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5 추락하는 것은 환경오염이 없다? =========================================================================
넘버 352 프로젝트.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이 번호만 매겨진 채 도중에 사장된 프로젝트는, 케슬러 신드롬에 대항하겠다는 포부에서 발상을 얻은 우주 개발 계획이었다.
케슬러 신드롬.
궤도상의 우주쓰레기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인공위성에 연쇄적으로 부딪쳐 무수한 파편이 지구를 뒤덮어, 인류의 우주 진출이 불가능해진다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 나사의 한 과학자가 주장했고, 당시에는 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지금 우주 쓰레기의 존재는 인공위성 및 우주선의 운용에 치명적인 골칫거리다.
초속 수 킬로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 이상으로 공전하는 우주 쓰레기는 제아무리 작은 파편이라도,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동체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청소 위성이 우주 쓰레기를 모으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파편이 발생할 수 있고, 설령 그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더 큰 난제가 있습니다. 바로 궤도상으로 떨어지리는 과정에서 쓰레기들의 결합이 풀리면 다시 우주 공간으로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파편을 청소하려다가 더 많은 파편을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히레프스키 박사는 난처해하면서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에테르와 우주 쓰레기 처리 기술을 어떤 식으로 묶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진 않았으나, 프로젝트가 일찍이 사장된 이유만큼은 강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서진은 그래도 물러나지 않았다.
“저도 폐기 이유는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른 방도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해서요.”
“다른 방도요?”
히레프스키는 깜짝 놀랐다가, 곧 베데프 총리가 사납게 눈짓 하는 것을 보고 얼른 물러났다.
‘지금 한 박사가 한 번 보자고 하는데, 계속 그렇게 맥빠지게 할 건가?’
그런 총리의 사나운 눈짓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히레프스키는 곧장 한서진을 모니터 앞으로 안내했다.
중도 폐기된 프로젝트지만 러시아에서는 특급 기밀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자료가 아낌없이 한서진의 눈앞에 낱낱이 보였고, 통찰안에 의해 성공 및 개선 가능성이 샅샅이 분해되었다.
지금까지 온갖 기밀 프로젝트를 관조하며 축적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통찰안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것은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는 놀라운 현장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총리 및 연구진은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다. 지금 한서진의 눈동자 속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지.
“…….”
마침내 한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총리는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프로젝트를 살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주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원안 그대로 살리는 건 아닙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히레프스키는 놀라움과 경악에서 차서 반문했다.
프로젝트를 원형 그대로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했으면, 아무리 한서진이라고 해도 쉬이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안으로 살릴 수 있다는 말에는 그도 기대감이 들었다.
관 뚜껑에 들어가 못질까지 한 녀석을, 대체 어떻게 뛰쳐나오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저는 궤도 진입과 추락 공식에 관한 자료, 그리고 우주 진입 로켓 정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 외는 제가 맡아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총리는 바짝 흥분이 당긴 채 그의 다음 말을 채근했다.
한서진과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다! 포티 대통령이 미친 듯이 좋아할 것이다.
“이 합자 연구, 지분 관계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라고 합니다.」
총리의 직접 보고를 들은 포티 대통령은 심각한 고민에 잠겼다.
‘352 프로젝트? 그 폐기 된 연구를 대체 어떻게 활용하겠다고?’
한서진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밑그림을 제시하진 않았다. 그 전에 먼저 조건을 제시했고, 그 조건을 수용하면 비로소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다.
협상을 하자는 태도였으나, 포티 대통령은 오히려 그런 점이 기꺼웠다. 분명 성공 가능성이 있으니 연구의 지분 관계를 운운한 것이리라.
포티 대통령은 기술자문단에게 의견을 물었다.
“352 프로젝트는 정말 살릴 길이 없나?”
“현재로서는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희박합니다. 또한 어떻게 해서 성공시킨다 해도 프로젝트의 경제성과 실효성이 너무 낮습니다.”
“한서진 박사가 어떤 식으로 살리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우주 쓰레기를 모아 궤도 질량 병기로 활용한다는 방식이라면 혹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파편을 모아 투하한다 해도 도중에 다 흩어져 버리거나 타버릴 겁니다. 무기로서의 가치는 없죠.”
“무엇보다 한 박사는 자신의 연구가 무기로 활용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과학자, 그게 한서진이 가진 이미지다.
자신의 연구가 인류 보편적인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길 바란다고 못을 박은 그가, 궤도 질량 병기 따위로 프로젝트를 살리겠다는 제안을 할 리가 없다.
도저히 감이 오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포티 대통령은 측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352 프로젝트가 현재 아무런 가치가 없고, 미래에도 가치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각하.”
“그럼 한 박사의 말대로 하게. 아니, 잠깐만.”
잠깐 생각에 잠겼던 포티 대통령은 다시 시원스럽게 말을 이었다.
“10대 0으로 하게.”
“예?”
“합자 프로젝트로 인한 모든 이익은 한 박사가 가지라고 해.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소한 경제적 이익이 아니잖은가.”
“그, 그래도 10대 0은 너무 지나칩니다!”
한서진은 지분에 관한 제안을 하면서, 프로젝트로 인한 모든 이익을 6대 4로 나누자고 했다. 물론 그가 6이다.
측근들이 생각하기에 그의 제안을 수용하면 됐지, 굳이 그에게 전부 줘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큰 이익이 나올지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
“차라리 7대 3이나 8대 2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만 해도 처음 한 박사가 제안한 것보다는 후하니, 그는 매우 만족할 겁니다.”
“자네들은 너무 물러.”
포티 대통령은 위압적인 표정을 짓고, 한심하다는 듯이 측근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못마땅함이 가능한 눈빛에 측근들은 등줄기가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러시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저런 눈으로 바라보니, 근육이 오그라드는 위축감을 느껴야 했다.
“미국에 비하면 지금 우리 입지는 너무 좋지 않아. 알고 있나?”
“그, 그것은…….”
“부족한 것 없는 대부호의 여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의 몇 십 배 이상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겨우 몇 할도 안 되는 걸 가지고 흥정을 하겠다는 건가? 그래서야 한 박사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무엇보다 러시아는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불명예스럽게도 독재국가 이미지가 심하다.
“352 연구의 모든 것을 넘기는 것은 물론, 한 박사의 프로젝트를 돕는 데 있어 러시아의 힘을 조금도 아끼지 말게. 그로 인한 부산물도 영구히 그에게 넘기고.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지금은 미녀에게 우리도 제법 괜찮은 미남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어필할 때지, 결혼 후 살림 분담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우리의 매력을 각인시켜야 그녀도 이혼이든 중혼이든 마음이 생길 것 아닌가?”
한서진을 미녀로 비유하는 대통령의 표현에 측근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뭔가 이상한 비유인 듯한데 단번에 지금 러시아와 한서진, 그리고 미국의 관계가 이해된다.
“아낌없이 다 줘. 우리는 그것부터 시작해야 하네.”
러시아는 한서진의 제안에 시원스레 콜을 외쳤다.
“대통령의 확답을 받았습니다. 연구의 모든 것을 박사님께 드리고, 그 수확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러시아는 이 합자 연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도울 것이며, 그 대신 박사님께서는 저희와 함께 연구를 했다는 것을 잊지 않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러시아는 깊은 감사를 품을 겁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은 베데프 총리는 득달같이 한서진을 찾아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깝기는 커녕 가슴을 씻어내리는 듯한 청량감만이 들었다. 이런 게 바로 준다는 기쁨일까.
“전부 다요? 저는 6대 4 정도를 말씀드렸는데…….”
“하하, 러시아는 그렇게 통이 작지 않습니다. 연구로 인한 수확물은 모두 박사님 것입니다. 직, 간접을 따지지 않고 말입니다. 지금 대통령의 공식 약속 문서가 최신형 미그 전투기에 실려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입니다.”
한서진은 살짝 질렸다.
시원스럽게 콜을 하고, 조건을 10대 0으로 바꿔준 것으로도 모자라, 공식 약속 문서를 전투기에 실어서 보냈다니?
‘러시아의 행동력이란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행동력만큼은 정말이지 미국도 몇 수는 물러줘야 하지 않을까?
한서진은 새삼 러시아가 달리 보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퀵 서비스로군요.”
이보다 더 스케일이 큰 퀵 서비스가 있을까? 대통령의 약속 문서를 최신형 전투기에 실어 보냈다는데?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 한서진은 비로소 계획을 밝혔다.
“소행성이나 그 파편을 움직여서 지구로 가져올 겁니다.”
“소행성이요?”
“우주 공간에는 순수한 상태의 광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 광물들을 지구로 가져올 겁니다.”
“우주 화물선을 이용한다 해도, 그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작업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한 번에 가져올 수 있는 물량이 얼마 되지 않으니 경제성도 없고요.”
“우주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베데프 총리 및 히레프스키는 더욱 의아했다. 한서진이 무슨 계획을 가졌는지 대관절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럼 로켓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신 건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에테르 파동을 조율할, 일종의 중계장치를 지구 밖으로 띄워올릴 겁니다. 지구 밖에는 에테르의 농도가 희박해서 중계장치가 필요하거든요. 온갖 에테르의 흐름이 어지럽게 얽힌 지구와 달리 우주에서는 에테르 파동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표적 소행성이나 광물 덩어리의 궤적을 살짝 비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추락 궤도를 위한 계산 공식이 필요하신 거군요!”
“네, 그건 제 전문이 아니니까요. 러시아의 힘이 필요합니다.”
히레프스키는 무슨 말인지 대번에 이해한 듯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한서진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듯이 느껴졌다.
“그럼 어떤 소행성 광물을 가져오실 겁니까?”
“우주에는 희토류가 금속덩어리 상태로 널려 있던데요. 그걸 안정적으로 가져온다면 좋을 것 같아서요. 돈보다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을 테니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품 후기 ==========
러시아에서는 최신형 전투기가 퀵 서비스를 합니다.
오피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