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6 대통령 선거 =========================================================================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체포당했다.
그야말로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물론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상황이기는 하나, 검찰이 청와대 입구도 아닌 집무실까지 쳐들어가서 체포해온 일은 두고두고 역사에 회자될 것이다.
김두박은 가장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형태로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고 만 것이다.
체포당한 것은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에서 마지막 논의를 하던 대통령 측근들도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서 끌려 나왔다.
수갑을 찬 채 청와대 정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차량에 올라서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여과없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황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그날 모든 매체의 1면을 크게 차지했다.
“잘한다! 성역 없는 수사로 남김없이 모든 비리를 털어내라! 김시형 검사만 믿는다!”
“시형이 형, 화이팅!”
전격적인 체포 조치에 환호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대통령이 옛날로 따지면 왕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형부 관리 따위가 임금을 체포할 수 있느냐!”
“우리가 나섭시다! 김두박 대통령을 지켜야 합니다!”
“옳소! 옳소!”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분노에 차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계를 중심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혼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 보았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은 한서진의 직할령이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과격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씩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어 나왔다.
그들은 목청 높여 각자의 주장을 설파하며 서로 부딪쳤다. 잦은 충돌로 인해 경찰은 24시간 긴장해 있었고, 유혈 충돌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박사님의 안전을 위해서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미군 장교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100여 명의 특수부대를 데리고 세연동 저택을 찾아왔다. 바로 한서진의 사택 경호를 위해서였다.
“지금 시위가 큰불로 번질 거라 보시나요?”
“최악을 대비하기 위해서 저희가 이곳에 와 있는 겁니다.”
미국은 한국 분위기를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번 시위는 오랫동안 쌓이고 누적된 갈등이 터져 나온 것이다. 시위가 폭동으로, 폭동이 혁명이나 내란으로 발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대통령 체포를 지지하는 쪽이 더 우세지만, 지지하지 않는 쪽의 수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충돌에 붙은 불이 활활 타오른다면, 자칫 어떤 일이 터질지 몰랐다.
“흥분한 군중이 박사님의 사택 담장을 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군은 저택 곳곳에 무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최류탄이나 고무탄 등 비살상 무기 위주지만, 중기관총 등의 살상 무기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한서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장교가 변명처럼 말했다.
“만약 군중이 이곳을 침입한다면 1차적으로 비살상 진압을 시도하며, 박사님 가족을 헬기로 탈출시킬 겁니다. 살상무기를 사용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갖다 놨다는 말씀이시군요. 이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서진이 잠시 저택을 피해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저택에 있는 타르타로스 2대를 놔두고 피신할 수는 없었다.
‘군중이 여길 쳐들어온다는 것도 억측이지.’
대통령 체포가 예상 이상으로 국민의 감정을 활활 불태우기는 했지만, 군중이 세연동 저택을 침범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주한미군이 괜한 소란을 떠는 거라고 비웃을 것이다. 물론 미군이 경비하고 있는 것은 비밀이지만.
미군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작계 매뉴얼에 따라 한서진 보호 태세를 갖췄을 뿐이다.
“한지혜 팔자 참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네. 이제는 미군 경호까지 받고.”
맞은편에 앉은 한지혜가 기지개를 켜며 태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 때문에 귀찮아졌다고 불만스러운 거냐?”
“불만? 아니, 그냥 스릴 넘쳐서.”
한지혜는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는 듯이 보였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군중이 우리 집에 쳐들어올까 봐 미군 특수부대가 24시간 경호를 서주다니,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어딨겠어?”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거야.”
“나도 알아. 요즘 시대에 시위 좀 크게 번진다고 재벌 회장 사택 쳐들어가고 그러진 않지.”
“내가 왜 재벌 회장이냐.”
“사람들 인식은 재벌 회장보다 더 하지. 꼭 그렇게 사소한 단어에 집착해야겠어? 이래서 이과들이란.”
놀리듯이 혀를 차던 한지혜가 문득 주먹을 탁 치며 물었다.
“오빠, 근데 난 몸값이 얼마나 될까?”
“몸값?”
“만약 내가 어디에 납치당하면 몸값 얼마까지 내줄 거야? 응?”
“언제 납치 당할 일 있어?”
“아니, 궁금하잖아. 오빠가 날 생각하는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까지 내줄 거야, 응?”
“솔직히 백만 원도 아깝지.”
“뭐야? 왜 이렇게 짜.”
한서진은 키득거리며 일어섰다.
홀에 거치된 110인치 대형 TV에서는 서울 시청 부근에 가득 몰린 인파와 포위하듯 자리를 잡은 전경 버스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김 검사님도 당황하고 있으려나?’
검찰의 전격적인 대통령 체포가 이렇게까지 큰 혼란을 야기했다. 김시형 검사는 당황하고 있을까, 아니면 예견한 일이라고 침착해하고 있을까.
한서진은 일부러 연락을 삼갔다. 지금 같은 타이밍에 그와 연락을 한 게 알려지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짓이다.
그때 백철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나한테 들었네. 미군이 경호 중이라면서?」
“네, 제 경호 매뉴얼이 그렇답니다.”
「미군이 지켜주고 있으면 마음이 참 든든하겠어. 괜한 일 같긴 하지만.」
백철중은 사태가 더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총기 자유화 국가도 아니고, 경찰 통제력을 벗어날 일이 뭐 있겠는가. 전경들만 좀 고생하다 끝날 텐데.」
“H그룹은 별 일 없습니까?”
「안 그래도 그룹 전체가 비상 분위기네. 지금 내수는 거의 죽었고 사내 분위기도 흉흉한 편이야. 아무래도 나라 꼴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홍역 한 번 독하게 치르고 넘어가는군요.”
「홍역이라…….」
백철중의 말투에 묘한 쓴웃음이 묻어났다.
「김시형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만, 아무래도 사회가 크게 재편되겠어. 지금 내 친구들 죄다 긴장하고 있네. 검찰의 칼이 어디까지 뻗을지를 놓고.」
“죄 지은 게 없다면 긴장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죄 지은 게 많으니까 그러는 거지. 나 역시 포함해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놓고 넋두리처럼 말하던 백철중이 문득 물었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 사태를 견딜 체력이 있을까?」
일개 평검사가 한국이라는 호수에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렸다.
그 여파는 조만간 그의 손을 떠나 사회 곳곳에 퍼지며 온갖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불법과 비리 등 비상식을 거부하는 변화의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개혁이란 대수술을 야기하고, 수술을 견디기 위해서는 막대한 체력이 필요하다.
한서진은 다소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안 되지요. 저는 24살까지 반도체 공장에 처박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반도체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던 사람인데요.”
「자네 냉정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 사윗감으로서는 그런 점이 더욱 마음에 들지만.」
나라 하나를 능히 바꿔버릴 수 있을 만큼 유능하기 그지없는 사위가 치국평천하에는 관심없고, 수신제가에만 열중한다. 장인으로서는 바람직한 가치관이다.
「그래도 자네 생각이나 희망은 있을 거 아닌가?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김시형 검사는 올바른 사람으로 보였고, 저는 그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약속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하긴, 자네가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이 나라는 막대한 빚을 진 게지.」
앞으로 그룹이 취해야할 자세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 백철중은 전화를 끊었다.
한서진은 다시 TV로 시선을 향했다.
양쪽으로 갈라져서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군중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들 각자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거리에 나온 것일까.
“오빠, 근데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요즘 오빠 보면 이상하게 사회에 환멸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 관심이 없는 것을 떠나서, 조금 냉소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보여.”
“아주 높은 데서 잠깐 내려다본 적이 있거든.”
“……?”
“너무 지저분해서 현기증이 나더라. 그래서 그 뒤로는 다시 안 봐.”
“뭐야, 갑자기 웬 선문선답이야? 나랑 신선놀음하자는 건 아닐 테고.”
한서진은 자조적으로 피식거렸다.
타르타로스 2는 한지혜의 TF팀에 이 나라의 모든 재무 정보를 제공해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무 정보란 곧 비리를 밝혀낼 수 있는 데이터이기도 하다. 타르타로스 2는 일반인의 상상을 벗어난 방법으로 그런 정보를 무차별 긁어 모았고, 한서진은 잠깐 그 내용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TF팀이 제공받는 정보의 높이가 산중턱이라면, 한서진이 확인한 정보의 높이는 지구 전역을 감시하는 인공위성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야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잠깐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현기증과 혐오감이 솟아오를 만큼, 총체적인 불결함이 가득했다. 그래서 한서진은 바로 화면을 꺼버렸고, 그 뒤로 다시는 확인하지 않는다.
‘어차피 답이 없어. 난 그저 내가 할 도리만 하면 그만이야.’
잠깐 본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는데, 그 안에 뛰어들어 개척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한서진이라는 인간으로서 지키고, 해야 할 도리만 다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선을 그은 것이다.
어떻게든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온 몸을 바쳐 불사르는 김시형 검사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미력하나마 꾸준히 그를 후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TV에서 나오는 앵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시위대가 거리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고 된 행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방향 변경에 경찰측도 당황해서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든 시위대 일부가 행진을 시작하자, 다른 군중도 분위기에 휩쓸려 우르르 따라 나섰다. 대통령 체포에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김두박 대통령이 저리 된 건 진성그룹 때문이다!
―대통령은 진성그룹의 로비에 희생된 피해자일 뿐이다!
―진성 회장을 붙잡아서 목을 매달아야 한다!
―진성그룹으로 가자! 회장 저택으로 가자!
진성그룹은 대통령의 비리에 상당히 발을 걸치고 있어, 최근 나라 안팎으로 큰 비난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무의미한 충돌에 지친 시위대가 그 분노를 진성 회장에게 틀어버린 것이다.
―가자! 진성 회장 집으로!
시위대는 거리의 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로를 점거한 채 남쪽으로 향했다. 도로는 멈춘 차량들로 인해 마비되었다.
얼마 후 TV에 도심에 있는 어느 대저택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서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외쳤다.
“저긴 우리 집이잖아?”
“〈영웅의 귀가〉 작전의 1차 실행이 성공했습니다.”
크리스 대통령은 무덤덤하게 끄덕이며, 차갑게 말했다.
“실패가 없도록 유의하게.”
========== 작품 후기 ==========
수신제가만 열심히 해도 벅찹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