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16화 (316/609)

00316  에테르 워치  =========================================================================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에테르 스톰을 해소한다라…….’

에테르 스톰 자체를 일시적으로 흩어버리는 건 가능하다. 문제는 그 넓은 땅 전역에 에테르가 뭉쳐 있다는 것이다.

한 지역을 흩어버려도 그 에테르 에너지가 곧 다른 지역에 흡수돼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에테르 스톰의 과밀화 현상은 전이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북한 전 지역의 에테르 스톰을 한순간에 흩어버려야 하는데, 그것은 현재 마력 칩셋의 출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고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있지만, 아직 시원한 해결책은 없네.”

“그런가요?”

송하나는 몹시 실망한 기색이었다. 한서진은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해졌다. 미인 약혼녀의 시무룩한 모습은, 그게 본인의 책임이 아닐지라도 남자의 어깨를 처지게 한다.

“북한 땅을 안정화시켜야 어떻게든 사정이 좋아질 텐데. 돈만 쏟아 붓는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하긴, 지금 난민들 아직도 임시 수용소에서 지내고 있지?”

“네, 우리나라에 있는 인원만 팔백만 명 가까이 되는데, 그 많은 인구를 전국에 흩어놓을 수도 없잖아요. 정부도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은가 봐요.”

“난 네가 그런 것까지 꿰뚫고 있는 게 대견해.”

“어차피 그런 건 TF팀에서 다 해줘요. 저는 그냥 최종 결정만 골라주는 거예요.”

송하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한서진은 그런 모습까지도 기특했다. 이런 게 콩깍지인가 보다.

“하긴, 북한을 재건하려면 결국 땅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언제까지 저대로 둘 순 없지.”

한서진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나도 한 번 방법을 찾아볼게.”

송하나와 헤어진 뒤, 한서진은 리무진을 타고 설계사무소로 향했다. 경호 차량이 앞뒤로 따라붙는 일상도 이제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었다.

리무진의 푹신한 소파에 앉은 채, 그는 모처럼 태블릿으로 여론을 살폈다.

―20억 달러! 사상 최고가 시계!

제목을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현재 전 세계 인터넷 여론은 20억 불짜리라는 전대미문의 시계 가격에 기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에 관한 기사를 읽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다.

남들이 이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구나, 하는 묘한 어색함에 사로잡힘과 동시에, 이따금씩 이유 없이 쿡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자신에 관해서 정확히 맞출 때는 감탄이 터져 나오고, 터무니없는 곡해를 늘어놓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시기하는 반응도 종종 보였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그런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러워하는 반응도 참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막연한 동경심, 대체로 그런 반응들이었다.

‘전부 다 통찰안, 그리고 아서 왕 덕분이지. 하지만…….’

레노지안의 힘 덕분에 비루한 삶을 탈피하여 누구나 동경하는 황금빛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그 레노지안이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은 정작 아이러니다.

한서진은 눈을 감으며 신효진을 떠올렸다.

‘효진 씨가 뭐 좀 알아낸 게 있을까?’

그녀는 특별한 걸 알게 되면 그때그때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먼저 연락을 하자니 재촉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송하나도 마음에 걸린다. 신효진과 연락을 주고받는 게 알려지면, 그녀에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 테니.

다음으로 북한 난민 관련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들의 생활환경은 생각했던 만큼 열악하지 않았다. 공간의 협소함이 눈에 띄는 문제일 뿐, 식료품 및 식수, 의료 서비스 제공 등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난민들의 생활 의욕이 극도로 저하된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한순간에 나라를 잃은 그들 대다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재사회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을 펼쳤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착수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하루하루 난민 생활을 유지시키는데 급급할 뿐, 미래를 대비한 큰 그림은 본격적으로 모양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북한 재건 기초 계획을 세우지 않는 정부, 국정 업무 해이?

―심각한 레임덕, 국정 운영에 비상.

―창창한 임기, 대책이 시급한 때.

북한 재건 정책에 소극적인 정부의 굼뜬 행동을 비판하는 기사도 간간이 눈에 띠었다.

한서진은 반대쪽에 앉은 서진혁 재무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이 기사들 혹시 보셨어요? 비슷한 논조가 한두 개가 아니네요.”

서진혁은 기사를 확인하고는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김두박 대통령이 국정에 의욕을 잃은 것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말이 많습니다. 듣자하니 청와대 국정회의에도 불참하는 경우가 잦다더군요. 궐석도 아닌데 거의 국무총리가 국정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듯합니다.”

“그런가요.”

“대통령은 김시형 검사 때문에 정일재단을 잃은 뒤 한동안 시름에 빠지긴 했습니다만, 북진 작전 때 나름대로 반등을 노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무산되자 이제 국정 의욕 자체를 완전히 잃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임기가 한참 남았는데.”

“주변 사람들 말 들어보면 몇 달 사이에 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하더군요.”

대통령 임기가 몇 년 남았더라? 3년이던가?

그런데 벌써부터 자타공인 레임덕이라니,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한서진조차도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혀를 내둘렀다.

“설마 남은 임기 내내 그럴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거의 모든 기반을 잃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저라도 만사에 의욕이 빠질 겁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많이 혼란스럽겠어요.”

“예, 경제 성장률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간 실업률도 늘었다고 하더군요.”

“TF팀이 출범해서 재정 흐름을 감시하는데도요?”

서진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TF팀이야 재정 흐름을 감시하는 기관이지,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업에서도 회계팀이 영업을 따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서진혁은 오늘따라 유독 한서진이 질문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웬만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중요한 반도체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다소 드문 행동이었다.

그래도 서진혁은 성심성의껏 그의 질의에 답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2.1%로 전망하고 있지만, 사실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대세입니다.”

“경제가 정말 안 좋긴 안 좋은가 보네요.”

“사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지요.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중국 사태를 반가워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스운 일이지요.”

불황인 와중에 거인이 파산했으니, 뜯어먹을 게 많아졌다는 이야기인가 보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호황기에 접어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SJ인더스트리 덕분이다.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미국의 영웅인 한서진에 대한 예우로, 그에게 어떤 소득세도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나 SJ인더스트리가 납세하는 천문학적인 법인세, 지역 경제 창출 효과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에 관한 여론은 어떤가요?”

“그건 한지혜 양이나 송하나 양에게 물어보시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냥 서 팀장님 시각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서진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국민의 대다수는 대표님을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대다수라면, 반대로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군요.”

“원래 집단이 100% 통일된 생각을 가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유가 뭐죠?”

한서진은 그 점이 궁금했다. 돈이 많아서 질투하나?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자신도 가난하던 시절에 그랬으니까.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서진혁의 대답은 의외였다.

“여러 가지입니다만, 먼저 SJ인더스트리가 미국 회사라는 점입니다.”

“……?”

“SJ인더스트리는 세계 최고 기업이죠. 만약 기업을 한국에 설립했다면 한국 경제가 이렇게 파탄나지 않았을 거라고 원망하는 시각이 꽤 있습니다. 주로 60대 이상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런 불만은 예전에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대표님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이번 국채 매입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 크게 분류하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가요.”

“안심하시지요. 그래봤자 4%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한서진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피식거렸다.

“제가 우리나라에 득을 주면 줬지, 해를 끼친 건 없는데도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군요. 신기합니다.”

“원래 유명세라는 게 그렇습니다. 잘해도 못해도, 유명하다는 것 그 자체 때문에 필연적으로 비난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럼 특별히 대중을 의식해서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도 없겠고, 앞으로도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네요? 제가 공직자도 아니고 사인이니까요.”

“그렇지요. ……헌데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그냥 좀 궁금했습니다. 남들 시선에서 저란 인간의 행보가 어땠나, 하고요. 지혜랑 하나는 너무 제 편이라 중도적인 입장도 한 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서진혁은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저 역시 대표님 편인데요.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것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것이지, 제 주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열성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이 흐뭇하긴 하지만, 가슴이 설렐 정도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되도 않는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는 반대층이 있다 해도, 별다른 실망감이 생기지 않는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국내에 장학재단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장학재단이요?”

서진혁은 얼른 메모할 준비를 갖췄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우수한 인재, 아, 이 일정 요건이란 꽤 엄격하게 책정할 겁니다. 어중이떠중이한테까지 퍼주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알겠습니다. 계속 말씀하시지요.”

“선발된 장학생들은 학업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지급하고, 학업을 마친 후 SJ인더스트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합니다. 물론 학업 도중에도 SJ인더스트리와 산학협동을 통해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고요.”

“SJ인더스트리 규모를 더 키우실 생각이시군요.”

“SJ인더스트리 사업부는 앞으로 두 개로 나눌 겁니다. 반도체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존 사업부와, 에테르 공학을 전문으로 연구 개발하는 부서로요. 우수하지만 가난해서 고생하는 국내 인재들에게도 그 기회를 주고 싶군요. 장인어른처럼 근사한 선물 하나씩 돌리는 것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서진혁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으나, 그가 결심한 변화는 큰 태풍을 몰고 올 것이다.

“장학생 선발 작업은 즉시 실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한서진은 말을 마치고, 왼손에 감긴 에테르 워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두 번째로 만든 에테르 워치였다.

‘이대로는 안 돼. 변화가 필요해.’

레노지안은 이 세상이 꿈이라는 명제 하에 지워버리려고 한다.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에테르 연구를 성장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현재 니트론, 현진국, 박효산 체제로 돌아가는 연구팀을 폭발적으로 키워야 한다. 인재 확보는 그 첫 걸음이었다.

========== 작품 후기 ==========

부창부수...

여자친구는 회계 감사로 쪼이고, 남자친구는 인재 싹쓸이로 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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