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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45화 (345/609)

00345  뉴 페이스  =========================================================================

“또 실패인가.”

주모니터에 뜬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 한서진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북한 지역에 떠도는 에테르 스톰을 완전히 소멸시킬 방도를 연구 중이지만, 아직까지 시원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대략적으로 언제쯤 가능할 것 같다, 라는 예측조차 섣불리 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리할콘이 엄청나게 필요해.’

오리할콘, 에테르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신물질.

미스릴(스코브리아늄)이 강한 에테르 자극을 받아 변형을 일으킴으로써 생성되는 물질로, 현재 니트론 교수가 극소량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오리할콘을 어떻게 만들어내지?’

미스릴, 오리할콘은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미스릴은 바닷물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채취하는 것이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니트론도 과거 강원도에 일어난 에테르 산불에 미스릴을 투하해서 우연히 얻었을 뿐이다. 그 뒤로 시도한 재현 실험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방법이 없을까…….”

에테르 스톰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평양 소멸 같은 비극이 언제 또 다른 지역에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때문에 한서진은 다른 소주제를 연구하는 도중에도, 에테르 스톰을 소멸시킬 방안에 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레노지안에는 방법이 있을 텐데.”

레노지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지금의 처지가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그는 자동 시뮬레이션을 실행한 뒤, 작업실을 나섰다. 넓은 침실 한쪽에 놓인 침대에서 송하나가 옆으로 살짝 웅크리듯이 누워 있었다.

그녀의 옆에 걸터앉아, 얇은 슬립에 가려진 몸매를 지그시 주시했다. 손을 뻗어 팔을 쓰다듬자 그녀가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오빠, 끝났어요?”

“일단 오늘 작업치는.”

“얼굴이 어두워요. 일이 잘 안 풀리시나 봐요.”

“조금 어렵네. 힘들다.”

“이리 오세요. 위로해줄게요.”

그녀가 히죽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아기처럼 품에 파고들자 향긋한 체취가 코끝을 감싼다. 등과 머리를 살며시 토닥이며 안아주는 손길이 느껴지고, 참았던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나야.”

“네, 오빠.”

“나중에 우리…… 아이는 몇이나 낳을까?”

“음, 몇 명이나 원하세요?”

“원하는 만큼 낳아줄 거야?”

“글쎄요, 힘닿는 데까지는? 노력은 해봐야죠.”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가느다란 손길이 참 기분 좋다. 이대로 그녀의 품에서 잠이 들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최대의 행복이리라.

“근데 오빠, 지금 순서 바뀐 거 알죠? 그전에 프로포즈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치, 잠들었네.”

“모바일 사업은 진작 접길 잘했네요.”

그룹 보고서를 확인한 이서나가 덤덤히 말했다. 임원들의 표정에 송구한 기색이 스쳤다. 지금 그녀는 질책하는 게 아니었음에도.

“이런 걸 어떻게 이겨. 안 그래요, 여러분?”

“죄송합니다, 회장님.”

“질책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들 말아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던 칼라폰은 현재 국내 모바일 시장을 완벽히 점령했다.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칼라폰만을 찾았고, 노년층도 기존에 쓰던 기기 때문에 미루고 있을 뿐, 기기를 변경한다면 무조건 칼라폰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칼라폰은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맥플폰의 시장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지금 세계 모바일 시장은 오로지 칼라폰만이 독주하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부서진 채 비탈길을 달리는 화물차처럼, 무시무시한 상승세였다.

“그래도 메인보드는 우리 걸 쓰잖아요?”

이서나는 살포시 웃었고, 그제야 임원들은 조금 안색을 펼 수 있었다.

SJ인더스트리가 폭발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릴 때, 이서나는 과감히 반도체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메인보드 등 주변 부품 생산으로 전자기기 산업의 진로를 틀었다.

진성전자는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 칼라칩 등 에테르 반도체에 최적화된 메인보드와 주변 부품을 제조해서 납품한다.

원청업체의 지위라는 자존심은 버렸지만, 그 대신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주주들 사이에서도 탁월한 결정이었다며 인정받고 있다.

‘SJ인더스트리와 H그룹에 굽히는 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라, 현명하고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서나가 늘 임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었다.

더 이상 진성그룹은 국내 최고의 재벌그룹이 아니었다. H그룹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2인자 그룹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미 대통령 선거가 멀지 않았군요.”

“클레튼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4년 뒤에는 존 캐롤 상원의원이 바통을 이어받겠지요. 지금 민주당은 한서진 박사 덕분에 미국 시민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오는 공화당 후보가 누구더라.”

“크리스 상원의원입니다. 미 정계에서 그리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게다가 중국계 3세입니다.”

이서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공화당은 일찌감치 이번 선거를 포기하고, 클레튼의 재임이 끝난 이후를 노리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경쟁력 없는 후보를 내보내다니, 아마도 버리는 패이리라.

공화당 역시 미국, 한서진을 우대하고 있다. 다만 현 정권이 민주당이라서 조금 밀려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클레튼의 재임이 끝나고 공화당이 설령 정권을 잡는다 해서 걱정할 일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영원히 한서진의 친구일 테니.

‘어차피 H그룹은 SJ인더스트리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 그렇다면 우리 진성그룹이 SJ인더스트리의 한국 교두보가 되어야 해.’

지금은 한서진이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제 미국으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지금 어렵사리 유지하고 있는 친분 관계도 서먹해질 것이다.

이서나는 쉬지 않고 그룹의 미래를 구상했다.

구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서진이 있었다.

평일 저녁, 한서진은 모처럼 동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먼저 룸에서 기다리던 그는 희미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곧 문이 열리며 한지혜가 들어섰다.

“안 늦었지?”

“10분이나 늦었잖아.”

“뭐야, 안 늦었네.”

한지혜는 태연히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근사한 코트를 입고, 심플한 디자인의 버킨백을 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서진이 피식거렸다.

“그러고 다니니까 이제 제법 부잣집 아가씨 티가 나는구나.”

“내가 원래 동대문 짝퉁백 들고 다니던 시절에도 부티가 철철 흐르던 여자야. 쥐뿔도 없던 시절에도 얼굴이랑 성격 두 개만으로 재벌 3세를 꼬셨다니까?”

“그렇게 잘나서 여태껏 솔로야?”

“선택 장애가 온 거지. 너무 고를 게 많아지니까 오히려 못 고르겠어. 딴 건 모르는데 생모가 유전자 하나는 조합 잘 해줘서 고맙네. 나도 나중에 딸 유전자 조합 잘 시켜주려면 좋은 남자 만나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생모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표정에 전혀 불편함이 묻어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제는 진정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방증이었다.

한서진도 마찬가지였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가슴이 조금도 뛰지 않는 채로, 태연히 말을 이었다.

“생모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잘 지내고 있나 봐. 맨날 오빠 기사만 찾아본대.”

“후회하고 있을까? 우리 버리고 도망간 거?”

“글쎄? 아마 그렇겠지? 물론 생모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

생모는 현재 한적한 시골의 조그만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1층의 적당한 규모의 집이다. 물론 소유권은 H컨설턴트 법인 명의로 되어 있다.

옛날 한지혜는 생모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려 했고, 한서진도 그에 동의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원격 경호만 했다. 한서진의 생모이니, 몸값을 노린 이들이 접근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서진이 미국 명예시민이 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면서, 더 이상 방치하는 식으로 놔둘 수 없었다.

천륜은 끊어졌다 해도 ‘관리’는 필요했다. 세간이 갖는 한서진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만약 생모가 비참하게 굶어죽거나 혹은 납치라도 당한다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한서진을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인데, 그래도 엄마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떠들어댈 것이다.

그래서 경호가 원활한 시골 전원주택을 제공하고, 다달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 먹고 사는데 걱정은 없지만, 사치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할, 딱 그만큼만 지원한다.

그런 조건으로, 생모가 언론 등에 접촉할 수단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원체 가난하고 기구한 삶을 살아왔던지라 생모는 그 정도에도 감격하는 것 같지만.

“너, 따로 만난 적은 없지?”

“뭐 하러? 그때 이후로 직접 보거나 연락한 적은 없어. 죄다 사람 시켜서 했지.”

생모가 돈을 들고 잠적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만난 그때를 말함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생모 이야기를 입에 담는데도 가슴이 전혀 아무렇지 않다. 한서진은 그 점이 신기하면서도, 천륜이라는 것도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얼마 안 있으면 재선 결과 나오겠네.”

“그럼 오빠 미국 한 번 또 가겠다? 나도 데려가 줘. 데이비드 캠프 놀러가고 싶어.”

“선거 끝나면 클레튼 대통령한테 말해볼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믿을 수 없는 행운의 수혜자, 당사자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사자는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고 자신의 볼을 꼬집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빈곤층은 그의 목소리,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구상대로 미국이 변화한다면, 더 강하고 행복한 미국이 이뤄질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공약이었고, 그것이 이뤄질 거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당사자 역시 일단 뭐라도 지르고 보자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약에 부속된 실천 방안 구상이 의외로 체계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다는 점을 들었지만, 공약의 대전제 자체가 미국의 대의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재선에 임하는 대통령측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직 대통령, 상대 후보보다 재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 아닌가.

어느 누구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그 일이, 그런데 일어나고 만 것이다.

“명예시민 한서진 박사는 미국의 영웅이자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미 정부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한국에서 제대로 보호조치를 하지 못해, 중국에 납치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중국은 응당한 신의 벌을 받았으나, 그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북쪽에는 미합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러시아가 버티고 있습니다…….”

미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층은, 이민자 3세 출신의 대통령 후보의 연설에 열광했다.

“미국과 미국의 영웅을 위하여, 우리는 안전한 영웅의 보금자리를 미국에 만들어줘야 합니다. 제가 해내겠습니다!”

영웅이 편안히 쉴 곳을 미국에 마련하겠다. 그리하여 영웅을 미국으로 모셔오겠다.

그런 공약은 대다수 하위층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클레튼 대통령은 그 열풍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클레튼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했다.

========== 작품 후기 ==========

우리의 카우보이 형님은 4년만 채우시고 이렇게 물러나십니다.

수고하셨어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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