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4 에테르 워치 =========================================================================
「에테르 워치 때문에 엄마가 런던까지 따라가신 거예요?」
수화기 너머 송하나의 목소리는 살짝 타박하는 듯했다. 왜 자신에게 진작 말 안 했느냐는 듯하다.
“응. 장모님이 너한테는 잠깐만 비밀로 해달라고 하셔서.”
「엄마도 참. 바쁜 사람한테 왜 그런 걸.」
“아니야, 나도 재밌을 것 같아서 괜찮아. 어차피 만드는데 시간 얼마 걸리지도 않아.”
「연구 활동에 지장되면 안 돼요. 아셨죠?」
그 말에 한서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에테르 스카우터 만드는 것도 연구 활동의 일환이야. 지금 건 초기작이라서 계속 개량을 해야 해.”
「그럼 다행이구요. 근데 그거 어떤 효과가 있어요? 저 되게 궁금한데.」
“음…… 일단 주변 에테르의 움직임을 읽고 그 변화를 중심체 부품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장치인데…… 사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혀 쓸모없어.”
「그래요?」
“나 아니면 못 읽어. 스카우터 움직임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기호를 따르거든.”
정확히는 통찰안, 그리고 타르타로스만이 에테르 코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군요. 근데 왜 자꾸 워치를 스카우터라고 하세요?」
그걸 물어봐주기를 바랬다.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얼른 대답했다.
“바로 그거야! 그건 시계가 아니라 에테르 움직임을 확인하는 감지기라고. 그래서 스카우터인데, 사람들은 자꾸 시계라고 알고 있어!”
「…….」
“시침도, 분침도 없는데 그게 어딜 봐서 시계야? 안 그러니, 응?”
「사실 최상급 명품 시계에 시침이나 분침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기품 있느냐가 중요하죠.」
한서진은 맥이 빠졌다.
누가 모녀지간 아니랄까 봐, 송하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거 시계 아닌데…….’
공염불처럼 그런 중얼거림만 입안을 맴돌 뿐이다.
10초 남짓한 에테르 워치 동영상이 공개되고, 시계 애호가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시계를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시침, 분침이 없다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시계’의 자세한 스펙이 공개되자, 애호가들은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었다.
“한서진 박사가 직접 수공예로 만든 거라고?”
“에테르의 흐름을 부품의 움직임과 발광으로 나타낸다고?”
그들은 전율했다.
시계의 아름다움과 구동 원리도 놀랍지만, 세계 최대 유명 인사이자 최고 부호인 한서진이 직접 만든 거라니.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로 매길 수 있을까? 언뜻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만약 이게 경매에 나오면 얼마에 팔릴까?”
화제가 경매에 몰리자 관심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특히 최상급 명품 시계를 기꺼이 구매할 재력과 사랑이 있는 부호 애호가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수천만 불은 기본이고, 1억 불이 넘어갈 수도 있겠어.”
“한서진 박사의 이름값, 그리고 가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도 부족할 거 같은데.”
세계 최초의 에테르 워치.
사람의 혼을 빼앗을 듯한 극도의 아름다움.
그리고 한서진이 직접,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프리미엄.
이것들을 합쳤을 때,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로 측정해야 옳을까? 재력이 넘쳐나는 애호가들도 선뜻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방향에도 주목했다.
“만약 에테르 워치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면…….”
“글쎄, 과연 잘 될까? 스위스나 다른 유럽의 명문 시계 제조사들은 백 년이 훌쩍 넘는 전통이 있는데.”
“난 좀 다르게 생각해. 한서진 박사의 이름값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보진 않아.”
“에테르 워치 브랜드, 충분히 가능성 있어. 아니, 오히려 세계 시계 명품 브랜드들은 바짝 긴장해야 될 거야.”
“큰일이야. 내 사랑스러운 파텍필립 시계들이 그냥 메탈 뭉치로만 보이기 시작했어.”
에테르 워치는 어디까지나 에테르의 흐름을 객관적인 정보로 표현해주는 감지 장치다. 애호가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안다.
그러나 애호가들은 그 사실 자체보다는 에테르 워치가 가진 시계로서의 미형, 가치에만 집중했다.
이제 와서는 한서진이 직접 나서서 목이 터져라 외쳐도 듣지 않을 기세다. 세계는 이미 에테르 워치를 새로운 명품 시계 브랜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재력이 좀 된다 싶은 세계적인 부호들은 한국에 쉴 새 없이 문의했다. 에테르 워치를 구하기 위해서다.
시계를 구할 가능성을 얻지 못한 그들은 크게 실망했고, 낙심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억만장자들은 어떻게든 에테르 워치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안간힘을 썼다.
주요 패션지는 과연 희대의 최상급 명품 시계가 어느 정도 가격에 팔릴지를 놓고, 매일 같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시계를 구매할 재력이 부족한 이들도 ‘혹시?’하는 생각에서 기웃거렸다.
에테르 워치는 어느덧 명품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렇게 관심이 뜨겁게 고조되었을 때, 그들의 열정에 기름을 끼얹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세계 최초의 에테르 워치, 경매에 내놓는다!
수많은 전용기들이 일제히 한국을 향했다.
한서진이 직접 만든, 세계 최초의 에테르 워치!
그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뜨거운 흥분과 기대감에 휩싸인 채,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전용기들이 차례차례 한국 공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에테르 워치 경매가 한국의 H백화점 본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호들이었다. 시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은 한 명 빠지지 않았다.
시계에 관심이 없는 부호라 해도 마찬가지, 그들은 역사에 다시없을 희소한 매물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부랴부랴 날아온 것이다.
한서진이 직접, 최초로 만든 에테르 워치.
원래 뭐든지 최초라는 것에는 유일무이한 프리미엄이 붙는다. 심지어 제조자가 바로 그 한서진 아닌가.
―아랍 왕족들, 속속들이 입국!
―미국 부호들도 앞 다투어 한국을 찾다!
―한국을 찾은 중동 독재자! 목표는 에테르 워치?
―절대 시계를 놓고 벌어지는 첨예한 긴장전!
언론은 매일같이 자극적인 기사를 써냈고, 경매 분위기는 활활 불타올랐다.
낙찰가가 수천만 불에서 1억 불은 거뜬히 넘을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헤드라인을 뒤덮는다. 심지어 어떤 언론은 그들의 일제 입국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경제 부양 효과에 관해서 자세한 평론을 쓰기도 했다.
물론 한서진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거 재료비 수백만 원도 안 하는 건데…….”
미스릴이 아무리 비싸다 하나, 시계 하나에 들어가는 양을 따지면 그 가격은 몇 백만 원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언론은 수천만 불이니 1억 불이니 하는 소리를 떠들어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경매를 준비하던 송지현이 그 이야기를 듣고 혀를 찼다.
“재료 원가만 생각하면 그 많은 명품들은 다 의미가 없죠. 사치품이란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도 너무하다 싶어서요.”
“아니죠. 한 박사의 가치를 생각해요. 한 박사가 직접 만든, 그것도 세계 최초의 에테르 워치예요. 부호들은 기꺼이 매너 입찰을 해줄 거예요.”
“매너 입찰이요?”
“그럼요. 그들이 사는 건 단순히 시계가 아니라 한 박사의 시간, 그리고 가치를 사는 거니까요. 아무리 많은 돈도 흡족한 마음으로 내어놓을 거라고요.”
송지현은 직접 한서진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한 박사가 일 년에 몇 개 이상 만들 일은 없어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몇 년에 한 개 정도만 만드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게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테니까.”
“그럼 시계 브랜드로서는 의미가 없지 않나요?”
“장인들을 양성해야죠. 저번에 말한 그 모듈화, 가능한 거죠?”
“아아, 물론입니다. 다만 겉모습은 제가 만든 것에 비해 많이 떨어질 거예요. 성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오히려 괜찮아요. 보급형과 고급형에 확실한 차별을 두는 거니까.”
에테르 워치는 각 부품들을 모듈화해서 양산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다른 장인들은 나름대로의 디자인 감각으로 그 모듈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워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에테르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기에, 그들이 만든 워치는 올바른 에테르의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만, 에테르 정보로서는 무의미한 회전, 그리고 발광 현상일 뿐이다.
오로지 한서진이 직접 제조한 워치만이, 에테르의 흐름을 올바르게 보여준다.
“하지만 어차피 제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관없을 텐데요.”
“워치가 보여주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이 라인업’만이 제대로 된 정품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죠.”
“…….”
“사치품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보급형 시계라 해도 최소 1억 원 이상의 가격이 책정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한서진이 직접 제조하는 모델은 무조건 경매 입찰을 원칙으로 한다.
“자, 이제 들어가죠.”
한서진은 H백화점에 마련된 경매장을 향해 송지현을 에스코트해서 이동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국제 관심과 다르게 한산한 분위기였다. 경매 참가자들은 개별 부스 안에서 경매에 참가하게 되어 있었다.
첫 경매이니만큼, 한서진이 직접 단상에 올라 얼굴을 보여주고 제품을 설명하기로 했다.
이른바 브랜드의 가치를 그의 얼굴로서 보증하는 것, 이후로 한서진이 다시 무대에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최초의, 최초를 위한, 최초에 의한, 프리미엄.
“에테르 워치를 제조한 한서진입니다.”
한서진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민망하거나 부끄럽다는 감정은 없었다.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에테르에 관한 설명도 해봤는데, 이 정도쯤이야.
에테르 워치도 결국 에테르 학문의 발전을 위한 과정 중 하나. 강연의 일환이라 생각하자 오히려 재미있다는 감정마저 들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설명이 끝나자 우아한 박수가 가볍게 터졌다. 대강당에서 강연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서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에테르 워치의 본질, 그리고 자세한 스펙과 성능을 설명하긴 했지만, 저들이 그것을 과연 제대로 이해했을까?
‘사치품 시계로만 보고 온 사람들인데.’
취재나 촬영이 불가능하지만, 이번 경매는 전 세계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내외신 기자들은 지금 밖에서 진을 치고 앉아 경매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 경매 역사상 최대 낙찰가를 기록할 것이라 기대되는, 역사적인 경매. 경매장에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도 그 뜨거운 열기를 맛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기라도 하듯이, 경매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시시하게 끝났다.
“20억 달러.”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어느 부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뒤덮여 있던 경매장은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마치 얼음물을 부은 것처럼.
경매 진행 절차와 달리 육성으로 호가를 부른 것이지만, 진행자는 그 절차의 흠결을 지적할 정신이 없었다.
최초로 호가를 부른 이는 터번을 두른 채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진행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어서 진행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고 나무라는 듯했다.
진행자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십억 달러 나왔습니다. 그 이상 금액을 부르실 참가자분 없으십니까?”
경매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여기 모인 이들이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재력가라 하나, 시계 하나에 2조 원 이상의 돈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용암 같은 관심을 받았던 첫 에테르 워치 경매는, 그렇게 어처구니없을 만큼 최단시간 안에 끝나버렸다.
========== 작품 후기 ==========
“이것이 아랍식 매너 입찰.”
긴 말 필요 없이, 숫자로 모든 걸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