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32화 (332/609)

00332  2관왕  =========================================================================

장기 복원 시술.

현대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요약하자면 마력을 이용한 줄기세포 자극으로 손상된 장기를 재생하는 시술이다. 그리고 마력은 에테르의 또 다른 형태, 한서진은 충분히 자신이 손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시술이니 남들이 보기에도 이상하지 않다. 미스릴 반도체처럼, 정식으로 특허 공개를 해도 문제가 없다.

‘반도체 연구자에서 의학 연구자로 갈아타는 셈이네.’

실소가 나왔다.

문제가 있기는 했다. 의학 관련 신기술은 실제 운용에 여러 모로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거야 방법을 찾으면 되고. 일단 이걸 한 번 시도해 보자.’

한서진은 두 팔을 걷어붙였다.

기본적으로 이 시술은 마력을 통제하는 마법진을 환자의 몸에 새기는 방식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타투를 그렸더니 멀쩡한 간이 새로 생겨나는 상황, 엘릭서 못지않게 세상을 뒤집어놓을 것이다. 당연히 이 방법은 피해야 했다.

미스릴 반도체, 그리고 에테르처럼 세상을 합리적인 영역에서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과학과 마법은 사람들이 얼마나 당연시하게 여기느냐, 그 차이에 달려 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마법과 구분이 안 된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마법을 과학으로 철저히 위장시켜야 했다.

또한 반도체처럼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대량 생산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통찰안은 진리를 보여 주었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이제 자신의 능력에 달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연구 작업에 심취한 한서진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컸다.

그제야 한서진은 문 쪽을 돌아보고 물었다.

“하나니?”

“네, 오빠. 들어가도 돼요?”

“응, 들어 와.”

한서진은 잠시 손을 놓고 의자를 돌렸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송하나가 들어섰다.

그녀는 어지러운 작업실을 둘러보고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답답하거나 못마땅함이 아닌, 안타까움의 한숨이었다.

“또 밤 새신 거예요?”

“모처럼 시작한 게 있어서. 근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도중에 멈출 수가 없네.”

“차라리 다행이네요. 안 풀려서 끙끙대는 것보단 낫죠. 근데 이번에는 어떤 반도체예요?”

송하나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녀는 벌써부터 반도체 관련 신기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서진은 다소 난처했다. 장기 재생 관련 기술이라면 송하나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무리 자신이 에테르의 아버지로서 세계적인 권위자라 해도, 그렇기에 더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의학 관련 기술이야.”

“의학?”

“응, 에테르 공학을 의학에 접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어.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났거든.”

잠시 갸웃거리던 송하나가 정색 비슷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오빠, 혹시 그 소방관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

“오빠 마음은 이해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오빤 의학자가 아니잖아요.”

다행히 이해해주는 눈치였다. 쓸데없는데 여력을 낭비한다고 타박을 할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계기인 건 맞아.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근사해.”

“그래도 오빠 의학은 잘 모르시면서.”

“의학은 모르지만 에테르는 잘 알지. 그리고 에테르는 모든 세상 이치에 관여한다고.”

“그럼 잘해 봐요. 응원할게요.”

“고마워.”

그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적지 않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한서진이 의외였다. 비전문가가 의학 연구에 손을 댄다고 하면 시간낭비로 볼 줄 알았는데, 저런 기대감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려나?’

한서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송하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오빠, 반도체 말고 다른 거 손댄다고 제가 뭐랄까 봐 걱정했었나 봐요?”

“어? 응, 조금…….”

“전 오히려 오빠가 다른 분야까지 진출해서 석권하면 어떨까 기대되는걸요. 오빠는 천재시잖아요.”

천재…….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리를 볼 수 있을 뿐, 천재 그 자체는 아닌데. 약혼녀한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뺨에 뭐가 붙은 듯 낯간지러워졌다.

그래도 용기가 난다. 조금 남아 있던 머뭇거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서진은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고마워. 나 꼭 2관왕 돼볼게.”

‘좋았어.’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굴은 깎지 않은 수염 때문에 너저분했고, 작업실 여기저기에는 거친 필체로 그림을 그리거나 수식을 적은 메모지가 널려 있었다.

고된 작업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가능하겠어.’

그가 찾은 방법은 마법진의 힘을 약물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인체에 직접 적용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약간의 마법진 개조가 필요했다. 그 개조 작업에만 며칠에 걸렸다. 타르타로스 2의 시스템 리소스를 총동원해서 철야 작업 끝에 거둔 성과였다.

회로를 살짝 변경하는 데만도 수십 만 가지 이상의 변수를 고려해야 했고, 모든 마력의 흐름을 총괄하여 계산해야 했다. 타르타로스 2를 풀가동했음에도 몇날 며칠이 걸릴 만큼 방대한 작업이었다.

“끝났다…….”

마침내 작업을 마치고, 한서진은 긴장이 탁 풀린 채 의자 등받이에 쓰러지듯이 기댔다.

그렇게 얼마 동안 축 늘어져 있던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는 비밀리에 영원그룹 제약 연구소를 찾았다.

직속 시설이 있으니 이럴 때 편리했다. 보안 유지에도 걱정이 없고.

그는 다른 연구원들의 눈을 피해 연구 목적의 제조설비 하나를 사용했다. 미세 마법진을 빼곡하게 새긴 칩을 꺼내, 물이 담긴 커다란 용기에 던져 넣었다.

순간 칩이 환하게 빛나며, 투명한 물이 광채에 휩싸였다가 다시 사그라졌다.

칩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서진은 커다란 용기에 담긴 물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것은 더 이상 물이 아니었다.

“H…… F…… K…….”

복잡하기 그지없는 화학구조식이 눈앞에 떠올랐다.

엘릭서와 마찬가지로,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액체. 제아무리 성분물질 검사를 해봐도,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화학물질이라고만 나올 뿐이다.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마법의 흔적은 물론이고, 에테르의 관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제조법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공이다.”

한서진의 호출을 받고 제약 연구소를 찾은 박현준은 눈앞의 반투명한 물질을 보고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박사님, 이게 무엇입니까?”

“신약입니다.”

“……신약이요?”

자신도 모르는 신약이 있었던가. 박현준은 작게 신음했지만, 한서진의 눈빛은 진지했다.

“이름은 부르기 편하게 일단 대충 H-1이라고 부르겠습니다.”

“H-1……. 근데 이건 어떤 약입니까?”

“종합 간 치료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간이 아닌 다른 장기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손상된 간 조직을 재생시키는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손상된 간 조직이요?”

박현준은 퍼뜩 얼마 전 그가 지시했던 일이 생각났다. 간 손상으로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방관. 혹시 이 약을 보여준 것은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다만 개발은 마쳤는데, 임상 이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는 가급적 빨리 세상으로부터 이 약의 효능을 인정받고 싶군요. 영원그룹의 힘이라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뭣하면 제 이름을 팔아도 좋습니다.”

“박사님, 신약 승인 과정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힘을 써보겠습니다.”

신약 개발의 목적은 제약 유통이 아니다. 바로 그 소방관을 도와주기 위해서이리라.

한편으로는 반도체 공학자인 한서진이 어떻게 이런 걸 내놓았는지 의아했지만, 박현준은 호기심을 누그러뜨렸다. 이미 그는 오래 전부터 정체불명의 화학혼합물을 비밀리에 가져가고 있지 않았던가.

‘반도체 연구만 하시는 게 아니었던 건가…….’

제약에도 손을 뻗고 있었나? 어느 정도 상상은 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니 짜릿한 감각이 밀려온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니.

한서진이 끄덕이며 강조했다.

“부탁합니다.”

김태원 소방관은 혼수상태였다.

간은 인체의 중요한 화학 공장,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한 그는 몸 상태가 심각했다. 있는 대로 부어 오른 피부에는 황달기가 가득했고,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몰랐다.

이미 두 번에 걸친 대수술을 했지만 회생 가능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대할 수 있는 건 간 이식 수술뿐이었지만, 아직도 적합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

국민적 관심이 H컨설턴트의 소방관 지원 발표로 옮겨간 것이 의료진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쟁적으로 취재하던 기자들이 사라졌으니.

10조 원의 소방관 지원 예산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정작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는 소방관 한 명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였지만.

영원제약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신약 임상 사용을 해보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병원측은 동물 실험 결과 등 신약에 관한 정보와 기록을 빠짐없이 체크했다. 당연히 조작된 것이지만, 병원측이 그걸 알 방법은 없었다.

“아직 인체를 상대로 시험한 적은 없군요. 간 조직 재생 효능이라…… 이게 동물 실험 결과의 10%만 일어나도 지금 환자분에게는 기적이겠습니다.”

“꼭 좀 부탁합니다. 우리 그룹도 김태원 소방관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환자분 가족에게 의사를 타진해보겠습니다.”

의료진은 신약 테스트 제안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임상 투여가 결정됐고, 엄격한 확인을 거쳐 신약이 투여되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째 되는 날부터, 미미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혈액 수치 변화가 멈췄습니다.”

“MRI에서도 분명한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이건 기적입니다!”

손상 부위를 절개한 간의 표면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MRI 촬영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변화였다. 그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장기 조직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태는 여전히 위중했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다. 아니, 거꾸로 반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각종 수치, 그리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단 하나의 사실을 시사하고 있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던 간이 다시 회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약 한 달에 걸쳐 환자는 꾸준한 회복을 거듭했고, 마침내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보였고, 의료진은 믿을 수 없는 신약의 효능에 경악했다.

그리고 영원그룹은 신약 개발 발표를 서둘렀다. 박현준은 자신이 준비한 시나리오가 이상이 없는지 몇 번이나 검토했고, 매스컴은 앞을 다투어 영원그룹의 발표를 대서특필했다.

「한서진 박사, 획기적인 간 치료제 개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온 결실! 영원그룹의 진정한 설립 목적은 이것이었나?」

「에테르와 의학의 결합, 첫 발자국을 떼다!」

========== 작품 후기 ==========

엘릭서가 5세대 최신 스마트폰이라면, H-1은 1G폰입니다.

그것도 초창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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