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315화 (315/609)

00315  에테르 워치  =========================================================================

낙찰가 20억 달러.

원화로 약 2조 원에 해당하는 액수에, 경매장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해졌다. 다른 참가자들은 감히 더 높은 호가를 부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아무리 수십, 수백 조 원의 자산가라 한들, 시계 하나에 몇 조 원씩 쓰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최대 낙찰가는 2억 5,000만 달러 가량. 그것도 치열한 경쟁이 불붙었을 때를 감안한 추정치였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경매가 끝나버렸다.

“…….”

“…….”

여기저기서 허탈한 침묵이 쏟아졌다.

폭발적인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던 경매가 이런 식으로 허탈하게 끝나버렸으니.

송지현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에테르 워치 브랜드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이벤트가, 이렇게 최단시간 안에 끝나버렸다.

물론 낙찰가만 보면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결과였으니, 마냥 실망하기도 그랬다.

그때 낙찰자가 부스에서 일어나서 단상으로 올라왔다. 경매장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흰 터번을 두른, 중후한 인상의 아랍 왕족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한서진은 순간 아 하고 소리 없는 탄성을 냈다.

‘안슐 왕자?’

어찌 그를 잊어버리겠는가.

한국대학교 이과박람회에서 5nm 반도체 공정기술을 500억 달러에 낙찰 받아서 간 사람. 그를 단숨에 세계적인 대부호로 만들어준 장본인.

바로 그가 이 자리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한서진은 이끌리듯이 단상으로 나왔다. 안슐 왕자와 나란히 마주보고 섰다.

5nm 독점 특허 때문에 그간 꾸준히 교류해왔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얼굴을 보는 것은, 이과박람회 즉석경매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안슐 왕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하의 첫 작품이니만큼, 부디 직접 채워줬으면 좋겠소.”

“영광입니다, 왕자님.”

한서진은 정중히 대답하고는, 조심스럽게 에테르 워치를 들어 그의 왼손에 착용시켜 주었다.

안슐 왕자는 흐뭇한 눈으로 왼손에 찬 시계를 그윽이 들여다보다가 한서진에게 눈을 돌렸다.

“이 수많은 부품들이 빚어내는 신비한 움직임과 발광 현상……. 이게 바로 에테르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에테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움직임이 담고 있는 신비함 또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겠군.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만.”

한서진은 말을 흐렸다.

에테르 워치가 보여주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신비하고 아름다운 무브먼트의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슐 왕자는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쨌든 이 움직임에 삼라만상 에테르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소? 다만 나의 혜안이 부족하여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세상을 구성하는 위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 이 왼쪽 손목에 감겨 있다. 그것도 세계 최초. 그 프리미엄은 다른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나는 운이 좋군요.”

안슐 왕자는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이런 귀물을, 겨우 20억 달러에 얻을 수 있다니.”

참가자, 그리고 주최측에는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매였지만, 경매 결과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전 세계 대중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대중은 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낙찰금액, 그리고 최단시간 안에 끝나버린 기록적인 사실에 놀라워하고, 미칠 듯이 열광했다.

―역시 아랍 클래스가 최고시다…….

―안슐 왕자님……. 호탕하신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크게 질러주실 줄이야.

―매너 넘치는 입찰가에, 다른 사람들 시간 낭비하고 경쟁에 힘들까 봐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끝내주시는 배려심까지. 역시 왕족의 품격, 어디 가지 않는다.

―다들 똑똑히 봤지? 매너 입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원래 낙찰자의 신분은 원한다면 비밀로 진행할 예정이었고, 참가자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슐 왕자는 세간의 관심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라만상 세상의 진리를 담고, 보여주는 에테르 워치. 그것도 세계의 영웅인 한서진 박사가 최초로 만든 것. 그 기념비적인 가치까지 생각하면, 20억 달러는 오히려 저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저 언론은 안슐의 인터뷰를 특집으로 내보내며,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를 널리 알렸다. 여기에 500억 달러의 기술 즉석경매로 한서진과 맺은 인연까지 자세히 보도하며, 그 둘의 인연이 남달리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에테르 워치는 시계가 아닙니다.”

한서진 역시 정식 인터뷰에 응하며, 에테르 워치가 품은 진정한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온 세상을 뒤덮은 에테르는 끝에서 끝까지 서로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테르 워치는 그런 흐름을 검출해 부품의 움직임과 발광 현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에테르 워치의 발전은 에테르 물리학을 성장시켜줄 원동력이 될 겁니다.”

단순히 아름다움과 브랜드 가치만이 결합된 명품이 아니라, 세계의 진리와도 연결된 최상의 사치품이자 공학품. 그것이 바로 에테르 워치의 진정한 포지션이었다.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지만, 다른 경매 참가자들은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뒤늦게 에테르 워치의 진정한 일면을 알게 된 이들은 안슐 왕자의 선제타격에 머뭇거린 것을 조금이나마 후회했다.

에테르 워치의 기념비적인 가치, 한서진의 첫 작품이라는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너무 맥없이 경매를 포기한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감이 살짝 들었던 것이다.

경매는 끝났지만, 에테르 워치 브랜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속보! H그룹, 에테르 워치 브랜드 런칭 결정!

―10여 명의 스위스 유명 시계 대장인, 한국행 결정! 그들이 제의받은 대우와 조건은?

―개별 부품 모듈화로 일반형 에테르 워치도 제작한다!

송지현은 에테르 워치 브랜드를 출범시켰고, 미리 포섭한 스위스 시계 장인들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앞으로 그들이 일반형 에테르 워치를 제조하게 될 것이다.

한서진은 타르타로스를 이용한 에테르 파동을 이용하여 개별 부품을 제조했다. 그래서 제조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반면 시계 장인들은 직접 수작업으로 모든 부품을 하나하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서진이 ‘모듈화’해서 정리해준 에테르 코드를 수백 가지가 넘는 부품에 미세하게 새겨야 한다.

당연히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희소성이 오히려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이다.

모듈화란 에테르 코드를 장인들이 각인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을 말한다. 에테르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저 부품에 새겨 넣어 무작위로 조립하기만 하면 에테르 워치가 작동하게끔.

그러나 일반 장인이 만든 것은 한서진이 만든 것처럼 에테르의 올바른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서, 모듈화된 에테르 코드는 개별 단어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단어들이 올바르게 조합되었을 때, 비로소 ‘언어’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장인들은 개별 단어의 뜻, 문법 등을 일체 모르기에, 무작위로 조합한들 올바른 언어적 의미는 띠지 못하는 것이다.

단어 조합을 잘못하면 〈fucking a is teemo user troller〉, 이런 식으로 의미를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게다가 한두 단어도 아니고 수백 가지가 넘는다.

물론 무브먼트의 동작, 발광 현상은 제대로 이뤄지기에 시계를 감상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단지 일반인은 이게 정상적인 에테르 흐름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뿐이다.

에테르 워치 브랜드는 1억 원 대 이상의 가격으로 팔릴 장인들의 일반형, 그리고 100% 경매로 진행될 한서진의 고급형, 이렇게 두 가지 모델 라인업을 선보이게 된다.

후자가 더욱 희소하고, 가격도 천문학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나야, 알지? 에테르 워치는 시계가 아니야.”

“알아요.”

“으으…… 사람들이 하나같이 시계로만 알고 있어.”

“그래도 안슐 왕자님은 에테르 워치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시는 것 같던데요.”

송하나가 위로하듯이 말해주자 한서진의 표정이 비로소 조금 풀렸다.

“그래. 나도 그래서 기분이 좋아. 더군다나 20억 달러나 주고 사가셨으니.”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호구라거나,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사가지? 돈이 그렇게 썩어나나?’하는 생각 따위는 일절 들지 않았다.

안슐 왕자가 생각하는, 에테르 워치에 담긴 자신의 노력이 20억 달러나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의 인정을 받은 듯해서 기분이 몹시 좋았다.

“아세요? 중국은 벌써 독립국이 세 개나 생겼어요.”

“그래?”

“예전처럼 하나 된 나라를 이루기에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잘 됐어요.”

잘 됐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송하나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중국은 그녀로부터 한서진을 빼앗아가려고 했던 원수, 결코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TF팀 일은 어때? 잘 돼가?”

“네, 밑의 분들이 워낙에 잘 해주셔서요. 다들 하나같이 유능한 분들이시거든요. 그런 분들이 300명이나 있는데, 하지 못할 일이 없죠.”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태블릿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든든한 조력자까지 있잖아요.”

한서진이 준 태블릿은 타르타로스와 직통으로 연결된 입력장치였다. 태블릿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면, 그것이 전자적 정보로 존재하는 한, 타르타로스는 100% 완벽하게 찾아준다.

해당 PC를 아무리 꼭꼭 숨겨놓고, 전원을 꺼놓아도 막을 수 없다. 에테르의 파동을 이용한 데이터 검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빠, 내년 말까지 어쩌면 1조 달러 정도 추가 지출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내 명의로 국채 사는 거잖아. 괜찮아.”

“그래도 못 돌려받으실 수도 있는데.”

“못 돌려받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거라고 네가 그랬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돈이야 뭐, 썩어나는데.”

국채를 상환 받지 못한다?

그것은 돈을 잃는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한국의 운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국채를 매입한 것 이상의 이득을 창출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경제학자는 마음만 먹으면 한서진이 대한민국 전체를 노예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서진으로서는 그런 것은 별 관심 없었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혀를 찼지만.

‘대체 어쩌라는 거지. 그럼 망한 북한 끌어안고 다 같이 익사하려고?’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 손해를 감수하고 도와주었는데도, 그 도움의 손길이 나중에 해가 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모습이라니. 한서진의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빠, 그런데 북한 지역은 언제까지 저렇게 갈 것 같으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오빠가 그 현상을 해소할 수는 없나요?”

========== 작품 후기 ==========

사재를 박박 털어서 왕자님 섭외에 가까스로 성공했습니다;;;;;

왕자님 몸값 너무 비싸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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