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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64화 (364/609)

00364  Lock on  =========================================================================

“우리가 러시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듯합니다. 그건 분명 패착입니다.”

미 대통령 국무회의.

대통령 이하 국무위원들은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러시아와 한서진 간의 관계를 우려하고 있었다.

백악관은 거대한 정치의 장이다. 새 정권이 출발할 때마다 신경 써서 조율해야 할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다.

백악관에 입성한 지 이제 겨우 몇 달,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교통정리하는 데만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바람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러시아의 기민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어쩌면 러시아는 이 타이밍을 노린 게 아니었을까. 정권 교체로 미국이 어수선해서 외부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울 때를.

위원들은 크리스 대통령의 눈치를 보았다.

워싱턴 정가에는 대통령과 한서진을 놓고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바로 둘의 사이가 데면데면하다는 것, 한창 미국을 채찍질해야 할 크리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뼈 아픈 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 대통령이 한서진 관리는 뒷전으로 한 채 미국의 신고립 정책을 관철시키면서, 그런 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었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거부를 백악관에 입성시켰으니 이 모양 이 꼴이지.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크리스 대통령을 향한 그런 비방도 슬슬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정상적인 기업적 영리 활동에 관해서 행정부가 뭐라고 간섭할 여지는 없소. 게다가 한서진 박사는 명예시민이자 미국의 영웅 아니오? 괜한 간섭은 그를 강제하려 한다는 소문을 양성하기 딱 좋지.”

크리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미국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거요. 해외에서 기업 활동 열심히 하는 한서진 박사를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소. 게다가 희토류 대금은 모두 미국 내에 들어오고 있지 않소?”

“그건 그렇습니다만…….”

객관적 정황만 보면 문제될 건 없다. 한서진과 러시아의 사업 제휴는 오히려 미국 기업과 경제를 살찌우는 중이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와 한서진이 너무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분명히 탐내고 있다. 한서진에게 있어 미국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을.

“테러 방어, 이민 억제 정책, 무역 보호, 금융 문제 등 우리가 손대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오. 한서진 박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그건 어차피 클레튼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소.”

크리스의 음성은 확고함에 차 있었다.

“미 정부는 미 정부의 일을 해야 할 때요.”

그가 손짓하자 대통령 비서가 스크린에 데이터 자료를 올렸다. 크리스가 지난 시간 동안 구상한 정책의 큰 줄기였다.

큼지막한 타이틀이 모두의 각막에 똑똑히 박혔다.

「대제 : 달러화의 위상 및 지위 보호」

신효진의 꿈은 더 없이 즐거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혼례식을 올리고 정식 왕비가 된 그녀는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았다. 모두가 왕비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칭송했고, 왕실의 번창이 영원하기를 기도했다.

그녀는 가끔 기사단에게도 버거운 마물이 출몰할 때면 직접 나서서 손수 검을 보탰다. 전장의 선두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히 맞서 싸웠다.

그럴 때마다 왕은 걱정을 하며 말리곤 했다.

“그대는 이 나라의 왕비요. 그런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소.”

“이 나라의 왕비니까 더욱 힘을 보태야지요. 알잖아요? 저 엄청 강한 거.”

“물론 그대의 용맹함은 알지만, 그래도…….”

“리온, 당신도 제 강인함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러기예요?”

당황해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왕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는 늠름하고 위엄 넘치는 군주지만, 자신 앞에서만큼은 평범한 남편일 뿐이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스칼린은 왕의 목을 껴안고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지 않아요. 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당신도 알잖아요?”

“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오. 장인을 볼 염치도 없고.”

“뭐야, 설마 제가 걱정돼서라기보다는 아버지 눈치가 보여서 그랬던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소.”

스칼린은 까르르 웃다가 별안간 그와 입을 맞췄다.

길고 달콤한 키스, 한참 후 얼굴을 뗀 그녀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리온.”

“나 역시 사랑하오.”

그녀가 원했던 다정한 대답, 목을 끌어안은 채로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던 그녀가 문득 짓궂게 물었다.

“만약에라도, 통찰안이 갑자기 저는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할 거예요? 그래도 사랑해줄 거예요?”

“그럴 일은 없소.”

리온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그대는 매우 고귀한 여성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요. 다만 나는 통찰안을 통해 그것을 확인했을 뿐이고.”

“그래도요.”

“그럴 일은 절대 없소. 설령 정녕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할 거요. 통찰안의 권능은 나의 고결함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니.”

“제가 왕비 자격이 없어진다 해도,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당신이 잘못된 거라는 거죠?”

“물론이오.”

마음이 녹아버릴 듯 달콤하기 그지없는 눈빛,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속삭여 온다.

“그대는 고결한 여성이오.”

어슴푸레한 어둠이 시야를 조금씩 차지해온다.

몸을 부스럭거리던 신효진은 이윽고 꿈이 끝났음을 깨닫고 조용히 눈을 떴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 같지 않은 꿈.

그런 상념이 가만히 머리를 더듬는다. 신효진에게는 지구가 현실이고 레노지안이 꿈이듯, 스칼린에게는 그곳이 현실이고 이곳이 꿈이지 않을까.

“……왕비의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 신효진의 시간을 누릴 차례구나.”

작은 중얼거림은 의외로 밝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름답고 즐거운 꿈이 끝나고, 비루한 현실이 돌아왔음에 절망했으리라.

그러나 꿈도 현실도 모두 행복한 그녀에게 있어, 잠이 들고 꿈에서 깨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잠이 들면 스칼린의 행복이, 꿈이 깨면 신효진의 행복이 시작하므로.

그녀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얼른 출근해야지.”

어서 빨리 ‘또 다른 리온’을 만나 보고 싶었다.

“……기초 에테르 형성 공식이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신효진이 눈치를 보며 어렵게 꺼낸 말에 한서진은 덤덤히 끄덕였다.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에 그녀는 마음이 찔렸다.

“할 수 없죠. 어차피 꿈은 계속 되는 거니까 천천히 알려 주세요.”

“네,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효진 씨 도움을 많이 받는 걸요.”

신효진은 꿈에서 에테르나 마법에 관한 주요 기초 지식을 얻을 때마다 암기해서 한서진에게 갖다 준다. 그녀의 암기력, 이해력에 한계가 있어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런 결정적인 지식이 한서진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이 신효진과 한서진의 은밀한 거래, 그러나 신혼의 단꿈에 푹 빠진 그녀는 요즘 지식 전달을 게을리 하고 있었다.

일부러 한서진을 기만하는 게 아니라, 꿈에서 행복하게 놀기 바빠서 잊고 지낸다고 할까.

어제도 왕과 너무 뜨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한서진의 부탁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 박사님께 죄송해서 어쩌지. 오늘 꿈에 들어가면 꼭 열심히 공부, 아니 암기해야겠다.’

과연 그 결심이 잘 지켜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너무 행복한 게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신효진은 사무실을 나와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와의 거리 6미터, 가로막고 있는 것은 투명한 유리벽 하나.

그녀는 책상에 앉은 채 몰래 한서진을 훔쳐 봤다. 뭐가 그리 바쁜지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모습 위로, 리온의 모습이 겹쳐져 저도 모르게 쿡 웃고 말았다.

‘리온도 참 바빴는데.’

처음 그녀는 왕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체를 보니 웬걸, 뭐가 그리 바쁘고 집무가 넘쳐나는지.

초룡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왕성을 비운 동안 왕의 재가가 필요로 하는 일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리온은 혼례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왕의 업무를 바쁘게 처리해야 했다.

스칼린도 돕고 싶었지만, 그런 업무 처리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만 깨닫고 조용히 혼례 준비만 했다. 아버지의 작은 핀잔도 함께.

―너는 엄마를 닮았다.

아버지의 자그마한 한탄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무가로 흥한 카르쉬라이 가문에서 대륙 최고의 마도사인 아버지를 배출한 것 자체가 이질적인 일이었으니까.

몰래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어젯밤 꿈속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바로 남편인 리온과 보낸 황홀한 애정의 시간.

그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애정을 확인시켜 주었다.

따뜻했던 어제의 시간이 떠오르자 그녀는 문득 볼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그녀는 억지로 생각을 틀었다.

‘박사님은 어떤 권능을 얻으셨을까?’

한서진은 꿈에서 얻은 힘을 통해 지금의 부를 쌓았다고 말한 바 있었다. 신효진은 문득 어떤 힘인지 궁금해졌다.

아마 군주인 리온의 권능 중 하나를 얻은 게 틀림없을 텐데, 그의 권능이 워낙 많다 보니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력은 확실히 아니고…… 그럼 마법일까?’

한서진은 에테르학에 모든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 에테르 관련 마법일까?

‘근데 마법으로 반도체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까?’

신효진은 레노지안에서 컴퓨터 같은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곳도 월등히 발달된 문명 사회라는 것은 알지만, 지구와 비교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우열과 차이점이 있는지 그녀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골똘히 생각하던 신효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출입문에 노크를 하고, 한서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들어오라는 대답이 들려오자 그녀는 호흡을 한 번 크게 뱉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요?”

조금 전에 나간 신효진이 다시 들어오자 한서진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는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 전 생각했던 말이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입안에서 헛돌기만 할 뿐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그가 의아한 듯이 빤히 바라보자 부끄러움이 더 심해졌다.

“효진 씨? 할 말 있어서 들어온 거 아니에요?”

“저, 저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요? 혹시 꿈에 관련된 일인가요?”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그게, 그러니까…… 박사님은 꿈에서 어떤 힘을 얻으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힘 덕분에 이렇게 성공했다고 하셨구요.”

“……네. 근데 그게 왜요?”

신효진은 버벅거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분명 조금 전에 나름 할 말을 준비해서 들어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쫓기는 듯한 기분에 시달리던 그녀는 엉겁결에 말했다.

“혹시 그 힘이, 진리를 투시하는 눈 아니에요?”

한서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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