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58화 (358/609)

00358  추락하는 것은 환경오염이 없다?  =========================================================================

“반년 안에 400개 이상의 셀을 가동할 계획입니다.”

한서진 인공 운석 회사(Han Artificial Meteorites Campany).

약어로 HAMC.

HAMC 최고경영자의 포부가 지구를 뒤흔들었고, 세계 경제지표는 거대한 쓰나미에 휘말린 듯이 쓸려나갔다.

비록 한서진의 소유라 하나 러시아 국적의 기업이 전 세계 희토류 금속의 소비량을 전부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왔다. 심지어 환경오염마저 없다.

분열로 신음하는 중국은 가뜩이나 가쁜 숨구멍이 더욱 조여지게 되었다.

“내 부탁 좀 들어주게.”

연구소까지 직접 찾아온 백철중은 표정 가득 진지함을 띠고 말을 꺼냈다. 얼마나 거창한 부탁인 것일까. 한서진은 궁금함을 누르고 물었다.

“말씀하시지요. 회장님과 저 사이에 못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말 정말이지?”

“하나를 데려가라는 말씀이라면, 저야 언제든지 기쁘게…….”

“아니, 그런 건 아닐세. 그거야 때 되면 자네가 알아서 데려가든가 하겠지. 믿고 있으니 염려 말게.”

“그럼 어떤……?”

“이번 금요일에 전경총이 열리는데, 한 번만 출석해주게. 그냥 오기만 하면 되네. 와서 다른 총수들 면전에 대고 왜 이렇게 경영을 그지같이 하냐고 욕을 퍼부어도 좋아.”

“네?”

전국경영자총회, 전국의 사용자 대표조직으로서 경제단체 빅5에 들어가는 조직을 말한다. 그룹 총수라면 필수로 가입을 할 만큼 경제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대단하다.

진성그룹과 H그룹도 당연히 가입된 조직으로, 재미있는 것은 한서진이 국내에 유일하게 적을 둔 기업인 영원그룹은 가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물밑에서 전경총의 위상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었다.

“거기는 제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거 말하기 좀 뭣 한데……. 솔직히 털어놓자면 내 욕심 때문에 자네를 부르고 싶은 걸세.”

그게 무슨 말인지 한서진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철중은 민망한 듯 시선을 자꾸 피하며 헛기침을 남발하다가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아들이 없잖은가.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가 전부지.”

“예?”

한서진은 황당했다. 그럼 지금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아들 딸들, 손주들은 대체 뭔데?

표정에 담긴 그런 뜻을 느꼈는지 백철중이 급히 수습했다.

“아니, 그 녀석들은 개인 백철중의 아들 딸이지, H그룹 회장의 아들 딸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했다.

백철중은 그들에게 그룹에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말라고 선포한 바 있으니. 먹고 살 만큼 남겨주는 재산 외에,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총수 백철중’의 진정한 자녀는 송하나 하나뿐인 셈이다.

“딴 자식놈들은 그 꼴이 나고……. 솔직히 노인네가 이 나이 먹어서 자랑할 만한 게 뭐가 있나? 재산? 명예? 아닐세, 이 나이 먹어서는 자식 자랑하는 맛에 사는 거야.”

“하나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자네가 옆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면 자랑할 마음이 천 배쯤 더 증폭되겠지.”

“……회장님.”

“부탁하네. 내가 요즘 다른 친구들 볼 낯이 없어. 이번에 자네가 나서서 아들 노릇 한 번만 해주게, 응?”

간절한 표정에 한서진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 뭐 얼마나 어려운 부탁이라고. 그런 근사한 약혼녀를 낳아서 길러주신 분인데 이 정도 부탁쯤이야.

“그냥 가서 무게만 잡으면 됩니까?”

“그렇지, 말은 내가 다 할 거야. 나도 친구들한테 딸과 예비 사위 자랑 좀 해보고 싶어.”

“알겠습니다. 이번 금요일이라고 하셨죠?”

“고맙네.”

백철중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고,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전 또 HAMC 때문에 오신 줄 알았습니다.”

“희토류 금속? 그거야 자네가 뭐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안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희토류 국내 반입량이 얼마나 되냐고 닦달하는 중인데, 자네가 전경총 같은 곳에 떡하니 나타나서 폼 잡으면, 크…… 얼마나 재밌겠는가.”

HAMC 때문에 첨단제조업 위주의 그룹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서진이 전경총 회의 같은 곳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다면, 큰 혼란이 닥칠 것이다.

백철중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벌써부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참…… 이렇게 보면 아이 같으시다니까.’

처음 그를 접했을 때, 태산과도 같았던 위엄은 요즘 들어 너무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H호텔, 전국경영자총회.

50대 그룹만이 가입할 자격이 있는 사용자 그룹으로, 각 회원은 일선 경영에서 은퇴하면 탈퇴하는 게 아닌 명예 원로로 물러난다.

세간에는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한때 인터넷에서 물밑에서 대한민국 재계를 좌지우지하는 음모 조직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대놓고 좌지우지 할 뿐이다.

총회에서 회원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합의한 사항은 국내 50대 대기업들이 경영방침의 공통분모가 된다.

그걸 가리켜 가격 담합보다 더 악질이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있지만, 대중들의 주목을 받진 못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총수들의 관심사는 당연코 러시아의 우주 희토류 산업이었다.

“반년 안에 400개 이상의 셀을 가동한다고? 반년 안에 전 세계 시장 독점을 이루겠다는 소리군.”

“러시아쪽 라인에서 들은 게 있어. 반년은 넉넉하게 잡은 거고 3, 4개월 안에 실질적인 확장 작업이 완료될 거라고 보던데.”

“중국은 회생하긴 글렀군.”

“애초에 회생 가능성이 없긴 했지.”

현재 중국은 10개 이상의 지역으로 쪼개진 상태다. 각 지역을 통제하는 군벌에 시민들이 맹렬히 저항하고 있어, 저기서 얼마나 더 쪼개질지도 알 수 없다.

사상자도 이미 상당한 터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혁명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은 최종적으로는 중국이 10개 이상의 다수 국가로 분열될 거라 보고 있었다. 아시아의 거인이라 불리던 중화인민공화국은 이제 역사에만 그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가능성마저 사라졌으니.”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외국의 투자 유치나 관광 수입 등은 일절 기대할 수 없다.

할 만한 산업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나마 희토류를 내다 파는 것 정도가 다였다.

지역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애써 꾸려가던 희토류 산업이 최후로 남은 희망이었는데, 러시아와 한서진의 우주 희토류 개발로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한 박사, 정말 마지막까지 철저하군. 자기를 납치한 국가에 일말의 자비도 없어.”

누군가 꺼낸 말에 잠시 서늘한 적막이 흘렀다.

중국의 느닷없는 대혁명과 그로 인한 분열에는 미국의 공작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그 공작의 뒷배경에는 한서진의 강력한 보복 요청이 작용한 게 틀림없으리라.

그 거대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쪼개지고, 모든 구성원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여기에 우주 희토류라는 결정타까지 날렸다.

재벌 총수들은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서진이 제대로 화내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정말 무자비한 사람이야. 조심해야겠어.’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본인이 알았다면, 아마 억울해서 말도 잇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저기, 백 회장이 들어오는데?”

“잠깐만, 옆에 일행이…… 허억!”

“백 회장 딸과 한 박사잖아!”

그룹 총수들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한서진이 이 자리에 온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근래 전경총은 영원그룹을 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서진의 한국 직속 부대나 다름없는 영원그룹을 끌어들이면, 한서진과도 인연이 두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영원그룹 회장 박현준은 총회 가입을 가차없이 거절해왔다.

그런데 한서진이 직접 이 자리에 나타나다니?

‘백철중 회장이 데려왔나?’

‘역시 예비 장인…… 이런 자리를 한사코 마다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다니.’

이중에는 한서진을 처음 본 이도 있고, 먼발치에서 몇 번 접한 이도 있지만, 가까이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인물은 거의 없었다.

총수들은 놀란 기색을 지운 채, 덤덤한 척 연기하며 백철중 일행을 자세히 살폈다.

블랙 원피스에 와인색 숄을 걸친 송하나를 바라보는 한서진의 눈빛에는 애정이 뚝뚝 흘렀다.

‘백철중이 놈, 아주 제대로 잡았구만.’

그들은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딸 하나 잘 낳아서 세상 전부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백철중은 5대 그룹 총수들이 모인 곳을 향해 다가갔다.

“다들 여기 있었구만.”

“백 회장,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나 했더니 이런 귀인을 모시고 오려고 그랬군.”

“허허, 귀인은 귀인이지. 다들 인사하게. 이쪽은 내 예비 사위 될 사람이고…… 자세한 소개는 필요 없겠지?”

“처음 뵙겠습니다. 한서진입니다.”

한서진은 덤덤하게 인사했다.

이런 장소가 처음은 아니다. 이들 중 몇 몇은 다른 자리에서 봤을 수도 있겠지만, 뇌리에 남은 이는 없었다.

“반가워요. 나 고진열입니다.”

“한 박사, 이 친구는 SKK그룹 회장이야. 나랑 절친이기도 한데, 평소 자네랑 자리 한 번만 만들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얼마나 떼를 쓰던지. 그래서 큰 맘 먹고 오늘 소개시켰네.”

70이 다 된 고진열 회장은 당황해서 쩔쩔맸다.

“아니, 내가 언제 그랬나?”

“그럼 한 박사 만나고 싶어한 적이 없단 말인가?”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잖은가…… 이 친구도 참.”

한서진은 그저 피식거리기만 했다. 그는 악수를 나누며 정중히 말했다.

“저희 집 IP TV도 SKK 걸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이거 참…….”

자사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말에 기뻤는지 고진열 회장은 어린아이처럼 헤벌쭉 웃었다.

“혹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얼마든지 말하세요. 내가 다 시정하리다.”

“유료 영화를 볼 때 오른쪽 상단에 뜨는 연령 제한 마크가 너무 거슬립니다.”

“아무래도 초대형 TV로 시청하면 그럴 수 있어요. 그게 우리 SKK TV에서 조치한 게 아니라 방송관련법 때문에 컨텐츠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넣은 거라……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리다.”

“감사합니다.”

그저 소소한 이야기를 몇 마디 건넸을 뿐인데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고진열 회장을 필두로 다른 총수들도 용기를 내서 한서진에게 자세히 말을 걸었다. 오늘만큼은 백철중이라는 프리패스가 있어서 그에게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었다.

백철중은 한 걸음 물러선 채, 다들 앞을 다투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새침하게 서 있는 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이 맛에 딸 키우는구나. 고맙다. 뿌듯하다.”

“앞으론 저한테 먼저 말씀하세요. 오빠가 얼마나 난처했겠어요, 아빠?”

“에잉, 매정한 것.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분위기는 제법 화기애애했다. 한서진도 총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다들 희토류 등 구체적인 산업에 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대신 한서진의 지난 업적을 가볍게 칭찬하는 등 소소한 대화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끌어 나갔다.

그때였다.

“한서진 박사님, 죄송하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 낯선 얼굴이 한서진을 향해 조용하면서도 또렷하게 말문을 열었다.

“뭔데요?”

“왜 국내 투자를 극도로 꺼려하시는지…… 그 이유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

========== 작품 후기 ==========

“기사를 봐. 하고 싶겠냐.”

(이미 끌려간 사람이 남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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