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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25화 (325/609)

00325  친구 사이  =========================================================================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송하나, 동갑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여성이다.

톱스타 뺨치는 미모에, 압도적인 몸매를 지녔고, 여기에 재벌 후계자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자신 같은 사람한테도 친절히 잘해주는 고운 마음씨까지 가졌다.

어떡하면 저런 빛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신효진은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너무 대단해서 부러운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비서 일은 할 만하신가요?”

“조, 조금요. 다행히 박사님이 어려운 일은 안 시키셔서요.”

“효진 씨 배려 좀 해달라고 제가 오빠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압도적인 신분 차이, 그리고 한서진을 향해 은밀히 품은 연모의 감정.

그래서인지 송하나를 대할 때,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게 된다.

“소중한 모델을 뺏어갔는데, 당연히 잘 챙겨야 할 의무가 있죠. 안 그래요?”

“소중한 모델이요?”

“효진 씨를 우리 백화점 마스코트로 만들어서 나중에 세계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백화점 사업, 곧 외국에도 진출할 계획이었거든요. 저만 아쉽게 됐죠.”

“……아.”

듣기만 해도 황송한 이야기에 신효진은 얼굴을 붉혔다. 송하나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높이 쳐주고 있었다는 것이 그저 영광스러웠다.

“혹시 운동 좋아해요?”

“운동이요? 해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한번 해보고 싶었다거나 그런 운동은 없나요?”

신효진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문득 한서진이 근무하는 대표실 내부 모습이 떠올랐다.

대표실 한쪽 벽에는 마치 포스터처럼 커다란 송하나의 사진이 붙어 있다. 머리에 밴드를 한 채, 짧은 치마 형태의 테니스용 스포츠웨어를 입고 라켓을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애인의 그런 모습을 큰 포스터로 뽑아서 사무실에 붙여놓았다는 점에서, 신효진은 강한 부러움을 느꼈었다. 저런 사랑을 받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테니스요.”

“네?”

“테니스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어요.”

“아, 마침 잘 됐네요. 저도 테니스가 취미거든요.”

신효진은 ‘잘 알고 있어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으로만.

“혹시 오늘 시간 있어요? 같이 테니스 치러 갈래요?”

“네? 오늘요? 하지만 전 전혀 칠 줄 모르는데…….”

“처음 하는 사람은 원래 다 그래요. 배워보지 않을래요?”

신효진은 조금 망설이며 송하나의 눈치를 살폈다. 한 점 구김이 없는 환한 미소였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빛이 날까.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사람이지만, 예전처럼 눈이 멀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이 그저 고맙고, 두근거렸다.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럼 퇴근한 다음에…….”

“제가 차를 보낼게요. 오빠한테도 오늘 조금 일찍 퇴근시켜달라고 부탁해볼게요.”

“……감사해요.”

지금처럼 그녀가 그의 여자라는 점을 상기할 때마다 조금씩 욱신거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얼마 후 송하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차를 보낼 테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퇴근 시간이 멀었다는 대답에 송하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오빠가 퇴근해도 된대요.’

잠시 후 정말 한서진으로부터 오늘은 이만 퇴근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겨우 오후 2시였다.

송하나의 말대로 빌딩을 내려오니, 검은 마이바흐가 회사 앞에 서 있었다. 이미 한서진의 리무진을 타본 경험이 있지만, 수억 대 고급 차량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젊고 잘생긴 운전수가 깍듯이 문을 열어 주었다.

에스코트를 받아 차에 오르는데 주변에서 모두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벌게진 얼굴을 감추며 얼른 올랐다.

차가 도착한 곳은 대형 스포츠센터였다.

건물 외관부터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도 하나같이 비싸 보였다. 차종을 잘 모르는 그녀에게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서 와요.”

어느 별실로 안내를 받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하나가 반갑게 맞이했다.

탈의실이라기보다는 호텔 객실 같은 느낌이다. 원래 스포츠센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어, 신효진은 갸웃거렸다.

“여기는……?”

“전용 대기실이에요. 슈페리얼 클래스 이상의 회원을 위한 곳이죠.”

“아, 이런 곳도 있군요. 신기하네요.”

송하나는 이미 테니스복 차림을 갖추고 있었다. 밝은 민트색 민소매 상의에 짧은 흰 치마. 치마는 속바지랑 일체화가 되어 있어 실용적이면서도 예쁜 느낌을 잘 살려낸다.

늘씬하면서도 넘치는 볼륨감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뭔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신효진은 가늘기만 한 자신의 몸매가 볼품없이 느껴졌다.

“옷은 제가 준비했어요. 갈아입고 와요.”

“아, 고맙습니다.”

“선물이에요.”

신효진은 얼른 새 운동복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옷은 자신의 사이즈에 딱 맞았다. 모델 일을 한 덕분에 정확히 치수를 맞춘 모양이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레드와 블랙, 진한 색채로 통일된 복장. 밝은 색상의 송하나와 대조되는 색감이 무척 잘 어울렸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근사한데요. 옷이 잘 어울려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어서 가요.”

송하나는 라켓까지 친절하게 준비해두었다. 값비싼 전문 스포츠용품으로, 그녀를 위한 선물이었다.

실외 경기장에서 신효진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배웠다.

간단한 룰을 배우고, 기본 동작을 배우고 교정을 마친 후, 곧바로 송하나와 연습 경기에 임했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그녀는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공을 날려 보내는데 몰두했다.

“잘하는데요? 테니스 정말 처음 하는 거 맞아요?”

연습 경기는 송하나의 승리,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적당히 땀에 젖은 신효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 맞아요. 운동은 해본 적이 없어요.”

“효진 씨, 운동신경이 대단해요.”

“정말이요?”

“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대단해요.”

“혹시 그럼 저 프로 선수로 전향하면…….”

“아,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천재라곤 안 했는데?”

“에이, 아쉬워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어느덧 신효진도 편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받아칠 수 있었다.

몇 경기를 더 치른 후, 두 여자는 잠시 앉아서 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인 건 맞구나.’

신효진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자, 송하나의 새로운 모습이 보였다.

구름 속의 선녀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비로소 자신과 동갑의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어려서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며칠 동안 말도 안 했다는 부분에서는, 재벌 일가가 아닌 평범한 집안의 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신효진은 가만히 상상했다.

송하나와 스스럼없는 친구로 지내는 자신의 모습, 언뜻 매치가 되지 않는다.

“테니스, 재밌죠?”

“네, 재밌어요. 그리고 여기 시설도 너무 좋아요.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시설 같아요.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오는.”

송하나는 야릇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드라마보다는 더 근사하죠. 여기 연간 회비가 얼만데요.”

“어…… 백만 원쯤 하나요?”

“그보다 백배는 더 높게 잡아야 할 걸요. 스탠더드 기준으로.”

신효진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아무래도 괜한 것을 들은 것 같다.

“저어, 그럼 하나 씨는 스페셜 회원이나 VVIP, 막 그런 클래스인가요?”

“아뇨, 저는 회원이 아니에요.”

“네? 하지만 아까는 슈페리얼 어쩌고 회원권 이상만 제공되는 전용 대기실까지 있으셨잖아요?”

“여기 주인이에요.”

“……아.”

순간 신효진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자신의 상상은 왜 이렇게 늘 쉽게 박살나는 것일까.

“운동하고 싶으면 언제든 들러요. 혼자 와도 괜찮아요. 테니스 말고도 다른 경기장도 잔뜩 있고, 전용 코치들도 있으니까.”

“어,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래도 폐를 끼치는 건…….”

“오너 친구니까 당연히 괜찮아요. 제가 관리실장한테도 이미 말해뒀어요. 오늘 친구 데려온다고.”

친구…….

몸을 저절로 얼어붙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무섭지는 않다.

좋은데, 너무 좋은데, 상상도 못한 순간에 들어온 직격타라서 몸이 그만 굳어버렸다.

“몸 풀고 싶거나, 해보고 싶은 운동 있으면 언제든지 들러요. 다들 저를 대하듯 해줄 거예요.”

“아……. 고맙습니다.”

빳빳하게 경직된 것도 어느덧 잠시였다. 마음이 사르르 녹은 신효진은 홍조를 띠고 고마워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몹시 즐거웠다. 갑자기 집에 돌아가는 게 싫어졌다.

L연애스포츠.

다수의 기자를 거느리고 있는 대형 인터넷 신문사로, 주로 유명인의 스캔들을 캔 기사로 먹고 사는 곳이다. 연예인, 방송인, 정치인 등을 가리지 않는다.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견 이상은 된다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언론사였다.

박창렬은 L연애스포츠에서 벌써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베테랑 기자였다. 그는 스캔들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재주가 있었고, 다방면에 걸쳐 형성한 인맥으로 왕성한 취재력을 자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으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사실관계를 정리한 문서, 증거가 될 만한 사진과 자료들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내려가던 그는 곧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곧바로 편집국장을 찾았다.

연예부는 바로 비상회의가 열렸다.

“모델 ‘신효’가 한서진 박사의 스폰녀, 아니 세컨드라고?”

“스폰이든 세컨이든 어쨌든 간에 대박 아닙니까.”

“한서진 박사는 H그룹 회장 딸과 그렇고 그런 관계 아니었나?”

이 바닥에서 확인되지 않은 채 은밀하게 도는 소문, 한서진은 H그룹과 가족이 될 사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익명의 제보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편집국장의 눈빛이 흥미진진하게 변했다.

“하지만 한서진 박사는 엄청난 거물이야.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지고 살았습니까.”

“하긴, 맞다. 박 기자 자네, 이거 집중적으로 캐봐. 사실관계 확인하고 기사 완성해.”

“네!”

그 뒤 한 달 가까이, 박창렬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죽어라 뒷조사만 했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한서진은 대통령 이상 가는 개인 경호를 받고 있는 인물, 그의 뒤를 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박창렬은 모델 신효를 타겟으로 잡았다.

그녀는 한창 뜨고 있는 H백화점의 홍보 모델, 연예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인재라고 했다. 신효를 목표로 잡고 조사에 몰두하자 그럴 듯한 그림이 나왔다.

“일단 한서진 박사의 스폰을 받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듯합니다. 모델 신효, 원래 평범했던 거 아시죠?”

“알지, 그럼.”

“지금 J팰리스에 살고 있어요. 그것도 90평대 로얄층에서! 이게 말이 됩니까?”

“뭐야?”

편집국장은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J팰리스면 평당 땅값이 4천이 넘잖아? 설마 자가는 아니겠지?”

“제가 등기부도 다 떼봤습니다. 소유권 이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대출도 일절 없고요. 100% 신효 겁니다.”

박창렬은 입에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SJ설계사무소 취직에, 백화점 모델에, 그리고 한 박사 개인 비서에 수십 억대 고급 아파트까지. 이게 바로 스폰이 아니고 뭡니까?”

“각 나왔네. 기사 완성했어?”

“네!”

“타이밍 맞춰서 바로 내보내자. 준비해.”

한국의 영웅, 한서진 박사의 초대형 스캔들이자 윤리적 결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이 얼마나 들끓을까.

그렇게 두근거리며 디데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날 편집국장이 인상을 잔뜩 쓰며 들어왔다.

“박 기자, 그 기사 작성한 거 있지? 한 박사 스캔들.”

“네, 이제 뿌릴 때가 됐나요?”

“파기해.”

“네?”

박창렬은 놀라서 반문했다.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

“국장님, 어디서 무슨 압박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그런 거 아니다, 인마.”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쓰고 무서워해가면서 이 일을 했나요? 팩트 보도로 정의사회 구현하기 위해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펜대 휘두르며 살지 않았습니까?”

흥분한 박창렬을 한숨으로 보던 국장이 입을 열었다.

“모델 신효, 알고 보니 H그룹 막내딸하고 친구더라. 백화점 모델도 한 박사가 아니고 막내딸이 중개해준 거고.”

“……네?”

“뭣도 아니라는 거야. 제대로 헛짚었어.”

완전히 힘이 빠진 박창렬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난날의 고생은 그저 헛되이 개고생으로만 남았다.

========== 작품 후기 ==========

압박과 강압으로 스캔들을 묻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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