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39화 (339/609)

00339  깨달음  =========================================================================

시판 승인을 얻은 간 재생 치료제는 완벽한 간 질환 치료제라고 각광받고 있다. 모든 간 치료의 끝판왕이자 최종 대왕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1회 복용량이 무려 3만 달러, 원화로는 3천만 원이나 한다.

하지만 간암 등 중증 간 질환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싼 가격이다. 그들은 그 이상의 치료비를 부담하고도 완전한 회복을 마냥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3만 달러는 절대로 비싼 가격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정도의 간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는 애매한 가격이다.

예를 들어 지방간. 적당히 운동하고 치료받으면, 굳이 3만 불이라는 큰돈을 지출하지 않고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수 있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치료비, 그리고 H컨설턴트에서 가격을 할인해주는 지원 정책 등은, 경증 질환자들에게는 크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3천만 원을 쓰고 빠른 시간 내에 확실히 낫느냐, 조금 시간이 걸리고 적은 비용을 들이느냐, 그 차이였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건강한 간을 얻을 수 있지만.

어쨌든 간에 H-1은 완벽한 간 치료제로서 흠집 없는 칭송을 받고 있었고, 유수의 대학 병원들은 앞을 다투어 H-1을 들여놓으려고 했다.

덕분에 영원그룹의 제약 생산시설은 24시간 꺼지지 않고 쉼 없이 돌았지만, 세계가 요구하는 수요를 맞추기에는 아직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마력 칩셋 4를 이용한 제조용법을 공개할 수는 없는지라, 영원그룹은 위탁생산을 맡겨달라는 다른 제약회사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한서진은 탈모 치료제 역시 H-1처럼 완벽함을 가지기를 추구했다.

그러나 막상 결과는 그의 기대를 ‘적당히’ 배신했다. 왜 ‘완전히’가 아니고 ‘적당히’냐면, 본래 기대하지 않은 효과까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두피의 모발 재생 효과는 분명 뛰어난데…….’

발모 효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H-2는 모낭을 튼튼하게 만들어, 그 어떤 호르몬이나 면역 체계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모발을 소중히 키워주는, 강한 어머니로 탈바꿈시킨다.

뿐만 아니라 흉터 등으로 인해 모낭이 손상된 부위에도 새로운 모낭을 재생시키는 효능까지 있다.

모낭 강화를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뺨이나 귀 등 모발이 나선 안 되는 부위까지 모발이 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거야?”

통찰안이 알려주는, 신약 H-2의 효능과 부작용.

아직 임상시험을 한 건 아니지만, 굳이 시험을 해보지 않아도 그 효능과 부작용은 명백했다.

“H-1 때는 이런 부작용 따위 없었는데.”

레노지안의 발모 마법을 현대 의학과 결합시킨 것이라, 태생적으로 명령 코드의 변경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서진은 통찰안을 통해 발모 마법의 수식, 즉 코드를 바꿔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통찰안의 능력이 발모 마법의 본질을 꿰뚫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마법은 대단히 높은 식견과 통찰력을 지닌 마도사가 개발한 건지도 모른다.

아직 한서진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아, 발모 마법의 근원이나 허점을 꿰뚫어볼 수 없는 것이다. 처음 통찰안을 얻었을 때, 반도체 외 다른 영역에서는 적당히 제한이 있었던 것처럼.

“이 마법을 만든 사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한서진은 진심으로, 이백 년 전에 살았던 그 마도사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잘 안 돼요?”

송하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 서린 근심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녀의 흰 팔뚝을 버릇처럼 만지작거리며, 그는 한숨처럼 대답했다.

“효능은 괜찮을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근데 아직 임상시험은 안 하셨잖아요.”

“안 해도 알아.”

“와, 에테르는 뭔가 대단한 것 같아요.”

이미 더 이룰 것도 없는 위치건만, 그래도 칭찬은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그래서 임상시험을 못해. 부작용이 뻔히 예측되는데 어떻게 임상시험을 하겠어?”

“어떤 부작용인데요?”

“음…….”

한서진은 말하기 민망한지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송하나는 얼굴을 조금 가까이 들이대며 갸웃거렸다. 대답을 재촉하듯이.

“왜 그러세요, 오빠?”

“그게, 조금 민망한 부작용이라서. 말하기 쑥스럽네.”

“에이, 우리 사이에 쑥스러울 게 뭐가 있나요?”

하긴, 이런 걸로 쑥스러워할 사이는 예전에 지났다. 그녀의 화사한 시스루 원피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서진은 헛기침을 하고 대답했다.

“털이 없어져.”

“네? 그거 탈모 치료제라고 하지 않았어요?”

“탈모 치료제는 맞는데, 다른 부위에서 털이 사라져. 무슨 등가교환 같아. 다른 부위에서 모발을 나게 할 힘을 전부 두피에 집중시키는 것처럼.”

“다른 부위라면, 어디…….”

“인중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로, 외부로 드러난 피부에는 털이 몽땅 사라진다고 보면 돼. 인중, 턱, 겨드랑이, 다리, 그리고 사타구니와 항문까지…….”

“……그래서 민망하다고 하셨구나.”

송하나도 어이가 없는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덴 몰라도 거기 부위 털이 사라지는 건 남자들에게는 좀 그렇겠어요.”

“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대신에 여자들한테는 반응이 엄청날 것 같아요. 제모를 굳이 안 해도 되잖아요. 만약 부작용 제거가 어렵다면 차라리 제모 약으로 파시는 건 어때요?”

“어, 그거 좋은 생각이다. 확실히 여자들은 좋아하겠구나.”

애초에 남성 탈모 환자들을 주 소비층으로 생각하고 개발에 몰두한 터라, 여자 소비자들의 욕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괜찮은데?’

여자들 중에도 수염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겨드랑이, 다리까지 미끈하게 완벽히 제모해주니 호응도 높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아쉽긴 했다.

‘탈모인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H-2를 원하는 남성 탈모 환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모발 염려를 해본 한서진으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건 송하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부작용을 없앨 수 있도록 계속 개량을 해야겠어.”

“그럼 이건 출시 안 하실 거예요? 제모제로 출시하면 돈 엄청 벌 것 같은데.”

“돈은 지금도 많아.”

“꼭 제모뿐만 아니라, 다모증으로 고통 받는 여자들도 많이 있어요. 어떤 환자들은 10대인데 온몸에 털이 수북하대요.”

“그럼 그냥 이대로 출시할까? 아, 먼저 임상시험부터 해야겠지만.”

“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미 의회에서 의약품 승인에 관한 절차를 대폭 변경한 덕에, 한서진은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승인을 마치고 출시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안전을 도외시한 게 아니라, 한층 더 안전을 추구하되 대신 시험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서진은 영원그룹에 ‘다모증 치료제이자 제모제’인 H-2의 개발 사실을 통보했고, 영원그룹은 즉시 물질특허를 내는 한편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그 결정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머리가 풍성한 이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H-2 임상시험 지원하러 왔습니다.”

임상시험 지정병원으로 선정된 한국대 피부과는 많은 방문 환자들로 바글거렸다. 한국대 피부과가 개설된 이후, 지금처럼 환자가 미어터진 적은 없었다.

병원 로비는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온 것처럼 많은 인파로 복잡했고, 원무과는 몰려드는 접수 신청으로 정신이 없었다.

초진을 위해 준비 중이던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분은 다모증이 아닙니다. 임상시험 지원 자격이 안 돼요.”

“다모증이 아니라니요! 이봐요, 의사 선생님! 지금 내 다리에 송송 난 이 털이 안 보이세요?”

“이 정도는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제가 이 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압니까? 다리털이 신경 쓰여서 여름에 반바지를 입지 못해요! 차라리 다리털을 모조리 다 뽑아서 내 정수리에 옮겨 싶고 싶단 말입니다!”

“…….”

“앗, 그만 나도 모르게 본심이. 하여튼 의사 선생님, 꼭 좀 부탁합니다.”

눈앞의 젊은 의사가 임상지원 심사권한을 쥐고 있는 터라 환자는 애걸복걸하듯이 매달렸다.

젊은 의사는 정수리가 훤한 그의 머리를 보며 잠시 침묵했다.

‘원래 안 되는데. 절대 안 되는데.’

H-2의 임상지원 자격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다모증 치료제, 즉 다모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다.

다른 하나는 겨드랑이나 복부, 다리 등의 모발을 제거하기 위한 제모제로서 효능을 시험한다.

“예상 부작용에 관한 설명은 읽어보셨죠?”

“물론입니다! 저는 제발 그 기적, 아니 부작용이 팡팡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럼 제모제 효능 시험을 위한 지원자로 분류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진짜 나중에 큰 복 받으실 겁니다!”

오늘 하루만 벌써 이런 지원자가 100명이 넘었다. 의사들은 복도에 줄줄이 선 지원자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물량은 정해져 있고, 서울에서 임상시험 대상으로 지정된 병원은 한국대를 포함해 세 군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엄청났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신약 H-2의 임상시험을 공고하면서 설명한 부작용 문구 때문이었다.

「예상 부작용 : 두피의 모낭 강화와 증대로 인해 모발의 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 모발의 두께나 강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사료 됨.」

부작용에 관한 짤막한 문구는 신약에 관심이 넘치는 어느 탈모인을 통해 널리 유포되었다.

이에 탈모에 고통 받아온 무수한 남성 환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임상시험 지정병원으로 몰려든 것이다.

머리가 풍성한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부작용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역전하는 축복이자 효능이 될 수도 있었다.

―H-2 임상시험 대상자로 간택받았다! 아싸!

―좋겠다. 나는 빛의 속도로 탈락했는데.

―지원자는 너무 많고, 풀린 물량은 너무 적다.

―대머리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은 아재입니다. 이미 가발과 혼연일체의 몸을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임상지원 이후 어느 날 아침에 거울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매끈했던 제 정수리에 다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머리 15년차다. 한 달 전 모습이랑 지금 내 모습, 인증한다. 절대 가발 아니다. 벌써 이만큼 자랐다.

―우와, 대박!

H-2의 부작용에 관한 인증이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H컨설턴트에서 미처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부작용 때문에 욕하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칭송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비록 내 멋진 수염과 겨털, 다리털과 음모를 잃었지만,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머리털을 얻었으니까.

―수염 따위 꺼져. 난 머리털만 있으면 된다.

다모증 치료제이자 제모제의 부작용을 톡톡히 본 남성 탈모 환자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서진에 관한 여론을 관리하는 H컨설턴트 역시 그걸 보고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어머, 김범석 부사장님. 혹시 가발 맞추셨어요?”

“예? 아, 예! 그, 그렇습니다! 가발 새로 맞췄습니다!”

“멋지시다. 진작 그렇게 하고 다니시지. 10년은 더 젊어 보이시네요. 전 누군지 깜짝 놀랐네요.”

“……하하하.”

한지혜는 평소와 달리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김범석 부사장을 보고 갸웃거렸다.

‘가발 쓰셔서 더운가 보다.’

========== 작품 후기 ==========

레노지안 전설의 마도사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마법이라 함부로 개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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