 없었다면서? 뒤에서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대다수 군중은 그럼 어떻게 된 건가?”

크리스 대통령은 보고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대관절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차라리 한서진이 집단 세뇌 장치 같은 것을 개발해서 테스트했다는 내용이었으면 신뢰했을 것이다. 적어도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니까.

“더 자세하고 확실한 내용을 알아올 때까지, 내 앞에 나타날 생각 말게나!”

첸 차장은 호통 소리를 마지막으로 물러나야 했다.

러시아 역시 비상이 걸렸다.

세연동 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군중 해산 사건에 관해, 포티 대통령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만약 인위적인 일이라면, 현존하는 기술로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이 정도로 커다란 집단 최면이 가능하다는 것은 들은 바 없습니다. 차라리 한서진 박사가 히틀러나 괴벨스를 훨씬 초월하는 선동가라고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할 정도입니다.”

그것이 반쯤 농담이라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기적적인 우연의 일치? 아니면 한서진의 작위?

누군가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에테르는 미지의 힘입니다. 오직 한서진 박사만이 그 온전한 모습을 알고 있죠.”

“…….”

적막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가 짐작하면서도, 함부로 쉬이 꺼낼 수 없었던 내용.

군중 해산 사건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의 힘은 에테르의 영역에는 조금도 닿아 있지 않다. 오로지 한서진을 제외하고는.

“이미 일찍이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뉴월드백화점라는 곳에 일어난 사건이죠. 단 하루였지만, 소비자가 한국 전역의 모든 매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2위에 빛나는 뉴월드백화점. 단 하루라 해도, 그 모든 매장을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시 뉴스에 나온 소비자들의 증언도 대체로 비슷했다.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늘은 별로 뉴월드백화점을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겼다. 그래서 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100만 군중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된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닌 필연이다. 누군가의 손으로 빚어진.

포티 대통령이 차분히 물었다.

“한서진 박사가 에테르를 이용한 강력한 세뇌 기술이라도 개발해두었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미국은 어디까지 얽혀 있을까. 러시아로서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정보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전자파 등 특별한 변화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는 귀가했지만,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일반 행인들은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합니다. 집단 세뇌술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집단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면, 일반 행인들도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세뇌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힘은 오로지 100만 군중만을 향했다.

“시위에 참여한 개개 구성원을 표적으로 하여 명령을 강제했을 수 있겠지요.”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라고 해야 하겠군요.”

“이미 에테르 자체가 인간에게는 그저 마법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 비밀스러운 기적은 오로지 한서진 박사만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지요.”

“…….”

분위기가 더욱 심각해졌다.

원리를 막론하고, 한서진이 정말 군중을 컨트롤하는 힘이 있다면, 러시아는 정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그와 친해지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든지 그를 자국민으로 회유해야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높이 떠오르는 미국의 광휘 아래, 존재감 없는 샛별로 전락할 뿐이다.

문제는 미국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서진은 퇴원했다. 미국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일반병원은 너무 위험합니다.”

간절한 부탁을 이기지 못한 한서진은 곧장 퇴원해서 세연동 저택으로 돌아왔다. 세연동 저택은 200명이 넘는 미군이 파견되어 물샐틈없는 방어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저택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가드라인이 형성되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한서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왕명 때문이구나.’

아무래도 미국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하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알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군중 해산에 자신이 뭔가를 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으리라.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론, 기사들을 보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아마 러시아나 해외의 다른 나라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으리라.

미국의 경호 강화는 바로 그들을 향해 보내는 경고였다. 우리가 이렇게 보호하고 있으니 감히 서툰 생각은 말라는.

한서진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크리스 대통령은 자신을 반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은 여전히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대국은 대국이네.’

========== 작품 후기 ==========

이혼 따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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