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3 2관왕 =========================================================================
간 재생 치료제의 개발은 한국 내부는 물론이고, 국제 의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외신을 가리지 않고 모든 매스컴들이 앞 다투어 H-1의 존재를 보도했다. 김태원 소방관의 치료를 맡은 의료진은 파파라치들의 스토킹에 휘말렸고, 영원그룹 연구소 앞에는 기자단이 진을 치고 앉았다.
“현재 김태원 소방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손상된 간 조직이 완전히 재생됐다는 게 사실입니까?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들었는데요.”
“해당 치료제를 다른 장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까? 그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부디 한 말씀만!”
기자들은 단 한 마디의 인터뷰라도 따내기 위해 혈안이었지만, 영원그룹 관계자는 물론이고 의료진도 입을 꾹 다문 채 한 마디도 열지 않았다.
“공식 발표 사항에 주목해 주십시오. 밝힐 수 있는 건 모두 밝혔습니다.”
영원그룹 대변자는 그렇게 그룹의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기자들은 답답해하면서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특종이 눈앞에 있는데, 제대로 된 인터뷰 하나 따내지 못하다니.
―줄기세포 자극을 이용한 간 재생 치료제를 개발했다.
―첫 임상 시험에서 환자가 완치되었다.
제I상과 제II상을 건너뛰었지만, 그 절차적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약이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측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국내 취재진은 환자, 의료진 측의 반응을 통해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방향으로 일을 했고, 기사를 썼다. 한동안 잠잠했던 영원그룹 박현준 회장은 한순간에 유명 스타가 되었다.
박현준 회장이 출근을 할 때마다 기자들은 꽃밭을 발견한 꿀벌처럼 달려들었다.
“박현준 회장님! H-1 간 치료제는 에테르학이 의학과 처음으로 접목된 사례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한서진 박사가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평소 흠모해왔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발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박현준은 수많은 취재진에 둘러싸였음에도 느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조만간 제대로 된 사실발표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한 말씀만!”
이에 반해, 해외 취재진은 주로 H-1의 구체적인 효능과 치료 원리, 그리고 향후 의료시장 및 의학계가 어떻게 변화될지 그 추이에 주목해서 취재했고,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명예시민권자인 한서진 박사는 반도체공학의 최고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협소한 시각에서 분류한 평가로 볼 수 있다.
그는 반도체공학자가 아니라 에테르학자이며, 자신이 단독으로 정립한 에테르학을 반도체공학에 접목시켜 지금의 학문적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의학에까지 에테르학을 진출시키려 한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
「H-1은 성체 간세포를 분화 당시의 줄기세포로 역변시켜, 다시 간이 자라나게끔 해서 치료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 즉 환자는 낡은 간을 버리고 싱싱하고 젊은 새 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SF에서 종종 말하던, 장기를 새로 바꿔 끼며 장수하는 사회가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H-1은 간 이식이 필요한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앞으로 모든 간 치료의 궁극은 H-1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간 관련 의사들은 H-1을 성경처럼 떠받들게 될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간 외에 장기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영원그룹의 발표가 있지만, 필자는 머지않아 다른 장기에도 동일한 적용이 가능할 거라 믿는다. 간처럼 복잡하고 주요한 장기에도 성공했으니, 상대적으로 간단한 다른 장기에는 더 손쉽게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에테르학이 중요한 이유가 또 한 번 밝혀졌다. 에테르의 흐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었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는 김태원 소방관의 모습이 또 한 번 국내 매스컴을 탔다. 수많은 중중 간 질환 환자들은 그 기사를 보고 희망을 품었다.
영원그룹은 H-1 관련 문의가 너무 빗발쳐서, 도저히 전화선을 꽂아놓고 업무를 할 수가 없었다. H-1과 관련 없는 계열사까지 업무 마비 사태가 왔다.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여론에서는 한서진의 이름이 매일같이 들끓었다.
―대관절 한서진 박사의 재능의 끝은 어디냐?
―혹시 1만 시간만 노력하면 나도 한서진 박사처럼 될 수 있나?
―학문만큼 천재들이 주도하는 분야가 없다는 거, 알고나 하는 소리냐? 학문이야말로 천재들의 영역이다.
―간 말고 다른 장기에도 이미 적용이 가능하겠지? 첫 발표라서 아직 H-1만 공개한 거고, H-2, H-3, H-4도 줄줄이 지금 대기하고 있겠지?
―H-2는 제발 탈모 치료제였으면 좋겠다.
영원그룹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에 동시다발적으로 H-1의 물질특허를 신청했다.
H-1은 다양한 원소라 결합한 신물질이었지만, 이제껏 존재하지 않은 신원소가 포함된 물질은 아니었다. 의학자들은 어떻게 이 물질이 그런 정교한 세포 분화 및 조절 작용을 유도하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세계적인 의학 권위자는 H-1을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효능만 보면 이것은 약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된 인공 호르몬에 가깝다. 간세포를 분화시켜 줄기세포 단계에서 다시 장기를 구축하고, 설계도대로 조직 복원이 끝나면 그 즉시 모든 활동을 멈추고 소멸한다. 이 메커니즘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하다.”
“정확히 짚어냈네, 이 사람.”
기사를 보고 한서진은 조그맣게 감탄했다. 옆에 붙어 앉아 함께 보고 있던 송하나가 신기해서 물었다.
“정말 이 사람 말이 맞아요?”
“응, 약이긴 한데, 안에 명령 코드가 들어 있어. 간에 국한해서 미리 짜둔 명령을 실행시키는 거야.”
“아, 그래서 간 외에 다른 곳에는 반응하지 않는 거네요. 그쵸?”
“맞아.”
“그럼 간 외에 다른 장기에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지 않아요?”
“……손쉽다니, 다른 장기에 적용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코드를 짜야 해.”
한서진은 의학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통찰안의 힘을 빌리면 얼마든지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굳이 현대의학을 심층적으로 파고들 필요도 없다.
그는 통찰안을 통해, 에테르라는 필터링을 거쳐 인체를 관조했다. 간이라는 장기를 조성하는 에테르의 흐름을 읽어내고, 분석한 뒤, 그에 맞춘 코드를 짜서 마법진에 넣은 것이다.
장기 복원 시술의 효능을 지닌 마법진이, 다른 장기에는 작동하지 않도록 개조한 것이다.
또한 마법진이 지닌 힘이 물질에 스며들도록 프로그래밍해서 칩셋을 만들었다. 이른바 마력 칩셋 No.4의 탄생이다.
“근데 왜 물질특허만 내신 거예요?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는 전혀 없으시던데.”
“어차피 제조방법은 내가 아니면 실행 못해.”
칩셋 4를 의약용액과 결합시켜 만드는 약품인데, 그걸 다른 이가 따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질에 관한 특허만 내놓고 제조방법은 비공개로 하면, 특허 안전도 확보하고 영구적으로 독점할 수도 있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친 송하나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오빠가 거기까지 생각하시는지 몰랐어요.”
“아니, 사실 별로 독점할 생각은 없었고, 가장 중요한 제조 과정은 어차피 나밖에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한 거야.”
“그래도요. H시리즈는 앞으로 제약계의 코카콜라가 되겠네요.”
소방관이 꿈인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려던 것이, 의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대발명이 되었다. 최초의 항생제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대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진짜 오빠를 반도체학자라 부르면 안 되겠어요. 에테르 학자라 불러야 맞는 것 같아요.”
“반도체로 모든 걸 시작했으니, 뭐 틀린 말도 아니지.”
“그래도요. 오빠의 진정한 힘은 에테르 학문이잖아요.”
에테르학자 한서진.
반도체학자라는 위명은 이제 그 단어에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지금 주 전체가 떠들썩하니 난리가 났다고 한다. 미국 다른 지역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에테르로 반도체를 석권한지 몇 년 되지 않아, 의학계마저 석권하려 들고 있으니.
“지금 세계적으로 의학자들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거 아세요? 학술회 열고 제발 강연 좀 해 달래요. 미국과 독일, 영국이 특히 몸이 달아서 난리예요.”
에테르 심포지엄을 연지 얼마나 지났다고. 한서진은 자신도 조금 쉬고 싶었다.
“학술회 같은 건 당분간 없어. 피곤해. H-1 개발하느라고 잠도 거의 못 잤는데…….”
김태원 소방관의 목숨이 달린 시간싸움이었기에, 매일 거의 잠도 자지 않은 채 연구 작업에만 매달렸다.
미국은 총력을 기울였지만 이식 적합기증자를 찾지 못했고, H-1 덕분에 그는 살아났다. 한서진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었다.
“의학자들뿐만이 아니에요. 전 세계에서 중증 간 질환 환자들이 H-1 임상시험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특히 간암 환자들이 극성이에요.”
“박 회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저도 조금 관여해도 될까요?”
“네가?”
한서진은 의아했다. 송하나가 영원그룹과 H-1에 무엇을 관여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약 가지고 이상한 장난치겠다는 건 아니고요. 기왕 선심 쓰는 김에 다른 사람들이 좀 더 고마움을 느끼게끔 몇 가지 조치를 살짝 끼워놓고 싶어서요. 지혜 언니도 동의했어요.”
“지혜도 함께 하는 거야? 뭐, 그럼 그렇게 해.”
“알겠어요, 오빠.”
송하나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이 울렸다. 김찬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박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평생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진심이 느껴지는 감사 문자에 한서진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강화된 통찰안을 얻었을 때, 그래서 반도체 외에 다른 학문도 섭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그는 뭐 하러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에테르학을 반도체에 접목시킴으로써 컴퓨터가 놀라우리만치 발달했고, 자연 재해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았으니. 게다가 돈이나 명성은 더 이상 아쉬울 것도 없고.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에테르와 의학을 결합시킴으로써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앞으로 응용 가능성은 더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떼었을 뿐이니까.
그 첫 발걸음조차 다른 사람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역사이자, 업적 아닌가.
‘해야 할 일이 참 많구나. 하지만 할 수 있어. 아니, 하고 싶다.’
뜨거운 성취욕이 들끓는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닌, 더 명예를 드높이고 싶은 게 아닌, 무언가를 이룩하고 싶다는 욕구. 그것이 가슴을 맴돌았다.
한서진은 책상 위에 놓인 몇 권의 의학 서적을 흘끗 보았다.
통찰안을 이용하면 저 책들에 담긴 진리를 한순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참관이 훨씬 빠를 수도 있겠네.”
미안하다, 통찰안.
당분간 좀 혹사당해 줘야겠다.
========== 작품 후기 ==========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나의 1%조차 끌어낼 만한 준비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