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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28화 (328/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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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는 본래 한서진의 충고에 따라 변리사를 준비했다. 당시 반도체 제조업을 갓 시작한 한서진이 생각하기에, 여동생의 미래를 견인해주기 적당한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재벌로 거듭나면서, 한지혜는 자연스럽게 변리사 공부를 그만 두고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새 진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씨 가문’ 홍보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한서진의 명예나 이미지 관리에 관한 일을 전적으로 도맡아서 한다.

당연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수십 명이 넘는 전문가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싸게 매물로 나온 빌딩까지 사들여 사옥으로 삼았다.

“어차피 평생 해야 하고, 또 대를 이어 해야 할 일이니까.”

한지혜는 상당히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일을 추진했다.

“오빠가 지금 당장 은퇴해도 저 재산이 다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하는 거 보니 오십 년은 끄떡없겠던데.”

H컨설턴트. 한지혜가 만든 회사 명칭이었다.

H컨설턴트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한다.

한서진의 지금이 출연된 기부 사업을 관리하기도 하고, 다른 그룹과 협력 관계에 있는 사업의 상태를 체크하기도 한다. 한서진의 복장 코디 전담을 위해 유명 디자이너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해외에서 명품 의류를 공수해오기도 한다.

또 저택의 유지보수나 인테리어, 설비 등 겉으로 보이는 외면을 가꾸기도 하고, 심지어 한서진에게 어울릴 만한 차량을 선별하거나 직접 주문 제작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서진의 이미지나 명예와 조금이라도 관련되겠다 싶은 것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닥치는 대로 나서서 오지랖을 부린다.

애초에 설립 목적 자체가 한씨 가문의 명예 보존 및 상승을 위한 것이었고, 한서진이 곧 한씨 가문이니 업무의 성격이 이럴 수밖에 없다.

꽤나 소소하고 잡다한 일을 가리지 않고 하는 편이지만, 회사 직원들은 자긍심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유명 인사, 한서진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손으로 관리한다는.

그리고 H컨설턴트가 손대는 일 중에는 기부 사업 같은 굵직한 덩어리도 있었다.

한서진이 내놓는 기부금은 거의 H컨설턴트가 터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별 국채 제외)

H컨설턴트는 매달 90억 원 정도의 기부금을 집행하는데, 주로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들의 생활복지 및 학비, 그리고 가난하지만 우수한 인재들을 지원하는데 쓴다.

지원금을 더 늘리자는 말도 있었지만, 한지혜의 주장에 쏙 들어갔다.

“매달 90억이면 연간 1,080억 원이에요. 이 정도면 생색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죠. 애초에 우리가 기부 사업을 벌이는 목적은 사회 개혁이 아니라, 한씨 가문의 이미지 관리니까요.”

적나라한 말이지만 아무도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자선 사업의 목적이 가난한 이들을 한 명이라도 많이 행복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닌, 한서진의 이미지 관리라니.

물론 그 생각에 반발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어쨌거나 거금을 내어서 사회적 약자들을 돕고 있지 않은가.

H컨설턴트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주력 사업은 다름 아닌 ‘여론 관리’다. 한서진에 관련된 기사나 보도는 반드시 체크하고, 전부 데이터화해서 정리한다.

“기사를 모으기만 해선 의미가 없어요!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관계자, 그 인간관계와 기사를 작성하게 된 원인까지 모조리 알아내서 정리해야 해요!”

특히 부정적인 기사에 관해서는, 기사 작성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파헤쳐서 데이터로 쌓아둔다.

예를 들어 한서진 때문에 피해를 본 대기업이 불만을 품고 은근슬쩍 인맥을 동원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하게 했다면, 그 사실관계를 모조리 알아내서 정리하는 것이다.

관계자들의 이름, 직업, 가족관계.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관여했고, 무슨 이익을 취했는지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다.

우습게도 조사만 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알지 못하게끔 몰래 기록해두기만 한다.

“고소 같은 거 남발해봤자 잘못하면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차곡차곡 모이는 기록은, H컨설턴트 내부에서 우스갯소리로 살생부라 불린다. 바보가 아닌 이상 한지혜가 훗날을 대비해서 정리해두고 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살생부에 적힌 이들, 조금 안 됐다.”

“한서진 박사님 혈족이 자기들을 벼르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몰라.”

“그러게 애초에 왜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그래. 언론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은 당해도 싸다.”

기사 등 언론을 평가하는 것 외에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떠드는 이들도 조사한다. 한서진을 음해하거나 유언비어를 퍼트리거나 혹은 되도 않는 욕설을 퍼붓는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한서진을 비방하는 이들의 수는 엄청나다.

예전에 한서진이 공개적으로 한 명을 콕 집어 잡아내서 신상정보를 나열한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증가했다.

주로 한서진을 부러워하다 못해 시샘하거나, 질시와 질투가 넘쳐흐르는 이들이었다.

H컨설턴트는 그들도 차곡차곡 찾아내서 데이터로 정리했다.

악성 기사와 달리 악플러의 가족관계 및 신상정보만 정리하면 되기에 작업 자체는 한결 쉬웠다. 그 수가 몇 만 명은 거뜬히 넘어갈 정도로 엄청나서 그렇지.

악성 기사에 얽힌 이들과 익명 비방자들을 찾아내는 것.

언뜻 보기에 고된 작업처럼 보이지만, H컨설턴트는 그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거참 신통하단 말이야. 어떻게 링크만 입력하면 작성자 신상을 순식간에 찾아내지?”

“이거 진짜 서버를 해킹해서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은데.”

“난 비로그인 작성자까지 찾아내는 게 더 신기해. 이름, 나이, 주소, 직업, 심지어 사진까지. 진짜 이 프로그램 대단하다.”

H컨설턴트의 모든 컴퓨터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 간단한 입력만 마치면 악성 비방자들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악성 기사 관련자들을 손쉽게 조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프로그램이 구체적인 신상을 세밀하게 캐주기 때문이었다. 그 자료를 토대로 오프라인에서 조사를 하면 된다.

익명 비방자들이야, 입력만 하면 그 자리에서 모든 정보가 술술 모니터에 출력되고.

“듣자하니 이거, TF팀에서 쓰는 재무감시 프로그램이랑 기본 원형이 같대.”

“진짜?”

“원하는 정보는 어떤 것이든 해킹을 해서라도 찾아내 준다는 거야. 아무리 복잡하게 숨겨 놨다 해도.”

“대단하네. 설마 한서진 박사님께서 만드신 건가?”

“그 분이 반도체 천재는 맞지만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렇게 한서진에게 날을 세우는 자들의 신상정보를 열심히 수집해서 기록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하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고소 등의 위협을 하거나 상대에게 접근하는 일도 없었다. 말 그대로 조사해서 정리, 기록만 할 뿐이다.

한지혜는 오늘도 회사에 출근해서 열심히 업무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 한서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응, 오빠. 무슨 일이야?”

「부탁할 게 있어서.」

들어보니 마력 칩셋 3 때문에 입장이 난처하니, 소방서 쪽을 좀 알아보라는 소리다.

한지혜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어떡하면 이 일을 오빠의 위상 증가와 연결해서 처리할 수 있을까?

“돈은 얼마까지 써도 돼?”

「견적 나오는 만큼.」

“콜. 역시 우리 오빠 시원시원해.”

「맞다. 근데 너 지금도 나 욕하는 애들 신상 조사하고 다닌다며?」

“응, 앞으로도 계속 할 건데? 왜?”

「난 그거 가지고 고소라도 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조사 프로그램 회사에 연결해준 건데, 아무 것도 안 하니까 뭔가 해서.」

“한두 명만 고소해서 뭐해. 아예 하려면 한 명도 남김없이 싹 고소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오빠가 약한 애들 두들겨 잡는다고 안 좋은 소리 나올 수도 있어.”

「그럼 뭐 하려고?」

“두고 봐. 나중에 H그룹이든 뭐든, 오빠와 연관된 사업체에는 일절 발도 못 붙이게 할 테니까. 오빠 욕한 놈들이 오빠 돈에 빌붙어서 밥 벌어먹는 꼴 안 나오게 하려고 착실히 조사하는 거야.”

「…….」

“다 때려잡을 순 없으니 다 쫓아내기라도 해야지. 오빠 영역에서.”

한지혜는 품위 있는 보복이라며 나름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이쪽에서 공격을 하는 건 아니잖아?

전화를 끊고, 한지혜는 H컨설턴트 부사장 김범석을 찾았다. 그는 30대 초반의 마케팅 전문가로, 회사에서 한지혜의 오른팔이었다.

두뇌가 명석하고 눈치가 빠르며, 업무 능력이 몹시 뛰어난 사람이지만, 20대부터 시작된 탈모로 완연한 대머리라는 점이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또 나이에 비해 배불뚝이라는 점도.

하늘은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방서 쪽 관련해서 전반적인 것 좀 알아봐요. 개선해야 할 점 위주로.”

“소방서 쪽을 말입니까?”

김범석은 한지혜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자세한 수치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일선 소방관들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예산도 적고, 장비도 부실해서 사고 위험도 높고요.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소방기관이 힘도 없어서 중앙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요.”

“그건 대충 저도 들은 것 같아요. 자세히 조사해서 개선점이나 개선방향을 알아봐주세요.”

“물론 우리 회사의 존속 목적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계획을 구축해야겠지요?”

“당연하죠.”

회사의 존속 목적, 한씨 가문의 위상을 드높여라!

김범석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아 결과를 가져왔다.

“다방면에 걸쳐 조사를 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장비 교체 예산이 나오지 않아 사비로 방화 장비를 구입하는 소방관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아아, 그래요?”

한지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야 뭐 비일비재하니까.’

김범석은 보고를 계속했다.

“예산안, 관련 법률, 정치권의 인식, 근무 현황, 소방관에 대한 여론까지 모두 체크했습니다만, 모든 게 문제투성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상황입니다. 긍정적인 점은 소방관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다는 겁니다. 공무원 중 가장 훌륭하다고 칭찬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직접 소방관이 되고 싶은 건 아니겠죠?”

“그렇지요.”

김범석은 보고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일선소방관들은 일단 국가직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중앙 정부는 개선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태업 중인 김두박 정권 하에서 소방청 개선이 시행되기는 불가능합니다.”

“오빠가 힘을 써서 국가직으로 전환시켜주면 이득이 있을까요?”

“없지는 않겠지만, 약합니다. 회사의 설립 목적 추구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뭐죠?”

“모든 소방관들의 마음을 사는 거죠. 돈으로요.”

계획 보고서 첫 장에 표기된 요약 내용을 훑어본 한지혜는 흡족해서 말했다.

“이런 게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예요.”

「연간 예상 필요 예산 : 10조 원 이상.」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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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편 올렸으니 더 없을 거라 한 분도 어서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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