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7 대통령 선거 =========================================================================
“진성을 끌어내라!”
“진성이 대통령을 망쳤다!”
“재벌 타도!”
김두박 대통령의 비리는 진성그룹과 가장 복잡하고 크게 얽혀 있었다. 지금은 H그룹에 밀려났지만, 한때 십 수 년 간 대한민국 최고로 군림해왔던 재벌 기업으므로.
흥분한 연합 시위대는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사임을 반대한다는 대통령 골수 지지자들이었다. 당황한 경찰이 통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촛불을 들고 맞서던 시민들도 당황해하다가 어느 순간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거리 행진하는 거 같은데? 지금 누가 이끄는 거야?”
“패런츠연합이 지금 태극기 들고 진성그룹 사택 가는 것 같은데?”
혼란에 빠진 군중은 우왕좌왕하면서도 행진 흐름에 휘말려 정신없이 걸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 저 멀리, 넓은 담장이 나타났다.
시민들 가운데서 놀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긴 한서진 박사 사택이잖아! 진성그룹 사택이 아니야!”
“뭐? 확실해?”
“확실해! 젠장, 어쩐지 방향이 이상하다 했어!”
“앗! 할배들이 지금 담을 넘고 있어!”
연합 시위대가 담장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게 보였다. 혼란에 빠져 있던 시민 군중은 놀라서 달려갔다. 월담하려는 이들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이들이 한데 엉키며, 느닷없는 한밤의 거리 난전이 벌어졌다.
“이거 놔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아!”
“진성이 대통령을 망쳤어! 이 모든 게 진성 때문이다!”
“네놈들이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 적 있느냐!”
한 번 불이 붙은 군중심리는 꺼질 줄을 모른 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연합 시위대도,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시민 군중도 이미 개별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100만 군중 및 시위대가 아니었다.
통제를 잃은 사람들의 자아가 한데 뭉친, 두 개의 집단만 존재할 따름이었다.
“병장님!”
미군 병사가 창백한 표정으로 상급자를 바라봤다. 병장의 얼굴도 잔뜩 굳어 있었다.
저택 호위를 위해 파견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매뉴얼에 따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조치일 뿐이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된 나라였고, 한서진은 많은 이들의 존중을 받는 민간인이다.
대통령 사임으로 인한 시민들의 혼란이 이런 폭동으로 번져 한서진의 사택을 침해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 임무를 상기해라! 저택을 방어한다!”
“저, 정말 쏴도 됩니까? 저렇게 많은데요?”
굳이 TV를 보지 않아도, 이미 저택을 둘러싼 인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10기의 드론이 항공에서 영상을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매뉴얼대로 고무탄을 사용해! 실탄은 절대 금지한다! 한 명도 담을 넘지 못하게 막아! 만약 한 명이라도 담을 넘으면 큰일이다!”
100만의 군중심리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른다. 군중을 이룬 개개인들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집단의 특성이다.
한 명이라도 담을 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곧 군중 전체에 퍼져 나간다.
월담을 시도하는 이들은 사기가 올라 계속 담을 넘어올 것이고, 저지하는 이들도 그들을 막기 위해 결국 담을 넘을 것이다.
왜 담을 넘는지, 넘어야 하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등등은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담을 넘는다’는 행동 지침만 몸에 박히는 것이다.
파견부대 장교 역시 다급했다.
“B-2 지침을 준비해라!”
B-2 지침. 한서진을 헬기에 태워 이곳을 탈출한다는 최후의 보루다. 장교 역시 이 지침까지 시행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젠장, 시위대가 미쳤나? 대체 여길 왜 쳐들어오는 거야?”
“여기를 진성그룹 회장 사택으로 알고 쳐들어왔답니다!”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미 헬기는 시동을 걸고 탈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 장교는 초조해서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바라봤다.
“제발 넘어오지 마라. 제발…….”
10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담을 넘은 것 때문에 한서진이 탈출한다면?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차후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국제 사회는 겉으로 드러난 외관만을 볼 뿐이다.
100만, 월담, 피신.
한서진은 철저한 피해자가 되고, 동시에 한국은 무고한 영웅을 핍박한 가해자가 된다.
자신들의 방어태세에 따라 그런 엄청난 정치적 상황이 야기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었다. 미군 장교는 이미 얼굴 전체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자리를 잡은 저격수들도 스코프를 통해 초조한 눈으로 담을 주시하고 있었다.
살상력이 없는 고무탄이지만, 군중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담을 넘는 것을 방치하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저격수는 이를 악물었다.
스코프를 통해 보인 담벼락으로 누군가의 손이 턱하니 올라왔던 것이다. 곧이어 한 노인의 상체가 담 위로 올라섰다.
“젠장!”
저격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러 어깨를 노렸다.
비살상 고무탄에 어깨를 맞은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하필 담 밖이 아닌 안쪽으로 넘어졌다. 미군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초, 총에 맞았다!”
“안에 총이 있어!”
“재벌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려고 한다!”
“재벌이 시민을 죽였어!”
담장 밖에서 패닉에 빠진 비명이 울렸다. 한국어를 모르는 일반 병사들이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충분히 짐작갔다.
월담자가 무언가에 맞아서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떨어졌다. 군중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상황이다.
“피신하셔야 합니다.”
급히 달려온 미군 장교의 급박한 표정이 모든 위험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위대가 몹시 흥분했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집사 최수한도 옆에서 거들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지금 진성 회장 사택으로 아는 사람들이 흐름을 쥐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자칫 큰일을 당하실지 모르니 어서 피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최 집사님, 제가 피하면 일이 더 커질 텐데요. 그게 수습이 될까요?”
폭동을 일으킨 성난 군중을 피해 한서진이 집을 버리고 피신한다. 세계의 비난은 거침없이 국민들을 향할 것이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최수한은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더욱 단호했다.
“그거야 박사님 책임이 아니지 않습니까. 박사님은 엄연한 피해자이십니다.”
“물론 제 책임이 아니지요.”
“그럼 어서 피신을……!”
최수한은 이 상황이 답답한 듯이 보였다. 담장 너머에서는 성난 군중의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미군 장교가 다급히 채근했다.
“박사님! 헬기가 준비되었습니다! 어서 피신을!”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한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홀에 거치된 대형 TV를 향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성난 군중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미군 드론이 보내오는 항공 영상이었다.
담을 넘으려는 자, 저지하려는 자, 서로 뒤엉킨 채 주먹다짐을 하는 자, 짓밟힌 자, 고래고래 분노를 터트리는 자…….
담장 밖은 혼란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넘으려는 자도 저지하려는 자도, 모두 똑같이 눈동자에 광기를 띠고 있었다. 군중심리가 그들 모두를 집어삼킨 것이다.
한서진은 차가운 눈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붉은 기운이 똑똑히 보였다. 그들의 폭동이 품은 진실이 그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선동당하고 있다.’
어리석은 이들은 이곳이 진성 회장의 집이라는 말만 믿고 몰려들었고, 그게 아닌 줄 아는 이들도 어어 하다가 본의 아니게 함께 말려들었다.
선동에 휘말렸든 아니든, 그런 구분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정문 밖에 있는 것은 폭주를 멈출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이자 괴물일 뿐이었다. 더 이상의 구별은 불필요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며, 끓어오른다. 한서진은 주먹을 꾹 쥐었다.
‘왕명.’
자그맣게 피어오른 의문, 그러나 곧 강한 확신이 밀려들었다. 떨리는 몸과 달리 호흡이 차분해졌다.
‘될까? 내가?’
그는 몸을 돌렸다. 눈빛이 더욱 단단해졌다.
‘해보자.’
그가 밖으로 나서자 미군 장교는 화색이 돼서 따라왔다. 그러나 한서진이 헬기가 아닌, 정문 쪽을 향해 방향을 틀자 기겁해서 달려갔다.
“박사님? 지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정문을 열고 제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럼 물러날 겁니다.”
“박사님! 저들은 흥분한 폭도들입니다! 문을 열었다가는 자칫 큰일을 당하실 수 있습니다! 서둘러 피신을……!”
“원래는 저도 조용히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 되겠네요.”
한서진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미국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크리스 대통령은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우습지도 않는 무대로 저의 환심을 사려 하다니요.”
“……네?”
미군 장교의 표정은 패닉에 빠졌다. 지금 한서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한서진은 그렇게 말하고, 정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미군 장병들이 놀라서 사방에서 달려왔다. 차마 한서진을 말리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며 그를 따라붙었다.
‘크리스 대통령.’
한서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광장에서 시위하던 저들이 먼 이곳까지 갑자기 몰려든 것은 누군가의 수작이 개입된 것이다. 통찰안을 통해 보이는, 군중이 띤 음울한 색채가 그것을 증명한다.
아쉽게도 통찰안으로는 주범이 누구인지까지 알 수 없다. 아서 왕에 비하면 아직 미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타르타로스가 있다.
군중의 폭주에 불순한 선동자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타르타로스가 수집한 정보의 파편을 끼워 맞추면…….
“처음 담을 넘은 사람,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요.”
“예?”
“다른 사람들이 담을 넘기 시작하면 혼잡을 틈타서 사라질 겁니다. 그러니 어서 잡아요.”
미군 장교는 무슨 말인가 하다가 불현듯이 그 뜻을 깨달았다.
“너! 너! 둘이 가서 저 놈 신병 확보해! 테러리스트라 여기고 신중히!”
“알겠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장병 두 명이 기절한 것으로 보이는 월담자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한서진은 정문 앞에 섰다. 온갖 시끄러운 아우성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주먹을 꽉 쥔 몸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흥분이었다.
‘아서……!’
기이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중국에 추락했을 때의 기억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때 자신을 움직인 것은 아서의 인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기억은 없을지라도, 그때의 감각이 선명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닫혀 있던 상자가 활짝 열렸다. 끓어오르는 권능이 안에 차오르고, 불을 삼킨 듯이 가슴이 뜨겁다.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믿음이 속삭였다.
‘된다. 된다! 할 수 있어!’
한서진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는 리모컨을 눌러 정문을 열었다.
육중한 정문이 양쪽으로 스르르 밀리자 성난 군중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선두에 선 이들은 한서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멈추려 했지만, 뒤에서 계속 밀려드는 힘을 이기지 못했다. 군중이란 괴물은 개별 구성원의 독단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멈춰.”
짧은 명령, 그 안에 담긴 권능이 파동을 그리듯이 퍼져 나갔다.
100만의 군중이 만들어내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동시에 멈췄다.
========== 작품 후기 ==========
“멈춰. 뒤로 돌아. 그대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