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22화 (322/609)

00322  불붙은 경매  =========================================================================

에테르 워치 경매를 위해 모여든 부호들의 수는 약 천오백여 명에 달했다. 한 명 한 명이 자가 전용기를 타고 올 정도의 대부호들이었다.

간혹 전세기나 항공사편을 타고 온 이도 있긴 했으나 전용기를 탈 재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전용기가 수리 중이거나 혹은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H그룹도 경매 진행을 돕는데 나섰다.

“기존 1, 2차 경매처럼 해선 안 돼요! 자그마치 천오백 명이 넘게 몰렸다고요! 수행 인원까지 생각하면, 예전 장소로는 절대로 커버 못 합니다!”

“다른 장소를 준비 해! 서둘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정식 경매일까지는 석 달이 더 남아 있지만, H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바쁘게 뛰어다녔다.

최종적으로 S스타디움이 3차 경매 장소로 선정되었다.

5만 명의 인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돔형 거대 시설을 급한 대로 개조해서 경매장소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룹측은 송지현의 뜻에 따라, 관중석을 전부 들어낸 뒤 적절한 개별 부스 형태로 개조하기로 했다.

S스타디움을 3개월 간 임대하고, 경매를 위해 관중석을 개조하고 그 뒤에는 다시 원상복구하겠다는 계획.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었지만 경매가 가져다 줄 천문학적인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낭비 아닌가요?”

“낭비? 스타디움 임대비용, 개조비용, 원상복구비용 다 합쳐도 경매 참가자들한테는 쇼핑 비용 밖에 안 돼. 그런 참가자들이 천오백 명이 넘게 모였다고! 뭐가 중요한지 몰라?”

재무팀의 우려는 그렇게 싹을 틔우지도 못한 채 기어들어갔고, H그룹은 원활한 경매 진행을 위해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다.

진성호텔.

서울에서 손꼽히는 특급 호텔이자 진성그룹의 호텔계열 사업의 주축. 시설이나 서비스의 품질도 최상위로 꼽히며, 해외 VVIP들도 서울 방문시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 진성호텔에 모처럼 초비상 모드가 걸렸다. 직원들은 표정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로얄 스위트 클래스가 모두 나갔습니다. 그 아래 등급 객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치를 상징하는 호화 객실이 모두 매진이다. 진성호텔이 아무리 알아주는 특급 호텔이라 해도 이런 일은 좀처럼 드물다.

당연히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호텔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건 기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호텔의 저력을 시험하는 시련이기도 합니다. 어떤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과거 사장으로서 호텔 사업을 주관했던 이서나 회장이 호텔에 직접 출두했다. 직원들이 바짝 긴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반 손님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아직 체크인하지 않은 모든 예약은 정중히 취소하세요. 레스토랑 및 명품 매장 등 호텔 부대시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특급 호텔이라 하나, 그룹 전체 규모에 비하면 일개 호텔에 불과한 곳. 그런데 서슬 퍼런 권세를 자랑하는 그룹 총회장이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 행차했다.

직원들이 바짝 굳어버리는 게 당연했다.

“앞으로 3개월 간, 우리 호텔은 에테르 워치 경매 참가자분들을 위한 전용 시설로만 운영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호텔 사장이 바짝 군기가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까지 투숙한 VIP는 모두 몇 분이죠?”

“267분이십니다.”

이서나는 입맛이 썼다. 진성호텔의 총 객실수는 약 500여 개. 그중 호화 객실이라고 할 만한 것은 30개도 채 되지 않는다.

“로얄스위트 객실에는 지금 어떤 분이 체크인하셨나요?”

하루 숙박비용이 수천만 원을 초과하는, 진성호텔에서 가장 비싼 초호화 객실. 이서나는 어떤 대부호가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궁금했으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부다비의 안슐 왕자님께서 이용하고 계십니다.”

“안슐 왕자님이라면, 1차 에테르 경매 낙찰자 아닌가요?”

이서나는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20억 달러, 자그마치 2조 원의 거액을 시계 하나에 깔끔하게 투척해버린 아랍 거부. 최초라는 프리미엄을 놓친 다른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2차 경매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설마 3차 경매에 참가한다는 것인가?

“안슐 왕자님은 첫 에테르 워치 경매부터 줄곧 같은 객실을 이용해오셨습니다. 물론 상시 투숙하신 것은 아닙니다만, 몇 달째 체크아웃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번에도 열흘 전부터 입실하셨습니다.”

그룹 임원들은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했다. 하루 투숙비용이 수천만 원이 넘는 초호화 객실을 몇 달째 이용 중이라니.

‘안슐 왕자가 3차 경매에 참가하려나?’

무시할 수 없는 고급 정보다. 이서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호텔 사장에게 물었다.

“일반 객실에 투숙하신 고객들께서 불편해하지는 않으신가요?”

“만족한 기색은 아닙니다만, 어쩔 수 없으니 참고 용인하시는 듯합니다.”

“시설을 어찌할 순 없으니 서비스만이라도 최고의 품질로 제공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진성호텔은 일반 객실도 하룻밤 투숙 비용이 수십 만 원이 넘지만, 세계 최상류층 VIP들에게는 누추한 헛간이나 다름없이 느껴질 것이다.

일반 객실은 아마 그들에게 본가 화장실보다 더 비좁고 허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리 호텔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특급 호텔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경매 참가자들이 방을 구하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개인 휴양지를 두고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에게 한국 시장은 직접 방문할 만큼 썩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다. 서울에 개인 별장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천오백 명이 넘는 인원들이 동시에 몰려들었으니 특급 호텔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했다. 어쩔 수 없이 일반 객실에 묵는 사람도 많았다.

“호텔 면세점은 어떻죠?”

“고객들이 전혀 만족하는 눈치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크게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세계적인 부호들의 눈높이에 만족할 만한 상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서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절호의 기회인데! 그리고 어쩌면 단발성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관심도 없는 대부호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크게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서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추후 경영회의를 통해 결정을 해야겠지만, 호텔 신관을 짓겠습니다.”

“신관이요?”

느닷없는 사업 확장에 임원들은 저마다 놀라운 감정을 드러냈다. 그들도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에테르 워치 경매는 정기적인 행사로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서울에서 벌어지겠죠. 즉 이런 대이벤트가 정기적으로 벌어진다는 겁니다.”

하루 투숙비로만 수천만 원을 아낌없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천 명이 넘게 몰려온다.

이런 대이벤트가 일 년에 단 한 번만 벌어져도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서나는 그 과실을 오늘처럼 허탈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신관은 전 객실을 에테르 워치 참가자들을 위한 컨셉으로 만들겠습니다. 수십, 수백 조 원의 재산을 지닌 부호들이 만족하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분들이 여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부대시설도 함께 마련될 겁니다.”

호화 명품관, 수영장, 휴양시설, 최고급 레스토랑 등 그들이 만족스럽게 돈을 뿌릴 수 있는 시설도 함께 갖추겠다는 것. 이제야 임원들도 이서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호텔 유지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이서나의 말대로, 일 년에 한 번만 이런 이벤트가 있어도 큰 이익이 남는다.

“에테르 워치는 송지현 사모님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패션 사업입니다. 그분은 한 박사의 예비 장모, 이 사업 무조건 성공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부대사업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합니다.”

투자비용이 크지만, 성공 가능성 역시 그에 못지않게 큰 사업. 임원들은 차례차례 납득했다.

이서나가 손뼉을 짝짝 쳤다.

“자자, 이번에는 준비가 전혀 안 돼서 어쩔 수 없으니 친절과 서비스로라도 승부를 보세요. 저 역시 당분간 호텔에 상주하며 고객들을 직접 에스코트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경매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호텔 확장을 서둘러야 합니다.”

P예술회관.

서울 특급 호텔에 모인 경매 참가자들이 이곳에 모였다. 부가티, 롤스로이스 등 좀처럼 보기 힘든 초호화 차량이 주차장에 질서정연하게 섰다.

협조 요청을 받은 경차들이 철통같이 경비를 섰다. 이들은 하나하나가 귀빈, 만약 예술회관이 테러라도 당한다면 한국의 체면은 형편없이 구겨지고 만다.

주요 방송사들도 취재진을 이끌고 행사에 참석했다. 참가자들이 직접 방송 송출을 요구한 것이다.

국내 재벌의 모습도 직접 볼까 말까한데, 세계적인 재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상황 아닌가. 방송사는 두 말 않고 굽실거리며 그들의 뜻을 따라 촬영 장비를 설치했다.

한국 내에 생중계로 보도되는 와중, 드디어 사회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는 경매 참가자가 아니라, 행사 진행을 위탁받은 인물이었다.

“많은 분들이 이 자리가 가진 성격이 어떠한지 의아해하고 계실 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은 에테르 워치 3차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오신 분들입니다. 한 분 한 분이 움직이는 경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재력가시죠.”

기업가, 독재자, 왕족, 마피아 보스까지.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파급력이 큰 이들이었다.

“3차 경매까지는 아직 3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일찍 한국을 찾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에테르 워치의 실용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에테르 스톰을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이죠.”

그 외에도 다양한 패턴으로 에테르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한서진만이 읽을 수 있으니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에테르 스톰에 접근하면 멈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 분들이 3개월 먼저 한국을 찾으시고 오늘 이곳 P예술회관에 모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3차 경매 급행료를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시청률은 무려 65%가 넘었다. 그러나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은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한 분 한 분이 종이에 금액을 써서 내실 겁니다. 그 중 가장 높은 금액이 경매 급행료가 되는 겁니다.”

시청자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 가운데 절차는 빠르게 이뤄졌고, 금액 검수는 금방 끝났다.

결정 금액은 2천만 달러. 원화로는 200억 원.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 금액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몰랐다.

“자, 최종 금액이 2,000만 달러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참석한 모든 분들이 각자 2,000만 달러를 ‘경매 급행료’로 내어놓을 겁니다.”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경매 참가자들이 아닌, 행사를 주관하는 행정 직원들과 방송사 쪽이었다.

“총 금액은 약 30억 달러……. 이것은 3차 경매를 지체 없이 열어주는 조건으로 경매 참가자 전원이 지불하는 ‘급행료’입니다. ‘EW(에테르 워치)’가 경매 일정을 서둘러준다면, 이 급행료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북한 난민 및 한국의 취약층들을 위해 기꺼이 기부될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가볍게 힘을 모아 올린 토스였다.

========== 작품 후기 ==========

“아니, 여러분. 경매는 3개월 뒤인데 이렇게 압박하시면 곤란합니다.”

“됐고, 워치나 내놔!! 내 돈은 가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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