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40화 (340/609)

00340  진성그룹 연말 파티  =========================================================================

금요일 저녁, 이서나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진성그룹은 총수의 생일을 그룹 연말 행사와 묶어서 치르기로 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진성호텔 별관 전체를 파티장으로 꾸미고, 귀빈들을 초대했다.

정재계를 비롯하여 학계의 유명 인사들도 빠짐없이 초대받았다. 오후가 되자 호텔 별관 주차장은 그들이 탄 차가 쉴 새 없이 자리 잡았고, 호텔은 비상 체제로 숨 막히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넓은 별관이 살짝 좁다고 느껴질 만큼 많은 손님들이 파티장을 찾았다.

입구에는 부지배인이 손님들의 초대장을 확인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또 한 팀의 초대장을 확인했고, 옆의 여직원이 웃는 얼굴로 손님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때, 길고 검은 동체를 지닌 차 한 대가 별관 정문을 미끄러지듯이 들어섰다.

“와, 리무진이네요.”

“누구지?”

부지배인은 의아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재벌 총수도 웬만해선 리무진을 자가로 타고 다니진 않고 고급 세단을 선호한다. 금액적인 면을 떠나, 대중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대대적인 행사라면 더욱 그렇다. 톱스타 연예인이 대여한 리무진을 타고 연말 시상식에 참가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잠깐, 설마?’

오늘 초대 명단에 있던 한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리무진 문이 열리며 안에서 청년 한 명이 먼저 내렸다. 부지배인은 급히 안색이 변해서, 재빨리 그를 향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한서진 박사님. 환영합니다.”

“잠시만요. 초대장이 어딨더라…….”

“괜찮습니다.”

얼굴이 그 자체로 초대장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리무진에서 여자 두 명이 곧 뒤따라 내렸다. 둘 다 시원스럽게 키가 크고, 독보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미인들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부지배인은 직접 한서진 일행을 안내했다.

대연회장에 들어서자 순간적으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뚝 멎었다. 초청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지만,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부지배인을 따라갔다.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적막 같은 홀을 잠식했다.

“저 사람이 한서진 박사?”

“초대받았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여기 올 줄은 몰랐네. 이런 자리는 별로 안 좋아한다던데.”

“같이 온 여자들은 누구지?”

“여동생이 한 명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재산이 대체 얼마쯤 될까?”

저들은 한 명 한 명이 한국 사회를 주름잡는 최상류층이지만, 한서진 앞에서는 서민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망, 동경, 질시 등 복잡한 심정을 담은 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두 여기만 쳐다보고 있네. 이러다가 내 얼굴 다 뜯어지는 거 아닌지 몰라.”

한지혜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송하나는 조용히 웃기만 했고, 한서진은 팔짱을 낀 채 피식거렸다.

턱을 괸 채 한지혜는 시선으로만 주변을 조용히 훑었다.

“내가 서민 근성 아직 못 버리긴 했나 봐.”

“갑자기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입고 걸친 거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만 자꾸 들어.”

“설마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일단 우리 테이블만 셈해도 벌써 1조 원이 넘네. 우와, 진짜 대박이다.”

한지혜는 너스레를 떨며, 한서진의 손목을 힐끔거렸다.

그가 손목에 차고 있는 에테르 워치, 세계에서 유일하게 조 단위의 가격을 자랑하는 최고급 사치품이다.

어쩌면 여기 모인 초청객들이 걸친 것을 모두 합쳐도, 저 시계 하나조차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사방에서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고요해졌을까.

이런 자리에서 한서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 보니,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멈춘 채 흠모와 관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입구 쪽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돌아보니 이서나가 들어서고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마다 인사하던 이서나는 곧 한서진 일행을 발견하고,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서진 박사, 어서 와요. 와줘서 고마워요.”

“동문 선배님 생일 파티인데 당연히 와야죠.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요.”

“과가 다른데도 선배로 인정해주는 건가요? 영광이에요, 후배님.”

한서진은 이서나와 가볍게 포옹을 나눴다. 이서나는 송하나, 한지혜와도 차례차례 포옹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다른 초청객들은 그런 제스처 하나하나까지도 숨죽여 관찰했다.

“제약 사업이 크게 풀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조금 늦었지만 축하해요.”

“아닙니다. 그저 소소하게 용돈벌이나 하는 수준인 걸요.”

“그게 소소한 거면 다른 기업가들은 뭐가 돼요.”

이서나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오늘 파티의 주인답게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나저나 백철중 회장님은 안 오셨네.”

“피곤하시다고 저더러 대신 축하해달라고 하셨어요.”

“감사한다고 전해드려. 아, 지혜 양. 그때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괜찮아요. 그때 전화로 바로 말씀하셨잖아요.”

“그래도 직접 얼굴 보고 말하는 거랑은 또 다르죠.”

근처 테이블은 숨을 죽인 채, 이쪽 테이블에서 오고가는 대화를 훔쳐듣는데 여념이 없었다.

“한 박사,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면서요?”

“벌써 아셨습니까?”

“지금 모교에서 엄청 유명하잖아요. 한서진 박사가 반도체에 이어 의학까지 섭렵하려 한다고. 이미 제약에서 큰 성공을 두 번이나 연달아 거둬서 주변의 기대도 어마어마하게 크던데.”

이서나는 눈웃음을 치며 은근한 기대를 드러냈다.

“나도 궁금하고, 기대도 되고요. 한서진 박사란 사람이 의학에서는 또 어떤 금자탑을 세울까, 하고요.”

“……하하.”

“이미 생리의학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던데. 어디 보자. 내년 이맘때쯤에는 수상자로 지목될 수 있을까요?”

“따 놓은 당상이라니요, 그러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너무 겸손하시네요. 간 재생 치료제만 해도 이미 의학의 역사를 새로 쓴 거죠.”

이미 효능이 입증되고 정식 시판에 들어간 간 재생 치료제.

젊고 싱싱한 간을 새로이 복원함으로써, 어떤 간 질환도 완벽하게 치료하는 꿈의 신약이다. 이미 사람들은 한서진 외에 어느 누구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있을 수 없다고 확고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근데 물리학상은 안 받나요? 에테르학이면 충분히 수상 자격이 되고도 남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조금 기대하고 있어요.”

송하나가 야무진 음성으로 대신 대답했다. 이서나의 눈길이 그녀에게 향했다.

“사실 나도 은근히, 아니 많이 기대하고 있어.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는 한 박사 말고 딱히 줄 사람이 없잖아?”

“오빠가 분명히 선정 될 거예요.”

“그럼 올해는 물리학상, 내년에는 생리의학상을 받게 될까?”

“내후년도 생리의학상 받아야죠. H-2면 충분하다고 봐요.”

“솔직히 그건 동시 2관왕을 달성하지 않을까 생각 돼. 탈모를 정복했으니 평화상도 줘야지. 안 그러니?”

“맞아요.”

송하나와 이서나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있으니 한서진은 괜히 민망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담소를 나누고 이서나는 곧 일어섰다. 그녀는 다른 테이블도 차례차례 찾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서진은 이서나의 당당한 모습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그녀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여왕의 품격이 뿜어져 나온다.

재벌 딸들은 다 저런 것일까. 하나도 나중에는 저렇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한서진 박사님.”

한서진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다소곳하게 빗어 내린, 준수한 인상의 풍채 좋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50이 넘었을까?

처음 보는 얼굴에 한서진은 갸웃하다가 그가 내민 손을 보고는 악수에 응했다.

“한서진입니다. 그런데…….”

“도원패라고 합니다. 미흡하지만 정치 쪽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인? 한서진은 의아했다. 혹시 국회의원인가?

‘이서나 회장 생일파티에 초대받을 정도면 꽤 사회적 지위가 있겠네.’

“아, 네. 반갑습니다.”

“한서진 박사님의 천재성과 업적, 위명은 늘 감동 있게 듣고 살았습니다. 그 놀라운 입지전적 행보에는 저도 가슴 깊이 사무친 바가 있습니다. 언제나 직접 뵙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공손하게 한서진에게 명함을 건넸다. 태도만 보면 거슬릴 게 없는 사람, 한서진은 어렵지 않게 그의 명함을 받았다.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한 그는 쉬지 않고 대화의 흐름을 이어 나갔다.

“저는 한서진 박사님 같은 분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학업에 힘을 써 세계적인 대가로 우뚝 일어나셨으며,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서 이 나라 경제를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계시죠. 그 외에도 국가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업적을 남기시는 중이지만, 무엇보다 한서진 박사라는 위인을 배출한 국가라는 큰 명성을 주셨습니다.”

“…….”

열의를 띠고 말하는 그와 달리, 한서진은 속으로 조금 떨떠름해서 동생과 눈을 마주쳤다. 동생이 알겠다는 듯이 피식거리며 작게 어깨를 으쓱했다.

도원패는 피를 토하는 듯이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김두박 정권은 박사님 같은 위인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그 점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

“박사님께서 미국 명예시민이라는 커다란 영예를 입으셨음에도, 미국으로 떠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고수하시는 걸 보고, 제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저, 그건 그냥…….”

한서진은 그냥 익숙한 곳에서 계속 사는 게 편한 텃새 습성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한지혜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박사님 같은 위대한 과학자를 홀대하는 것은 용납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현 정부는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될 겁니다. 제가 자신합니다.”

“실은 정치 이야기는 제가 좀 불편합니다. 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도원패는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흘러 넘겼다. 한서진이 거북해하는 걸 눈치 챈 것일까. 그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아, 네.”

도원패는 미련이 남은 듯한 기척을 남기며 테이블을 떠났다.

한지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웃겨서 죽는 줄 알았네. 참느라 혼났어.”

“왜?”

“오빠, 도원패 저 사람 모르지?”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당연히 모르지.”

“도원패 국회의원, 여당 대주주잖아. 차기 대권 주자로 아주 유력한 사람이거든. 엄청 금수저일 걸. 아마 정치인 중에서는 재산이 제일 많을 거야.”

“그랬어?”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나? 그래서 이 자리에 초청을 받은 건가?

물론 상대가 아무리 유명해봤자, 미국 최고 권력자와 절친을 맺은 한서진으로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근데 웃겨서 혼났다는 건 뭔데?”

“아, 저 사람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거든.”

“……블랙리스트?”

한서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자신을 비방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닥치는 대로 조사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은 들었다.

그들에게 해코지는 못 하더라도, 자신의 업적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나?

근데 저 사람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옛날에 오빠가 5nm공정 특허 아부다비에 팔았을 때 국부 유출이자 매국 행위라며 뒤에서 떠들고 다닌 사람이거든. 근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 싹 전환한 거 봐.”

“…….”

“저런 사람이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래.”

한서진은 문득 생각했다. 가까이 지낼 만한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구나, 하고.

그때였다.

“한서진 박사, 오랜만입니다.”

비운의 황태자, 이용무가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최근 실탄프로덕션을 둘러싸고 실탄의 ㅌ가 TM의 ㅌ라는 음해가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TM과 하등 관계가 없으며, 풍성한 숱으로 인해 머리 관리에 오히려 애를 먹고 있습니다.

실탄의 ㅅ은 풍성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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