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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11화 (311/609)

00311  Queens  =========================================================================

검찰이 진성그룹의 몸통에 칼날을 댔다.

채윤석 등 원로 고문 및 임원들을 줄줄이 구속한 것이다.

대다수의 그룹 관계자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들은 이창용 회장의 옛 가신들로, 현 그룹 경영에 있어서 실권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나 극소수의 오너 일가는 검찰의 일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고 새하얗게 질렸다.

건강 문제로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요양 중인 이창용 회장은 직접 이서나에게 연락을 취하기까지 했다.

「내 오랜 가신들이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부친은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아꼈다. 그런 태도가 더 확증을 심어주었다.

이서나는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불확실성 하나는 사라진 셈이 아닌가.

“검찰이 정확히 짚은 건가요?”

「적어도 구속 명단에서 빗나간 건 없더구나.」

“현재까지 몇 명이죠?”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검찰의 표적이 되었다.」

이창용은 잠시 망설인 끝에 말했다.

이서나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과연 두 명뿐일까? 혹시 더 존재하는 건 아닐까?

친부라 해도 그룹 경영 문제에서만큼은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다. 그것이 왕관의 무게.

“오랜 관습이에요. 완벽하게 처리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검찰이 너무 정확히 짚었다.」

“…….”

「내가 문제없이 처리했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이렇게 제대로 짚어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서나는 들리지 않게 신음했다.

수화기 너머, 부친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검찰이 어떤 획기적인 단서를 잡은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는 게 느껴진다.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맹호였던 부친은 꽤 심약해져 있었다. 이서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용무가 잘 해낼 거예요.”

「용무한테만 맡겨두고 방심하지 마라. 그룹의 사활이 걸린 일이야.」

그 말에 이서나는 문득 묻고 싶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용무만 그렇게 편애했냐고, 자신에게도 먼저 기회를 주지 그랬냐고.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아버지의 뜻을 꺾고 왕좌에 앉은 지금, 다 부질 없는 마음이 아닌가.

‘고작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국 재계에서 여자의 몸으로 1위 그룹을 통솔하는 것은, 그만큼 큰 패널티가 뒤따른다. 부친이 그 점을 우려했던 것은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원망스러웠다.

여자의 몸이라는 불이익, 그것을 얼마든지 감수하고 극복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은 아버지의 외면이.

이서나는 차분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나야. 그룹은…….」

“그리고 지켜보세요. 제가 어떻게 그룹을 지켜내는지를.”

부친의 소망에 따라, 그룹을 지켜낼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그것은 그녀의 의지이기도 했다.

주요 인물 몇 명을 제외하고, 차명으로 비자금 관리를 해온 원로 임원들이 전원 구속되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철재 검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압박 수사를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외압으로 전화기에 불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박철재 검사실의 전화는 비교적 조용했다. 정치권, 그리고 재계 인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박철재는 정의파 검사인 김시형과 친하고, 김시형은 한서진을 후원자로 두고 있다.

현직 대통령도 무서워하지 않고 팔다리를 공격한 검사, 잘못 건드렸다가는 불똥이 이쪽으로 옮겨 붙고 만다.

구속된 인원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으니, 검찰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도통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용무는 벌써 이틀째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곤두서 있었다.

“그래서 검찰 수사 진행이 어느 정도라고?”

“죄송합니다. 아직은…….”

“젠장!”

이용무는 테이블을 내리쳤고, 임원은 움찔했다.

다행히 그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현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이용무가 입을 열었다.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이세.”

“부회장님. 그 말씀은…….”

“검찰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털어낼 것은 미리 죄다 털어내 버리자는 거야. 어차피 비자금 전액을 공략하진 못해. 시효가 한참 지난 것도 있으니.”

비자금은 수십 가지 방법이 넘는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적어도 겉으로는 합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편법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심지어는 세금까지 납부하여 완벽하게 합법적인 돈으로 세탁한 비자금도 있다. 다만 임원에 대한 상여금 형태로 명의만 바뀌었을 뿐이다.

“검찰이 확실하게 물고 늘어질 거라 생각되는 금액이 어느 정도지? 대충 15조 원 정도 아닌가?”

“예, 그 정도입니다.”

“12조 원은 자발적으로 발표해. 5조 원 정도는 허술하게 남겨두고. 검찰도 직접 꼬리를 뜯는 맛이 있어야지. 그래야 배가 부를 테니까.”

이용무의 말은 명료했다. 즉 더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선수를 치자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부회장님, 회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로비에서 올라오고 계십니다.”

갑작스러운 비서의 연락에 이용무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 판국에 사전 연락도 없이 직접 찾아왔다면, 평범한 용건은 아닐 것이다.

“모시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비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이서나가 들어섰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대책은 어떻게 세우고 있니?”

“최악을 대비하고 있어.”

이서나는 가볍게 끄덕거렸다. 언제나 최악을 대비하는 것, 경영자로서 매우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구체적으로?”

“선수를 쳐야지.”

“얼마나?”

“최대 17조 원 정도는 버려야지. 구속된 임원들 몇 몇도 어느 정도 희생은 시켜야겠고.”

“그 정도로 검찰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TF팀은?”

“하나가 원하는 건 질서 확립 아닌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라고 보는데.”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와 친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성그룹을 봐줄 이유는 안 되지.”

재벌은 서로 협력, 동반 관계지만 동시에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만약 누구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으면, 그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하이에나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이서나는 그 점을 짚고 있는 것이다. 이용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현재 검찰에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모든 게 막혔어.”

“검찰에 손을 쓰라는 게 아니야.”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적어도 너보다는. 근데 네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뭔데?”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는지 이용무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서나는 차가운 티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누나. 설마.”

“비자금은 아버지가 조성한 거잖아? 안 그러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했을 텐데?”

이용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아버지를 버리라는 거야?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겠지. 그게 이치잖아.”

“검찰이 한 번 찔러본 칼에 지리 놀라서, 아예 모든 걸 내주자고? 그 소리야, 지금?”

“모든 걸 내주자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지키기 위해서 작은 걸 내주자는 거야.”

“누나!”

“아직도 몰라?”

이서나가 차갑게 노려보았다. 흔들림 없는 동공이 쏘아보자 이용무는 흠칫 놀랐다.

“검찰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 비자금 차명 관리자들을 모두 짚어낸 게 그 증거야.”

“명단만 확보한 걸 수도 있어.”

“그 명단은 어떻게 확보했는데?”

“…….”

“현실을 도피하지 마. 검찰은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어. 지금 구속 수사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야.”

미미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을 주시하며, 이서나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추락하는 그룹 이미지를 생각해. 아깝지만, 여기서 손을 털어야 해.”

“……시효가 지난 것들도 많아. 전액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해.”

“지금 상황에 시효가 중요하니? TF팀의 목적은 형사처벌이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 텐데?”

TF팀의 목적은 건전하고 투명한 경제 흐름을 세우는 것. 재벌 개혁이니, 비자금 처벌이니, 그런 것은 부수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 비자금 몇 십 조 원 정도는 건질 수 있겠지. 임원들도 몇 명 구속되고, 그룹 이미지 좀 실추하고. 하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져?”

“…….”

“이미 시대가 변했어. 변한 흐름에 맞춰서 노를 저어야지, 언제까지 옛날식으로만 할래?”

묵묵히 듣던 이용무는 굳은 눈으로 주시했다.

“여자라고 차별한 것에 대한 사감은 아니야?”

“없지는 않아. 하지만 그룹 일을 그것과 연관해서 결정하지도 않아.”

“…….”

“네 말마따나 시효가 지난 것도 꽤 되고, 기소 요건을 충족하기도 어려운 것들도 많아. 아버지가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게 하셨으니까. 하지만 ‘법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한 비자금 100조 원이 드러나면, 그룹 이미지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봤어?”

여론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것이 만약 검찰의 진짜 노림수라면?

검찰은 정의 구현을 위해 일하는 조직, 그러나 반드시 기소만이 그 수단일 필요는 없다.

이서나는 그 점을 짚은 것이다.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본인이 지으신 매듭은 본인이 푸셔야지.”

“하지만 노령에, 건강도 안 좋으신…….”

“그러니 실질적인 처벌은 무산될 거 아니야? 그리고 그룹의 총력을 기울이면, 아버지가 구속되거나 실형을 받는 것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어.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욕은 좀 드시겠지만.”

“단단히 결심을 했구나.”

“이 정도는 해줘야 한 박사한테 간택 받을 수 있어. 그렇다고 생각 안 해?”

이용무는 눈을 반쯤 감았다가 떴다. 어느 정도 풀린 표정, 이서나의 눈빛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그럼 그 큰돈을 어떻게 할 건데?”

“마음 같아서는 추징금이랑 과태료, 벌금 적당히 내고 다시 그룹 자금에 포함시키고 싶지만…… 이왕 무대에 오른 거 제대로 흔들어줘야 관객들이 만족하겠지.”

“그게 모두 얼만지나 알아? 자그마치 110조 원이 넘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총규모가 아니었던가. 이서나는 쓴웃음을 짓긴 했지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룹의 미래와 110조 원의 불법 비자금, 반드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래?”

“…….”

입을 다물고 있던 이용무는 마침내 끄덕였다.

―충격! 진성그룹 비자금, 총 112조 원에 달해.

―검찰 압박 수사에 조기 항복 선언?

―진성그룹, 서민지원사업에 비자금 전액을 내놓기로 밝혀.

다음날, 한국의 모든 뉴스는 오직 한 가지 주제만을 앞 다투어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진성그룹 회장 이서나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그룹은…….”

그룹 회장으로서 기자회견을 연 이서나는 대국민 사과를 전하며, 구태의 유산인 그룹 비자금 전액을 시효나 처벌 성립 요건에 상관없이, 전액 사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밝혔다.

============================ 작품 후기 ============================

―딸아, 이게 무슨 짓이냐?

―왕위를 계승하는 중이에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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