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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307화 (307/609)

00307  Queens  =========================================================================

스칼린은 똑똑히 목격했다.

순식간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쇄도하는 리온과, 소녀의 온몸을 감싼 빛의 구체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을.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이 울렸고, 눈부신 섬광이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나갔다.

천지가 쩌엉 울리며 대기가 공명했고, 초목들은 순식간에 불타 재로 변했다. 충격파에 휩쓸린 암석들이 마치 흙먼지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충격이 겨우 멎은 뒤, 스칼린은 리온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마치 고통을 참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의 땅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길게 갈라져 있었다. 마치 거인이 칼을 힘껏 꽂아 넣었다가 다시 뺀 듯한 흔적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달려가서 살폈다.

“리온?”

“……괜찮소. 일시적인 마비일 뿐이니. 곧 풀릴 거요.”

잠시 후 그 말대로 리온은 마비에서 완전히 풀렸다. 스칼린은 걱정이 되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가 이렇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리온, 정말 괜찮은 거예요? 초룡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아아, 그런 게 아니오.”

리온은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충격파를 최소화하고, 또 초룡이 죽지 않게 힘 조절을 하다 보니 그 과부하가 나에게 쏠려서 마비가 온 거요.”

“네?”

“사냥이 아닌 포획이 목적이니까. 자, 어서 쫓읍시다. 이러다가 놓치겠소.”

잠시 숨을 고르고, 리온은 초룡이 도주한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멍해 있던 스칼린도 얼른 그를 따랐다.

대량의 국채 발행과 외화 반입으로 인해 한국 경제는 요동을 치고 있었다.

수많은 난민들을 먹여 살리고, 사회 적응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하루에도 수많은 돈이 흡입되고 있었다. 한서진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아니었으면, 한국 경제는 융단 폭격을 맞은 것처럼 붕괴해버렸을 것이다.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대중은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을 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란에 고통 받기 싫다! 정부는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라!”

“500조 원이나 되는 돈을 왜 북한 주민들 복지에만 쓰나! 우리나라에도 그보다 고통받으며 사는 사람 많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우리나라에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위가 매일 끊이지 않고, 들끓은 여론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중은 특별 국채로 조달한 자금을 북한 주민들의 복지에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 재건기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

형편이 빠듯한 대다수 국민들은 그 돈이면 불경기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온 나라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한국대 반도체 연구실은 고요했다.

한서진은 외부 일에는 일체 관심이 없는 듯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다. 오죽하면 박효산 교수가 궁금해서라도 슬쩍슬쩍 물어볼 정도였다.

“특별 국채 꽤 많이 샀다며? 벌써 500조 원인가?”

“네, 그 정도 될 거예요.”

“얼마까지 퍼부을 생각이냐?”

“돈 되는 만큼은요? 일단 1, 2조 달러 정도는 생각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그 정도 기초 자금이면 북한을 우리나라처럼 발전시키는 건 순식간이겠다.”

1조 달러면 원화로는 무려 1,000조 원.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박효산은 혀를 내둘렀다.

몇 년 전만 해도 한서진과는 전혀 연관이 없던 거액인데, 그는 액수에 초탈한 듯 덤덤해 보인다.

“네가 난놈이긴 한가 보다. 나 같으면 그런 큰돈이 있으면 어떡할 줄 모를 텐데, 국가 재건 사업에 떡하니 내놓고.”

“어차피 빌려주는 겁니다.”

“그것도 아무도 못해. 대단한 건 대단한 거지. 어쩜 그리 돈에 초탈할 수가 있냐.”

“안 그래요. 저도 돈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너 하는 거 보면 물욕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이는데.”

“그냥 돈이 1순위가 아닐 뿐입니다. 오히려 전 지금 돈보다 더 급한 게 많습니다.”

지금의 그는 ‘돈을 버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가진 것, 행동, 발언, 그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다. 움직이는 경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레노지안에 비하면, 돈은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한다. 그저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효진 씨가 뭐라도 알아주면 좋으련만.’

신효진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꿈에서 젊은 시절의 아서 왕, 리온과 여행 중이었다.

“근데 네 주변은 괜찮은 거냐? 아무래도 여론이 좀 시끌시끌하던데.”

“메일함에 투서랍시고 수천 통은 온 것 같습니다. 몇 개 읽어봤는데 다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어서 관뒀습니다.”

“뭐라고 하는데?”

“제가 국가에 투자한 소중한 돈이 무능한 정부의 그릇된 판단으로 거지떼들을 먹여 살리는데 쓰이고 있다, 뭐 그런 내용들이 주류입니다.”

박효산은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찼다.

“뭐 그렇게 머저리 같고 과격해?”

“그래도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수준입니다. 더 과격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난리도 아니네. 돈 앞에서 나라가 단체로 눈이 뒤집혔나.”

대중은 한서진이 1차로 매입한 500조 원을 반쯤 기부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 엄연한 국채 매입이었는데도.

수익률이 지극히 낮고 만기가 긴 데다가, 현재 국가 재정으로 북한 난민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나서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지만, 그만큼 그가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여론도 커졌다.

“너도 꽤 골치 아프겠구나.”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전 돈만 내주고 그 외는 일체 신경 쓰지 않거든요.”

“그런 거 보면 참 어지간히 강심장이야. 나 같으면 그런 큰돈을 내놓는데 덜덜 떨려서 심장이 멎을 거 같은데.”

“생각보다 별로 안 떨려요. 못 돌려받아도 상관 없구요.”

국채 매입의 형태를 띤 이상, 국가가 망하기 전에는 못 돌려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서진도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만큼 돈의 규모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서진은 순간 찌잉 하고 머리를 울리는 두통에 비틀거렸다. 박효산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냐?”

“아닙니다. 그냥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서요…… 윽!”

순간 한서진은 헛구역질을 했다. 박효산이 놀라서 달려왔다.

“인마,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왜 그래?”

한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조금 전 느꼈던 가벼운 어지럼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박효산을 바라봤다. 눈이 터져 나갈 듯이 뜨거웠다.

「ɢœʤß ɦɢœŋɑijŦß .」

「Ħ ħĸ ðÐ ª Ħ ħʼn.」

「..··· ――· ―· ――...· 」

온 세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 기호로 변해 보이는 시야를 가득 뒤덮는다. 인간의 두뇌로는 인지하기 힘든 정보의 홍수가 눈앞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갑작스럽게 발동한 통찰안, 한서진은 필사적으로 통찰안을 끄기 위해 집중했다. 이를 악물고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젠장! 갑자기 왜 이래!’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통찰안은 닫히지 않았다. 힘든 연습 끝에 적어도 열고 닫는 것만큼은 자유로웠는데, 그의 노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인두가 두 눈을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온몸의 피가 팔팔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몸을 쥐어뜯듯이 긁어댔다.

“아아악!”

“119! 빨리 119 불러!”

박효산 교수의 다급한 외침을 끝으로, 의식이 닫혔다.

조금씩 웅성거림이 커진다.

처음에는 작은 아우성 같았던 그것은 곧 걱정과 불안에 찬 소음으로 변했다.

음색의 실체가 조금씩 선명해짐에 따라 대화 내용이 귀에 들려왔다. 그중 걱정에 가득 찬 송하나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오빠가 대체 왜 이런 거예요?”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아마 과로가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허허, 녀석이 최근 연구에 너무 열심이긴 했어. 뭐 언제는 안 그랬느냐만은.”

“교수님, 오빠 너무 일 많이 시키지 마세요. 오빠 몸은 오빠만의 것이 아니라구요.”

“알았다, 알았어.”

새침한 목소리와 무안한 목소리가 교차한다. 송하나가 어떤 얼굴로 바가지 긁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한서진은 서서히 눈을 뜨고,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 오빠!”

송하나가 얼른 반갑게 돌아보았다. 그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나, 맞지?”

“네, 저 알아보겠어요?”

“…….”

“……오빠?”

한서진의 반응이 이상했던 송하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녀가 가볍게 어깨를 흔들자 그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야. 잠시 눈앞이 좀 이상하게 보여서. 나 멀쩡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지럽거나 그러진 않습니까?”

주치의가 질문했다. 한서진은 그도 한 번 바라보다가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여기 잠시만 봐주시죠.”

주치의는 안구의 움직임 체크 등 몇 가지를 확인한 뒤 다시 말했다.

“단순 과로로 생각됩니다. 별 이상은 없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입원하신 뒤에 퇴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오빠.”

“알겠어. 그렇게 할게.”

의료진과 박효산이 함께 나가자 송하나는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사람을 이렇게 놀래키시면 어떡해요. 이렇게 갑자기 아픈 게 어딨어요, 대체?”

“그 말은 좀 모순 같은데. 사람이 원래 갑자기 아픈 거지, 일정을 세워서 아픈 건 아니잖아.”

“너무해요. 전 걱정 많이 했는데.”

“하하, 장난이야.”

한서진은 키득거리며 어깨를 토닥였다.

한쪽에 불만스러운 얼굴로 앉아 팔짱을 끼고 있던 한지혜가 끼어들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병문안을 왔는데 언제까지 병풍처럼 세워 둘 작정이셔?”

“어, 지혜 넌 언제 왔어?”

“처음부터 와 있었거든? 내가 안 불렀으면 끝까지 몰랐을 눈치다, 오빠?”

한서진은 피식거렸고, 한지혜는 가방을 들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강히 일어난 거 확인했으니까 난 가볼게.”

“언니, 왜 벌써 가세요. 같이 있어요.”

“미안, 넌 괜찮을지 몰라도 오빠는 당장 안 나가면 카드 정지시킬 기세라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돼.”

“그럼 제 카드라도.”

“그건 나중에 오빠 몰래.”

가볍게 농담을 던진 한지혜는 병실을 나섰다.

복도까지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온 송하나는 한서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에 뭐가 들어간 사람처럼 연거푸 비볐다가 다시 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빠, 눈에 뭐가 들어갔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서진은 얼른 손을 내리고, 송하나를 가만히 주시했다.

속으로 통찰안을 발동시키려고 해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통찰안이 꺼진 거야, 켜진 거야?’

통찰안은 반응이 없다.

그러나 지금 눈에 맺힌 이 기묘한 감각은, 분명 통찰안이 발동돼 있을 때와 흡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뭔가 다르다.’

시야가 기묘했다.

마치 파르스름한 필터를 각막에 끼운 것처럼, 온 시야에 은은한 파란빛이 맺혀 있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으면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만큼 미약한 변화였다.

링겔액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그는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이건 뭐야?’

링겔액이 담고 있는 정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머릿속으로 직접,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통찰뇌?

아니, 이건 뭔가 어감이 이상하네요.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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