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7 깨달음 =========================================================================
“박사님, 준비하세요.”
집도의의 말에 한서진은 끄덕이며 준비를 갖췄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손을 소독하고, 수술 가운을 걸쳤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물론 그는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병원에서 한서진의 위치는 조금 특이했다.
그는 인턴도 아니고, 의대생도 아니다. 의료인으로서 어떠한 자격도 없다.
그러나 온 병원이 그의 수술 실습에 신경 쓰며, 긴장을 곤두세우고, 정성을 기울인다. 나이가 한참 많은 집도의조차 그에게 깍듯하게 존칭까지 붙이고, 고개를 숙인다.
교수들이 그러는데 다른 의료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고맙습니다.”
한서진도 덤덤하게 그의 호의에 응했다.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해봤자 소용없다. 차라리 젊은이들과는 비교적 소탈한 관계를 틀 수 있다.
그러나 연세가 많고, 특히 이룬 게 많은 이들일수록 그의 앞에서 몸을 사린다. 그게 몸에서 털어낼 수 없는 처세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하고 있다.
그는 교수의 안내를 받아 수술실에 들어섰다. 수술 필드에서는 이미 다른 이들이 한창 수술 개시 중이었다.
심장 이식 수술. 그를 안내한 교수는 국내에서 심장 이식의 최고 권위자라 들었다.
‘한국대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국내 최고의 명문 대학이라서일까. 한국대는 유독 동문 의식이 강하다. 과가 달라도 사회에서 만나면 스스럼없이 선후배 관계가 된다.
그러나 한서진에게는 ‘감히’ 선배 노릇이랍시고 대하는 이가 없다. 현직 교수들도 제자가 아닌, 한참 상전 대우를 해주는데, 오래 전에 한국대를 졸업했다고 선배 간판을 내세울 만큼 간 큰 이는 없었다.
“교수님, 준비 되었습니다.”
“음, 시작하지.”
드디어 수술이 시작되었다.
한서진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지켜보았다.
교수가 환자 앞에 서자 수술실의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갔다. 전신마취 된 환자의 가슴이 크게 열려 있었다. 곧이어 이식을 위한 심장이 도착했다. 첩보 작전이라도 시행 중인 것처럼, 수술실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한서진은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통찰안이 발동하며, 정신이 잠시 아득해졌다.
짜릿한 전기 같은 감각이 뇌리에 밀려온다. 곧 수술실의 모든 것이 담고 있는 진리가 시각 정보로 변하며, 두 눈을 통해 홍수처럼 뇌로 쏟아진다.
수술실은 현대 의학의 모든 정수가 총망라해서 집적된 공간, 미세한 공기의 흐름까지도 놓칠 수 없는 정보를 담고 있다. 통찰안은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분해해서 진리로 재구축한다.
쏟아지는 정보량에 머리가 잠시 아찔해졌지만, 한서진은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부족해, 부족하다. 통찰안,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돼?’
진리에 대한 탐욕. 갈증.
고작 이 정도로 그것을 달랠 수는 없다.
한서진은 몇 시간에 걸친 심장 이식 수술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수술 도구 및 기재, 집도의의 손놀림, 땀이 흐르는 그의 이마와 눈동자, 그 모든 것에 축약된 진리를 읽어냈다.
단 한 번의 수술만으로, 그는 지금 이 수술에 담긴 모든 것을 자신의 지식으로 승화했다. 그뿐이 아니다. 통찰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현대의학이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까지 꿰뚫어본 정보를 두뇌에 담았다.
그 방대한 진리의 양을 과연 얼마나 흘리지 않고 저장할 수 있을 것인가.
“수고하셨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환자의 가슴을 닫는 순간, 마침내 수술실을 가득 메웠던 긴장감이 옅어졌다. 집도의도 비로소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이거 이식 수술을 처음 집도 맡았을 때처럼 긴장되네.’
한서진이 수술실에서 참관하고 있다는 것 때문인지, 수술을 하는 내내 긴장감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래봬도 심장 이식의 권위자, 평소라면 적당히 여유 있게 마쳤을 수술이었는데도.
집도의는 흘끔 한서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적잖이 흥분한 얼굴, 피를 봐서 놀란 것 같지는 않다.
저절로 흐뭇해졌다. 혹시 내 현란한 수술 스킬에 넋을 잃은 건 아닐까?
‘오래는 못 살겠구나. 저 환자.’
한서진은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다.
집도의가 들었다면 뒤집어졌을 말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무 문제도 없는데, 의학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그가 환자가 오래 못 살겠다고 하다니.
‘환자의 몸이 이식 받은 심장을 너무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남의 장기를 이식 받았으니, 당연히 몸의 면역 체계는 이물질로 인식하고 거부한다.
그걸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쓰지만, 환자의 거부 반응은 그것을 초월했다.
몇 년 정도 버틸 수야 있겠지만, 이식 받은 심장과 면역 체계, 그리고 억제제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결국 몸 전체가 너덜너덜해지고 말 것이다.
싸움이 끊이지 않고, 화합을 모르는 조직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으니.
‘면역억제제 같은 걸 만들어 볼까? 차라리 그런 게 당장은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 쓸 수 있는 영역도 많고. 억제제 먹는 환자들은 평생 작은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던데.’
면역 체계를 건드리지 않고 이식받은 장기를 안전하게 몸의 일부로 인식시킬 수 있다면, 환자도 남은 생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서라면 어떻게 했을까?’
문득 레노지안이 떠올랐다.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묘한 차분함이 가슴에 고인다. 상반된 감정이 혼란스럽게 한다.
이곳 지구가 꿈이라는 그곳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지만, 레노지안의 힘 덕분에 암을 이겨내고, 지금의 찬란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수술 참관은 어떠셨습니까? 장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는데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집도의, 최원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학을 교습하는 스승이자, 한국대학교 선배지만, 마치 회사 오너를 대하는 임원 같은 태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이었습니다. 현대의학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박사님의 교습 과정에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저야 보람찰 뿐입니다.”
최원일은 아부에 가까울 정도로 굽실거렸다.
한서진이 한국대 의대에 매년 내는 ‘등록금’만 해도 500억 원이다. 그에게 잘 보이면 ‘등록금’의 일부가 그의 학과, 혹은 병원 담당 파트에 유리하게 배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넌지시 말하면 총장이나 의대 학장, 병원장도 거부할 수가 없을 테니. 그래서 다른 의대 교수들도 그에게 잘 보이려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최원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박사님.”
“아, 네. 왜 그러시죠?”
“반도체공학처럼 에테르학을 의학과 접목시키려고 의대 수업을 참관하시는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기에 한서진은 순순히 긍정했다.
최원일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말이 한서진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혹은 그가 언짢아할까 봐.
“의대 공부량이 방대하긴 합니다만, 물론 박사님이시라면 어렵지 않게 교습을 마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의사 자격증은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해서……. 아무래도 지금처럼 하시는 것으로는 의사면허를 습득하기 불가능합니다.”
“괜찮습니다. 면허가 필요한 일에는 고용의사를 대리로 내세울 생각이라서요.”
“대리요?”
생각도 못한 대답에 최원일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네, 저야 연구의 실체적인 면을 담당할 거고, 대리의사를 통해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하면 되죠. 그렇다고 그런 과정을 비밀로 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 그러면 문제는 없겠군요.”
예를 들어 한서진이 획기적인 수술법을 개발했다 해도, 직접 시술하면 불법이지만 다른 의사에게 알려줘서 그를 통해 시술하면 합법이 된다.
그 의사도 바보는 아닐 테니, 한서진이 알려줬다 한들 해로운 의료행위를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는 없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괜한 걱정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서진이 웃어주자 최원일은 더욱 용기를 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박사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을 제가 조금 들을 수 있을까요? 이래봬도 국내에서는 심장부분에 있어 나름 대가 소리를 듣는 몸입니다. 미약하지만 제 의사 생활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음…… 일단은 의학에 있어서 박사에 준하는 정도의 지식을 축적하고 제 것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래야 에테르학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호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제 생각에는 올해 안에는 조금 힘들고 내년 중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네?”
최원일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의대 수업을 이제 시작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올해 안에는 조금 힘들어? 내년 중에는 가능하다고?
“박사 학위 자체를 따려는 건 아니니까요. 관련 지식만 습득하는 거야 뭐 제 공부 방법에 달렸죠.”
“그, 그렇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역시 불세출의 천재다우시군요.”
그러나 최원일은 곧 놀라움을 지우고 납득했다.
그래,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반도체공학의 대가가 되고, 에테르학의 창시자로서 이름을 날리는 천재 아닌가. 일 년도 안 걸려 트로피 하나 더 늘리는 것쯤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
지금도 엄밀히 말해서 반도체공학부 재학생일 뿐, 학사 학위조차 없다. 하지만 세상은 누구나 그를 반도체공학 박사로 인정한다. 훗날 의학에서도 그리 될 수도 있다.
한서진은 복도로 나섰다.
오늘 수술 참관은 끝이다. 아무리 젊고 체력이 좋아도 연달아 두 개 이상 수술을 참관하는 것은 버겁다. 쉬지 않고 연속으로 수술을 해내는 의사들이 대단해 보일 뿐이다.
‘의사가 생각보다 박봉이구나.’
장사 잘 되는 개업의야 떼돈을 벌지만, 대학병원에서 봉급 의사로 일하는 의사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했다.
의료공단은 어떻게든 쥐어짜내서 의료수가를 낮추려고 하지, 그래서 실력 있는 젊은 의사들은 외과 같은 힘들고 돈 안 되는 과를 기피하려 하지…….
‘저런 중요한 파트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의학 지식 축적이 목적이긴 했지만, 이 일을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몰랐던 사회의 일부를 체감할 수 있었으니.
그때였다.
“응? 수술 중이네?”
한서진은 문득 투명한 수술실 벽을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수술실이었다. 병원 관계자가 아니면 애초에 이곳을 지나칠 수도 없는 구조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수술인지 모르지만, 통찰안에게 잠깐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수술실 안에는 수술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어렵거나 심각한 수술은 아니었다.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에이, 뭐야. 모발 이식 수술이잖아.’
환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젊어 보였다. 20대 중후반쯤?
그러나 이마와 정수리가 훤히 벗겨져 있어, 얼핏 보면 40대로 오해할 만한 인상이었다.
의사는 부지런하게 환자의 두피에 모발을 심고 있었다. 한서진은 그걸 보며 애잔해졌다.
‘젊은 나이에 탈모라니…….’
그때 옆모습만 보이던 의사가 무심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한서진은 보고 말았다. 정수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의사의 두피를!
한서진은 충격을 받은 듯이 그 자리에 굳었다.
젊은 나이에 모발 이식을 받는 환자, 그리고 자신은 머리가 벗겨졌음에도 다른 사람의 두피에 열심히 모발을 심는 의사.
그 구도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동에 잠식되고 말았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이거다.”
========== 작품 후기 ==========
아서 : 인정하노라.
노신하 : 인정하옵니다.
통찰안 : 인정합니다.
우리 서진이가 모처럼 한 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