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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29화 (32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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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예상 필요 예산 : 10조 원 이상.」

김범석은 이마와 두상의 영역 구분이 이미 무의미해진 두피를 반짝거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소방관 총원이 약 12만 명 정도 됩니다. 이들에게 개별 지원금을 지원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개별 지원금. 그 단어에 유독 강조가 돼 있었다.

“개인당 한 달에 500만 원으로 잡으면 월 6,000억 원, 1년이면 7조 2,000억 원이 됩니다. 나머지 2조 8,000억 원은 장비나 시설 등을 지원하는 금액으로 쓸까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직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다. 부사장, 당신 미쳤어!

‘소방관 개개인에게 돈을 주자고? 그것도 다달이 500만 원씩?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이야?’

미친 기획이라고 까여야 정상이다. 헌데 한지혜는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별 지원금이라면 어떤 의미죠?”

“말 그대로 개개인에게 따로 지급하는 돈이죠. 그걸 생활비로 쓰든, 대출을 갚든, 부족한 장비를 구입하든 일절 노터치하는 겁니다.”

“기한은 어느 정도나 할까요?”

“기본적으로 5년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상황 봐서 지원 기간을 더 늘리든가 하면 됩니다.”

5년이면, 50조 원?

직원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금 부사장, 미친 게 아닐까?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기획을?

김범석은 그들의 표정 따윈 보이지 않는지 태연히 말을 이어 나갔다.

“소방관 평균 월수입이 300이 조금 넘으니, 500만 원의 지원금이면 800만 원이 넘습니다. 모든 소방관들이 억대 연봉자가 되는 거죠.”

“그거 아주 좋아요. 이대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참, 하는 김에 노후 장비도 싹 다 교체해 주시고요. 돈은 아끼지 말고요.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오빠 재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은 기한 없이 지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본부장이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나섰다.

“저어, 사장님. 그 말씀대로라면 연간 10조 원을 훌쩍 넘는 금액을 쓰게 되는데요. 이건 지나친 출혈이 아닐지…….”

현재 H컨설턴트는 한서진의 이름으로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 규모는 연간 천억 정도다.

헌데 소방관들한테 연간 10조 원 이상의 돈을 쓰겠다니? 그것도 단순히 장비 지원을 떠나서 개개인에게 따로 월급을 챙겨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한지혜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본부장님, 우리 회사 목적은 영리 창출이 아니에요. 한서진 박사란 인물의 명예와 위상 증대를 위해 지원하는 거죠. 그걸 위해서라면 일 년에 10, 20조 원쯤은 아깝지 않아요. 마케팅비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래도 이건 조금 과한…….”

“공공직 중에서 소방관들은 가장 존경받잖아요? 그들 전원을 한꺼번에 지원하면 국민들이 오빠를 더 좋게 보겠죠. 12만 명의 소방관들과 그들 가족들의 지원도 얻을 수 있고요.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거죠.”

“맞습니다, 사장님.”

김범석이 좋아라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자신의 기획이 선뜻 받아들여진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지혜는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이대로 진행합시다. 바로 당장이요.”

“서진이 너, 그게 정말 사실이냐?”

한국대 연구소로 나와 작업에 몰두하던 한서진은 느닷없이 들어선 박효산이 대뜸 던진 말에 의아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거 말이야, 소방관들한테 기본 10조 원 이상씩 투척한다는 거. 그것도 매년.”

“네?”

한서진은 퍼뜩 한지혜가 생각났다.

회사 앞까지 찾아온 김찬 때문에 소방관 처우 개선을 부탁하긴 했지만, 연간 10조 원이라니? 대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기에 그런 계산이 나왔단 말인가?

“지금 기자 회견 막 끝났다. 네 대변인이 기자회견 하던데, 본인이 그것도 몰랐냐?”

“아, 동생 일은 제가 깊게 관여하지 않아서요. 한 번 봐야겠네요.”

인터넷을 뒤지자 다행히 UCC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보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자회견이었지만 검색어를 입력하자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서진 박사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고생을 감수하는 일선 소방관분들의 노력을 안타깝게 여겨, 연간 10조 원 이상의 금액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향후 5년 간 지속될 것이며, 5년으로 끝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끔…….

―지원금의 일부는 소방관 개개인에게 월 500만 원의 개별 지원금을 띤 형태로 다달이 지급될 것입니다. 연차나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소방관분들에게 지급됩니다.

“개별 지원금?”

한서진도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박효산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난 참 기특한 발상이라고 봤는데, 뭐야? 저거 네가 생각한 거 아니었냐?”

“네, 전 아니에요. 그냥 처우 개선을 좀 알아보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거든요.”

“설마 그럼 발표까지 해놓은 상황에서 취소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뭐 하러요. 저거 얼마나 한다고.”

“…….”

잠시 침묵하던 박효산이 가라앉은 음색으로 말했다.

“네가 정말 크긴 컸구나. 10조 원을 푼돈처럼 말하다니. 격세지감이다.”

“저 상반기 특허료만 6,000억 불이 넘습니다. SJ인더스트리 배당금까지 합치면 더 커요.”

“젠장, 내가 어떻게 해서든 그 회사 주식을 초반에 1%라도 손에 넣어야 했어.”

박효산이 진심으로 아쉬운 듯이 말하자 한서진은 그저 피식거리기만 했다.

그가 투덜거리며 나가고, 한서진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혹시 기자회견 봤어?」

“봤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어?”

「내가 한 건 아니고, 우리 부사장이.」

“부사장?”

부사장이 누구더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 아주 똘똘하고 눈치 빠른 사람이야. 마케팅 쪽에서 특히 탁월해.」

“근데 돈을 직접 주면 오히려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굴욕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자랑스러워하라고 주는 돈인데 누가 그러겠어. 오히려 다들 기뻐할걸.」

“뭐,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잘해 봐.”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는지, 한지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돈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애초에 통장 잔고 한에서 제한을 두진 않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역시 오빠는 쿨해서 좋아. 아, 난 대체 왜 오빠랑 남매로 태어났을까.」

“니가 하나로 태어났으면 그건 지옥이야. 나 그냥 평생 혼자 살 거다.”

「아니, 기왕이면 여동생 말고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는 말이지. 내 말은.」

“그것도 끔찍하다. 소름 돋아.”

「매정하네.」

H컨설턴트의 발표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기 침체, 북한 문제 등으로 근심에 젖어 있던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호소식에, 자기 일도 아닌데 어깨가 들썩거렸다.

특히 직접적인 혜택을 받게 된 소방관들은 로또라도 당첨된 분위기였다.

“한 달에 오백을 준다고? 그것도 5년 간?”

“5년이 끝이 아니고 기본 5년이고, 그 뒤에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라잖아.”

“대단하다. 역시 한서진 박사는 우리나라 영웅이다.”

“가만, 그럼 소방관 전원이 억대 연봉자 되는 거 아니야?”

월 500만 원의 추가 수입이 생긴다. 신입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사실상 소방관 직종 자체가 모두 억대 연봉자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진짜 큰 사람은 큰 사람이다.”

“그러게. 이창용 회장이나 백철중 회장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 서민들을 위해 크게 베풀진 않았다.”

“이건 돈이 많아서 베푸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인성 자체가 참 된 거 같다. 존경스럽다.”

“가만, 그럼 세금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한서진 박사가 주는 개별 지원금에도 소득세 물리려나?”

“말도 안 돼. 이건 소득도 아닌데 왜 소득세를 물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소득세든 증여세든 뭐든 간에 물리려고 하지 않을까? 개별 격려금만 자그마치 연 7조 원이 넘는다고. 탐욕스러운 국세청이 과연 가만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이들은 국세청의 행보에 주목했다. 과연 국세청은 어떻게 나올까?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여론이 들끓자,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국세청이 의례적으로 재빨리 발표를 했다. 물론 청장 등의 책임자가 기자 회견 따위를 가진 게 아니라, 국세청 공지사항에 관련 코멘트를 남긴 것이다.

「해당 자선사업은 수혜자 입장에서 봤을 때 증여로 볼 여지가 매우 높으며…… 이에 개별 수혜자들은 성실한 증여 신고로 추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이거 뭐라는 거야?”

“요약하자면 증여세 받아야 되니까 소방관들이 알아서 자진신고 하라는 거지.”

“아니, 지들이 뭐 한 게 있다고 세금을 물려? 이게 어떻게 증여세 대상이야! 수천억 씩 상속받은 재벌 2세들도 요리조리 피해서 증여세 안 내고 버티는데, 꼴랑 달에 몇 백 더 받는 거 가지고 증여세를 물리려고?”

“근데 실체적으로 따져 보면 증여세가 맞지. 어쨌든 한서진 박사가 소방관들 개개인에게 준 거잖아.”

“그래도 뭔가 기분이 나쁜데? 이런 거까지 세금 물리는 건 국세청이 너무 야비한 것 같다.”

“그러게. 법적으로 따지면 증여가 맞지만, 실제로 가족 간에 돈 줄 때도 1억 정도까지는 노터치하는데.”

“일 년에 6천 받는 거까지 세금을 아득바득 물리겠다는 건 좀 너무하다.”

그렇게 은연중에 불만스러운 여론이 생겨났다. 수혜 당사자인 소방관들은 공무원의 신분이다 보니 정작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다른 이들이 더 나서서 국세청을 비난했던 것이다.

결국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국세청은 은근슬쩍 태도를 바꿨다.

―10억 이상 고액 탈세, 체납자들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다발적 소액 증여세 징수에 지나친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은 관계로…….

대놓고 ‘세금 안 거둘게요.’하고 백기를 들 수도 없는지라, 국세청은 길고 긴 장문의 발표문 속에 철회 의사를 넌지시 끼워 넣었다.

한지혜가 다시 나설 필요도 없이, 간단히 해결된 것이다.

H컨설턴트는 즉시 소방관들 신분을 파악하여 개별 지원금 지급을 시작했고, 신형 장비도 대량으로 사들여 무상으로 제공했다. 특히 낙후된 지역을 중점적으로 배려했다.

수입 환경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나아지고, 신형 장비의 물량이 쏟아지자, 소방관들의 뇌리에서는 이미 국가직 전환 자체가 사라졌다.

또한 소방관 응시 경쟁률이 폭등했다. 어떤 지역은 1만 대 1이라는 기적적인 경쟁률을 찍기도 했다.

12만 명의 소방관과 그들의 가족들은 강력한 한서진의 지지층으로 결집했고, 혹시라도 그들처럼 혜택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리들도 이에 가세했다.

단순히 영웅 취급을 받고 인기가 많은 것에서, 실질적인 지원층이 강력히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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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도 한서진 자녀로 태어나고 싶네요. 에테르 수저는 무슨 맛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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