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34화 (334/609)

00334  2관왕  =========================================================================

“H-1은 에테르와 의학이 최초로 접목된 사례가 아닙니다.”

조용한 집무실, 미 대통령은 진지한 얼굴로 CIA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한서진 박사는 몇 년 전, 말기 췌장암을 진단받고 시한부를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의사는 한서진 박사가 몇 달도 채 살지 못할 거라 봤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완치되었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CIA는 모든 수집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자의적 판단으로 보고시기를 늦추거나, 때로는 기관 자체적으로 봉인하기도 한다.

국익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만한 사안이나 혹은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서이기도 하다.

이 경우는 어느 쪽일까, 대통령은 문득 궁금해졌다.

“H그룹 백철중 회장이 뇌출혈로 뇌손상을 입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털고 일어났습니다. 진성그룹의 이창용 회장 역시 ‘그 약’을 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협상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H-1은 ‘그 약’의 열화 버전이라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혀 다른 약인 듯 보입니다.”

“CIA는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의 차가운 질책에, CIA 국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서진 박사는 그 약의 존재 자체를 숨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

“비록 백철중 회장이 알게 되었지만, 박사는 더 이상의 정보가 퍼져나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관 단계에서 차단한 것입니다. 만약 백악관이 알게 되면, 자칫 워싱턴 정계 전체가 알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말기 암 환자도 단숨에 건강한 사람으로 바꿔놓는, 기적의 신약이다. 발전의 정점을 이룬 현대의학의 관점으로도, 마치 마법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통령은 속으로 자문했다.

자신은 과연 그 약에 관한 사욕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는가?

이미 60을 넘긴 나이, 아직 정정하지만 곧 노년의 생을 맞이할 때가 온다. 그때가 돼서도 건강과 삶에 대한 탐욕을 완전히 억누를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최상류층이 그 약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탐욕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한서진 박사와 미국의 관계는 자칫 불화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CIA국장은 최악이 아닌 불화라 표현했다.

한서진이 미국과 갈라설 일은 없다. 이미 그는 미국 시민이기 때문에, 그를 억압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의 심기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있다. CIA는 그럴 가능성조차 원천봉쇄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비로소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이유를 이해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거군요.”

“예, 한서진 박사가 H-1을 공개한 이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은근한 압박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CIA 국장이 감히 대통령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엄연한 이 나라 최고 통수권자니까.

하지만 대통령이 공익이 아닌 사욕을 위해 ‘그 약’을 이용하려 들 경우, 퇴임 후에 불리할 것임을 넌지시 알리는 것이다.

한서진의 평온을 원하는 것은 백악관뿐만이 아니다. CIA 역시 그의 평온한 삶을 원하고, 자체적으로 보호한다.

“내가 ‘그 약’에 관해 누구에게든 발설하거나, 혹은 사적으로 이용하려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퇴임하면 나는 평범한 백수일 뿐이니.”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보고를 계속하십시오.”

독대가 길어졌다.

대통령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약―엘릭서―에 관한 타국, 특히 러시아의 의심, 그 약을 놓고 유발될 수 있는 국제 갈등에 관한 위기 의식을 얻었다.

보고가 끝난 후, 생각을 정리하던 대통령이 한참 후 입을 열었다.

“주한미군의 전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할까요?”

“지금 전력으로는 통상적인 호위에는 충분할 듯 보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 해도 한서진 박사와 그 직계가족을 탈출시키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러시아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끝까지 가기로 작심할 경우, 한반도까지 지키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뜻입니까.”

“CIA의 판단은 그렇습니다만, 그것은 국방부와 의논하셔야겠지요.”

중국이 무너진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러시아였다.

미국에 유일하게 대견할 수 있는 국가, 게다가 한국과 바로 붙어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러시아는 모든 군사력을 단숨에 투사할 수 있지만, 미국은 거리상 그게 불가능하다.

“다행히 H-1의 발표로 ‘그 약’에 관한 의심의 시선은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H-1은 앞으로 공개적으로 제조, 유통될 테니까요.”

H-1을 그 약으로 의심하는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반길 것이다. 돈만 쓰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다고 받아들일 테니. 정작 그 약의 존재는 더욱 한서진의 깊은 금고 속으로 숨어버렸음에도.

“한서진 박사는 영원그룹을 통해 H-1의 물질특허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제조용법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제조용법에 핵심이 담겨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제조용법을 모르는 이상, 물질구조를 알아도 소용없다는 자신감입니다. 특히 에테르는 현대 설비로는 이해나 감지가 불가능한 에너지입니다. 타제약사가 기적적으로 물질구조 재현에 성공한다 해도, 그게 동일한 효능을 발휘할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유통을 위해서 물질특허를 낸 셈입니까.”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H-1, 간 재생 치료제.

에테르를 이용해 만든 기적의 신약.

그 제조용법이 공개되는 날이 과연 올까? 클레튼 대통령은 그렇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런 날이 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의대 수업을 청강하고 싶다고요?”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한 의대 학장은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예, 그렇습니다.”

세계 제일의 유명 인사이자 이 학교 재학생인 한서진은 공손하게 긍정을 나타냈다. 의대 학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런 황당한 부탁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거야…… 한서진 박사의 위치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 있는 일이지만…… 수업 청강으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의대는 기본 6년 과정입니다. 한 박사의 6년의 가치는…….”

“코스를 조금 빠르게 당겨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

학장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H-1으로 한창 세상이 떠들썩한 시기 아닌가. 한서진이 무엇을 노리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평범한 반도체 생산직원에서, 세계적인 반도체 대가까지 겨우 3년…….’

밑바닥에서 세계 최고의 대가까지 겨우 3년 걸렸다. 그 신화를 의학에서도 재현하려고 하는 것인가.

학장은 그 모습을 상상하고 속으로 신음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한서진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알겠습니다. 한 박사의 부탁을 들어드리지요.”

“어차피 저는 학점이나 학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엄연히 반도체공학부 3학년 재학생임에도, 의대 학장은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

“실습수업 청강이나 병원 참관도 어렵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론 수업은 어떡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의 공부량은 살인적입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데요.”

한서진은 조금 난처해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고 말했다.

“시간절약을 위해서 이론은 단독 과외로 진행하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의대 교수들의 일정이 매우 빡빡합니다. 한두 분야라면 어떻게 여유를 내보겠지만, 말했다시피 의대의 공부량은 매우 방대하여…….”

“모든 과정을 종료할 때까지, 매년 의대에 오백억 원을 기부하겠습니다.”

“기꺼이 이론 코스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학장은 덥석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 년 등록금 500억 원,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정이 바쁜 교수들도 기꺼이 반길 것이다.

의대 전체가 최초로 한 학생을 전격 전담하는 과외이자, 세상에서 제일 비싼 등록금이었다.

H-1은 기적적인 효능을 완벽하게 입증했다.

간을 완벽히 재생시켰으니, 더 이상 그 효능에 관해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여기저기서 H-1을 원하는, 중증 간 질환 환자들의 애원과 아우성이 넘쳐 났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목소리가 진동했다.

한서진이 에테르를 이용해 직접 개발한 신약이었기에, 사람들은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어서 시판해달라고 난리였다.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서는 H-1의 시판이 불가능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H-1이 인체에 사용된 것은 오로지 단 1회뿐이었다.

약이 반도체 같은 공산품도 아니고, 아무리 효능이 뛰어나다 해도 시험 케이스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은 마당에, 허가를 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Ⅰ상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시판은 무슨. H-1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김태원 소방관이 완치된 건 그럼 어떻게 된 건데?”

“그건 중증 말기여서 예외였고. 어차피 죽을 거 환자나 가족들이 뭐라도 해보자 간절히 원해서 된 거지, 보통 상황에서는 그렇게 안 된다.”

“그럼 H-1이 시판되려면…….”

“넉넉히 10년은 기다려야지. 별 수 있나.”

간 질환 환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에서 희망을 얻은 간암 환자들은 망연자실해졌다. 아직 시판 승인을 못 받았다니!

그들은 결국 김태원 소방관 같은 예외 상황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영원그룹의 발표로 무참히 부서졌다.

「앞으로 우리 영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임상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며, 이에 따른 초기 물량 공급 부족으로…….」

얼마 되지 않는 생산량을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해서 임상시험을 시작한다는 발표였다. 국내 환자들은 천 명 중에 한 명이나 그 시험에 들까 말까 한 수치였다.

그렇다고 영원그룹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행정절차가 그렇다는데 어찌하나.

가족들이 결집했다. 그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앞 광장을 차지한 채 시위의 목소리를 높였다.

“H-1의 시판을 허가해라!”

“죽어가는 환자들이 안 보이냐! 낡은 절차에 매달려 정작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못 살리는 게 말이 되는가!”

“시판을 승인해라!”

신약 승인 절차는 인체의 안전을 위한 주요 과정이지만, 그들에게는 낡은 절차에 불과했다.

10년을 기다려서 정식 시판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던가, 아니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국내 임상시험 대상에 포함되어야 했다.

영원그룹은 Ⅰ상 단계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한편,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환자와 가족의 동의를 얻어 투여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는 임상시험이었다.

주로 말기 간암 환자들 6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그 시험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간이 재생되고 완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결과가 속속들이 보도될수록 시판 승인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은 다급해졌고,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갔다.

========== 작품 후기 ==========

“의대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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