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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61화 (361/609)

00361  Lock on  =========================================================================

김시형은 수북한 사건 자료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때가 됐습니다.”

현 대통령의 소유인 정일재단 비리 사건 때, 사회가 흙탕물이 될 것을 우려해서 끝까지 가지 못했다. 신념을 꺾은 게 아니라 현실과 타협을 했을 뿐이지만, 그 주저함이 얼마나 큰 무거움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이제 흐름은 변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검사들을 둘러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대통령을 칩시다.”

“…….”

“…….”

잠시 무거운 침묵이 검사들 사이에 흘렀다.

현재 검찰에서 김시형이 가지는 위상은 검찰총장 이상이다. 그 어떤 선임 검사도 그를 감히 터치하거나 제지하지 못한다. 현 대통령도 무서워하는 검사인데 아무렴.

김시형은 젊은 나이와 연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검사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비단 그가 한서진을 후원자로 두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단지 사익만을 추구했다면 그는 부패한 검사로서 동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박증에 가까우리만치 강직함과 정의를 고수했던 그는 한서진의 후원으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얻었고, 부패한 자들을 향해 그 칼을 사정없이 휘둘러왔다.

올바른 신념으로 큰 힘을 얻고, 그 힘을 다시 올바른 일을 위해 휘둘러왔기에, 그는 많은 젊은 검사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대통령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그래도 대통령입니다.”

“형사불소추 때문에 직접 대통령을 치는 것도 불가능해요. 주변인들을 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김검, 자칫 국민들에게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김 검사, 차라리 야당에 이 자료를 넘기는 건? 이 정도면 탄핵은 못 되더라도 국회가 대통령을 쥐고 흔들 수 있어. 남은 임기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후배, 동료, 선배까지 하나같이 말리는 방향으로 조언했다.

수사 자료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직접 총구를 겨눈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큰 얼룩이 남는다.

김시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치에 개입할 의도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검사 본연의 사명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범죄와 비리를 포착했고, 그것을 기소하겠다는 게 어째서 정치 개입입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나.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들이 어딨어. 다 똑같은 놈들인데.”

“맞습니다. 현실에서 불거질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향으로 수사 방향을 잡아야지, 무턱대고 대량 기소했다가는 정국이 마비되고 맙니다. 가뜩이나 지금 나라 사정이 힘든데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면 어떡합니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우려, 김시형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 식이어서 나라가 지금 이 꼴이 된 게 아닙니까.”

“…….”

“현실을 고려해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그렇게 상황 따라 사람 따라 고무줄처럼 정의를 이리저리 늘려댔으니, 남은 게 뭡니까?”

“김검…….”

“무섭다고 자꾸 수술을 미루기만 하면 병은 계속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

확고함에 찬 눈빛이 자신들을 둘러보자 검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시형은 말을 계속했다.

“순탄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가시밭길이 되겠지요.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누명도 쓸 테고, 청와대의 반격도 상당할 테지요. 결국에는 벽에 부딪치고 지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합니다.”

“…….”

“저는 정의 구현을 위해 검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 역사상, 지금처럼 그 가능성이 높은 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확고함이 담긴 음성이다.

침묵하던 검사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김검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범죄만 물고 늘어지면 그만이지, 그거 때문에 정치판이 어찌 되든 알게 뭡니까?”

“막말로 범죄자 때려잡다 보니 정치판이 엉망이 됐다 해도,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놈들이 정치판에서 설치게 방관한 것을 자성해야지요.”

“대통령을 직접 치는 것도 아니고, 그 주변인들의 비리만 치는 건데 무슨 상관입니까.”

“결과는 국민들과 역사가 평가해줄 겁니다. 우리는 검사 본연의 일에만 충실하지요.”

군중 심리란 기묘하다. 처음에는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처럼 느껴지던 막막한 일이, 동조하는 이가 하나둘씩 늘어남에 따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김검, 그럼 누구를 가장 먼저 칠 건데?”

김시형은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당연히, 여기 리스트에 있는 전부 다입니다.”

「여긴 아직 비교적 조용하다.」

“그런 것 같진 않던데요. 크리스 대통령이 하는 말마다 풍파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 같던데요.”

「적어도 한국이나 너하고는 별 상관없는 일들 뿐이잖아.」

“그렇긴 하죠.”

한서진은 조그맣게 실소했다.

“크렘 회장님과 친구분들이 일을 잘 해주시나 보네요. 그리고 정 사장님도.”

「미국은 언제나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치는 나라지. 덕분에 널 미국으로 데려온다는 크리스 대통령의 공약은 슬그머니 물밑으로 가라앉았어.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크리스 대통령의 목적은 결국 화폐발행권 사수가 아닌가요.”

「그를 백악관으로 보낸 이들의 목적은 그럴 테지.」

크리스가 당선된 이후, 미국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계 경찰국 역할을 축소하기 시작했으며, 자국 무역 보호를 이전보다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동시에 제3국민들의 입국이 불가능하거나 힘들어졌다.

미국이 움직이면 그 파동은 전 세계를 휩쓴다. 세계는 지금 잔뜩 긴장한 채 미국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희토류 산업을 러시아와 손 잡은 덕분에 다른 나라들은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어.」

우주 희토류 산업마저 미국의 손에 들어갔으면, 세계는 미국의 패권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저는 미국이나 러시아 패권, 달러 발행권 같은 것에 크게 개입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문제들이 널 끈질기게 붙잡고 놔주질 않을 거야.」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거든요.”

「에테르? 중요한 단서라도 찾았어?」

“단서 대신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죠.”

「서두르지 마. 어차피 에테르는 너만의 전유물이다. 누구도 손대지 못해.」

한서진은 피식거렸다.

레노지안, 신효진을 제외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민. 러시아와 미국의 냉랭한 분위기, 화폐 자본가들의 경계와 의심, 그리고 혼탁한 국내 사회 정서까지.

그 모든 문제들을 단숨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요소가 아닌가.

“정 사장님, 만약에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재미삼아 가정을 해보자고요. 이 세상은 사실 진짜가 아니고, 나는 지금 꿈을 꾸는 중인 거죠.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걸 기억하지만, 꿈을 꾸는 동안에는 진짜 나 자신을 잊고 한서진의 자아만 있는 거죠. 어떤가요?”

「꿈에서 깨어났을 때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대륙을 다스리는 유일한 왕이에요. 백성은 250억 명쯤 되고, 온갖 과학과 마법이 발달해서 이곳의 문명으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할 수 있고, 사회 행정 제도는 완벽하리만치 투명하고 공정하게 돌아가는 세상?”

「그거 괜찮은데. 근데 현실이 시궁창인 사람이 화려한 꿈을 꾸는 건 봤어도, 현실이 더 화려할 게 없는 사람이 꿈에서는 더 대단하다는 건 좀 너무했다.」

“너무한 건가요.”

「내가 살 맛이 안 나잖아. 너 요즘 그런 꿈 꾸는구나.」

정지원은 가벼운 장난으로 치부했다. 오히려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아무리 대단한 꿈이라도 제수씨보다 더 근사한 여자는 찾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럼 그 꿈 별로겠다.」

“말했잖아요. 지금이 꿈이고, 실제 나는 다른 현실의 왕이라면 어떨 것 같냐고요.”

「지금이 꿈일 리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너도 스트레스가 심하긴 한가 보구나. 그런 도피꿈을 꾸는 걸 보면.」

사람은 현실이 힘들 때, 현실과는 전혀 다른 화려하고 완벽한 꿈을 꿀 수 있다. 정지원은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네가 시궁창이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도대체 몇 십 억 명이나 죽일 셈이냐.」

검찰이 청와대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김시형을 주축으로 한 검사들은 대통령의 가족, 그리고 대통령의 측근과 지인 및 그 가족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기소를 벌였다.

잔챙이가 아닌 굵직한 거물급 인사만 수백 명 이상이 동시에 수사망에 올랐다. 그것도 수사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 영장이 통과되었고, 여당은 난리법석을 피우며 항의했다.

“이는 명백한 검찰의 정치 개입입니다. 지금 검찰은 우리나라를 검찰공화국으로 변질시킬 작정입니까? 당장 무분별한 수사를 그만 두십시오!”

여당 대변인이 목구멍에서 피를 토할 기세로 검찰을 비방했다. 검찰이 총구를 겨눈 것은 청와대이지만, 그 파편은 여당에까지 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시형은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했다. 자신을 따르는 검사들과 함께 수사망을 더욱 넓혀 나갔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은 여당에서는 차라리 특검을 세우는 방향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김시형 대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이를 특검에 임명해 연막 작전을 피우고자 했다.

그 계획은 곧장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여당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위장 특검 논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쏙 들어갔고, 대통령 주변인들을 향한 수사는 더욱 끈적끈적하게 변했다.

「김 검사! 이건 명백한 정치 개입이야! 자네는 검찰 전체에 그런 불명예를 남길 셈인가!」

무시무시한 압박 전화가 쏟아졌다. 감히 김시형을 건드리지 못하고 데면데면하던 검찰총장이 작정한 듯 전화했다.

김시형은 차갑게 말했다.

“범죄 혐의를 포착해서, 검사의 권한 내에서 합당한 수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거네!」

“지금 총장님이 저에게 이러시는 게 진짜 아닌 거죠.”

「김 검사!」

“총장님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건 아십니까?”

「……자네, 지금 하극상을 하겠다는 건가?」

“검찰의 사명을 외면하는 것보단 하극상이 낫겠군요. 애초에 하극상이라는 것 자체가 후배 검사들을 자기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 부패 검사들이 만들어낸 관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김시형이!」

“정치에 개입할 마음 없습니다. 수사 혐의가 있으면 조사할 거고, 확실시되면 기소할 겁니다. 원리원칙대로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게 답니다.”

그런 당연한 것에도 비난과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 김시형은 그것에 가장 혐오감이 들었다.

「지금 후원자를 믿고 망둥이처럼 날뛰겠다는 건가?」

“제 옷 벗기셔도 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 작품 후기 ==========

“무섭다고 미루기만 하면 더 큰 고통과 후유증, 그리고 수치심만 있을 뿐이다.”

김시형은 중증 치질 환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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